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대학 학생들의 시국선언을 보며
예술대학에 다니는 예비예술가들이 조촐한 시국선언을 하는 자리에는 광화문 빌딩숲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들이 광장바닥에 조각맞추기를 하고 있었다. 발랄할 나이 20대 청년 10여명이 손피켓을 들고 시국선언을 하는 현장에는 취재기자들의 수가 청년들보다 많았다.
서울지역 10개 예술대학과 충남지역 1개의 예술대학 그리고 청년예술가네트워크 1곳이 참여한 지난 17일 예술대학생 시국선언은 각 예술대학 총학생회장의 발언과 한국종합예술학교 이동연교수의 격려발언으로 이어졌지만, 분위기는 겨울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러웠다.
순수창작예산은 삭감하고 허울 좋은 문화융성사업 예산에만 1,800억 원을 책정한 국가의 문화정책 앞에서 곧 예술가로서의 길을 걷게 될 이들의 시국선언 모습은 마치 현재의 예술계와 예술인들의 암울한 상황을 표정으로 재현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월 50만원 수입이 어려운 청년예술가들을 위한 지원정책에 대해서는 문을 닫던 문화부가 굳게 닫힌 장벽 안에서 막후 통치자와 그 수하들의 돈잔치를 위한 목적으로 문화정책의 방향을 틀었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그 분노를 어떻게 풀어야할지 숙제를 가슴에 담고 있는 듯 했다.
시국선언을 했던 광화문 세월호광장은 그들의 선배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라는 예술 검열의 덫에 걸리자 캠핑촌을 조성하고 예술행동을 하고 있는 곳이다. 21세기 한국의 문화가 한류로 세계를 뒤흔든다고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순수예술인들은 검열과 맞서 싸우며 차가운 광장바닥에 있는 것이다.
열정적인 예술의 꿈을 키웠던 그들에게 회색의 찬 바닥은 또 얼마나 ‘울컥’ 가슴을 요동치게 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알았을 것이다. 예술은 검열의 장벽을 넘어서 반드시 찾아야 할 사람들의 위안이고 에너지라는 것을.
예술이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직업의 형태로만 자리 잡아야 하고 직업학교로 전락한 대학에서 순수예술학과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그 빛마저 사라져간다지만, 그들이 꿈꿔 왔던 예술의 무대는 자신들의 손에 의해 반드시 되찾아야할 다짐의 자리임을 시국선언문을 낭독하면서 알게 됐을 것이다.
취업 성과만을 중심으로 각 분야별 예술의 특성을 무시한 채 구조조정의 틀 안에서 통폐합하는 예술대학의 현실을 지적하면서, ‘대한민국을 최순실 연출, 박근혜 주연, 국민들은 엑스트라인 거대한 영화’라고 비유한 한 학생의 말을 되새긴다.
그리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상식적으로 되돌리는데 한 마음이 되겠다는 예술청년들을 보며 ‘예술’에 대한 예의조차 없는 차은택을 비롯한 껍데기‘문화융성’에 빠진 문화예술 부역자들이 가진 존재의 가벼움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