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선의 문화정책 돌아보기 7 - 나라를 가치 있게 이끄는 예술

블랙리스트 예술행동

광화문 광장을 한 달 넘게 예술인들이 지키고 있다. 충무공 이순신 동상 옆에서 임란의 이순신처럼 광장을 지키고 있다. 광장에서 촛불을 처음 들고, 광장에서 촛불이 타오르도록 스스로를 태우고 있다. 군부 독재정권이 가장 치졸하게 통제했던 또는 이용했던 예술인들이 통제에 저항하고 있다. 부활한 검열의 악몽은 국가 지원의 사전 차단으로 자행됐고 예술인들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기 전에 싸움을 시작했다.

예술은 삶을 반영한다. 세상을 반영한다. 부조리를, 기존의 질서를 허물고 새로운 시작을 거듭한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박근혜 게이트는 예술가들을 광장으로 불렀다. 예술가들은 기꺼이 촛불의 심지가 됐다. 불빛에 가려 있지만 스스로를 불태우는 심지가 됐다. 아마도 예술가들의 오래된 숙명이었고 지금도 이어지는 피할 수 없는 굴레일 것이다.

블랙리스트 예술행동은 예술가들이 오랫동안 해왔던, 또 앞으로 할 책무의 실천이다. 그래서 더욱 잘해야 한다. 예술다워야 한다. 그러나 뒤늦게 나타난 명망가를 언론은 공허하게 쫒고, 완장을 찬 것처럼 들떠서 가끔 스스로를 잊기도 한다. 광장의 심지로서 예술은 더욱 겸손하고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그것이 결국 문화국가로 가는 예술의 역할이다.

문화가 돈이 된다?

문화가 돈이 된다고 꺼낸 정치인은 김영삼 대통령이 가장 먼저라고 할 수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문화와 예술을 통해 히틀러가 해왔던, 일제가 해왔던 식민지배정책을 재활용했고, 전두환과 노태우의 신군부는 왜곡이 극대화된 예술정책으로 우민화를 꾀했다. 김영삼은 첫 문민정부로서 대국민 메시지에 많은 정성을 들였다. 영화 ‘쥬라기공원’ 한 편이 현대자동차 2만 대 보다 많은 경제효과를 가져 온다‘라는 말로 문화의 경제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문화는 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화 특히 예술은 돈이 아니다. 산업적 역할도 아니다. 어느 선진국을 둘러봐도 예술 어느 장르가 전체적으로 수익성을 지닌 국가는 없다. 헐리우드의 영화도, 브로드웨이의 뮤지컬도 표면적이든, 숨어있든 결국은 국가 지원의 산물이다.

정책에 따른 지원의 결과다. 헐리우드 영화의 항공모함이 무상 협찬되듯, 전 세계에 영화를 배급하는데 미국의 정책적 지원, 개별국가의 영화제작 시스템을 붕괴시킨 미국의 문화공격으로 만들어진 국가주의 문화 침공의 결과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역시 뉴욕시 어물창고를 단 1달러에 빌려줄 때부터의 지원 정책 결과다. 문화를 통한 팍스아메리카나의 실현이다.

그런데 이를 알면서 또는 무지에서 비롯된 솔깃한 슬로건이 ‘문화가 돈이 된다’다. 이는 김대중 정부를 거쳐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에 가장 큰 희생물이 된다. 그리고 이명박근혜 정부는 예술 자체를 말살하고 만다. 한류를 강조하면서 노래와 드라마를 판다. 세계 최고라고 스스로 칭찬한다. 그렇다 이만한 산업규모를 가진 나라 중에서 가장 악랄한 착취를 당하고 있는 예술가의 국가다.

애플의 아이팟 음원 서비스가 들어올 수 없는 나라가 한류의 국가 한국이다. 대기업의 홍보 도구로 전락해 버린 드라마가 한류의 현실이다. 예술이 본질로서 자리 잡기 위해서 촛불 광장은 많은 시사를 한다. 예술이 제대로 역할을 할 때 국가는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촛불은 예술가에게 문화국가를 만들기 위한 목표를 부여하고 있다.

예술이 가치를 만든다

예술이 가치를 만든다. 김대중 정부 들어 예술은 정책의 대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국회에서 문화정책 업무를 보면서 현장의 예술가들과 나눈 수많은 밤들과 이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들을 기억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돈이 되지 않아도 지켜온 예술가의 자존심처럼 예술정책 역시 그렇다.

