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게이트'를 지켜보며

동화가 세상을 보는 눈이 훨씬 정확할 때가 있다. 거짓을 찾아내는 아이의 눈처럼 안데르센동화나 이솝우화 내용에는 인간과 세상의 민낯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중 인간의 허영과 위선, 탐욕과 아부가 잘 나타나 있는 동화가 단연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사기꾼 재단사의 탐욕과 임금의 허영, 권력에 아첨하는 사람들의 위선적인 모습이 잘 드러난 동화다.

최고의 실로 짠 옷이라며 벌거숭이인 채로 임금을 거리로 나가게 했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임금에게 사람들은 ‘멋진 옷을 입은 멋진 임금’이라며 환호했다. 있는 그대로를 볼 줄 아는 아이가 ‘임금님이 벌거숭이다. 우헤헤’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벌거벗은 임금’의 행진은 계속됐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민낯은 ‘벌거벗은 임금’이다. 국민들은 만천하에 드러난 대통령의 민낯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시쳇말로 웃기지만 슬픈, ‘웃픈’ 현실이 돼버린 것이다. 다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했고, ‘이게 사실이냐’고 했다. 아직 잠에 취해 있는 사람들은 정말 ‘웃프게도’ ‘북한 소행이 아니냐’고까지 한다.

하지만 만약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있는 그대로를 말한 아이로 대변되는, '제대로 된 언론'과 시민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지금은 왕정시대가 아니다. 지구에서도 모자라 우주에서까지 제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우주전쟁 준비까지 무서운 21세기란 말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욕심이 극에 달해 바벨탑을 쌓듯 끝을 모르고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는 막판 자본주의시대란 말이다. 국민이 온 힘을 다해 그런 국제정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가 고민해도 모자랄 판에 봉건 군주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몰랐던 대통령과 욕심 가득한 사기꾼 재단사인 최순실은 블랙코미디의 정점이다.

여기서 묻고 싶은 게 있다. ‘벌거숭이 임금’을 멋지다고 박수를 치고 환호하던 군중들은 누구인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국모’로 치켜세우고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며 그를 대통령자리에 앉힌 그들은 지금 이 상황에서 할 말이 있는가?

일제강점기를 지나고 미군정을 지나면서 역사를 새끼줄 꼬듯 왜곡시키며 자신들의 부와 안위만을 위해 국가를 재단해온 그들이 과연 대한민국의 기업이고 언론이고 정치인이라고 고개 들고 말할 수 있는가?

입에도 올리기 싫은 ‘최순실게이트’는 그들의 야욕과 아첨이, 우리들의 방관이 불러온 당연한 귀결이어서 슬프다. 국가의 방관 아래 안타깝고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세월호참사 희생자들과 국가폭력으로 죽음을 맞이한 백남기농민은 ‘벌거숭이 임금’놀이에 빠진 대한민국의 뼈아픈 현실을 반증하는 슬픈 비극이다. 이런 비극을 만들어낸 것은 어쩌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 모두일지도 모른다.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바로 잡을 수는 있다. 전혀 다른 일들처럼 비춰지는 사건들이 실은 같은 맥락이라는 걸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최순실게이트’야말로 그동안 왜곡된 역사 속에서 유신헌법을 통해 장기집권을 획책하며 우리나라 정신을 말살했던 박정희의 그릇된 신화를 무너트리는 절호의 기회다.

이제 자신들의 허물을 감춘 채 부와 권력을 대대손손 가져가려는 위선자들을 밝혀내고,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만민 평등의 사상을 정신문화 속에 간직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본 모습이 진실의 기억 위로 빨리 올라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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