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사태는 예술계 좌·우 갈등이 아니다

대표적인 보수우익지인 조선일보가 '월간조선 12월호'를 통해 최근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사태를 좌파의 예술예산 확보를 위한 밥그릇 싸움으로 왜곡보도했다. 이에 대해 현장언론 민플러스에 '문화정책 돌아보기'와 '정치는 시스템이다'를 연재하는 김종선 문화정책기획자가 조목조목 왜곡된 부분을 지적하는 반박기사를 보내욌다. 보내온 반박기사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주)

월간 조선의 의도가 궁금하다

월간 조선 12월호는 “좌파진영은 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목을 매나?(김태완 기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최근의 블랙리스트사태에 대한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정권교체기마다 문화권력 잡으려 헤게모니 다툼’이라는 부재를 달고 마치 블랙리스트사태가 좌파의 예술예산 확보를 위한 밥그릇 싸움의 하나인 것처럼 전락시켜버리고 있다.

더구나 이 기사는 예술 행정, 예술 정책을 마치 정부의 예산 나눠주기로 폄하하면서 결과적으로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지금까지 예술정책 파행의 가장 큰 원인인 관료주의를 정당화하고 있다. 참으로 ‘조선’다운 기사가 아닐 수 없다.

▲ 월간 조선 12월호에 실린 기사의 인터넷판 (이미지 출처 월간조선 인터넷 켑처)

이는 복잡하고 철학적 사고가 필요한 예술정책에 대해 잘 모르는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강제적으로 예술정책의 왜곡을 가져오기 위한 고도의 술수다. 국정철학의 핵심으로 자리 잡아야할, 사회의 가치를 다루는 예술문제를 단지 돈, 예산의 문제로 전락시켜 예술가를 추악한 밥그릇 싸움꾼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기사 전문을 중심으로 조목조목 월간 조선의 의도를 파헤쳐 보고자 한다. 기사의 흐름을 보노라면 마치 한 편의 소설을 보는 듯하다. 정말 나쁜 의도를 가진 기사가 아닐 수 없다. ‘기레기’를 넘어 이건 범죄다.

문화계에 대한 양비론

기사는 『각 장르의 위기 속에는 “문화계가 진보·좌파 진영의 이념적 진지(陣地)로 남아 있다”는 우려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문화행정의 보수화와 관료주의가 심화되고 있다”는 좌우 진영의 날 선 주장이 숨어 있다』며 시작에서부터 월간조선 다운 양비론을 만들고 있다. 예술과 사회에 대한 고민 없이 양비론적인 시각에서 전혀 다른 내용을 비교하듯이 말하고 있다.

“문화계가 진보·좌파 진영의 이념적 진지(陣地)로 남아 있다”라는 것은, 문화계가 진보 좌파의 이념적 진지가 아니라 문화의 사회적 역할을 왜곡한 것이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문화행정의 보수화와 관료주의가 심화되고 있다”는 예술행정의 국가주의 문제를 비판한 것으로 두 사안은 같이 논의 될 것이 아니다. 문제는 둘 다가 보수 기득권층의 말이다. 결국 양비론을 취하고 있지만 보수 기득권층에서 주장하는 것을 차용해서 마치 서로를 비난하는 듯 내용을 만든 것이다.

예술가를 예산 도둑으로 내몰다

『2015년 정부예산(375조123억원) 가운데 문화재정(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 비율은 1.63%(6조1127억원). 1.63% 내에 문화예술, 문화산업, 체육, 관광, 종무, 문화예술 행사 및 시설, 전통·지역 문화예산 등이 골고루 담겨 있다. ‘문화재정 3%’는 모든 문화예술인들의 한결같은 염원이지만, 정부의 재정지출 우선순위에 밀려 현실화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말은 마치 어려운 예술 재정을 걱정하는 것 같지만 놀랍게도 ‘이래서 예술가들이 돈 때문에 싸운다’를 끌어내기 위해 기사 첫 머리에서 의도하고 들어간다.

예산의 빈약함을 들고 오는 것은 진영의 싸움을 끌어내기 위한 도구다. 여기서 의도하는 것은 예산의 부족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행정의 국가 철학의 문제를 아예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예술행정의 모든 것을 예산 부족에 책임을 미뤄 ‘국가 지원형 예술정책’으로 몰아가기 위한 의도인 것이다.

기사는 다음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문화재정의 균등 배분이냐, 경쟁을 통한 차별적 배분이냐를 두고 관료와 문화·예술·체육인들의 힘겨루기가 매년 치열하게 전개된다. 심지어 지방선거·총선·대선 등 정권교체기마다 선거를 십분 활용, 문화권력을 선점하려 든다. 진보·좌파 성향의 예술인·단체 입장에선 내년 대선은 보수정권 10년간의 수세를 뒤집을 절호의 기회다.』

참으로 월간 조선다운 전제다. 이 글이 사실 이 기사의 전체를 재단한다. 예산이 부족해서 문화·예술, 체육인이 관료에게 기대어 예산을 확보하고자 싸운다는 것, 이것이 이 기사가 전체적으로 예술행정을 보는 시각이며 그러기 때문에 예술가들이 좌우로 나뉘어서 예산 뺏기에 나서고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참 흉악한 기자다. 진정성이라고는 티끌만치도 없이 한 순간에 모든 것을 관료공화국내의 밥그릇 싸움으로 전락시킨다.

