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이 지난 일이다. 국회의원 선거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어느 날, 함께 일하던 사업장의 현장노동자를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그는 어느 민주당 후보의 선거운동을 하던 중이었다. 내가 일하던 사업장의 누구도 그가 선거운동을 하는 것을 몰랐다. 나와 마주친 그는 얼굴을 붉히며 매우 부끄러워했다.

10여 년이 지난 오늘, 민주당을 지지하는 선거운동에 참여했던 그 노동자는 이제는 하나가 아니라 열, 백으로 늘어났고 몰래 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연히 지지를 밝힌다. 노동조합의 간부들도 노조현안을 들고 진보정당이 아니라 민주당에 찾아가 해결을 요청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민주당에 대한 현장의 기대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노동조합의 간부들은 “문제해결 능력이 있는 민주당에 노조현안을 가져가야 성과를 낼 수 있지 않느냐.”라고 말한다. “진보정당의 분열로 지지하고 싶은 진보정당이 없어졌다.”라는 얘기도 나온다.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민주당을 지지해야 '국민의힘' 등 보수정당을 뿌리 뽑을 수 있지 않냐.”라는 대답이다. 어떤 면에서는 그런 노동자의 심경이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지난 10월 21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노동법 개악을 규탄했다. ⓒ 김한주 기자 [사진 : 노동과세계]
▲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지난 10월 21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노동법 개악을 규탄했다. ⓒ 김한주 기자 [사진 : 노동과세계]

정부에서 제출한 ‘노동개악법’의 국회논의가 임박했다.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는 11월 26일 비쟁점 사안을, 11월 30일 쟁점 사안을 다룬다. 노동법 개정안은 오는 30일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소위원회를 거친 노동법 개정안은 12월 초 환노위 전체회의, 본회의로 넘어간다. 민주노총은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이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되면 총파업 총력투쟁에 돌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 표 : 정부 노동법 개정안
▲ 표 : 정부 노동법 개정안

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핑계로 노동법을 개정하려 한다. [※ 표1 참고] 
고용노동부는 노동법 개정안 관련 ‘펙트체크’를 발표하는 등 개악안이 아니라고 극구 변명하고 있지만, 사실은 명백하다. 정부 노동법 개정안의 긍정적인 부분은 딱 한 가지 즉 ‘실업자와 해고자 등의 노동조합 가입자격’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실업자와 해고자도 기업별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이미 실업자와 해고자 등은 산별노조에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지 않은가. 이거 하나 열어주면서 노동조합의 노조활동에 엄청난 제약을 가한다. 

ㆍ 실업자와 해고자 등이 사업장 내에서 노조활동을 하려면 ‘사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된다. 도대체 어느 정도가 사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일까? 그뿐이 아니다. 실업자와 해고자 등은 기업별노조의 임원 또는 대의원으로 출마하는 것 자체가 금지된다. 이 내용은 현행법을 오히려 후퇴시킨 것이다. 
ㆍ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을 삭제했으나 타임오프제(근로시간면제제도)는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빛 좋은 개살구’다. 
ㆍ 단체협약 유효기간의 상한을 3년으로 연장하는 것 역시 ILO 협약의 정신에 어긋난다. 단체협상의 유효기간을 너무 길게 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교섭권을 부당하게 축소하게 된다. 
ㆍ 현행 노조법 42조는 사업장 점거를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은 사업장 ‘일부 점거’까지 모조리 금지하는 것이다. 
ㆍ 퇴직 공무원과 교원의 노조 가입도 법이 아니라 정부의 의지로 가능한 것이다. 

노동자가 언제 이런 법을 만들어 달라고 했나? 이것이 개악이 아니란 말인가.

김대중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을 거쳐 현재의 문재인 정권까지, 노동자가 민주당에 어느 정도 기대를 걸었던 것도 사실이고 노동자의 지지가 민주당 정권을 창출하는데 이바지한 것도 사실이다. 민주당의 지지기반은 노동자를 포함한 대다수 민중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기대와 지지는 아쉽게도 언제나 실망과 배신으로 끝났다.

IMF와 함께 탄생한 김대중 정권은 1998년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를 도입하면서 임기 내내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진행됐고, 실업자와 비정규직을 양산했으며 임기 말 정기국회에서 3대 노동법(노동시간 단축 관련법, 경제특구 관련법, 공무원노조 관련법) 개악을 시도하는 데에 열을 올렸다. 노무현 정권은 민주노총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2003년 변형근로제 확대, 2006년 파견제와 기간제 관련법과 노사관계 로드맵을 국회에서 통과했다. 

이제 문재인 정권도 촛불의 중심인 노동자와 민중의 기대와 지지를 외면하고 과거 민주당 정권의 행태를 되풀이하려 한다. “민주노총은 약자가 아니다.”라는 자본의 논리를 스스럼없이 강변하는 옛 386세대이며 문재인 정권 핵심 인사의 발언은 놀랍지 않은가!

역사적으로 보면 민주당 정권은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김대중 정권은 김종필과의 DJP연합으로 정권을 창출했고 노무현 정권은 비록 선거 막바지에 지지 철회가 있었으나 정몽준과의 후보단일화로 집권할 수 있었다. 재벌과 자본을 대변하는 세력과 부분적이지만 상층연합으로 탄생한 정권이었기에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고 타협적 성향으로 흐르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문재인 정권은 과거 민주당 정권과 달리 박근혜 정권에 대한 촛불 민중의 강력한 저항과 개혁에 대한 기대에 힘입어 탄생했다. 문재인 정권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주류인 보수세력에 빚지지 않고 탄생한 정권이다. 그런데도 이전 민주당 정권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지지기반을 저버리고 재벌과 보수세력의 편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지금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악이 바로 그것을 보여준다. 

민주당은 늘 그랬듯이 집권 이후에는 자신의 근본을 잊어버린다. 자신의 지지기반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재벌과 보수세력을 포함한 모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모든 사람의 편은 그 누구의 편도 아니다. 문재인 정권은 당연히 촛불의 편, 노동자와 민중의 편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촛불의 회초리를 피할 수 없다.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를 배신하는 자식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나.

문재인 정권은 ‘ILO협약의 일부를 비준해 줄 테니 노동자도 무언가 양보해야 하지 않나?’라는 싸구려 장사꾼 놀음을 하고 있다. 그런 놀음은 노동자에게 공정하지 않다. 아직도 운동장은 많이 기울어져 있다. 지금은 노동자가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매섭게 회초리를 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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