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를 살아가는 슬픈 국민들에게

▲ 부서진 시멘트 담벼락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맨드라미가 당당하게 하늘을 올려다본다. 민초들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삶이 곧 저항이 되는 시대에서는 더욱 당당해야 한다는 것을 맨드라미에게서 배운다.

‘살아간다는 것은 하루하루 반항하는 것이다’라는 가르침을 알베르까뮈에게 배운다. 까뮈는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나의 삶을 산다는 것은 이 삶이 부조리임을 알면서도 전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가르쳐준다.

부조리한 삶이 얼마나 많겠는가마는, 우린 국가에게서 부조리의 모습을 본다. 언제부턴가 이 시대의 부조리는 국가가 돼버렸다. 엄밀히 말한다면 국가의 살림을 맡고 있는 정부다. 대형 부조리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유착관계의 핵심은 정부로 향해 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은 그저 과거 정치인들이나 지식인들의 자가당착적인 이론에 불과하다. 그렇게 비웃게 되는 게 현실이다.

역사로 볼 때 폭력적인 국가의 모습은 독재자로부터 나온다. 국가가 국민으로부터 시작됨을 인지하지 못하고 왕정시대로 회귀하듯 통치의 기반으로 삼는다. 우주시대라는 문명전환의 21세기, 대한민국은 끝없이 과거로 회귀하는 괴물 같은 유기체가 된 듯하다. 사실 국민으로서 두렵다.

국가의 기능 중 하나가 국민의 자유 보장과 생명과 재산권 보호다. 그러기 위해서 치안유지와 외적 방어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공권력이 허용된 것인데, 우리의 공권력은 국민이 우선이 아니라 정부를 쥔 권력과 자본이 우선인 듯하다. 공권력을 정부의 입맛에 맞게 휘두를 때, 스스로가 독재정부임을 시인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초대정부 때부터 그러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불합리하게 잡은 정권의 민낯을 숨기기 위해 자행되어 온 수많은 공권력, 그것들을 앞세운 국민에 대한 폭력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는가.

그런 희생의 중심에 선 사람들에게 분단은 얼마나 잔인한 족쇄인지. 조금이라도 정부라는 거대한 울타리를 가진 권력에 반기를 든다면 연좌제로, 국가안보라는 명목으로, 빨갱이와 종북이라는 정체불명의 이름으로 된 쇠사슬을 목에 감는다.

권력과 결탁한 거대 언론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목줄을 쥐락펴락하며 거짓 기록들을 이어간다. 아무리 역사가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지만, 사회의 공기라는 ‘언론’의 정체성마저 저버리는 일도 서슴지 않는 게 현실이다. 히틀러의 입이 되어 20세기 최대 범죄자를 만들어낸 괴벨스는 ‘대중을 지배하는 자가 권력을 장악한다’고 믿었고 언론은 스스로 괴벨스의 입이 됐다. 슬프게도 그의 말은 지금도 진행 중이며 악의 진리처럼 맞아 떨어진다. ‘언론은 정부의 손 안에 있는 피아노가 돼야 한다’던 괴벨스의 말은 지금 우리 시대에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1조인 헌법이 갖춰진 나라에서, 제주 4.3사건과 4.19혁명, 5.18항쟁, 세월호참사 등등 크고 작은 사건들을 거치며 수많은 국가폭력에 의해 얼마나 많은 인권들이 유린됐던가. 경제개발과 기업경쟁력 강화라는 미명 아래 숨죽이며 일했던 노동자들은 또한 얼마나 많은 작업장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짓밟혀야 했던가. 하나하나 끄집어낸다면 바벨탑 하나는 거뜬히 쌓을 이 땅에서의 국가폭력은 공권력이라는 정당성을 가장한 국민에 대한 불법적 린치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다.

그 중에서도 가장 비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국가의 도덕성을 저버리고 국민과 국민의 갈등으로 조장하는 것이다. 진실의 마중물로서 역할은 안중에도 없고 정권야욕에 사로잡힌 권력자들이 권력과 돈을 앞세워 대리싸움을 시킨다.

지난 해 민중총궐기에서 물대포를 맞고 317일 만에 세상을 떠난 백남기농민의 경우를 보면 가장 최악의 국가폭력과 그 아래에서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사람들의 민낯을 본다. 한 사람의 농민이 쓰러져 사경을 헤매는데도, 결국 숨을 거둔 아버지로 인해 슬픈 나날을 보내는 가족들에게도 국가는 한 마디 사과도 없다. 거기에다 보수를 자처한 몇몇 단체와 사람들은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한다. 국가가 국민들을 부추겨 물어뜯게 만드는 대리전이 곳곳에서 펼쳐진다. 이것이야 말로 가장 잔인하고 부조리한 국가폭력이다.

사실을 사실로 알지 못하고 진실을 거짓으로 또 거짓으로 진실을 가장해서 국민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국가폭력은 세월호참사 900일을 넘긴 가족에게도 가장 잔혹한 아픔이다. 세월호 광화문 천막에 붙어있는 ‘세월호, 진실을 인양하라!’는 문구가 그들에게는 귀찮은 주문처럼 들릴 것이다. 양심이 있다면 살아남은 자로서의 아픔은 국민이 아니라 국민 간에 혐오를 부추기고, 갈등을 조장한 국가와 자본 뒤 권력자들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해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지금 슬프고 아프다. 그래서 국민은 저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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