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Game of Smashing Countries

오늘날 카불 공항의 공황상태를 접하고 겁에 질린 언론인들과 장군들이 멀리 떨어진 TV 스튜디오에서 ‘우리에 대한 보호’란 의미 없는 철수일 뿐이라고 성토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이제는 우리가 이 모든 고통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과거의 진실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진실을 돌아봅시다.

 

저자 : 존 필거

 

역자 : 안광획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

해일같은 ‘악어의 눈물’에 서방 정치인들이 휩쓸리면서, 역사는 짓밟히고 있습니다. 한 세대 전에, 아프가니스탄은 미국, 영국, 그리고 그 동맹국들이 파괴했던 자유를 이제 얻었습니다.

사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한때 무자헤딘에 참가하고 탈레반 정권 붕괴 후의 아프간 괴뢰정권 수괴가 된 하미드 카르자이를 예방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한때 무자헤딘에 참가하고 탈레반 정권 붕괴 후의 아프간 괴뢰정권 수괴가 된 하미드 카르자이를 예방하고 있다.

1978년에, 인민민주당(PDPA)은 자히르 샤(Zahir Shar) 국왕의 사촌인 무하마드 다우드(Mohammad Dawd)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해방운동(혁명)을 주도하였습니다. 이는 영국과 미국을 놀라게 한 엄청난 대중혁명이었습니다.*

*이란의 영향을 무시한다면 사회과학자의 자세가 아니겠지요.

사진: 1978년 4월 28일 싸우르 혁명 다음날 카불 대통령궁 아르그 문 바깥 풍경. 출처: Cleric77, CC BY-SA 3.0, 위키백과 공용사진
1978년 4월 28일 싸우르 혁명 다음날 카불 대통령궁 아르그 문 바깥 풍경. 출처: Cleric77, CC BY-SA 3.0, 위키백과 공용사진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카불의 외신기자들은 “인터뷰한 거의 모든 아프간 사람들이 쿠데타에 기뻐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5만 명의 사람들이... 새 깃발을 들고 행진을 했으며... 참가자들은 진정으로 열광적이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정부에 대한 아프간 민중들의 충성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보도했습니다. 세속적이고 근대적이며 상당한 정도의 사회주의를 지향한 정부는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평등권을 보장하는 과거와 다른 선지적 프로그램을 선언했습니다. 정치범들은 풀려났고 경찰조서는 공식적으로는 소각되었습니다.

이 왕정 하에서 기대수명은 35세에 불과했으며, 유아시기에 1/3에 달하는 어린이들이 사망했습니다. 인구의 90%가 문맹이었습니다. 새 정부는 무상의료를 도입했고, 대대적인 문맹퇴치 캠페인을 전개했습니다.

미군의 아프가니스찬 침략에 대한 찬사로서의 1970년대 아프가니스탄 카불 대학의 여학생들. 독일의 어느 하루같은 이 모습이 아프칸의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은 지금도 남아 있다. 출처: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영국지사
미군의 아프가니스찬 침략에 대한 찬사로서의 1970년대 아프가니스탄 카불 대학의 여학생들. 독일의 어느 하루같은 이 모습이 아프칸의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은 지금도 남아 있다. 출처: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영국지사

여성들의 경우, 다음과 같은 진전은 아프간 역사에 전례가 없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까지 대학생의 절반은 여성이었고 아프간 의사들 중 여성 비율은 40% 이상이었으며 교사의 70%와 공무원의 30%가 여성이었습니다.

그 변화는 심히 급진적이었기에 혜택을 받았던 사람들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2001년에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한 여성 외과의사 사이라 누라니(Saira Noorani)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

모든 소녀들이 고등학교와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었고 좋아하는 복장을 자유롭게 착용할 수 있었지요. (중략) 우리는 카페에 가거나 금요일에 최근 개봉된 인도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갔었습니다. (중략) 무자헤딘이 승기를 잡은 때부터 모든 것이 잘못되기 시작했어요. (중략) 무자헤딘*은 서방이 지원하던 자들이었지요.

