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임원선거와 산별, 지역본부, 단위노조 선거가 끝났다. 선거 때만 되면 이렇게 묻는 조합원이 있다. “어디가 좌파고 어디가 우파냐?” 투표는 각 후보 진영의 공약과 정책, 투쟁과 실천의 역사를 돌이켜보고 판단할 일이다. 좌우 구분도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던지는 데는 나름대로 기준이 될 수 있다. 투표를 한두 번만 해보지 않았다. 그 감각이 적중한다고나 할까? 자신의 의사와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조합원은 왜 후보 진영을 좌우로 구분할까?

2012년 국회의원 선거 당시 필자는 통합진보당 지역 후보 선거운동을 했다. 지역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중앙당 대표단이 지지 연설을 하고 다녔다. “우리 사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우파의 세력이 너무 강하다. 이 균형을 맞추려면 좌파를 밀어줘야 하고 그래야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아직도 기억하는 연설내용 중 한 대목이다.

1970~80년대 진보진영에서 ‘사상의 은사’라고 불렸던 리영희 선생님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보다 못한 금수의 하나인 새들조차 왼쪽날개(左翼)와 오른쪽날개(右翼)를 아울러 가지고 시원스럽게 하늘을 날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우주와 생물의 생존 원리가 아닐까? 8·15 이후 근 반세기 동안 이 나라는 ‘오른쪽은 신성하고 왼쪽은 악하다’라는 위대한 착각 속에 살아왔다. 이제는 생각이 조금은 진보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위 사례들은 진보진영이 우리 사회를 좌우로 나누어 보는 시각의 예이다. 우리 사회를 좌우로 나누어 보는 시각은 과연 올바른가? 현실에 부합하는가? 사회발전에 도움이 될까? 지난 시기 서슬 퍼런 군부독재 정권하에서는 좌우의 균형을 말하는 것이 진보운동에 도움이 될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이 관점이 아직도 유용할까?

좌우분리 시각은 하나의 프레임이다. 좌우프레임을 가장 애용하는 언론이 조선일보다. 언론 기사를 보면 보수언론의 대표주자인 조선일보가 좌파, 우파라는 용어를 가장 많이 쓴다. 또한, 선거 때만 되면 보수 후보들이 “주적이 누구냐?”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하나?”는 등 ‘좌우 대결 프레임'을 꺼낸다. 조선일보와 보수 후보들이 좌우대결 프레임을 꺼내는 목적이 무엇일까?
 
좌우프레임은 한국 사회의 지배자들에게 유리하다. 그들에게 좌파는 단지 의견이 다른 세력을 일컫는 용어가 아니다. 좌파는 종북으로, 종북은 빨갱이로 비약한다. 분단된 나라의 특수성을 한껏 이용해 반대자들을 탄압하는 이데올로기로 써먹는다. 해방 직후 찬탁운동과 반탁운동을 계기로 민중을 좌우로 갈라치기해 자신들의 지배를 유지하는 데 재미를 톡톡히 본 그 단맛을 잊지 못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5월, 사회원로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종북 좌파라는 말이 어느 한 개인, 생각이 다른 정파에 대해서 위협적인 프레임이 되지 않는 그런 세상만 되어도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며 좌우프레임을 경계하기도 했다.

▲ 양극화 {사진 : 디비피아 캡처]
▲ 양극화 {사진 : 디비피아 캡처]

좌우프레임은 현실을 왜곡한다. 한국 사회는 좌우가 아니라 상하로 나누어져 있다. 계층이동의 사다리는 무너졌다. 

2017년 4월 17일, 서울신문과 현대경제연구원이 전국 성인 남녀 805명을 대상으로 ‘계층 상승 사다리 인식조사’를 한 결과, 83.4%가 “열심히 노력해도 계층 상승 가능성이 작다”라고 답했다. “부와 가난의 대물림이 심각하다”는 답변도 93.9%나 됐다.