▲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가 공개되자 예술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관련예술인들이 시국선언 후 예술의 자유를 위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호도된 블랙리스트사태

그리고 드디어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이 와중에 지난 10월 중순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공개됐다. 문화예술계가 술렁였다. 야당에서는 “청와대가 정부정책에 우호적이지 않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명단을 작성, 문화체육관광부로 내려 보내 검열의 수단으로 삼았다”라고 비난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은 정부 차원의 ‘창작지원 프로그램’ 신청을 해도 탈락됐다”라는 주장도 나왔다.』

월간조선은 대단한 설계자다. 싸움을 설계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블랙리스트 파동을 단순히 좌파가 기회를 엿보다 걸린 해프닝으로 전락시키고 진보 예술 진영이 이를 무기로 예산 획득의 기회를 삼고자하는 것으로 전락시킨다. 블랙리스트는 군사 독재정권시절의 검열처럼 지원금을 이용한 사전 예술가 검열이다. 만드는 것 자체가 예술의 문제에서 국가 운영의 문제로 확대된 것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리고 실체가 있었다는 주장을 실어 결국은 실체가 아니라고 말할 명분을 서두에서 제시하는 노련함을 보인다. 참 나쁜 기자다.

기자는 한걸음 더 나간다.

『<한겨레>(인터넷판)는 11월 7일 ‘검열을 위한 블랙리스트 작성과 전달을 조윤선 문체부 장관과 정관주 문체부 1차관이 2014년 청와대 정무수석과 국민소통비서관으로 재직 당시 주도했다’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블랙리스트 탓에 ‘균형 있는’ 문화예술 발전이 지체됐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물론 정부·청와대는 리스트 존재 자체를 부인한다. 

문체부 관계자는 “조 장관이 정무수석 당시 정부조직법 개편, 공무원연금 개혁 등의 주요 국정현안에 전념했다”라며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일축했다. 언론사에 대한 법적 대응도 밝혔다. 기자는 인터넷에 떠도는 블랙리스트 명단을 훑어보았다. 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은 9473명. 어마어마한 숫자다. 2015년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선언’ 서명 문화인 594명, 2014년 ‘세월호 시국선언’ 문학인 754명,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 예술인 6517명, 2014년 서울시장 ‘박원순 후보 지지선언’에 참여한 1608명 등이다. 

리스트에는 단지 이름과 예술분야만 적혀 있다. 특정인을 확인할 약력이나 출생연도, 리스트에 오를 만한 행적(공연·작품·발언) 등이 없다. 어마어마한 살생부라 부르기에 허술하기 짝이 없다. 예를 들어 리스트에 ‘정우성(영화)’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데, 영화계에는 배우 정우성과 함께 편집·감독·조명·시각효과 등에 종사하는 동명이인의 영화인이 6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말 월간 조선은 독자를 유혹하는 대단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마치 정부가 주도했다면 이렇게 허술할 수가 있겠냐는 것이다. 이는 참 대단한 제주다. 블랙리스트나 예술행정에 대해서 정말 무지한 이의 태도다. 블랙리스트의 실질적인 역할은 국가의 지원 선정에서 사용되는 자료다.

예컨대 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심사에서 1차로 지원작을 고르고, 2차로 지원대상을 걸러낼 때 필요한 것이다. 이 작가는 끼워 넣어도 될 만하고 또 이 작가는 반드시 배제시키는 등 일종의 물타기를 포함해서 활용된다. 결국 반드시 길들여야할 이들을 배제시키는 것이다.

보도된 리스트는 예술의 문제보다는 사회·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참여일 뿐이어서 예술 행위 자체를 모두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명단의 많은 수에서 보듯이 일정한 기준으로 역할을 하는데 유용하다. 포괄적 참고 명단으로 1차 걸러내고 2차적으로 실질적으로 걸러내야 할 이들을 추리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명단에 있으나 지원대상에 포함시켜서, 물타기를 위해 활용하기에도 대단히 효과적인 자료이다.

이를 <월간조선> 기자는 마치 의도를 가지고 예술계 헤게모니를 잡기위해 과도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몰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월간조선> 독자들이나 스스로 보수라고 자처하는 자들은 재활용할 것이다. 좌파가 말도 안 되는 저급한, 정부가 작성했다고 믿기 어려운 자료를 가지고 마치 큰일이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궁극적으로는 예산을 많이 차지하기 위해 공작하고 있다고.

예술가의 사회 참여를 꾸짖다

그리고는 물타기를 시도한다. 좌파 예술가라며 그들을 권력에 눈이 먼 것처럼 만든다.

『리스트에는 또 정파색이 없는 영화배우 송강호·김혜수·신은경 같은 이도 있고 보수계 인사로 분류될 만한 이도 포함돼 있다. 반대로 과거 문화계의 ‘친노(親盧) 좌파’로 불리던 이들도 있다. 명계남·문성근·이창동 등이 대표적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몇몇 핵심적인 친노 좌파 예술인들은 ‘문화계 요직’을 차지했고, 이들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이 문화권력을 마구 휘둘렀다. 기자는 이명박 정권 당시 우파 진영의 문화단체에 참여했던 인사를 만났다. 그의 말이다.

