[대선 특별기획] 고승우의 국가보안법과 대선(9)

현장언론 민플러스가 19대 조기 대선을 앞두고 국가보안법이 과거 주요 선거 시기에 어떻게 작동했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지탱되어 온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 분단체제를 재조명해 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특별기획 ‘국가보안법과 대선’은 6.15남측위원회 언론본부 정책위원장인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가 연재한다. [편집주]

몇 년 전 ‘헬조선’, ‘지옥불반도’라는 말이 인터넷 등에서 회자될 때 경희대, 고대 등 대학가에서 ‘김일성 만세’ 대자보가 등장해 표현의 자유 억압, 국가보안법 폐해 문제를 고발한 적이 있다. 당시 이를 비판, 반대하는 대자보도 나오는 등 논란이 되다가 ‘김일성 만세’ 대자보가 철거되거나 훼손되면서 일단락 됐다(미디어라이솔 2015년 12월17일).

▲ 2015년 고려대학교 게시판에 붙은 ‘김일성 만세’ 대자보

당시 대자보 논란은 고 김수영 시인의 시 ‘김일성 만세’(1960년 작)를 한 대학생이 대자보 형식으로 학내에 게시하면서 시작됐다. 김수영 시인의 이 시는 표현의 자유와 검열을 비판하며 언론의 자유는 ‘김일성 만세’를 외치는 행위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한 도발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해당 시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 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고 김수영 시인은 ‘김일성 만세’를 통해 국가보안법에 억눌린 언론자유, 표현의 자유가 원상회복되어야 한다고 시인의 절절한 목소리로 고발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참여시인의 한 사람인 이 시인은 부당한 권력에 고통 받는 민중의 저항의지를 우렁찬 목소리로 대변한 것이다. 이 시인의 사자후는 2015년 하반기 박근혜 정권이 억압하던 민주주의와 언론자유 상황에 분노한 젊은이들의 대자보로 부활했고 그것은 1년 뒤 촛불이 되어 타올랐다.

박근혜의 청와대는 공영방송 장악과 함께 언론사에 대한 소송을 남발하는 방식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짓밟아 한국 언론자유 수준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는 형편없이 추락했다. 바로 그 상황에서 ‘헬조선’, ‘지옥불반도’라는 시대의 상징어와 함께 ‘김일성 만세’ 대자보가 등장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한국의 보안당국이 국가보안법 제7조 위반 사례를 지속적으로 감시ㆍ적발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북한 등 반국가체제를 찬양ㆍ고무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국가보안법 제7조’를 폐지하여야 한다고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유엔의 국가보안법 철폐 권고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2015년 11월 6일 “국가보안법, 국제사회의 수치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국가보안법 문제에 관해 유엔을 비롯 미국 정부는 개정을 기본방침으로 정해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 국무부 또한 매년 발표하는 국무부 인권보고서에서 국가보안법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다’고 지적했다.

민변은 이어 ‘국가보안법은 지난 독재정권 시절 분단을 빌미로 압제와 인권유린에 항의하는 일체의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기능을 톡톡히 수행해 왔다. 독재체제 몰락과 함께 역사의 박물관으로 사라졌어야 할 국가보안법은 분단기득권 세력의 이해를 관철하는 도구로 살아남아 지금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게 하는 첨병 역할을 하고 종북프레임을 규범적으로 떠받치는 근거가 되고 있다’고 규탄했다.

‘김일성 만세’ 대자보와 국가보안법 철폐 주장 속에서 등장한 ‘헬 조선’, ‘지옥불반도’라는 말이 당시 언론에서도 자주 오르내리고 해당 사이트 활동도 활발한 것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무릇 언어란 시대의 반영이고 시대를 만들어가는 동력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두 단어에 대해 위키피디아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헬조선(Hell朝鮮)은 2010년에 등장한 대한민국의 인터넷 신조어이다. 비슷한 개념을 가진 다른 단어로 지옥불반도라는 단어도 사용된다.

