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선의 문화정책 돌아보기 6 - 예술가와 시민에 의한 예술행정 제도화의 과제

예술가 블랙리스트는 잘못된 예술정책의 필연적 산물

박정희는 친일 반역 활동을 하면서 배운 대로 1961년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지 6개월 만에 국영방송을 설립한다. 지금의 KBS다. 친일 반역의 권력 기술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다. 또한 그해 예술인 단체를 만든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이다. 정치와 사회에 관여하지 않는 예술자체의 가치를 앞장세워 가장 정치적인 역할을 해 온 그들이다.

▲ 한국예총 건물. 임대료 수익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술인들을 통해 친일 반역을 미화하고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식민 정책을 편 일제를 그대로 답습하기 시작했다. 그의 딸인 박근혜 정부에서 드러난 예술가 블랙리스트 사건이 당연히 여겨지는 이유다. 박근혜 정권은 결국 5.16 쿠데타에서 출발한 예술 통제의 역사를 다시 실현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를 견제해야할 국회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박정희에 대한 왜곡되고 잘못된 평가에 기여한 가장 큰 역할 중에 예술가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면서 예술가들은 친일의 중요한 한 인물들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과연 예술계 내부에서 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친일인명사전처럼 ‘독재부역 예술인명사전’을 펴내야 한다. 다시 권력에 의해 예술이 농단당하지 않고 건강한 사회의 마지막 보루로서 예술가의 혼이 실천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과제다. 더구나 올해 촛불로 인해 묻혀버리긴 했지만 ‘육당·춘원문학상 제정’ 논란을 비롯한 친일예술가의 미화에 노력한 사실은 예술계의 수치다.

(관련기사 : http://www.minplu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82)

정부가 예술을 권력 홍보와 미화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존재해온 뿌리 깊은 예술 행정의 역사는 잠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결국 이명박근혜 정권은 다시 6,70년대로 회귀시켜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역시 그 당시의 공무원처럼 부역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예술가 블랙리스트는 권력과 부역공무원이 공모한 예술행정의 과거 회귀로부터 기인했다. 그리고 국회는 이를 막지 못했다.

▲ 사진 출처 : 문화관광체육부 홈페이지

영화진흥위원회의 가치

1997년 14대 대통령선거는 예술정책의 새로운 변화를 도입한 기념비적인 해다. 영화정책을 중심으로 영화계가 공약으로 제시한 정책을 수렴해서 지지를 이끌어내고 정권을 창출한 이후, 실현을 통해 새로운 정책모델을 만들었다. 1998년의 긴 협의를 통해 영화진흥법 등 개혁입법은 입법화 됐고, 이 결과로 탄생한 핵심이 바로 영화진흥위원회다.

1999년 출발한 영화진흥위원회는 예술 행정의 변화의 가장 중요한 사례다. 이후 2004년 문화예술위원회가 설립됐지만 이는 이번 블랙리스트 파동에서 보듯이 한계를 안고 출발했다. 장르별 1인 대표성의 연합체로 설립된 만큼 장르적 특성의 다양한 정책이 실제 수렴되는 기본적인 논의 구조가 실현되기 어려웠다. 따라서 불완전한 민간 행정위원회인 문화예술위원회는 예술행정의 개혁적 성과를 출발부터 담보해내지 못했다. 결국 과거의 문예진흥원과 다름없는 예술 통제기구 역할을 하게 됐다.

이에 반해 영화진흥위원회는 현재 차은택 연관설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원회 가동을 실질적으로 중단시킨 것으로 인한 문제점의 노정이지 그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는다. 이 점에서 영화진흥위원회의 성과는 블랙리스트 파동에 대한 대안으로 예술행정의 실질적 모델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가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 영화진흥법의 개정이 국회의 긍정적 역할이었다면 문화예술진흥법의 개정은 국회 역할의 아쉬운 점이다. 국회는 제도화에 대한 기본적인 책임을 지니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출발한 1999년, 3개월 만에 일어난 부위원장 파동(문성근 부위원장의 해임과 조희문부위원장의 선임과정에서 보수와 진보 영화계의 입장 대립 사건)을 거치긴 했지만 오히려 신구 영화계간의 이런 초기 대립이 이후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계를 대변하는 기관으로, 문화부나 정권의 간섭이 최소화하는데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이명박 정부시절 정부주도로 임명된 두 명의 위원장이 불명예 사퇴를 하는 등 영화계에 대한 행정 장악이 불발에 그쳤다.

박근혜 정부 들어 영화진흥위원회는 위원회 자체를 무용화 시키는 전략으로 위원회 운영을 유명무실하게 하고 문화부와 위원장, 사무국장, 직원 중심으로 운영했다. 제도 자체를 무력화 시키는 운영을 한 것이다. 이는 제대로 된 예술 제도가 실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진흥위원회는 민간 행정위원회의 시작이었다. 진보와 보수가 정권의 변화와 상관없이 최소한의 발언권과 결정권을 확보하는 제도이다. 이 가치가 실현되는 문화와 예술행정이 촛불과 블랙리스트 예술행동이 요구하는 답이다. 민간행정위원회인 영화진흥위원회 모델이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의 전면화로 이어져야 한다. 이 역시 국회가 가져야할 과제다.

