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조작 등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한 의법 조치 시급

현장언론 민플러스가 19대 조기 대선을 앞두고 국가보안법이 과거 주요 선거 시기에 어떻게 작동했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지탱되어 온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 분단체제를 재조명해 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특별기획 ‘국가보안법과 대선’은 6.15남측위원회 언론본부 정책위원장인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가 연재한다. [편집주]

국가인권위원회가 2004년 낸 보고서 ‘국가보안법 적용상에서 나타난 인권실태’에 따르면 1961년부터 2002년까지 7778명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거됐으며, 이들 중 90% 이상에게 제7조 찬양·고무죄가 적용됐다. 보고서는 국가보안법의 다른 조항들이 형법 등과 중복되는 데 반해 제7조는 다른 법에는 없는 조항으로 국가보안법의 ‘상징’이라고 지적했다(서울신문 2004년 8월25일).

▲ 인혁당 사건 피해 유족들이 영정을 들고. [사진출처 뉴시스]

보고서는 국가보안법의 적용 절차에 있어서도 고문 등 가혹행위, 불법 체포, 피의사실 공표 등 인권침해가 자행된 실태를 지적하면서 “국가보안법은 국가 안보가 아닌 정권안보를 위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국가보안법이 반인륜적으로 남용된 사건으로는 대법원의 사형선고 20시간 만에 형이 집행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 이승만 정권 시절 사법살인을 당한 죽산 조봉암 선생 사건, 검사가 직접 고문을 지시한 ‘깃발사건’, 검사와 고문 수사관들이 공조, 협박한 ‘송씨 일가 간첩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헌법재판소와 대검찰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49년 처음으로 사형을 집행한 이래 사형이 마지막으로 집행된 1997년 12월30일까지 모두 920명의 사형이 집행됐으며 48년 이후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254명의 사형이 집행됐다. 간첩죄로 사형된 사람은 43명이었다. 남북 분단과 좌·우 이념대결 속에 국가 살인이 심각했던 것으로 풀이된다(노컷뉴스 2010년 2월25일). 1986년 전두환 정권 때 국가보안법 사범이 마지막으로 사형대에 오른 후에는 사형에 처해진 사상·정치범은 없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변란을 도모했다는 이유로 사법 살인을 당했다가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권고로 재심을 거쳐 얼마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국가보안법은 수 십년 동안 수많은 ‘빨갱이’나 간첩을 양산했는데 이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불법구금, 고문 등으로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소지가 많은 법으로 그 집행과정에서 남용되어 무고한 사람들의 인권을 짓밟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1~2014년까지 4년 동안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 중 대부분이 무죄나 집행유예를 받았으며, 실형을 선고 받은 경우는 16.8%에 불과, 5명 중 1명에도 못 미쳤다.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는 17%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 다른 통계도 있다. 대법원은 2007년, 지난 1972~87년 동안 발생한 시국·공안사건 6천여 건을 분석해 재심 예상 사건 224건을 분류함으로써 유신정권과 전두환 정권시절 발생한 대부분의 시국·공안 사건은 사실상 재심이 필요하다고 인정했다(사람일보 2007년 2월12일).

대법원이 재심 예상 사건으로 분류한 224건 중 가장 많은 것은 간첩사건(141건, 62.9%)과 반국가단체 구성 사건(13건, 5.8%)이며, 긴급조치 위반사건 26건, 민주화운동 12건, 기타 33건 등이었다. 특히 간첩사건 중에는 그동안 인권단체들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해 온 대부분 사건이 해당된다. 재심 예상 간첩사건 141건에는 조총련 관련 52건, 남파간첩 33건, 납북어부 18건, 재일교포 16건, 기타 22건 등이 포함된다.

국가보안법 적용상에서 나타난 인권실태는 국가인권위가 지난 2003년 발표한 연구용역보고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힌 데서 그 참혹함이 드러난다 - “일반시민들이 술김에 격분으로 또는 농담 삼아 토로한 언동조차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으로 단죄되었는데, 바로 이처럼 과도하게 남용되는 것을 빗댄 표현이 ‘막걸리 반공법’ 또는 ‘막걸리 국가보안법’이라는 별칭이었다.”

일반시민들의 사소한 불만마저 정권 비판으로 둔갑했다. 이런 비판은 북한이 남한 정권을 비판하는 것과 비슷한 논리구조를 갖게 되기 때문에 친북반미로 해석되고, 이는 곧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이 쳐놓은 그물에 딱 걸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원순 시장은 변호사 시절 펴낸 <국가보안법 연구>를 통해 “가장 초보적이고 원천적인 언론자유의 유린”이라며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에 비유했다. ‘마녀사냥’은 유럽에서 1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선량하고 무고한 부녀자를 종교 재판에 부쳐 살해한 만행으로 이는 부패한 교회와 국가, 성직자와 귀족들의 정치적 무능과 부도덕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였다. 박 변호사는 “보안법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틀로서, 이 법이 지향하는 체제와 그 체제로 인해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들의 보호막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한겨레 2004년 9월9일).