2019년 11월 2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생 노력한다면 본인 세대에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22.7%에 그쳤다. 또한, 자식 세대에서 일생 노력을 다한다면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고작 28.9%에 불과했다. 우리 국민 10명 중 7명이 자신의 자식이 계층 상승을 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2020년 1월 27일,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청년 희망사다리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30대 청년 10명 중 6명은 노력을 해도 계층이동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 없는 '흙수저'는 결국 흙수저로 생을 마감한다는 '수저계급론'이 청년층에 널리 퍼져 있다는 의미다.

더 나아가 사회계층이 굳어졌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8년 11월 내놓은 ‘현세대 청년 위기 분석’ 결과를 보면, 어릴 때 빈곤이 교육 수준과 일자리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7살 이전 6년 이상 장기빈곤을 경험한 청년(18~28살) 가운데 68.8%가 고등학교 졸업 이하로 학력을 마쳤는데, 경제활동 참여 상태는 일용직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비경제활동, 실업자, 임시직 순이었으며 정규직이 가장 적었다. 부의 불평등이 결국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기회의 불평등이 곧 부의 불평등을 낳는 악순환이 고착된다.

위 통계들은 사람들의 의식을 조사한 결과다. 하지만 우리 사회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 ‘헬조선’, ‘흙수저 금수저’, ‘1:99의 사회’, ‘양극화’ 이런 말들이 오늘의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말이 된 지 오래다. 

한국은 1.3% 재벌이 전체 사유지 65%를 차지하고 상류층 5.5%가 사유지 74%를 차지하는 나라다. 일본강점기 일본인이 차지한 토지만큼*
 극소수 특권층에 토지가 집중되어 있다. 또한, 자산의 쏠림 현상은 더 심각하다. 상위 10%가 65.7%를 차지하고 있지만, 하위 50%는 1.8%만 소유하고 있다.**

* 전체 사유지의 65%, 1928년 통계
** 출처 : 민플러스 정설교 화백의 만평

한국 사회는 정치·경제적으로 힘없는 다수와 부와 권력의 극치를 누리는 소수로 나뉜 상하양극화 사회다. 우리 사회현실이 이러한 데 좌우프레임으로 사회를 보는 것은 현실을 심각히 왜곡한다.

좌우프레임은 진보운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배자의 좌우프레임은 진보를 소멸하는 것이 목적이다. 진보진영에서 쓰는 좌우프레임은 설령 그럴 의도가 없다 해도 불합리한 사회현실을 가리고 계급계층 간의 대결을 숨기고 협조를 부추긴다. 결국은 좌우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데로 귀결되는데 이것은 민중이 소수 지배자에 대항해 투쟁하는 데에 찬물을 끼얹는다. 

2015년 12월 스페인 총선에서, 창당한 지 2년도 안 된 진보정당 포데모스가 제3당으로 뛰어올랐다. 포데모스의 경우는 사회의식에서 상하개념의 장착으로 성공을 이끌었다고 한다. 그들의 성공 요인은 정치공학적 선택을 잘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제대로 반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포데모스는 기존 기득권층을 일컫는 ‘카스타'***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포데모스 대변인실은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성공은 좌우로 나뉘었던 정치프레임을 특권을 누리는 상층과 이에 대항하는 하층이라는 수직적 개념으로 바꾼 데 있다”라고 했다.***

*** 스페인어로 ‘특권 계급’을 뜻한다.

**** 2016-01-25 한겨레신문, 분노하라, 참여하라…‘포데모스’ 정치판 흔들다.

기계의 고장이든 사람의 병(病)이든 제대로 알아야 고칠 수 있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매우 유감스럽지만, 한국 사회는 나뉘어 있고 그것도 좌우가 아니라 상하로 나뉘어 있다. 지배자에게만 유리하고, 현실을 왜곡하고,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좌우분리 개념을 더는 쓰지 말자. 그리고 한국 사회는 위와 아래가 뒤집어진 상하분리 사회라는 개념을 장착하는 것에서부터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하자.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