“과거 친노 좌파 인사들의 예술관은 철저하게 반(反)대한민국 성향이었습니다. 문화예술계를 기득권·비(非)기득권으로 나누고, 계급의식에 입각해 문화계를 장악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밝히기도 했어요. 그런 이들이 최근 블랙리스트 사태를 계기로 다시 행동에 나섰습니다. 예술단체들이 발 빠르게 시국선언에 나선 것도 향후 문화권력의 헤게모니를 선점하려는 공세로 보여요.”』

인터뷰를 통해 이런 주장을 한 이를 밝혀야 한다. 이명박정권은 유인촌 장관으로 상징되는 문화·예술정책의 암흑기다. 문화·예술을 권력의 홍보 도구로 전락시킨 정부다. 지금의 박근혜 정부의 소위 ‘문화융성’을 잉태한 것이다. 이 말을 한 이가 바로 기자가 말하는 문화권력자다. 노무현 정부에서 좌파가 문화권력을 형성했다는 것은 문화권력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본적인 철학의 결여에서 오는 것이다.

문화 권력은 예술가와 시민이 문화의 주체이자 수혜자로 자리 잡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에서 문화와 예술이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에서 파생된 용어이지, 단지 정권의 정책 방향에 따른 행정적 실행을 책임지는 예술행정기관의 장으로 예산 배분의 권력을 갖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떻게 이 따위 생각으로 기사를 작성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정말 교묘하게 말장난을 통해서 본질을 속이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정권의 입장에서 정책을 펼쳐나갈 수 있는 예술행정 기관장을 선임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예산 가지고 예술계를 지배한 이들이 아니다. 만약 그들이 예산을 가지고 예술계를 지배했다면 당연히 말잘 듣는 소위 우파 예술인들을 예산으로 정부를 칭송하도록 하거나 또는 재정 분배 과정에서 비리를 도모했을 것이다. 소위 이미 길들여진 우파 예술인들이 훨씬 사용하기 좋을 테니까.

이 인터뷰에 응한 이는 예술정책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다. 본인의 한계가 그러한데 이를 굳이 인터뷰로 만든 것이 바로 기자의 술책이다. 급도 되지 않는 자를 마치 동등한 듯 포장해서 독자를 현혹시키는 말 그대로 ‘기레기’임을 스스로 자인하고 있다.

▲ 예술인들은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맞서 광화문캠핑촌을 조성하고 지금까지 광장농성을 하고 있다.

부역’을 미화하다

기사는 차은택 파동을 축소하기까지 한다. 최순실, 차은택 등의 개인 문제로 만들고자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문화개혁시민연대·한국작가회의·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등 288개 진보적 문화예술단체들은 시국선언을 통해 “박근혜 정부의 문화정책이 실상은 최순실·차은택을 위해 기획됐다”고 주장했다. 최준영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문화예술계는 최순실·차은택·김종덕·김종의 ‘부역자 리스트’를 만드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창화·김미도·김소연 등 연극평론가 55명도 “최순실·차은택의 권력에 기생해 온 연극계의 수치스런 부역자들에게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고 공개 사과하라”고 했다.

‘부역’은 좌파에서 우파인사나 진영을 ‘친일·반민족 집단’으로 매도할 때 흔히 쓰는 용어다. 이들은 ‘최순실=우파 문화예술인’으로 동일시하며 공세를 편다. 마치 좌파들의 우파를 향한 치열한 진영 싸움을 보는 듯하다.』

기자는 한 순간에 ‘부역’을 영광스러운 자리로 올려놓았다. 이제 ‘기레기’에서 범좌자가 됐다. ‘부역’은 우파진영을 매도하는 것이 아니다. 일제에 협조한 ‘민족의 반역을 부역’이라고 한다. 문화계 부역은 예산 지원에 눈이 멀어 예술을 팔아먹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파진영을 매도하기 위한 용어가 아니다. 과연 월간 조선답게 ‘부역’을 한순간에 ‘억울한 우파에 대한 누명’으로 바꾸어 놓았다. 참으로 대단한 기사가 아닐 수 없다.

블랙리스트 사태와 박근혜 게이트를 보면서 예술행정의 당사자인 관료들의 부역에 대해 기준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일제의 청산이 일제 경찰, 공무원 등 공직이라며 협조한 이들을 단좌하지 않은 것도 포함한다고 확신한다. 노골적인 친일파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반역 차원에서 적극적 협조자와 가담자는 동등하게 반역자 취급돼야 한다.

프랑스가 히틀러에 협력한 ‘기시정권의 행정부’ 전체를 전범으로 다루었듯이 우리도 그래야 했다. 문화계 부역자는 예술인을 비롯해서 관료들에게까지 확산 돼야 한다. 독재정부에 협력한 공무원은 죄가 없다고 하면 누가 옳지 않은 일을 시키는데 저항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기회에 철저하게 공무원 조직에까지 부역에 대한 단죄를 물어야 한다. 박근혜게이트는 사회 지도층이라는 공무원 조직에 대한 전면적 개혁을 가져온 계기가 돼야 한다.

블랙리스트 사태를 좌파의 문화운동 전략전술이라고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궤변의 연속이 이어진다.

『현실비판과 예술적 표현욕구는 서로 인과관계가 깊다지만, 국회에서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되고 이를 진보적 예술단체들이 되받아 대대적 공세에 나선 것은, “문화예술을 운동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좌파 문화운동의 전술전략과 그대로 겹친다”는 주장이 나온다. 

