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선의 문화정책 돌아보기 10 -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과 예술가 블랙리스트

두 얼굴의 조윤선

▲ 조윤선장관[사진 ; 문체부 홈페이지]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로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자 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적용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를 거부하던 1급 공무원 6명을 사퇴시켰고 본인 역시 사퇴당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유 전 장관으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농단 중 문화부 관련 부분이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진룡 장관은 지난 기고에서 지적한대로 관료중심 문화체육관광부를 만들어 간 인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이번 블랙리스트에 대한 폭로를 보면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조윤선이 가진 두 얼굴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된다. 조 장관은 국회의원이던 2012년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의 대표 발의자로서 최초의 만화입법을 실행한 문화애호가의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알려진 대로 2015년 정무수석시절 블랙리스트를 만든 핵심이다.

결국 겉으로는 문화를 애호하는 듯 포장했지만 뒤로는 문화를 말살하는 책임자였던 것이다. 이것도 모르고 만화계는 여성부 장관 시절 '위안부 만화전' 등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조윤선 장관의 두 얼굴이 만화계를 우롱한 것이다. 사실 이런 의구심은 '만화진흥에 관한 법룰'제정 때부터 들었다.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

2012년 국회의원 조윤선의 대표 발의로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다. 그러나 이 과정을 꼼꼼히 뜯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입법 과정을 정리해 보자.

만화계는 1999년 영화진흥법 등의 개정과 함께 영화진흥위원회 출범을 보면서 만화정책의 국가기관화 문제와 만화발전기금의 설치, 만화의 자율심의 제도 도입, 만화 저작권 보호 등을 골자로 하는 만화진흥법 제정을 위해 노력해왔다. 노무현 정부에서 제대로 입법화를 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제정을 시도하면서 자연스럽게 여당의 파트너로 조윤선 의원이 나섰다.

당초 조윤선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률은 만화계의 요구가 고스란히 반영됐다. 그러나 문화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심의 결과는 정부의 수정 요구를 받아 들여 법안의 핵심 사항인 만화정책 전담기구 설치와 만화발전기금, 만화자율심의, 만화저작권의 보호 등이 빠진 채 ‘정부는 만화를 진흥시켜야한다’로 요약할 수 있는 선언적인 입법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계는 입법에 기여한 조윤선 의원에게 큰 고마움을 표시하고 여성부장관 재직시절에는 ‘위안부 만화전시’ 등을 통해 함께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고마워해야 할 것인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만화계는 이용당했다

조윤선 의원의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과정을 보면, 특히 입법 과정에서 정부와 어떤 협의가 오가는지, 잘 아는 입장에서 보면 결론적으로 조윤선의 입법은 입법 소개 수준의, 실질적 노력이 없는 요식적 입법에 그쳤다.

▲ 만화인들이 만든 촛불 포스터

얼마든지 만화계의 요구가 일정하게 수용될 수 있는 지점이 있었지만 단지 조항을 삭제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말았다. 그리고 만화계의 의견을 받아 입법안을 제출할 때, 여당의원이라면 당연히 문화관광부와 협의를 진행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사전에 입법안을 조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흔적이 없다.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입법안을 제출하는 생색만 내고, 만화계의 성원을 받는 실리를 챙긴 것이다.

물론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의 제정은 그 자체로 의미가 없진 않다. 그러나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의 입법이며, 야당이 제안해도 가능한 것이었다. 일부러 여당을 통해서 발의한 것은 나름 실리를 찾기 위함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만화계는 입법을 통해 이용만 당하고 말았다고 본다. 그럼에도 만화계는 사실 조윤선 장관이 문화체육관광부로 오면서 만화계를 위해 긍정적인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국회의원이 입법을 통해 국민이 부여한 역할을 하는 것은 가장 큰 직무이다. 그러나 국회의 입법의 과정들을 보면 과장되거나 성과에 집착하는 등 실질적 개혁의 입법이 실제 이뤄지기는 어렵다. 조윤선 의원의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은 대표적인 성과주의 입법이다.

