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특별기획] 고승우의 국가보안법과 대선(2)

현장언론 민플러스가 19대 조기 대선을 앞두고 국가보안법이 과거 주요 선거 시기에 어떻게 작동했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지탱되어 온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 분단체제를 재조명해 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특별기획 ‘국가보안법과 대선’은 6.15남측위원회 언론본부 정책위원장인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가 연재한다. [편집주]

19대 대선이 발등의 불이 되면서 여권과 일부 TV는 ‘진보와 보수 대결’이라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는 2012년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과 수구언론이 ‘보수와 진보의 한판 승부’라고 규정했던 것과 흡사하다. 그러나 5년전 여야와 마찬가지로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모든 면에서 엇비슷한 보수정당이라는 점에서 타당하지 않다.

▲ 사진 출처 뉴시스

돌이켜 보면 2012년 18대 대선이 끝난 뒤 당시 민주당의 모습은 매우 한심했다. 민주당은 선거 패배 이후 패인 분석을 한다면서 후보 단일화, 정강정책 등에서의 문제를 다뤘지만 정작 이명박 정권 내내, 그리고 18대 대선 정국에서 기승을 부린 종북몰이나 친북 공세는 분석 항목에도 넣지 않았다.

민주당의 대선 패배 분석에 여러 가지 원인들이 제시되었지만 종북몰이나 친북 공세 또는 그 뿌리인 국가보안법이라는 무서운 변수에 대해서는 침묵한 것이다. 이는 어떤 면에서 보수가 쳐놓은 프레임의 그물에 걸린 모습으로 보였다. 즉 보안법이라는 무서운 괴물 앞에서 정치적으로 속수무책이라는 패배자 의식의 발로이거나 자칫 친북 정당으로 매도될 것을 두려워한 결과로 해석된 것이다.

보안법이 뿌리인 종북 공세는 이른바 과거 북풍과 함께 수구보수세력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흉기다. 18대 대선은 그 이전의 크고 작은 선거에서 흔히 그랬듯이 ‘북한 변수’가 강하게 영향을 미쳤다. 당시 북한과 관련한 모든 것은 이 사회를 위협하는 것으로 규정되고 야당을 공격하는 무기로 새누리당 후보에 의해 악용되었다. 언론은 그것을 대서특필했다. 선거 가끝난 뒤 여권과 언론 등은 ‘보수와 진보의 진검 승부에서 보수가 승리했다’고 표현했다.

18대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는 보안법의 존재에 철저히 대비한 정강정책을 내세웠다. 민주당은 일부 진보당 세력과는 처음부터 선을 그으면서 차별성을 강조했고 그 결과 새누리당 후보와는 몇 가지 점만 빼면 엇비슷한 대북정책을 제시했다. 그렇지만 새누리당 쪽에서 한술 더 뜨는 식의 공세를 취했다.

즉 서해북방한계선(NLL),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내용 폭로 주장 등 남북문제와 관련해 확인되지 않았거나, 실제 허위일지도 모르는 것을 앞세워 민주당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새누리당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으로 조성된 국내의 불안감과 정서에 편승하는 작전을 간교할 정도로 구사했다. 이는 보안법이 지배하는 현실을 십분 악용한 것이다.

이번 대선도 수구보수세력이 ‘보수와 진보의 대결’로 묘사하면서 본격 시합에 압선 몸 풀기를 하고 있다. 민주당 등 어제까지의 야권도 대선판에 대해 진보와 보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말하는 보수와 진보의 개념은 모호하기 짝이 없다. 서구사회에서 300여 년 동안 갈고 닦여진 보수와 진보의 개념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한국적 보수와 진보는 보안법이라는 테두리 속에서의 진영 나누기다. 한국적 진보는 서구의 진보가 누리는, 상한선 없는 사고의 영역을 제거 당한 그런 진보다. 그래서 한국적 진보가 보안법의 현실적 강제성을 인정하면 할수록 보수와의 차별성은 더욱 희박해진다. 둘이 닮은 꼴이 되는 것이다.