조희문 전 영화진흥위원장은 “블랙리스트 소동은 전략적으로 기획된 행동이 아닌가 라는 의심이 든다”며 “누군가, 어디선가 일련의 사례들을 수집하고 정리해 특정한 자료로 만들고, 국회의원의 발언으로 계기화하며 이를 빌미로 행동에 나서는 과정이 이전의 여러 시위과정과 흡사해 보인다”고 말했다』

조희문은 불법으로 인사청탁과 뇌물을 받아 교도소에 다녀온 이다. 영진위원장으로 심의에 불법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다 중도 사퇴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것도 역겹지만 블랙리스트 사태를 좌파 전술전략으로 매도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것이다. 물어 보고 싶다 좌파문화운동이 무엇인지. 블랙리스트는 독재정권의 검열의 새로운 부활에 준하는 국가 권력의 사회 통제 의도의 한 부분으로 무척 큰 사회적 가치의 정면 도전이다.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이토록 과장하고 왜곡하는 것은 기자로서 양심을 포기한 짓이다.

민예총을 욕보이다.

이어지는 막장의 끝은 인터뷰다.

『영화감독 최공재씨는 “문화예술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 지금 한국의 문화계는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이 장악하고 있다”며 “결국 그들이 주축이 돼서 나온 시국선언장의 모습은 98%가 장악한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문화계에서, 나머지 2%에게 가야 할 국민의 세금을 죽어도 자신들이 기어이 먹어야겠다는 탐욕스러운 모습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참으로 웃기는 말이다. 스스로 영화감독이라고 하니 직업에 대해서 시비 걸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이런 기사에 비판적인 내용을 말하려거든 좀 인터뷰 대상을 가리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누가 보더라도 영화감독으로 영화계에서 일정한 지위를 가지고 있어야 최소한 이런 거창한(?) 비판을 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관계 확인도 되지 않는 내용이다.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민예총의 설립이 언제인지 알 수 있다.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민예총은 1988년 87년 6월 민주항쟁의 성과를 바탕으로 만든 예술 단체다. 516 군사 구테타 이후 급조된 ‘예총’의 사례처럼 국가에 길들여진 예술가들을 이용한 우민화 정책에 반대하며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 등을 고민하는 예술가들이 만든 단체란 말이다.

김대중정부가 기획해서 예술계를 지배하고 있는 민예총이라는 말을 한다면 민예총 작가들이 웃을 일이다. 그리고 결국 최감독의 속내가 말에 드러나 있다. 있지 않은 사실을 만들어 예산에 스스로 탐욕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예술가는 정부 지원금에 눈이 먼 ‘예산도둑’이다.

기자는 결론을 낸다. 예술가를 ‘예산 도둑’으로 만든다.

『결국 문화예술계가 문화권력을 두고 헤게모니 다툼을 벌이는 핵심은 ‘돈’과 ‘자리’ 때문이다. 정부의 문화정책 지원금이 예술인들에게 직접 배분되는 탓이다. “지원금은 말 그대로 지원하는 성격의 돈이니 일단 지원부터 받고 적당히 내역을 맞춰 사용하면 그만”이다. 상환책임이 없다. 예술분야는 양궁이나 사격처럼 점수를 매길 수 없으니 배분방식을 둘러싸고 논란은 불가피하다.

또 돈(지원금)의 흐름이 예술단체의 장에 따라 뒤바뀐다. 보수·진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예술단체의 장이 항상 교체됐다는 점에서 예술인 사이에 비극이 발생한다.

노무현 정권 출범 초기,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화행정혁신위원회’가 꾸려졌는데 민간에서 위촉한 인사 5명이 모두 민예총 등 특정 단체 출신으로 채워졌다. 문화예술 정책의 집행 및 연간 300여억 원에 달하는 예산(문예진흥기금)의 지원업무를 담당하는 문예진흥원장에 현기영 당시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 임명됐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였던 강형철이 사무총장에 올랐다.

또 국립중앙극장 극장장에 민예총 산하 한국민족극운동협회 의장 출신인 김명곤, 국립현대미술관장에는 민예총 이사장인 김윤수가 각각 임명됐다. 한국영상자료원장(이효인), 문화관광정책연구원장(이영욱), KBS 사장(정연주),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김근) 역시 다르지 않았다』

기자는 예술가를 ‘돈에 자신을 파는 이’로 규정하는 최악의 죄를 저지르고 만다. 예술가들을 정부가 나눠주는 지원금을 마음대로 유용하고 대강 자료만 맞추는 예산 도둑으로 몰아치고 있다. 참으로 문화기자로서 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 만다. 기사는 나아가 처음 기사를 시작할 때 의도한 대로 예술권력을 정부의 예술 지원금을 나눠주거나 나눠주는 일을 책임(?)지고 있는 기관장자리 다툼으로 몰고 간다.

이 기자는 결국 억지로 많은 양의 기사를 만들고 있지만 결국 한가지로 귀결시킨다. 본인의 생각처럼 단지 예술가에 대한 모욕뿐 아니라 기관장은 예산을 마음대로 나눠주는 자리라는 것이다. 나아가 정부는 기관장을 장악해서 예술가는 물론 기업들을 포함해서 국민을 예산을 뽑아먹기 위한 존재로 전락시킨다. 하긴 박근혜 게이트를 보면 이해가 간다. 조선이나 지금의 청와대나 새누리당이나 모두 국가를 도적질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임을 자인하고 있다. 조선 역시 기업이나 정부의 광고와 협찬을 통해 운영되고 있으니.

