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에서 노동조합 지부가 사용자 측과 매 분기 노사협의회를 진행한다. 노사협의회는 단위 지부가 단위 사업소 또는 바로 위 단위와 진행하는 교섭인데, 주로 소속 사업장 내 노동조건과 복지문제를 다룬다.

노사협의회를 진행하기 전에 노동조합 지부에서 노사협의 안건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친다. 조합원이 제기하는 안건은 ‘작업 공구가 망가졌으니 새로 지급해 달라’, ‘현장 시설 중 어디는 안전에 문제가 있으니 보완해 달라’, ‘휴게실이 너무 더우니 에어컨을 넣어 달라’는 등 대체로 현장 노동조건과 복지향상을 위한 요구가 많다.

이런 조합원의 요구를 수렴한 후 지부 간부들은 노사협의를 위해 조합원의 요구를 안건으로 정리한다. 그런데 안건 정리과정에 문제가 생긴다. “이 안건은 노사협의회를 할 때마다 올라오네?”, “이 안건은 지난번 노사협의회에서 안 된다고 결론이 났던 것인데 또 올라오냐?”, “이 안건은 이번에 빼야 해”, “노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 조합원은 정말 관심이 없어.” 안건을 정리하고 난 지부 간부들의 반응이다. 조합원의 요구 중 상당수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지난번에 다루었던 안건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간부들의 반응이 좋을 리 없다.

조합원은 왜 같은 요구를 계속할까? 이전에 다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요구가 절실하므로 계속 주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 조합원이 같은 요구를 반복하는 이유를 따져보니 대체로 ‘그 안건이 다루어졌고 이미 결론이 났다’라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간부들이 노사협의 결과를 조합원에게 알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합원이 노사협의회 안건수렴에는 참여했지만, 협의 경과와 결과를 모른다. 노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없는 조합원이 문제일까?

▲ [사진 : 뉴시스]
▲ 민주노총 가맹산하 노조의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 퍼포먼스. [사진 : 뉴시스]

2020년 11월 25일 노동법 개악을 저지하고 전태일 3법을 쟁취하기 위해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단행했다. 코로나 때문에 집회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첫날 3만 4천여 명이 총파업에 참여했다. 민주노총은 12월 9일 국회에서 노동법이, 지난 1월 8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하기까지 총파업을 이어갔다.

민주노총은 지도부 사퇴 과정에서 겪은 내홍을 수습하고 직선 3기 지도부를 선출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총파업을 성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비상대책위원장과 간부들의 현장순회를 본격적으로 추진했고 대대적인 선전홍보 사업을 펼쳤다. 노동법 개악과 전태일 3법에 관련한 포스터, 총파업속보, 특보, 유인물, 카드뉴스. 피켓, 현수막, 스티커, 유튜브 방송 등 가능한 선전홍보 수단을 모두 가동했다.

특히 대중운동으로 펼친 전태일 3법 쟁취를 위한 10만 국회 입법청원운동은 민주노총 100만 조합원 중 10만여 조합원이 참여함으로써 민주노총 조합원을 역사의 주인으로 일으켜 세운 쾌거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사업장에는 위 포스터가 아직도 붙어있다. 2019년 10월 민주노총에서 발행한 노동법 개악 관련 투쟁 포스터다. 1년 3개월이나 지난 포스터지만 당시의 그 절박함과 호소력으로 여전히 조합원을 투쟁으로 고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2017년 9월 ILO 사무총장을 만나 2019년까지 비준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이내 노동법 관련 정부의 개악 의도가 드러났다. 총파업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진행하긴 했지만 이미 이때부터 밟아왔던 하나의 과정이다.

노동법 개악을 저지하고 전태일 3법을 쟁취하기 위한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일단락되었다. 돌이켜보면 하나의 사안으로 3년이 넘는 오랜 과정이 끝났다. 그런데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해 현장조합원이 잘 알지 못한다. 여전히 포스터는 사업소 식당 앞에 붙어있다. 그러나 이 포스터에 관심을 갖는 간부나 조합원이 없다. 어떻게 되었는지 묻는 조합원도 없고 해설하려는 간부도 없다. 포스터가 붙어있으니 ‘아직도 진행 중인가 보다’ 한다.

민주노총의 총파업도, 10만 입법청원운동도 조합원이 참여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다. 조합원의 참여를 끌어낸 지도부의 노력은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민주노총 총파업이라는 큰 투쟁이 끝났는데 조합원이 그 결과를 쉽게 알 수 없다. 그것을 알려면 뼛심들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힘들고 어렵다.

아래는 총파업의 결과를 알 수 있는 자료다. 민주노총 홈페이지에 등재되어 있다. 필자가 과문하고 요령이 없어 이것밖에 찾을 수 없었다. 참고하시기 바란다.

- 민주노총 [선전자료] 총파업속보 30호 / 12월 10일
- 민주노총 [성명·보도] [보도자료] 정부와 여당의 노조법, 근기법 개악 규탄 및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전태일3법 즉각 입법 요구 민주노총 기자회견 / 12월 10일
- 민주노총 [성명·보도] 해설서(위 보도자료의 첨부파일) 201210 정부와 여당의 노조법, 근기법 개악 규탄 및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전태일3법 즉각 입법 요구 민주노총 기자회견.hwp
- 민주노총 [성명·보도] [성명] 국회 환노위 통과 노조법 및 근기법 개정에 대한 민주노총 입장 / 12월 9일

조합원이 노사협의회 안건수렴에는 참여해도 협의 과정과 결과를 모르는 이유는, 노조 간부들이 의견 수렴과정은 생략할 수 없는 절차이기도 하고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라 열성을 내지만 그 결과를 알리는 것은 간절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민주노총 총파업도 별로 다르지 않다.

간부들은 사업을 시작할 때 그랬던 것처럼 끝날 때도 그 결과를 알기 쉽게, 제때, 충분히 조합원에게 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합원이 그 사업의 성과와 한계, 교훈과 과제를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사업에 참여한 보람도 느낄 수 없고 노동조합 사업에 관한 관심도 떨어지게 된다. 이것을 반복하면 조합원은 ‘내가 동원 대상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이 어떤 사업을 진행할 때 간부들은 조합원의 반응을 알고 싶어 한다. ‘피드백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피드백 좀 주세요’라고 요청한다. 조합원도 자신이 참여한 사업에 대해 피드백을 받고 싶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노총 총파업의 경우 현장에 총파업 마무리 포스터 한 장 정도는 붙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조합원에게 관련 성명과 해설자료 등을 링크한 문자메시지 한 번 정도는 보내야 하지 않을까? 민주노총 임원선거에서는 조합원에게 문자메시지 많이 보내지 않았나. 3년이 넘게 끌어온 투쟁이 끝났는데….

사업결과가 좋든 나쁘든 그것의 주인은 조합원이다. 주인의 물건은 주인에게 에누리 없이 돌려줘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주인인 조합원을 주인답게 받드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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