본래 헬조선은 디시인사이드 역사갤러리에서 사용된 용어였다. 그러다가 청년실업 문제와 세월호 침몰 사고 등으로 인한 정부의 실패, 경제적 불평등이나 과다한 노동시간의 문제,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불합리함 등에 사용되었다. 이후 트위터 등을 통해 언급량이 늘어 2015년 9월에 빠르게 확산되었다.

인간 생지옥, 이는 헬조선의 순수 우리말이라 하겠다. 헬조선은 지옥을 의미하는 hell과 조선이 합쳐진 것으로 고통스럽고 미래가 닫힌 절망스런 남한 사회를 빗댄 신조어다. 특히 구조화된 사회적 모순 등에 대해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한국 사회의 ‘불통’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절망스런 사회라는 것을 상징하는 사회적 지표로 자살률 최고, 출산율 최저라는 두 통계수치를 생각할 수 있고 헬조선, 지옥불반도라는 말도 이런 통계수치와 무관치 않다. 인간의 삶과 사회라는 공동체를 연상할 때 자살률 최고, 출산율 최저라는 변수가 지닌 의미는 너무 심각하다. 이 두 수치를 연결시킨 사회적 의미는 ‘나도 살기 싫고 후손도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고 그런 속성을 지닌 사회를 인간 생지옥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는 박정희 독재자 시절부터 정치적 비판, 심지어 건강한 삶, 생명과 직결된 환경 문제조차 국가 안보 차원에서 철퇴를 가했고 오늘날에도 체제 비판 등에 대해 보수층 일부에서는 ‘종북’이라는 색깔론으로 생매장시키려 하거나 침묵을 강요하고 있다.

헬조선, 지옥불반도라는 용어가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넓힌 것은 청년층이 고발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절망적인 청년실업률, 비정규직 문제, 결혼과 출산 기피, 자살률 심각, 경제적 불평등, 정부의 무능과 같은 여러 현상은 청년들이 겪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여러 가지 고통에 대한 각론들이다. 헬조선에 담긴 청년들의 한국 사회에 대한 평가는, 개선의 여지가 없는 최악의, 두 번 생각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사회라는 의미다(미디어라이솔 2015.10.03).

헬조선은 수십년전 종식된 이념논쟁이 남한에서 여전한 것에 대한 절망감을 담고 있다. 즉 ‘공산당 때려잡자’며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조작해 공포 정치를 자행하는 매카시즘이 21세기에도 여전한 한국 사회의 후진성을 고발하고 있다. 이 단어는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상의 자유가 제한된 닫히고 막힌 사회의 절규다.

그러나 정치권이고 어디고 간에 ‘한국적 자살과 출산율’과 같은 섬뜩한 지표를 연결시켜 한국 사회가 생지옥, 헬조선이라는 사실을 선뜻 받아드리려 하지 않았다. 거대 여야 정당은 물론 진보적 정당이라고 하는 곳도 대부분 우리 사회 최악의 절망적 병폐를 외면하는데 익숙하다. 국회의원 배지 등 정치적 완장을 차는데 혈안이 된 전문 정치집단들은 중산층을 공략하고 그들의 공감을 사야 선거에 유리하다는 선거 공학의 포로가 된 지 오래다. 그 결과 사회의 어두운 곳에 대한 정치적 고발은 가급적 삼가는 것이다.

헬조선, 즉 인간 생지옥이라는 한국의 민낯 가운데 한강의 기적이라고 칭송되는 고속 경제성장이 빚어낸 독기서린 부작용은 너무 심각하다. 박정희가 민주주의를 짓밟으면서 강행한 개발 독재 전략이 빚어낸 구조적 폐해는 재벌이 국가적 부를 독식하는 왜곡된 경제구조로 굳어져 살인적인 양극화, 청년실업, 비정규직문제, 노인복지 외면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4대강 사업, 자원 외교에 천문학적인 혈세가 낭비된 것이 삼척동자에게도 뻔한 데도 진실을 밝히는 노력을 정치권은 하지 않는다. 국가부패지수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고용 증대 없는 성장이 심화되고 경제성장 동력이 바닥을 기고 있다. 한국은 60년대식의 절대적 빈곤은 사라졌다고 하나 10%의 부유층이 누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사치와 흥청거림 속에서 90%가 가슴을 쥐어뜯는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되고 있다.