이번에 파면 당한 박근혜가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을 업고 당선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박근혜는 보안법 테두리 안에서의 강압통치를 통해 통합진보당을 강제 해산했고 남북 관계도 집권 중반 이후 전쟁 위험이 일상화되게 만들었다. 국민을 겁박한 ‘전쟁의 리더십’이었다.

전쟁의 리더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고 적을 이기기 위해 동원된 모든 방식은 정당화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당연히 전쟁의 전략전술은 적을 기만하는 것이 최상의 것이다. 정치에서 전쟁의 리더십이 기승을 부리는 한국의 정치가 엉망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평등한 관계에서 공정한 룰에 의한 정당한 경쟁이나 섬기는 리더십은 립 서비스에 그친다. 전쟁의 리더십을 최상의 리더십으로 군림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보안법이다.

박근혜 후보는 18대 대선에서 적을 무찌르기 위해 모든 수단이 정당화된다는 전략을 앞세웠다. 야당의 공약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선전했다. 거짓말이라 해도 지지세력의 결집에 필요하고 중도층을 끌어드리는데 필요하다면 끊임없이 되풀이 했다. 유권자에게는 정직을 가장한 정책을 제시하면서 야당 후보에 대해서는 전쟁터에서와 같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했다. 이는 국보법에 의해 중독된 대중과 그 프레임에 갇힌 야당을 공략하는데 최상의 무기였다는 확신의 결과다. 박근혜는 당선되자마자 복지나 경제 민주화 등의 공약을 헌신짝 버리듯 했다.

새누리당은 보안법의 기본 취지와 같이 적은 반드시 괴멸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을 앞세워 길거리마다 다니면서 보수층의 집단이기주의를 부추기고 사실관계 파악에 어두운 유권자들을 기만했다. 그것은 정직하지 않은 정치 행위였다. 불법선거에 대한 비판과 네거티브 공세를 뒤섞어버리는데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등이 큰 보조역할을 하면서 새누리당 후보를 도왔다. 이들 권력기관은 종북주의와 야당 후보를 일치시키면서 조직을 보안법 사수의 결사대로 존치시키는 분위기를 일찍부터 조성했다.

새누리당 후보는 선대본부 간부가 불법 홍보팀을 운영하다 선관위에 적발되었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수사를 해봐야 한다고 말하거나 북방한계선과 관련해 민주당 후보가 하지도 않은 말을 지속적으로 녹음기 틀듯 언급했다. 국정원 직원의 선거 개입의혹에 대해서도 딱 잡아떼면서 상대 후보를 공격했다. 이런 작태는 경찰, 국정원 등의 직간접적인 보조 작업이 결정적인 뒷받침이 되었다.

박근혜는 선거 과정에서 자신이 말했던 거짓이나 허위 사실에 대해 대선 승리 이후 이렇다 할 정정이나 사과의 말을 내놓지 않았다. 조금도 부끄러워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국정원 직원의 대선 개입 사실이 드러난 것에 대해 국민앞에 사과하지 않은 채 파면 당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최상의 목표로 삼는 결과지상주의가 지배하는, 수치심을 모르는 사회적 기풍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선거를 전쟁 치르듯 하고 선거 이후에는 그 과정에 대해 나 몰라라 하는 부도덕한 정치가 용인되는 현실은 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쉽게 고쳐지기 어렵다. 대선에서 보안법이라는 무서운 독기를 약하게 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유권자에게 보안법의 영향을 능가하는 엄청난 감동을 주는 정치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김대중, 노무현 당선이 그런 경우처럼 보인다.

대다수 국민은 장기간 안보법의 독기에 중독된 나머지 자신이나 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는지 조차 인식치 못하게 되었다. 산소를 평소에 의식치 못하듯 일상생활에서 이 나라 국민은 국가보안법의 테두리에 갇혀 살면서 그 폐해를 인식치 못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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