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 고문피해자 자기회복 치유사진전을 보며

간첩을 사랑한 여자

 

23살 옥분씨는 바다를 사랑한 여자

푸르게 일렁이는 바다 보면 속이 확 트인다고

그런 남자 있었으면 좋겠다고 날마다 되뇌었지.

삼척 바닷가 친구한테 갔다가

바다 닮은 남자 형식씨 만나 사랑에 빠지고

파도가 몰아치고 바람이 세차도

바다 같은 사랑으로 보듬자 약속했지.

말수가 적은 형식씨는 보말 같은 멍울을 가슴에 지닌 남자.

일가족이 삼척 고정간첩단으로 걸려든 집안

간첩을 사랑한 여자 옥분씨는

기꺼이 삼척 고정간첩단의 일원이 됐지.

시아버지, 시어머니, 일가친척까지

고정으로 간첩이 된 집안의 며느리가 됐지.

 

사랑은 가슴 속의 지지대 같은 것이어서

형식씨가 억울해 울분을 토할 때마다

넓은 등판을 받쳐주고 가슴을 쓰다듬어줬지

옥분씨는 형식씨의 고정간첩이 되었지.

바다에 핀 불가사리 같은 주홍글씨 달고

고정간첩 집안 며느리로 산지 수십 년

파도에 밀려 보말이 떨어지듯 세월이 흘러

고정간첩 누명이 벗겨졌지만

옥분씨는 여전히 형식씨의 고정간첩.

무너지는 세상을 지탱해주는 형식씨의 고정지지대.  

 

상처를 마주한다는 것만큼 두려운 것이 또 있을까? 내가 가진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이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어쩌면 또 하나의 상처가 될 수도 있을 두려움을 안고 가는 일이다. 그 상처가 개인 대 개인이 아닌, 개인과 거대한 권력집단 또는 국가라면 그 무게는 더 커지리라.

지난 16일, 한 장의 포스터를 보고 찾아간 곳이 있었다. 포스터 안에는 서대문형무소를 배경으로 7명의 사람들이 나란히 의자에 앉아있는 사진이 있었다. 붉은 벽돌의 감옥과 두 개의 철창살 창문 그리고 두 개의 작은 구멍은 세상과의 단절과, 세상과의 소통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진이었다. 햇살의 색깔은 오후 4시쯤으로 채색돼 있었고 참 따뜻하게 웃는 그들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사진 속 바람은 왜 그리 맵고 차갑게 느껴지는 것인지. 말하지 않아도 그들에게는 슬픈 멍울 하나씩 가슴에 담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진 위에 선명하게 새겨진 ‘국가폭력 고문피해자 자기회복 치유사진전’이라는 글자들에게서 말이다.

분단국가인 조국에서 어느 날 갑자기 끌려가 고문당하고 간첩으로 몰려서 평생을 남의 눈을 피하며 살아온 사람들. 아무런 잘못 없이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이 돈 벌러 일본에 갔다가 조국으로 돌아왔다고, 조총련 친척을 만났다고, 북에서 내려온 친척에게 밥을 줬다고, 빨치산의 아들이라고, 독립항일운동을 했다고, 무조건 북에게 포섭됐다는 억지를 씌워서...,

제주도간첩단사건, 삼척고정간첩단사건, 울릉도간첩단사건, 보성가족간첩단사건...,

국가의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권력 유지를 위해 분단과 반공으로 덫을 놓고 한 가족 또는 한 일족의 삶들을 송두리째 앗아간 죄를 누구에게, 어떻게 물어야 하나? 그저 국가폭력이라고 하기에는 그 죄질이 엄청나지 않은가?

미국을 등에 업고 대통령이 된 이승만에 이어 만주군관학교 장교로 있으면서 일본천황에게 ‘멸사봉공’의 충성을 맹세했던 박정희가 여러 경로를 거쳐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올라섰을 때부터 어쩌면 이들의 운명은 비극적으로 정해졌을지도 모른다.