군부독재와의 비굴한 타협으로 문민정부를 만들었지만 한계를 가진 권위주의 정권의 한계는 김대중 정부를 통해 균열이 시작됐다. 그 시기 예술정책이 제자리를 찾아 가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회에 대한 고민, 시민들에 대한 고민이 예술정책을 불러온 것이다. 이는 김대중 정부의 예술정책 슬로건인 ‘삶의 질 향상’을 통해 작동하기 시작했다. ‘삶의 질 향상’은 지금은 평이하게 일상화 됐지만 당시는 획기적인 철학의 전환이었다. 이것이 예술의 힘이고 예술이 만드는 사회적 가치다.

이 과정에서 숨어 있는 노력이 있었다. 국회의원이라면 스스로 한 일을 과대 포장해서라도 알리고 정치생명을 연장하려 애쓴다. 김대중 정부시절의 최희준의원은 달랐다. 연예인 출신 야당 지역구의원으로 전국구 진출이라는 편법을 거부하고 출발한 사람답게 그의 의정활동 역시 예술가의 본 모습을 보였다.

현장에서 수렴된 의견을 현장과 합의를 통해서 제안하고, 끈질기게 예술정책의 모순을 해결하려 싸웠다. 그 결과가 영화의 검열 폐지, 라이브 클럽의 합법화, 영화 스크린쿼터 지키기, 콘텐츠산업의 벤처산업 적용을 통한 지원 시스템 구축, 게임의 최초 입법 등 수많은 법률과 정책을 만들고 문화와 예술의 사회적 자리 잡기를 노력했다.

이창동 감독의 문화관광부 장관 시절 역시 마찬가지다. 예술이 국가경영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창동 장관의 조기 경질은 노무현 정권 몰락의 신호탄이다. 국가 정보공개제도의 세계 최고도 수준을 만든 것이 이창동 장관의 문화관광부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가 ‘청구공개’에 머물러 있을 때 이를 ’정보공표‘의 수준까지 끌어 올리며 국가의 수준을 격상시켰다. 이는 예술의 기준에서 사회를 관조하는 가치적 관점에서 시작한 결과이다. 예술이 국가의 미래를 선도하는 중요한 기재임을 보여준 것이다.

안전한 대한민국 제안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도 어느덧 천일이 가까워 온다. 2003년 노무현 정부의 출범은 대구 지하철 참사와 함께 시작한다. 당시 정부가 보인 역할은 세월호 참사와는 달랐다. 이창동 장관의 2월 28일 취임사 역시 그러했다. 특히 대구 출신인 이장관의 대구 지하철 참사에 대한 예술가적 고뇌는 취임사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온라인에서 찾아보면 쉽게 그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기억하건데 중요한 고민이 있었음을 상기하고 싶다. 2003년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문화정책 담당 행정관으로 일하면서 당선자에게 문화계 입장에서 처음 올린 보고가 ‘안전’에 관한 것임을 기억한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모여 국가를 새롭게 출발하는데 가장 우선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토론하면서 만든 첫 번째 아젠다가 ‘안전한 대한민국’이었다. 예술계가 사회를 앞서 간다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예술을 위해 지원정책을 먼저 논하지 않고 예술가들은 ‘안전한 대한민국’에서 풍요로운 예술국가를 꿈꿨다. 이와 관련해서 볼 때 광화문 블랙리스트 예술행동은 예술가들의 당연한 역할이다.

사회의 건강성을 만드는 예술정책

다시 광장의 블랙리스트 예술행동을 생각한다. 묵묵히 자신의 예술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이들을 소중하게 맞이한다. 이들이 촛불을 처음 열고 끝까지 지켜갈 것이다. 이 자리에 명망은 필요하지 않다. 이 자리에게 개인의 사소한 권력적 욕심도 필요하지 않다. 사회의 건강성을 예술행동은 의도하지 않는다. 사회의 발전을 예술행동은 만들지 않는다. 예술가로서 예술이 사회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기에 사회와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고 있다, 사회의 건강성을 만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예술가들이 만든다.

예술정책 역시 이를 인식하고 가야 한다. 박근혜 게이트의 최고 희생양이자 부역집단인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러 민간의 문화예술단체는 예술정책의 사회적 책임을 인식해야 한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과정에 예술정책이 무엇을 할 것인지 인식해야 한다. 박근혜 게이트를 넘기 위한 시민의 명령이 예술가에게 내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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