예술단체의 관계자의 말을 빌어 예술인들을 다시 매도한다

『한국연극협회 관계자의 말이다.

“지원금 배분을 둘러싸고 문화계 내부의 진보 대 보수 간의 전쟁이 정권교체기마다 계속 반복되고, 양 진영끼리 반목과 갈등이 이어져 왔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똑같은 현상이 이어졌어요. 문화계 보수인사들과 진보인사들이 문화권력 흐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러니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의혹에 진보 예술인들이 총공세로 나선 것은 당연합니다.”』

기자는 인터뷰한 연극협회 관계자를 밝혀야 한다. 익명에 숨어 비겁하게 예술계를 매도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도 숨지 않아야 한다. 정당한 비판이라면 왜 실명을 밝히기를 두려워하나. 스스로 예술가의 역할을 포기하고 권력에 예술을 기생시키는 발언을 하는 이가 문화단체에 있어서는 안 된다. 시민의 문화라는 ‘문화 권력의 의미’를 욕되게 하는, ‘예산 따먹기’로 전락시키는 관점으로 어떻게 예술을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 세월호참사 이후 연극계에 대한 검열은 어느 예술분야보다도 심했다.

이번엔 관료의 말도 빌려 온다.

『이명박 정부 당시 문화예술 정책에 관여한 전직 관료의 말이다.

“정부 지원금을 따내려는 경쟁이, 예술인 간의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예술단체끼리의 집단적 경쟁형태로 바뀌어 버렸어요. 그러니 한쪽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고 예술인들은 작품활동보다 예술단체의 정치적 집단행동에 더 관심을 갖고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게 됐어요.”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어쩌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관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관료들은 지원금을 배분하며 정치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나중 ‘저쪽에 왜 엉뚱한 돈을 줬느냐’고 문책을 당할 수 있어 어떤 잣대가 필요하고, 블랙리스트가 안성맞춤이란 얘기죠. 만약 블랙리스트가 실제 존재한다면, 그것은 관료들의 필요에 의해 작성됐을 수 있어요.”

관료들이 좌우로 패를 갈라놓고 권력을 쥔 정권 입맛에 따라 눈치껏 돈을 배분한다는 얘기다』

관료체계가 예술행정의 가장 큰 해악임을 모르고 관료제도의 영속을 바라는 기자의 의도가 그대로 반영된 인터뷰다. 권력에 기생해서 권력을 누리는 관료들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내며, 예술행정이 예술이나 예술가에 대한 관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제대로 된 예술행정의 개혁을 바라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료가 바로 부역에 가담한 자들이다. 적절하게 권력의 눈치를 보아가며 행정을 하는 공무원을 시민들이 믿어야 하는지, 철밥통에 복지부동으로 공무원 사회를 비판하는지 다시금 생각해야 한다. 참 기자의 의도는 무섭다. 관료의 말을 빌어 마치 예술가들을 죄인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그리고 좌파의 권력지향성을 당연하게 유도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예술인들에게 ‘시국선언’ ‘촉구선언’ ‘지지선언’에 참여하라고 부추기고 유도하는 세력이다. 문재인·박원순 지지에 적극 나선 것은 문화권력을 차기 정권에서 되찾으려는 복선을 깔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정리가 가능한지 아연할 따름이다. 기자가 박근혜나 이명박 정부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국가가 재정을 통해서 예술을 이용하고 길들이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예술가들은 차기 정권에서 문화권력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예술가로서 본분을 다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예술인들이 다양하게 후보를 지지하고 그들이 만드는 정책을 말하는 것을 당연시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 것을 비판하고 있다. 예술이 사회를 반영하고 사회에 책무를 가지는 것이 당연함을 아예 망각하고 정치참여를 백안시(白眼視) 하고 있다. 감언이설의 수준을 넘어서는 독사의 혀 같이 말하고 있다.

노문모를 정치집단으로 매도하다

역사적으로 좌파의 권력지향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노무현 대선후보 시절인 2001년 12월 17일의 일이다. 대선을 꼭 1년 앞두고 ‘노문모’라는 단체가 결성됐다. 이 단체는 ‘노사모’의 이복형제로, ‘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을 줄인 말이다』

필자가 바로 그 노문모의 간사였다. 사실 노문모는 조직이 아니라서 간사라는 직위도 없다 2003년 대통령직 인수위 참여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만든 지위다. 노문모는 조직이 아니다. 2001년 12월 17일 1차 지지선언을 위해서 만든 명칭을 뿐이다. 그리고 그때는 대선후보가 아니라 대선 경선에 참여하기 전이었다. 그리고 지지도 역시 3% 정도였다. 대통령이 될 가능성 보다는 미래를 위한 예술가들의 지지였음을 알아야 한다. 예술가들이 야당을 통해서 문화권력을 노렸다는 기자의 의도에 맞으려면 당연히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을 높은 이인제나, 한화갑을 지지했어야 한다.

선언문의 “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일동‘이 단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2001년 5월부터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개혁적인 인사가 대통령이 되기 위한 바람으로 논의를 해온 문화예술인들이 2001년 12월 노무현 민주당 상임고문을 지지하는 것을 표방하기 위한 지지선언문에 등장하는 것이 공식적인 첫 대외 행사이며 이후 2002년 3월 2차 지지선언 외에 노문모는 공식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

▲ 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모임에서 발언하고 있는 배우인 명계남씨 (이미지 출처 노무현재단 홈페이지)

그러므로 기자가 의미하는 단체가 아니다. 개혁국민정당이나 노사모의 참여 역시 개별적인 선택의 문제이지 노문모의 조직적인 활동은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참여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는 필자가 노문모의 연락담당 역할과 모임시 총무 역할을 했기에 당연히 아는 것으로, 노문모의 실체에 대한 명확한 자료를 가지고 있다.