*무자헤딘, 지하드, 알카에다, IS를 같이 보려는 경향은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 무슬림의 근본주의적 단체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테러단체는 본의에서부터 다른 문제였다. 미국이 지원하는 IS와 다른 단체는 인식단계부터 다른 문제였다. 우리는 왜 그런 문제를 같은 문제로 보게 되었을까? 테러리스트는 미국의 용병이었고 우리가 아는 그 사람들, 탈레반은 아니었다.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인민민주당 정부가 소련으로부터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미국에게 있어서 큰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인민민주당 정부는 서방에서 조롱했던 것과 같이 ‘괴뢰정권’이 아니었고, 당시 미국과 영국 언론이 주장한 것과 달리 왕정에 대한 쿠데타도 ‘소련의 지원을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지미 카터 행정부의 국무장관 사이러스 밴스(Cyrus Vance)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 “우리는 쿠데타에서 소련의 공모와 관련된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미국선거에서도 이와 같은 터무니없는 선전행위가 난무했다. 그러나 대서양 언론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태연할 뿐이었다. 이런 부정선거의 정황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정상적인 부류들은 누구였을까...

이와 같은 행정부에는 카터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가 있었습니다. 그는 폴란드 이주민 출신으로 2017년에 사망할 때까지 미국 대통령들에 영향력을 행사한 광적인 반공주의자이자 극단적인 반공주의자였습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1977년 출처: 미 의회도서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1977년 출처: 미 의회도서관

1979년 3월 9일에, 미국인민들과 의회에는 기밀에 부친 채로 카터는 아프가니스탄의 첫 세속주의-사회주의 정부를 전복시킬 5억 달러 규모의 ‘비밀 작전’을 승인했습니다. CIA 작전명은 ‘사이클론 작전(Operation Cyclone)’, 일명 ‘폭풍작전’이었습니다.

무자헤딘이란 부족 및 종교적 광신도 단체를 무장시키고 매수·포섭하는 데에 5억 달러가 투입되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Bob Woodward)가 쓴 반공식 역사서에서는 CIA가 뇌물로만 7천만 달러를 사용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는 ‘개리(Gary)’로 알려진 CIA 요원과 암니앗 멜리(Amniat-Meli)로 알려진 군벌 간의 회담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남의 나라와 민족을 침략하는데 토박이를 광신도라고 표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들은 자기의 정체성을 수천 년 쌓아온 사람들입니다. 참고로 당나라 때에도 그들은 다른 세상에 있었던 것이지요.

“개리는 100달러 지폐가 쌓여있는 50만 달러가량의 현금뭉치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는 일반적인 20만 달러보다 훨씬 감명을 줄 것이며, ‘우리가 여기 있다, 우리는 진지하며, 돈은 여기 있다. 우리는 당신이 뭘 원하는 지 안다’고 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믿었었다. (중략) 개리는 아마도 얼마 뒤에 CIA 본부에 현금 천만 달러를 요청하고, 받을 것이었다.”

전 무슬림 세계에서 모집된 미국의 비밀군대*는 파키스탄 정보국과 CIA, 영국 MI6가 운영하는 파키스탄 훈련소에서 훈련받았습니다. 또 다른 이들이 운명의 쌍둥이 빌딩이 보이는 뉴욕 브루클린 소재 이슬람 대학에서 모집되었습니다. 모집된 신병 중 한 명이 바로 오사마 빈라덴이라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엔지니어였습니다.

*정규전을 회피하려는 미국의 저강도 전쟁의 일환. 정규군의 무력으로 무장하고 소속이 없는 전투집단. 결국, 그 집단은 IS로 알려진 끝없는 전쟁의 일부분이라는 불명예일 수밖에 없었다.

1985년, 아프간 무자헤딘 전사들이 파키스탄 국경을 넘어 아프가니스탄에 진입하고 있다. 출처: 어윈 프랜즌, CC BY-SA 1.0, 위키백과 공용사진
1985년, 아프간 무자헤딘 전사들이 파키스탄 국경을 넘어 아프가니스탄에 진입하고 있다. 출처: 어윈 프랜즌, CC BY-SA 1.0, 위키백과 공용사진

1979년 8월에, 카불 주재 미국대사관은 “향후 아프간의 사회경제적 개혁에 어떤 차질을 야기하건 간에, 미국의 더 큰 이익은 (중략) 인민민주당 정부의 붕괴를 통해 이뤄질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위에서 강조한 문구를 다시 한번 잘 읽어보십시오. 이와 같은 냉소적인 의도가 대놓고 드러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미국은 매우 진보적인 아프간 정부와 아프간 여성인권이 파탄날 것이라 공언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6개월 뒤, 소련은 미국이 조작한 지하디스트들*의 위협에 대응하여 아프가니스탄에 붉은 군대의 치명적인 개입을 단행했습니다. CIA가 보급한 스팅어 미사일로 무장하고, 마가렛 대처가 ‘자유투사’라 찬양한 무자헤딘은 결국 붉은 군대를 아프가니스탄에서 축출시켰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알카에다라고 통칭하고 있습니다.