박정희, 전두환 등은 정권 위기 상황이 닥치면 이를 모면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앞세운 공안 사건을 터뜨렸다. 그 때마다 정보기관, 검찰 등의 고문 등으로 사건이 조작되어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이 드러나 2000년대 들어 재심을 통해 무죄로 판명이 나는 사건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재심을 통해 무죄로 결론난 대표적인 경우는 조봉암 선생을 비롯해 '민청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고 김근태 전 의원,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던 재일교포 강모(사망)씨 등 6명,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된 '부림사건'으로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고모씨 등 5명, 지난 1984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4년을 선고받고 실제로 12년6개월의 옥살이를 한 납북어부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 김씨 등이다.

지난 수년간 국가보안법, 간첩 죄 등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가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경우가 100여 건을 넘는다. 한심한 것은 가짜 간첩 등을 만들어낸 공로로 정부로부터 훈포장을 받았던 국정원이나 검찰, 경찰의 담당 공무원들은 사건 조작에 대해 처벌 받기는커녕 해당 훈포장에 대한 취소 등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으로 간첩을 조작하는 등 인권을 유린하고, 민주화 요구를 탄압한 자들과 가짜 간첩을 만들어내어 반공 이데올로기 및 군사독재권력 유지 연장에 기여한 자들에 대한 서훈 박탈은 이명박근혜 기간 동안 지연되었다.

얼마전 발표된 ‘반(反)헌법행위자 열전 수록 집중검토 대상자 405명 명단’에 따르면 건국 이래 반공법, 국가보안법 사건 조작에 앞장서거나 심각한 반민주주의적 행태에 앞장서 훈포장을 받은 공직자들은 아래와 같다(브레이크뉴스 2017년 2월17일).

인혁당 사건 등 1960, 70년대 중앙정보부 고문수사의 대명사 이용택 중정 6국장은 국가안전보장 유공자에게 주는 보국훈장만 3개고, 1980년대 김근태, 심진구 고문 및 중부지역당 등 조작사건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정형근은 4개다. 또한 6.8부정선거, 삼선개헌의 정일권은 무려 9개, 북풍, 안풍, 총풍 등 헌정을 유린한 권영해는 5개, 1950년대 초 5개 분야 국민학살에 모두 간여한 송요찬은 국민훈장 중 가장 높은 무궁화장 등 6개를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

1965년 치안국 박영수, 정석모 등 32명은 “한일회담반대라는 불법시위와 난동사태 예방진압 임무수행을 위해 자기생명을 무릅쓰고 공안질서유지에 공헌했다”는 이유로 3등 근무공로훈장 등을, 1971년 보안사 김재규, 김교련 이학봉 등 17명은 “1971년 양대 선거를 계기로 4.19와 같은 민중봉기를 획책한 간첩단 4개망을 적발했다”는 이유로 보국훈장 등을 수여받았다.

1974년 중정 안경상 등 5명은 울릉도 간첩단 검거를 이유로, 1975년 보안사 이학봉 등 17명은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검거를 이유로 보국훈장 등이 수여되었다. 1980년대에도 매년 몇 차례씩 보안사 소속 장병화 등 4명, 백남은 등 10명, 안기부 이종원 등 7명이 정권유지 연장을 위해 이런 식으로 훈장이 수여되었다.

인권을 유린하고 민주화를 탄압하며 간첩을 조작한 사람들에게 수여된 훈포장 박탈과 같은 정당한 조치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또한 과거 인권과 헌법을 유린한 사건들이 재심에서 형사 무죄가 선고되면, 국가 손해배상판결로 이어지고 그 손해배상을 국가가 부담하는데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정부가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고 있어 문제다. 범죄자들이 저지른 범죄의 손해배상을 당사자들이 부담하지 않고 국민이 낸 세금으로 부담하게 하는 비정상은 시급히 시정되어야 한다.

파면, 구속된 박근혜 정권 시절에도 간첩 조작사건이 발생한 것은 인권유린 행위에 대한 배상 등의 법적 장치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경제력이 세계 10위권이라면서 인권 유린, 명예훼손 등에 대한 배상, 보상 제도는 1960~70년대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인권유린과 명예훼손 등이 정부기관이나 수구보수단체 등에 의해 자행되는 일이 빈번하다.

한국 사회를 혼탁하게 만드는 이런 후진적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생명과 인권 등에 대해 서구의 경우와 같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공직자가 범행을 저질렀을 때 국가가 구상권을 행사해 해당 공직자가 경제적 부담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래야 사법 살인이나 종북, 친북 공세 등이 멈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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