어디서 취재했는지 소설은 이어진다.

『노문모에는 민예총과 문화연대 출신이 많았다. 처음엔 110명이 지지에 참여하더니 몇 달 새 500여 명으로 불어났다. 대선을 즈음해 문화계 주변에 정치바람이 분 적은 있어도 집단적으로 모임을 만들고 특정인 지지를 밝힌 것은 한국 정치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굳이 찾자면, 1987년 4·13 호헌 반대 때 문화예술인들의 성명서가 발표된 적이 있다.)

당시 야당인 이회창 후보 진영에는 개그맨 심현섭·강성범씨, 가수 설운도·김수희·변진섭·신성우씨, 탤런트 박철·석현·김나운씨 등이 간혹 얼굴을 비춰 흥을 돋우었지 집단적 세 과시를 하는 경우는 없었다』

노문모에 대한 자료나 내용은 필자가 가장 정확한데 어디서 취재했는지 의문이다. 정말 대단한 기자다. 여야를 수평적으로 비교하는 듯한 모양을 취하면서 이념적으로 정치적으로 경도됐다고 한쪽을 꾸짖고 있다. 제대로 비판을 하려거든 2001년 12월 13일의 노문모 지지선언문의 내용을 비판해야 한다.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위한 내용을 비판하고 이를 위해 노력한 이들에게 사죄해야 한다. 마치 한낱 권력에 눈이 멀어 예술가로서 삶을 파는 것으로 매도하는 기자는 참으로 부도덕하고 후안무치한 이다. 이회창을 지지하는 것이 권력에 이끌려서인지, 노문모 활동이 권력을 탐해서 인지 똑바로 봐야 한다. 도매금으로 예술가를 매도하는 짓을 그만 두어야 한다. 순수한 예술가들에게 사죄하고 펜을 꺾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참여를 비난한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 측은 달랐다. 명계남·이창동·문성근 같은 이들이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나섰다. 명계남의 기획력과 이창동의 현장 연출력, 문성근의 연기력이 보태져 대선 판도를 뒤흔들었다. 명계남은 민주당 국민참여운동본부의 ‘100만 서포터즈 사업단장’을, 문성근은 ‘개혁국민정당의 실행위원장’을 맡는 등 현실정치에 발을 댔다.

노문모가 단순한 지지모임으로 시작됐고 지지인사 대부분이 “대선 후 정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이 문화계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문화권력판이 한꺼번에 물갈이되는 과정에서 노문모 참여 인사들의 발탁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실제로 노무현 정권 출범 직후 700명에 이르는 대통령직인수위 전문위원·자문위원 중에 보수성향의 예총 출신이 한 명도 없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예술가 역시 사회적 활동은 당연한 것이다. 기자는 마치 예술가가 왜 정치를 하느냐고 꾸짖고 있다. 시민의 하나로 당연한 시민의 역할을 하는 것을 비난하고 있다. 정치는 정치인의 몫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조선이 일관되게 정치와 시민을 분리시키는 수법이다.

재벌이 마치 경제를 책임지고 있다고 만드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지배계급에 빌붙어 기생하는 조선다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문성근, 명계남은 예술가이자 시민으로 당연한 사회참여를 한 것이다. 그들이 비리를 저지르거나 죄를 지었다면 몰라도 이런 근거 없는 비난을 할 수는 없다.

또한 인수위원회를 들먹이며 왜곡을 하고 있다. 인수위에 예총 출신 인사가 없음은 당연하다. 인수위원회는 행정부를 준비하기 위한 정치, 경제, 외교, 복지, 국방, 노동, 교육, 문화, 환경 등등 다양한 분야의 팀들 모임이다. 그 중 문화분야는 당시 사회문화여성분과 중 문화·체육·관광팀에 속해 있었다. 상근자는 전문위원 4인(문화와 관광 분야 각 민간 2인, 국장급 파견 공무원 2인), 과 행정관 1인, 상근 자문위원 2인 등 총 7인에 불과했다. 특히 문화 담당 민간 인은 전문위원 1인과 행정관 1인, 상근 자문위원 2인 등 4인이었다.

그리고 필자가 행정관으로 활동을 하면서 문화 분야 중 연극이나 전통예술 등 예총의 활동이 중심인 단체의 자문을 당연하게 받았다. 후에 국회의원을 지낸 최종원 연극협회 이사장이 예총 소속으로 정책 자문을 했던 대표적인 인사이다.

인수위원회의 조직은 언론에 보도된 당시 편재표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조선일보도 보도한 내용이다. 인수위원회는 두 달의 기간 동안 활동하며 차기 정부를 준비하는 방향을 정하는, 말 그대로 순수하게 정권 인수팀이다. 따라서 대통령 당선자를 도와 정책의 사전 준비를 하는 기구다. 사회각계를 망라해서 포용해야 하는 조직이 아니다.

