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아프칸전쟁은 탈레반과 아프칸정부군간의 전쟁이 아니다.

8월 15일 탈레반의 부대들이 수도 카불에 입성함으로서, 미국의 지원과 비호하에 아프칸의 ‘공식정부’ 수반으로 행세해 온 ‘아슈라프 가니’가 나라밖으로 달아남으로써 20년에 걸친 아프칸전쟁은 일단락되었다.

예상과 다른 사태의 빠른 전개에 놀란 미국과 서방언론들은 ‘아프칸 정부군’이 맥없이 무너진 원인을 분석하느라 열을 올렸다. 미국은 아프칸전쟁이 탈레반의 승리로 끝난 이유를 ‘아프칸 정부군’의 탓으로 돌려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런데 ‘아프카니스탄 공식정부’라는 것은 미국이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하여 만든 정부다. 미국의 지원에 의해 태어난 정부이며 미국의 비호가 없다면 하루도 버틸 수 없는 정부다. 이 정부와 군대가 썩을때로 썩은, 부정부패로 무능하기 짝이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은 ‘아프칸 공식정부’의 그 누구때문만이 아니다. 아프카니스탄 민중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아프칸전쟁을 더 해낼 수 없게 된 미국이 탈레반과 철군협정을 맺고 탈레반이 공세를 강화하자 ‘아프칸 공식정부’에 종사하던 자들은 제 살길 찾아 달아나기 바빴다. 이 도주극에 참가한 사람들은 하급병사들부터 대통령까지 자리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았다.

어떤 보도에 의하면 ‘공식정부’ 대통령 ‘아슈라프 가니’는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하기도 전에 승용차 4대에 돈을 가득 싣고 비행장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그는 한 대분의 돈은 다 싣지도 못하고 인근 타슈켄트공화국으로 도주하였다.

이런 모습들은 베트남전쟁에서 이미 보여진 바 있다. 침략군에 의해 억지로 만들어진 이른바 ‘공식정부’라는건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결국 다 그렇고 그런 것이다.

탈레반이 승리한 요인을 ‘아프칸 공식정부’ 또는 그 군대에서 찾는 것은 헛된 일이다. 아프칸전쟁은 탈레반과 ‘정부군’과의 대결이 아니다.

아프칸전쟁은 탈레반과 미군의 전쟁이었다. 이 무대에서 ‘아프칸 정부군’은 대사도 없는 단역중의 단역에 불과한 존재일 뿐이다.

미국과 서방언론이 ‘아프칸 공식정부’와 ‘정부군’을 헐뜯는 이유는 미국이 패배한 전쟁이라는 사실을 감춰보려는데 있다.

하지만 아프카니스탄전쟁, 탈레반과 미국의 전쟁은 탈레반의 승리로 끝났다. 좋건 싫건, 바라건 바라지 않건 이 사실을 다르게 만들 수는 없다.

▲1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 공항에서 수백 명의 아프간 사람들이 활주로를 따라 이동하는 미 공군 C-17 수송기에 몰려들고 있다. 일부는 미군 항공기에 매달리다가 추락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1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 공항에서 수백 명의 아프간 사람들이 활주로를 따라 이동하는 미 공군 C-17 수송기에 몰려들고 있다. 일부는 미군 항공기에 매달리다가 추락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 탈레반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힘은 다른 데 있다.

20여년에 걸친 전쟁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이 입은 피해는 사망자만 8천여명에 이른다. 이중 미군 전사자는 2천500명에 달한다. 결코 적은 수라고 할 수 없지만 전쟁이 20년동안 계속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견딜 수 없을 만큼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더 이상 아프칸전쟁을 계속하지 못하였다.

20년전 미국은 탈레반의 창시자인 무하마드 오마르가 최고지도자로 있는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하였다. 당시 아프카니스탄 정부가 9.11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 미국이 내세운 이유였다.

아프칸전쟁이 시작되자 “아프카니스탄은 제2의 베트남이 될 것이다.”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침략전쟁은 승리할 수 없다.”는 원리를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미군이 아프카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손쉽게 점령하고, 이어 벌인 이라크전쟁에서도 파죽지세로 후세인정부를 붕괴시키자 미군의 위력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그런데 오늘날 아프카니스탄의 카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50여년전 베트남 사이공의 데쟈뷰라할 수 있을 정도다. 탈레반과의 전쟁에서 패배한데 대해 미국이 토해내는 신음섞인 말들은 ‘침략전쟁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진리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러나 탈레반의 승리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아프카니스탄 정부군’의 부패와 무능때문은 아니다. 베트남전쟁이 베트남의 밀림이 가져다준 결과가 아니듯 탈레반의 승리는 아프칸의 자연지리적 조건이 낳은 결과가 아니다. 미군의 패퇴는 미국이 저지른 어떤 전략적, 정책적, 정치적 판단착오나 실수로 인한 것도 아니다. 그냥 전쟁에서 진 것이다.

그러면 한 대의 비행기도 없는, 탱크나 장갑차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대포도 가지지 못한 탈레반이 결국 미군을 쫓아낸 힘은 무엇인가.

여러 요인들을 따져 볼 수 있지만 가장 근원적이고 강한 힘은 외세의 침략에 끝까지 굴복하지 않는, 다른 나라의 지배를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정신이 강한데 있다.

이것을 서방언론들은 이슬람근본주의라고 하며, 마치 이슬람민족에게 종교적 광기나 전근대적인 폐쇄성이 있는 것처럼 묘사한다.

하지만 이것은 아프카니스탄의 민중들에게는 숭미사상과 사대주의, 외세의존사상과 민족허무주의가 매우 약하거나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아프카니스탄 민중들이 가진 이 특성은 오랫동안 미국의 불평등한 일방적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는 나라들과는 다른 특성이라고 할 수도 있다.

서방언론들은 탈레반이 아프카니스탄 사람들에게 공포의 존재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탈레반은 그 험난한 20여년의 전쟁을 이어갈 수 없었을 것이며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돈과 무기를 지원받고 있던 정부군을 압도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프카니스탄 민중들에게 탈레반은 곧 이슬람의식, 자주독립의식의 표상이고 깃발이었다.

이것이 탈레반이 아프카니스탄 민중들의 지지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이유였다. 탈레반은 소총과 휴대용유탄발사기만을 가지고도 스텔스폭격기와 미사일, 헬리콥터와 장갑차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졌던 것이다.

아프카니스탄 민중들이 가진 강한 반제자주의식은 탈레반이 승리하고 미국은 결국 패퇴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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