분단이 장기화되면서 남북간 전쟁위기와 남북 정치세력의 이념 대결적 선전전, 심리전이 일상화되고 국가보안법이 통일이나 분단 청산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의 자유를 제약하는 현실이 빚어내는 비극 또한 자심하다. 전쟁의 가능성을 늘 옆에 끼고 살아야 하는 사회는 생명을 경시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탕주의가 판을 친다. 공정한 게임의 법칙이 자리 잡기 어렵고 상대는 공존의 동반자가 아니라 경쟁이나 청산의 대상이라는 살벌한 인간관계가 판을 친다.

생명 존중과는 거리가 먼 한국 사회는 노인들의 장수도 사회적 부담으로 규정하는 정보, 정책이 양산된다. 진시황이 부러워할 만한 장수시대가 되었지만 이 사회의 노인들은 왜 병들어 빨리 죽지 않을까 탄식하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서 늙어가야 하는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장수시대를 사회적 골칫거리로 전락시킨 이 사회의 미래는 너무 암담하다.

재벌이라는 경제적 공룡에 장악된 정치권은 재벌 개혁은 외면한 채 노동자집단의 청년과 장년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고 기업이 근로자 해직을 쉽게 만들어주는 식의 ‘노동개악’을 앞세운다.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박근혜가 대통령 시절 내놓은 '청년희망펀드'는 돈을 넣으면 되돌려 받을 수 없는, 기부하는 것인데도 ‘펀드’라는 명칭을 붙여 국민적 혼란을 야기한다.

청년실업이 살인적인 사회에서, 보통 사람이 하루아침에 유명스타로 탄생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성행인 것도 주목되는 이벤트다. 예를 들면, 인기 있는 신인 가수를 뽑는 오디션에는 청년 수백만 명이 도전하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 한 사람이 남는다. 우승한 신인가수는 상금과 상품을 독차지하는 승자 독식의 혜택을 누린다. 탐욕스런 신자유주의적 논리가 오디션에 적용된 것은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오디션이 강조하는 이데올로기는 간단명료하다. 오디션은 청년들에게 경쟁이란 다수의 패자와 하나의 승자만이 남는 냉혈적인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대표적 이벤트다. 이를 통해 청년실업은 결국 경쟁에서 패배한 다수의 청년이 감수해야 할 당연한 과정이라는 것이 강조된다. 언론사가 오디션을 앞 다퉈 하게 된 것이 언론사 스스로 결정한 것인지 정치권의 주문에 의한 것인지 분명치 않다. 하지만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부분이다.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에서 심각한 무능과 무책임한 속내를 드러내는가 하면 정의확립과 행복증진과는 거리가 먼 정치를 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 결국 촛불 속에 조기 퇴진했다. 그러나 촛불이 횃불이 된 상황에 이르기까지 야당도 엉망인 것은 마찬가지다. 청년실업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모색하는 진지한 정치가 실종되고 자살과 출산 등이 심각한 상황에 대해서도 대선 후보들의 해법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심각한 구조적 병리현상은 기성세대 대부분, 예를 들어 정치권이나 학계, 지식인 계층 등에서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결과다. 그런 직무유기로 인한 후유증이 청년층이 앓고 있는 고통과 분노의 발생 원인이 되고 있다.

청년은 이 사회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청년들이 잘 돼야 한반도 공동체의 미래가 밝다. 청년들을 절망케 만든 이 사회의 모순에 대한 해결 노력이 시급하다. 한국 사회 문제에 대한 전방위적인 접근과 문제 분석을 통해서만이 헬조선, 지옥불반도라는 두 단어가 고발하는 한국 사회의 참상에 대한 실상이 밝혀질 것이다. 청년들을 특히 괴롭히는 뒤틀리고 악취 나는 현실의 실체가 밝혀지면 그 해법 또한 제시될 가능성이 크다. 기성 정치권이 대선에 몰두하고 있지만 촛불이 고발한 이 사회의 적폐를 청산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또 다시 등장할 촛불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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