북부동맹’을 자처한 무자헤딘은 헤로인 거래를 통제하고 농촌 여성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군벌들에 의해 지배되었습니다. 탈레반은 극단적 금욕주의 종파이며, 무슬림 성직자(물라)들은 검은 옷을 입고 강도, 강간, 살인 등을 강력히 처벌했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을 공적생활에서 추방했습니다.

1998년 4월 28일, 파키스탄 페샤와에서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카불 점령 6주기’를 규탄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연합(RAWA)의 시위. 출처: 아프가니스탄 여성연합(RAWA), CC BY 3.0, 위키백과 공용사진
1998년 4월 28일, 파키스탄 페샤와에서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카불 점령 6주기’를 규탄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연합(RAWA)의 시위. 출처: 아프가니스탄 여성연합(RAWA), CC BY 3.0, 위키백과 공용사진

1980년대에, 저는 아프간 여성들의 고통을 세계에 알리려 애쓴 RAWA로 알려진 ‘아프가니스탄 여성혁명연합’과 접촉했습니다. 탈레반 정권기에 그들은 만행의 증거를 촬영하기 위해 부르카 아래에 사진기를 숨겼고, 서방의 지원을 받는 무자헤딘의 잔혹성을 폭로하기 위해 같은 일을 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혁명연합의 마리나는 저에게 “우리는 주류 언론에 비디오테이프를 전달했지만, 그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1996년에, 계몽적인 인민민주당 정권은 붕괴했습니다.* 무하마드 나지불라(Mohammad Najibullah) 대통령은 국제연합(UN)에 가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귀국한 뒤에, 그는 백주대낮에 거리에서 무참히 살해되었습니다.

*아프카니스탄 만의 독특한 민족주의 정책을 채용하지 않은 극단주의 정책의 말로라고 생각합니다. 오판한 소련의 운명도 그러한 길이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시에 그 정권의 주류는 이프칸 민족 전체로 봤을 때 미미한 정도였습니다.

1898년에 인도총독 커즌(George Curzon)은 “그 나라들은 단지 장기판의 말에 불과하며, 세계지배를 위한 대규모 패권경쟁(the Great Game)이 벌어지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커즌 경은 위의 문장에서 특히 아프가니스탄을 강조했습니다. 한 세기 뒤에, 토니 블레어(Tony Blair) 영국 총리는 9·11 직후에 이와 비슷한 의미의 다른 발언을 했습니다.

피터 캐너드·캣 필립스, 『연출 사진』, 제국 전쟁 박물관(영국 런던), 2005
피터 캐너드·캣 필립스, 『연출 사진』, 제국 전쟁 박물관(영국 런던), 2005

“지금은 공격할 때입니다. 요지경은 흔들리고 있고, 그 파편들은 현재 유동적이다. 곧 이 조각들은 안정될 수도 있지만, 저들이 안정되기 전에 우리가 주변의 이 세상을 다시 세웁시다.”

*이 말은 전적으로 거짓말이다. 미군은 세계 최대의 양귀비밭을 운영하고 있었다. 양귀비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마약의 직간접적인 원료일 뿐이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우리는 아프간의 비참한 상황인 빈곤에서 벗어날 방법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블레어는 자신의 멘토인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미국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폭격 피해자들에게 한 말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억압받는 이들은 미국의 관대함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군사목표를 공격할 때 굶주리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식량, 의약품, 보급품 역시 투하할 것이다.(이후 생략)”

이들 주장의 거의 대부분이 거짓말입니다. 이들의 (아프간에 대한) 관심성명은 서방에 있는 ‘우리’가 거의 인지하지 못하는 제국주의적 야만성에 대한 잔혹한 환상이었습니다.

2001년에 아프가니스탄은 공격을 받았고 파키스탄의 긴급 구호차량에 전적으로 의존했습니다. 언론인 조나단 스틸(Jonathan Steele)은 침략전쟁으로 인해 굶주린 자에 대한 공급이 중단되었고 이들이 고향을 떠나면서 2만 명가량의 희생자가 간접적으로 발생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18개월 뒤에, 저는 미군 불발탄을 카불의 폐허에서 발견하였습니다. 미군 불발탄은 종종 공중에서 떨어진 노란색 구호상자로 오인되었고, 이는 먹을 것을 찾아 나선 굶주린 아이들의 팔다리를 날려버렸습니다.

