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가수의 노벨상 수상과 날개 꺾이고 재갈 물린 한국 문화예술계

매년 이맘때가 되면 스웨덴의 한림원으로 맞춰지던 세계문인들의 시선이 올해는 멍해졌다. 그야말로 세계문단에 주는 충격은 컸다. 지난 10월 13일 밤, 문단 뿐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은 온통 밥 딜런 이야기로 달궈졌다. 문학과 거리가 먼 사람들도 미국의 대중가수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놀라워했고 언론들은 밥딜런의 삶을 조명하기에 바빴다. 미국 히피문화의 중심에 섰고 저항가수로만 알았던 밥딜런이 ‘언제 문학을 했지?’하는 의구심으로 각계각층의 여론을 인터뷰로 실어냈다.

스웨덴 한림원은 세계 문학계 최고의 상으로 치부되는 노벨문학상 올해 수상자로 밥딜런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위대한 미국의 노래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고 했다. 1901년 쉴리 프뤼돔 시인을 시작으로 토마스 만(1929), 헤르만 헤세(1946), 존 멕스웰 쿳시(2003), 밥 딜런(2016)까지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총 113명이다. 이중 철학자인 프랑스 앙리 베르그송(1927), 영국의 버트란드 러셀(1950), 정치인인 영국의 윈스턴 처칠(1953) 등은 작가가 아니면서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또 지난 해 수상자인 벨라루스의 언론인 출신 르포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2015)는 전쟁의 참상을 인터뷰를 통해 보여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로 수상했다. 그러나 대중가수를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다소 파격적인 것이다. 그래서 올해 노벨문학상의 갑론을박은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전통적으로 노벨문학상은 저항의식이 강한 작가들을 선정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벨문학상 발표가 있었던 13일, 90세를 일기로 타계한 이탈리아 극작가 겸 배우 다리오 포는 강렬한 정치적 풍자극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우연한 죽음' 등의 작품으로 199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아이슬란드 작가 할도르 락스네스(1955년 ‘독립한 민중’ ‘아이슬란드의 종’), 구 소련작가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70년 ‘수용소 군도’), 칠레작가 파블로 네루다(1971년 ‘지상의 주소’) 체코슬로바키아시인 야로슬라프 세이페르트(1984년 ‘프라하의 봄’) 등등 전쟁과 군부독재 등에 저항하는 내용을 작품을 담은 작가들이다.

'60~70년대에 젊음을 보냈다면 반전과 평화를 노래한 밥 딜런 노래는 익숙할 것이다. 군부독재에 맞서 대학가에서는 저항의 시위가 연일 벌어질 때 통기타를 든 가수들은 'Blowing in the Wind'(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나 양병집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번안해 부른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등을 부르며 우울한 시대를 견뎠다.

가수 김광석이 다시 불러 히트시킨 이 노래는 80년대 노래패 '메아리' 공연에서도 불려 졌다고 하니 밥딜런의 노래에 담긴 저항의식은 우리의 운동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밥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소식을 듣고 SNS에 올린 글 중, 한 네티즌의 밥딜런에 대한 글을 옮기는 것으로 밥딜런에 대한 이야기는 대신한다.

“음악적으로 그는 컨트리락, 포크락 등의 장르를 개척했으며, 조안 바에즈, 피터 폴 앤 메리 등에게 강하게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를 사회성 짙은 저항가수로만 평가하는 것은 오히려 그의 음악을 협소하게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음악이 '60년대 말, '70년대 초 중반 미국 사회의 문제를 지적했고, 이에 방황하는 당시 청춘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요.

이러한 영향은 미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당시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60년대 말, '70년대 초부터 우리나라의 대중음악도 어쿠스틱한 포크 음악과 이후 포크락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이 시기 새로운 젊은 대중음악인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송창식, 윤형주의 트윈폴리오, 이장희, 양병집, 한대수, 김민기, 양희은 등이 이 당시 등장한 새로운 청년 세대 음악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소위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 등으로 대표된 당시 '청년문화'의 아이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청년문화의 새로운 등장은 당시 한국적 정치상황에서 된 서리를 맞게 됩니다. 유신 독재의 입장에서 이들은 왠지 기성 정치, 사회 질서에 반항하는 불온한 문화를 유포하는 자들로 미리 그 싹을 잘라놓아야 하는 자들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때 등장한 새로운 '청년문화'는 이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꾸준하게 계승되면서 저항의 문화로 발전합니다. 전 세계 역사를 보면 억압이 있는 곳에는 항상 저항하는 문화가 존재했고, 특히 청년 세대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문화가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 발전했습니다. 심지어 구 소련에서도 빅토르 최와 같은 락커가 청년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바다 건너 지구 반대편에서는 노벨 문학상에 밥 딜런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려왔지만, 우리나라 안에서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가 실재했다는 소식이 오버랩 되는 오늘이었습니다. 밥 딜런의 노래가사처럼 도대체 얼마나 걸어야, 얼마나 헤매야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요? 정말 바람만이 아는 대답일까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밥딜런이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한 이틀 전, 우리나라는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 문건으로 한바탕 소란이 일고 있는 중이었다. 가수인 밥 딜런이 과연 문학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갑론을박은 우리로서는 차라리 부러운 고민일 뿐이다. 정부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검열의 족쇄를 채운 일이 21세기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에 문화예술계가 큰 충격에 휩싸인 것이다.

예술은 시대를 앞서간다. 그래서 예술은 시대를 개척하고 저항의 힘으로 발전한다. 그런 예술의 본질조차 모르고 권력의 입맛에 맞게 판을 짜고 예술을 재단하는 것은 동물들을 우리에 가두고 사육하는 거나 같다. 자유롭지 못한 예술은 한낱 기능에 불과하다. 정부에 반했다고, 시대정신을 담았다고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고 예술에 재갈을 물린다면 그 시대 예술은 빛을 잃는다.

우리에게는 밥딜런과 같이 저항의식을 담은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부른 가수들이 있다. ‘물 좀 주소!’의 한대수를 비롯해 ‘친구’의 김민기, ‘북한강에서의 ’정태춘‘ 등등 그들은 노래로 시대에 맞서고 저항했으며 이 땅에서의 자유를 갈망했다. 하지만 그들은 반정부적 가사와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탄압받았다. 

만약 우리나라에 밥딜런이 있었다면 과연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을까? 세간의 우스개소리로 아인슈타인이 우리나라에 태어났다면 평생 전파사를 하고 있었을 것이라 이야기가 그저 웃을 일이 아니다. 그만큼 개인의 창의력을 국가가 재단한다는 것이다.

예술의 경계는 예술이어야 한다. 예술은 시대를 바라보며 창작하고 시대를 열어간다. 시대에 저항하지 않고 앞서가지 않으면 그것은 예술로서의 또 하나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문학이 경계를 넘어 노래라는 다른 예술장르와 결합해서 새로운 문학적 가치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밥딜런의 수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예술은 여전히 국가적 검열시대 ‘블랙리스트’안에서 가쁜 숨을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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