▲ '노문모'의 대표적인 예술인으로 지목된 배우 명계남씨와 문성근씨가 봉화마을에서 있었던 노무현대통령 추모식 무대에 섰다. (이미지 출처 노무현재단 홈페이지)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을 텐데 인수위에 예총 인사가 없다고, 그것도 인수위 전체 인원을 두고 말하는 것은 독자를 속이고자하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그리고 그 이유를 노문모로 인해서 그렇다고 하니 참 웃길 일이다. 노문모는 당연히 문화분야에 국한된 예술가들 일뿐이다.

당시 조선일보는 인수위의 측근 8인방으로 노문모 간사인 필자를 꼽았었다. 필자는 노대통령과 2001년 12월 지지선언 행사 때 만난 것 밖에 없는데 말이다. 각 분야가 있는 인수위를 예술계에서만 꾸미는 듯이 과장하는 것은 기자가 할 일이 아니다. 이것은 왜곡을 넘어선 범죄다.

다시 예술가를 파렴치범으로 몰다

기사는 이명박 정부를 들먹이며 예술가들의 권력욕을 당연시한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이번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 숨죽인, 이른바 우파 문화인들이 대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임명된 문화계 인사 대대적 물갈이가 시작되면서 퇴임권고→압력(감사, 권력기관 동원)→감사 혹은 수사→해임→해임 후 추가 감사 및 소송 등의 수순을 밟았다. ‘한 지붕 두 위원장’ 사태로 여론의 주목을 받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김정헌 위원장의 해임 과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황지우 총장의 사퇴를 불러온 한예종 사태도 마찬가지다. 2009년 5월 황지우 한예종 총장은 문화체육관광부의 한예종 감사 및 총장 중징계 추진에 대해 “전형적인 표적 감사”라며 총장직을 사퇴했다.

또한 독립영화전용관·영상미디어센터·예술영화전용관 등 기존 사업자 교체, 예총지원사업 재개, 한국작가회의에 대한 지원금을 ‘시위 불참 확인서’와 연계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결정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좌우 진영의 물갈이가 순식간에 이뤄졌다.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좌파 성향의 예술단체에 공금횡령 의혹이 일었다. 이 단체는 독립영화전용관을 위탁 운영하고 있었다. 문화부는 공모를 통해 우파 성향의 단체에 운영권을 맡겼다. 그러자 좌파 단체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정권이 바뀌면 그때 봅시다.”

우파 정권이 물러나면 그때 두고 보자는 으름장이었다』

임기가 보장되고 그 역할이 예산을 나눠주는 것이 아닐진대 되풀이 되는 기사의 내용은 ‘도둑놈에게 두령이 바뀌었으나 너도 조직에서 나가라’고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를 당연한 우파의 보복이라고 살짝 꼬집으며 그 실상은 당연하다는 것을 말하며 기관장들의 예산 배정을 권력을 지닌 자로 규정해버리고 있다. 예술 행정 자체를 욕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문제를 끌어들여 예술 행정의 문제를 비판하듯 말하지만 결국은 독립영화 문제를 빗대어 좌파 역시 자리다툼의 주체로 전락시켜 버리는 기자의 의도는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정권 바뀌면 보자는 말을 마치 정권 바뀌면 다시 해먹을 것이다’로 해석되게 만들고 있다. 독립영화 전용관 문제는 부당한 독립영화 공간 빼앗기였다. 이를 기자는 의도를 가지고 기사에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노문모 명단을 공개한다.

『문화예술인이 공개적으로 정치인 지지를 표명한 것은 2001년 12월 ‘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이 처음이다. 노문모가 결사체와 같은 정치적 조직이 아니라고 해도 이후 문화인들이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기폭제가 됐다. 노문모의 핵심 인사들이 모여 이창동 영화감독을 문화부 장관에 앉혔다.

이후 문화예술계에 국고지원은 물론 문화예술의 모든 이해관계 현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들 중에는 단순히 이름만 올려 피해를 본 경우도 있을 것이다.

강신일(연극배우) 강헌(음악평론가) 권순창(한국화가) 권해효(연극·영화 배우) 김광수(영화제작가) 김남수(조각가) 김대승(영화감독) 김대현(호서대 연극과) 김도영(서양화가) 김동원(영화감독) 김동원(한국화가) 김명성(한국화가) 김병헌(애니메이션 기획자) 김용중(서양화가) 김은채(애니메이션 기획자) 김정헌(화가) 김정환(공연연출가) 김종선(문화정책) 김준묵(문화기획가) 김철리(연극연출가) 김태웅(극작가) 김택상(청주대 미술학부) 김현명(감독) 김현종(작곡가) 김형수(시인) 김형효(시인) 김혜준(영화정책) 노종윤(영화제작가) 류승완(영화감독) 명계남(영화배우·제작가) 문성근(영화배우) 문승현(작곡가·경희대) 민경원(순천향대 영화과) 박광정(연극·영화배우) 박기형(영화감독) 박길자(한국화가) 박남준(시인) 박영선(조각가) 박재동(만화·애니메이션 작가) 박충호(한국화가) 박흥순(서양화가) 박흥식(영화감독) 방은진(영화배우) 배경윤(영화감독) 서우식(영화제작가) 안도현(시인) 양윤모(영화평론가) 양희식(서화가) 여균동(영화감독) 오동진(영화평론가) 오석근(영화감독) 오성윤(애니메이션 감독) 오세곤(순천향대 연극영화과) 오종우(희곡작가) 오지혜(연극·영화 배우) 유인택(영화제작가) 유지호(만화스토리작가) 유태호(경민대 연극과) 이금로(공연기획자) 이지명(방송작가) 이민용(영화감독) 이병환(한국화가) 이상복(연극) 이상우(극작가) 이상우(영남대 연극과) 이선영(방송작가) 이성용(연기자) 이송(청운대 방송연기학과) 이승연(한국화가) 이용관(영화평론가) 이용배(애니메이션 감독) 이원근(만화스토리작가) 이인호(시인) 이재현(문화평론가) 이주원(애니메이션 감독) 이지상(작곡가) 이지숙(시인) 이창동(소설가·영화감독) 이충직(중앙대 영화과) 이현승(영화감독) 이효인(영화평론가) 임순례(영화감독) 임재영(조명감독) 임종제(영화감독) 임창재(영화감독) 장선우(영화감독) 장진(영화감독) 정남준(문화행정) 정도상(소설가) 정양(시인) 정종준(연기자) 정지영(영화감독) 정태춘(가수) 정혜영(한국화가) 조성원(애니메이션 제작자) 조영석(한국화가) 조종국(영화제작가) 조완수(만화가) 최성규(한국화가) 최인기(영화제작가) 하영은(모델) 한창완(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과) 홍성원(서울필름커미션) 황철민(세종대 영화과)』