▲ 김종덕 전 문체부장관이 차은택이 만든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미디어파사드 시연장 앞에 서있다. [사진 출처 : 문화관광체육부 홈페이지]

블랙리스트와 코드인사의 차이

지난 11월 24일 중앙일보는 블랙리스트 파동의 물타기(관련기사 : 과거 ‘코드인사’로 문화계 통제…이번엔 1500명 블랙리스트 http://mnews.joins.com/article/20918150#home)를 시도했다. 코드인사라는 이름으로 노무현 정부 때 문화계 기관장의 인사에 편파적인 기준을 적용했고, 그동안 예총과 민예총 간의 지원 규모를 단순 비교함으로서 이미 노무현 정권 때부터 예술계에 대한 편파 정책이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관련 학자의 인터뷰를 악의적으로 인용하기도 했다. 이는 분명 본질을 벗어난 전략적인 폄하기사다. 블랙리스트 예술행정이 의미하는 예술 자체에 대한 검열 논란을 본질에서 벗어난 사례를 가지고 악의적으로 호도했다.

정부는 정권의 공약실천과 정책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당연히 적임자를 인사를 통해 위촉한다. 그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부당하다. 임명된 이의 과거의 행적을 문제 삼아 비판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임명 자체가 문제되진 않는다.

노무현 정부시절 임명된 문화기관장의 경우, 그 행적의 문제이기보다는 진보 예술가인 점이 문제로 지적된 것이다. 진영의 문제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특히 블랙리스트 파동과 비교될 것은 더욱 아니다. 과거의 활동과 기관장으로 한 일에 대한 평가가 뒤따를 뿐이다.

▲ 노무현 정부 당시 이창동 전 문광부 장관

노무현 정부의 이창동 장관과 이명박 정부의 유인촌 장관, 박근혜 정부의 김종덕 장관을 이 기준으로 평가해보라. 중앙일보는 편파인사 운운하면서 인사시스템의 기본 자체를 무시하는 오류를 보였다. 코드인사는 정권의 공약 실천 차원으로 어느 정권이나 동일하며, 이에 반해 블랙리스트 파동은 예술 행정의 공정성 문제를 넘어 예술을 도구로 악용하거나 사전에 차단하려는 정치적으로 편향의 극치다.

또한 예총과 민예총의 지원금 비교를 하면서 노무현정부가 편파 행정을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여기다 회원수를 비교하면서 애써 객관성을 띠려고 한다. 예술계를 조금만 안다면 이런 단순화의 오류가 얼마나 무지한 것인지 안다. 회원의 받아들이는 방법의 차이가 극단적으로 있다. 예총이 그 태생부터 그러하듯이 회원의 확대 자체에 큰 비중을 둔다면 민예총 단체들의 경우는 실제 예술가의 역량에 따른 회원 확보를 한다. 결국 규모냐 질의 문제인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들러리로 출발한 예총이 당연직처럼 국회에 진출해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하던 시절이 얼마 전까지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당시 야당엔 예총회장 출신 비례대표 의원이 존재 했었다. 김영삼 정부부터 시작된 예총회관의 불법 지원의 규모가 얼마인지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사업성에 따라 평가되고 지원된 것을 정부가 양 진영을 의도적으로 균등 지원해서 결과적으로 민예총을 편파 지원했다는 논리는 악의적이다.

예술행정의 중요한 축인 정부의 지원사업 규모를 두고 평가하는 것보다는 사업들이 얼마나 잘 준비되고 실행됐는지 평가하는 것이 우선이다. 영화인협회(예총 소속)에 운영권을 맡긴 대종상의 운영 파행에서 보듯이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또한 이는 국회의 예산안 편성이나 결산권을 통해 평가돼야할 문제이기도 하다.

예술가와 시민이 함께하는 예술 행정이 답이다

영화진흥위원회 모델을 보다 발전시켜야 한다. 시민의 참여가 이뤄져야한다. 영화진흥위원회에 설치됐던 관객소위원회와 같은 시민들의 참여가 보다 활성화 돼야 한다. 서울을 비롯해 광역과 기초단체에 문화재단이 운영되거나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 문화재단은 시민들이 함께 해야 한다. 예술가와 시민이 함께 운영하는 형태의 가변적인 위원회들의 다양한 운영이 필요하다. 말 그대로 시민 정부의 지방자치 예술행정이 이뤄져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예술가와 학자, 예술행정가 등 전문가가 참여하는 위원회 체계를 행정전반에 도입하고, 한편으로 수용자인 시민의 의견이 활발하게 반영될 수 있는 개방적 기관운영이 필요하다.

제도적 정비를 준비할 수 있도록 우선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 과장, 국장급의 중요 부서장의 개방직 확대가 필요하다. 이것이 촛불 시민들이 요구하는 시민정부의 한 모습이다. 특히 블랙리스트 예술행동이 광화문에 캠핑촌을 만들면서까지 요구하는 시민 문화부다. 국회는 이를 시급히 입법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 블랙리스트 예술인들은 박근혜 정권의 예술인 탄압을 규탄하며 광화문캠핑촌에서 다양한 예술행동을 펼치고 있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