사상과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가족끼리 일가친척끼리 배곯지 않게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국가는, 아니 국가를 등에 업은 권력들은 국민들을 지배할 힘의 희생물로 ‘빨갱이’라고 이름 붙인 재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분단은 너무나 쉽게 사람들을 희생물로 만들었다. 권력이 돈이 되고, 돈이 권력이 되는 유신독재에서 반공이데올로기는 무고한 사람들을 죄수로 둔갑시키는 신기한 기계가 됐다. 그 기계를 가동하기 위해 수많은 고문들이 자행됐고,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스스로 거짓말을 내뱉으며 ‘빨갱이’가 됐고 ‘간첩’이 됐다. 어떤 사람들이 손톱과 발톱을 빼고 욕조 속에 목줄을 넣고 온 몸에 흐르는 전기를 견딜 수 있을까.

사진전 팸플릿 첫 페이지에 이런 말이 쓰여 있다. “고문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일상 안에 며칠에서 몇 십일 내내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지독한 고문을 받은 피해 당사자들이 있습니다.” 그랬다. 이 사진전은 간첩이라는 죄명 속에 고문을 받고 거의 평생을 감옥에서 살았던 사람들과 간첩가족이라는 또 다른 누명 속에서 평생을 숨어가며 살아야 했던 가족들의 기억을 담아낸 사진전이다.

사진전이 열리던 첫 날, 전시가 열리는 ‘벙커1’에서 내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평생을 간첩의 족쇄를 달고 살다가 몇 십 년 후에야 무죄로 판결나서 누명을 벗은들 이들의 인생이 다시 새로워질 수 있을까? 누명만 아니었다면 그래서 고문 받지도, 감옥에 갇히지도 않았다면 그네들의 인생은 얼마나 환희로울 수 있었겠는가.

신도 아닌 누가 이들의 인생을 이처럼 무참히 재단하고 짓밟을 수 있는가? 국가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짓밟고 운명을 바꿀 수 있는가? 이들의 지나가버린 젊음과 놓쳐버린 행복을 생각하며 국민으로서 국가에게 강력하게 묻고 싶었다.

'사진치유공감 아이'의 대표인 사진작가 임종진씨는 국가폭력에 의해 자신들의 삶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다시 삶을 되찾으라며 기억을 마주할 수 있는 카메라를 이들에게 쥐어줬다. 꿈에서조차 공포로 다가왔을 감옥, 서대문형무소에 가서 잔인했던 시간의 기억을 들춰냈고 오열하며 찍어낸 기억의 사진들 그리고 자신이 서있는 세상풍경을 찍어냈고 그것은 상처의 치유제가 됐다.

상처를 마주한다는 건 고통이었지만, 마주했기에 많은 이들이 상처를 어루만지고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임종진씨의 말처럼 “사람이 그리웠지만 또한 사람이 두려웠던” 이들이 “모든 고통의 기억과 대면하면서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있는”것이다.

온전하게 고통스러운 기억과 마주한 사람들, 강광보, 김순자, 김태룡, 이사영, 이옥분, 정숙항,최양준. 세상과 맞서 싸운 가장 빛나는 승리자인 이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이들의 아름다웠을 인생을 앗아간 국가폭력의 책임자이 반드시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기자가 쓴 졸시이지만, 이 시를 자기회복 치유사진전에 참여한 사람 중 간첩누명을 쓴 남편과 결혼하고 집안의 간첩사건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옥분씨에게 드립니다.  

<국가폭력 고문피해자 자기회복 치유사진전>은 충정로역 9번 출구 근처에 있는 벙커1에서 11월 29일까지 볼 수 있습니다.  

▲ 전시 오프닝이 끝나고 사진전시를 여는 이들을 축하하는 작은 공연이 펼쳐졌다. 전시된 사진에 이옥분씨의 모습이 보인다.
▲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충정로에 있는 벙커1에서 한다. 전시를 둘러보는 관람객.
▲ 전시 오프닝에서 사진전시에 참가한 이들이 자신들의 작업이 담긴 영상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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