그러나 중요한 것은 노문모의 지지성명의 내용이다. 이를 기사는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블랙리스트로 돌아와 물타기를 시도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가 야당의 주장처럼 실제로 작동했을까. 기자는 새누리당 염동열 의원실을 통해 자료를 요청했다. 조윤선 장관 주장대로 리스트에 오른 예술인 중에 다수가 정부(공공기관)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리스트에 등장하는 손상원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회장은 최근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장(정동극장 극장장)으로 임명됐다. 소설가 박범신은 문체부 관련 사업에 참여해 2500만원을 지원받았다. 문화예술위원회 반대 시위에 참여한 바 있는 극단 대표 김○○는 최근 3년간 6개 사업에서 총 1억 원 이상의 지원을 받았다. 이번 리스트엔 없지만 연출가 이윤택은 작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기금인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심사에서 희곡 〈꽃을 바치는 시간〉이 1순위를 기록하고도 탈락, ‘정치검열’ 의혹이 제기됐었다. 이윤택은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와 고교 동창이고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지지 연설도 했다. 그러나 그가 예술감독을 맡은 극단이 ‘공연시장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 작년 2900만원을 지원받았다. 또 국립극단 작품연출 사례비로 1500만원을, 올해 지역대표 공연예술제 지원금으로 1억 원을 보조받기도 했다. 염동열 의원은 “이 명단은 그냥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어 블랙리스트로 보기 어렵다”며 “블랙리스트에 오른 상당수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정부지원을 받고 있어 (리스트는) 실체도 없고 근거도 없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블랙리스트 사태를 정부의 예술가에 대한 새로운 검열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술계 내에서 권력 바뀌는 시기에 예산을 많이 먹기 위한 밥그릇싸움으로 폄하하면서 그 사례를 들고 있다. 노문모에서 있는 이도 박근혜 정권으로 기관장을 시키거나 지원을 하고 있다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예술인들의 정치 사회적인 의견은 말 그대로 정치 사회적인 변화를 위한 활동이다. 노문모 참여나 정치 사회적인 의향을 내보이는 것이 마치 예산과 권력의 욕망의 표출인양 매도한 다음에야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적들도 포용하고 있다고 한다.

애초에 예술가로서 사회에 대한 의견을 낸 것을 편협한 시각으로 왜곡하고 그 바탕에서 이런 기사를 만들어 블랙리스트 사태와 정부의 예술 검열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예술인들을 예산지원의 밥그릇싸움에 눈먼 이들로 만들어 버리며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태를 부정하고 박근혜 정부의 문화정책을 오히려 옹호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박근혜 게이트가 문화·예술 정책을 대상으로 저질러졌는지 회피하고 있다.

반역은 반역일 뿐이다

이 얼마나 의도적인 결말인가. 기자는 전체 기사를 통해 블랙리스트는 좌파예술인들이 의도적으로 ‘문화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으며, 예술계는 정부지원에 목매고 있는 ‘예산 도둑’이며, 정부는 허접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지 않았다고 말한다.

나아가 노문모를 비롯한 좌파 예술가들이 예산과 이를 관리하는 기관장 자리에 눈이 멀어 정치에 관여하는 죄를 지었다고 꾸짖고 있다. 참으로 나쁜 기사다. 문화기사가 아니라 문화말살을 위한 기사다.

월간 조선은 이 기사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궁금하다. 광장에 모인 촛불과 결합하는 예술가들을 미리 한 묶음의 파렴치범으로 만들어 놓고자 하는 것이리라. 앞으로 다가올 대통령 선거 등에서 예술가들의 사회 참여를 최대한 막아 보려고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부단하게 우리사회의 미래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예술가가 이 사회에 존재하는 이유이기에. 더 이상 치졸하게 예술가를 갈라 치지 말기 바란다. ‘부역’을 미화하는 반역의 길에 동참하지 말라. 일제 때 조선일보가 보여준 반역을 ’좌파가 매도하는 우파를 지칭하는 부역‘으로 당연시 하지 말라. 반역은 반역일 뿐이다.

 

* 월간 조선 원문 기사

http://m.pub.chosun.com/mobile/news/view.asp?cate=C01&mcate=M1001&nNewsNumb=20161222335&nidx=2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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