만화계의 의견을 받아 입법을 진행하는 듯 했지만 내용의 관철을 챙겨내지 못했다. 특히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의 경우는 대안이 가능한 법률안이었다. 진지하게 협의가 진행됐더라면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일정하게 만화계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었다. 만화진흥위원회의 설치 문제는 현재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만화정책위원회’설치 등을 통해서 만화계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갖게 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었다.

만화발전기금의 경우는 콘텐츠진흥기금 역할을 하는 ‘모태펀드’의 운용 시 만화에 일정비율이상을 배정하도록 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었다. 만화 저작권 보호는 반드시 들어가야 했다. 만화 자율심의 역시 지금은 실질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입법에 정부의 큰 우려가 없었던 사안이다. 결과적으로 아무런 입법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 결국 만화계는 이용당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예술가 블랙리스트가 조윤선의 본질

예술가 블랙리스트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로 조윤선 정무수석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수사가 진행 중이다. 물론 조 장관은 철저하게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밝혀질 것이다. 조윤선의 본 모습이 바로 블랙리스트 작성이다.

재산 문제와 변호사로서의 도덕성 문제 등 장관 청문회에서 밝혀진 조윤선의 모습은 문화와 예술을 진흥하기에 적임자가 아니었다. 결국 박근혜 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미르와 K스포츠 재단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자리이자, 문화계를 통제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도록 줄 세우는 역할이었다. 조윤선 장관 역시 전임 김종덕 장관과 같이 박근혜 게이트의 공범이다.

▲예술인들이 특검 앞에서 조윤선 장관을 비롯한 에술인블랙리스트 작성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박근혜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

문화계의 개혁 파트너

문화계는 개혁의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이 중 많은 과제가 입법과 연관을 가지고 있다. 국회가 먼저 입법을 위한 노력을 해야겠지만, 문화계 역시 원칙을 가지고 국회와의 협력을 해야 한다. 단순히 입법을 위해서 원칙을 버리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2012년의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은 충분히 고민해야할 사안이다.

지난 19대 국회의 마지막 법사위원회는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통과시킨 ‘애니메이션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을 부결 시켰다. 그것도 야당의원의 주장에 의해 부결시켰다. 입법의 주무 상임위원회가 내용을 의결한 것을 법률의 정당성 문제만을 평가해야할 법사위원회가 부결시킨 것은 월권이었다.

이 사안에도 문화계와 국회의 파트너 쉽이 아쉬웠던 사례다. 발의자가 비리혐의로 구속되고 교문위원도 아니었기에 파트너 쉽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원칙 없는 문화계의 입법 추진은 입법로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문화계가 입법을 추진할 때 지켜야 할 원칙은 첫째, 어느 정당의 소속인가를 살펴야 한다. 여당이라고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개혁 입법을 추진하는 것에 타당한 정당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둘째, 문화정책 담당 상임위원이어야 한다. 실제 법안을 협의하고 관철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 셋째, 대표 발의자의 활동에 대해서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협의 과정에 문화계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기준이 있겠지만 최소한 이들은 지켜질 수 있어야 한다.

지난 1999년 영화진흥법 등 문화개혁 4개 법안이 입법되기까지 영화계와 문화관광부와 1년에 걸친 끈질긴 협의를 통하여 관철시켰던 기억이 있다. 이를 통해 세워진 입법의 기준이 이것이다. 조윤선의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의 제정은 당시 문화 담당 상임위원이었다는 것 외에 앞서 제시한 기준을 다 어긴 것이다.

이렇게는 파트너십이 이뤄질 수 없다. 결국 조 장관의 말대로 ‘문화 애호가’로서 조윤선은 없다. 블랙리스트와 함께 문화 말살자 조윤선이 있을 뿐이다. 

 

김종선 국회문화관광위원회 위원 보좌관(1996~2004)/ 15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문화정책담당 행정관(2003) / 문화관광부 문화행정 혁신위원회 간사(이창동장관 정책보좌역) / 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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