비비 마루 마을에서, 저는 오리가란 여성이 그녀의 남편이자 양탄자 제조업자인 굴 아흐메드와 옆집에서 살해당한 여섯 명의 자식들이 안장된 7명의 가족무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슬퍼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미국 F-16 전투기는 맑은 창공에서 날아와 오리파의 황토, 석재, 짚으로 만들어진 집에 Mk82- 500파운드 폭탄을 떨구었습니다. 당시 오리파는 외출 중이었는데, 귀가했을 때 그녀는 가족들의 참혹한 시신파편을 발견했습니다.

수개월 뒤, 카불에서 미국인 한 무리가 와서는 오리파에게 총 15달러가 담긴 현금봉투를 건냈습니다. “죽은 내 가족 1명분의 목숨값이 2달러라니요.” 그녀는 말했습니다.

아프간 침략은 사기극이었습니다. 9·11 테러가 발생하자, 탈레반은 오사마 빈라덴과 거리를 두었습니다. 미국 석유회사 컨소시엄에 따른 30억 달러 규모 천연가스 송유관 건설사업을 허용하고자 빌 클린턴행정부와 일련의 비밀 거래를 체결했을 정도로 여러 면에서 탈레반은 미국의 거래 상대였습니다.

비밀리에, 탈레반 지도자들은 미국으로부터 초대받아 텍사스 저택에서 석유회사 유노칼(Unocal)의 CEO의 환대를 받았고, 버지니아의 CIA 본부에서도 환대를 받았습니다. 거래 중개인 중 한 사람은 훗날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부통령을 역임하는 딕 체니(Dick Cheney)였습니다.

2010년에 저는 워싱턴에서 현대 아프가니스탄의 불행과 고통의 화근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와의 인터뷰를 주선하였습니다. 저는 소련을 아프가니스탄으로 끌어들이려는 자신의 웅대한 계획이 “무슬림들을 동요시켰다”고 시인한 그의 자서전을 인용하여 추궁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이 질문했습니다. “후회는 없습니까?”

“후회, 후회! 뭘 후회하라고?!”*

*우리는 세상의 후안무치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아프칸의 문제는 말 그대로 제국주의 침략정책에 의한 결과일 뿐 여기에는 어디에도 인권, 여권, 소수자의 문제가 있지 않았습니다. 있다면, 제국주의의 편협한 세상만이 있을 뿐이었지요.

오늘날 카불 공항의 공황상태를 접하고 겁에 질린 언론인들과 장군들이 멀리 떨어진 TV 스튜디오에서 ‘우리에 대한 보호’란 의미 없는 철수일 뿐이라고 성토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이제는 우리가 이 모든 고통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과거의 진실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진실을 돌아봅시다.

참고 기사: 「미국은 40년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의 ‘무슬림 테러리스트’ 모집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에 의해 1979년에 시작되었다」

존 필거의 영화 『침묵 깨기(Breaking the Silence)』는 다음 링크에서 시청 가능합니다.

책 소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미셸 초서도브스키 저)

미셸 초서도브스키 교수의 2002년 인기 저작의 개정증보판에서, 저자는 미국에서의 9·11 테러가 ‘무슬림 테러리스트’에 의해 발생했다는 주류언론의 연막을 날려버립니다. 세밀한 연구를 통하여 저자는 9·11 테러 배후의 군사첩보 계략을 밝히며, 부시 행정부의 핵심 구성원들의 공모 실체를 밝혀냅니다.

증보판에서는 9·11 테러를 구실로 한 이라크 침략 및 불법 점령과 정의·법치의 군사화와 민주주의의 폐지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12개 장절이 추가되었습니다.

초서도브스키 교수에 따르면, ‘테러와의 전쟁’은 오사마 빈라덴이란 한 사람이 연간 4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정보기관을 능가하는 허상에 기초한 완벽한 사기극입니다. ‘테러와의 전쟁’은 정복전쟁일 뿐입니다. 세계화의 종착역은 월가와 미국 군산복합체가 지배하는 ‘신세계 질서’입니다.

원문기사: John Pilger, “The Great Game of Smashing Countries”, Global Research, 2021.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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