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가 끼친 큰 폐단은 시청자들에게 당쟁(黨爭)에 대한 오해를 유발한 점일 것이다. 역사극에 등장하는 우리 선조들의 정치하는 모습이란 음모를 꾸미고, 복수하고, 귀양을 가거나 사약을 받고 피를 토하며 죽는 등 역사에 대한 긍지보다는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한몫하고 있다. 그러나 당쟁을 바라보는 이러한 시각은 일제시대 식민사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은 한국을 병합한 후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한국인에게 자치 능력과 자질이 없다는 논리를 전개해야 했는데 그 가장 적절한 논거를 당쟁에서 찾으려 했다. [중략]

당쟁이란 조선에 존재했던 정당의 중세적인 형태였을 뿐이다. 다시 말해 당쟁이란 조정에서 벌어진 정치적 토론 과정이었다. 그러한 토론을 가리켜 우리 선조들은 당의(黨議)라고 불렀다. 당쟁이라는 용어 자체도 일본 학자들이 당의를 악의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지은 명칭이지, 우리의 용어가 아니다.』 - [신복룡 교수의 한국사 새로 보기 8 : 당쟁과 식민지사학]에서 발췌 인용함.

당쟁은 조선시대 지배계급인 양반들의 정치노선 투쟁이다. 그리고 당쟁이 격렬해져 무고하게 인명을 살상하는 참극이 벌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신복룡 교수는 ‘조선이 사색당쟁 또는 당파싸움으로 망했다는 인식은 옳지 않다.’라고 한다. 그의 견해에 크게 공감한다.

정치노선이 다른 여러 집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시대를 넘어 지금도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정당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정당 내 계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특히 노동진영, 진보진영에는 내부 정파에 대한 평가가 더욱 냉정하다.

두 번에 걸친 진보정당 분당의 원인이 오로지 내부 정파갈등에 있는 것으로 몰아붙이는가 하면 최근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시도가 무산된 모든 책임이 정파에 있는 것으로 여론몰이하고 있다.

▲ 2020년 2월 17일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 [사진 : 노동과 세계]
▲ 2020년 2월 17일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 [사진 : 노동과 세계]

정파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현장의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바꾸려는 노동운동가들은 대체로 확고한 정치노선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활동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활동방향도 없이, 더구나 혼자서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노동자의 권익을 지킬 수 있을까? 그런데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노동운동가들에 대해서 ‘낙인찍기’ ‘거리두기’, 현장활동가 조직에 대해서 ‘딴짓하는 사람들’ ‘주도권 싸움을 일삼는 사람들’ ‘현장의 분열을 야기하는 사람들’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실태를 놓고 현장활동가들이 심각하게 반성하고 혁신의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현장의 노동자들도 현장활동가들을 ‘나와는 다른 어떤 특별한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으면 한다.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면 특별한 기대를 하고 특별한 수준을 요구하고 특별한 잣대로 평가하게 된다. 특별한 노동자가 현장활동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그냥 한솥밥을 먹는 직장 동료로 생각하고 그들의 활동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좋겠다.

민주노총 직선 3기 임원선거가 준비 중이다. 100만 민주노총 조합원의 직접투표로 직선 3기 위원장을 뽑는다. 10월 28일까지 후보자 등록을 마치고, 11월 27일까지 한 달 동안 선거운동을 한다. 그리고 11월 28일부터 12월 4일간 다양한 방식으로 전 조합원 투표를 진행한다. 

선거는 축제다. 100만이 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승리의 기대와 염원을 모아 자신의 대표이며 지휘자를 선출한다. 그런데 이 축제에 찬물을 끼얹는 자들이 있다. 

“위원장 선거 앞둔 민노총…온건파냐, 강경파냐”, “위원장 선거 앞둔 민주노총 대화냐 투쟁이냐 논쟁 격화”

민주노총 직선 3기 선거를 시작하기도 전에 나대는 보수언론의 기사 제목들이다. 짐작했던 대로 민주노총 선거를 계파싸움, 정파싸움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들의 프레임에 걸려들면 민주노총 직선 3기 선거는 누가 당선되더라도 ‘100만 조합원의 축제’가 아닌 민주노총 내부 정파의 축제로 전락하고 만다. 보수언론이 민주노총의 선거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이유다.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한국의 보수언론은 민주노총의 정파갈등이 해결되거나 않거나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냥 민주노총이 싫은 것이다. 민주노총 내 논쟁이 격화하면 정파갈등이라고 부추기면 되고 논란 없이 단결 투쟁하면 ‘다양성이 없다.’ ‘획일적이다’라고 비난하면 된다.

한국에서 ‘정파’라는 단어는 굉장히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정파란 무엇인가? 정파는 “정치에서 이해관계에 따라 따로따로 모인 무리”, 파벌은 “개별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따로 갈라진 사람의 집단”이라고 한다. [네이버 국어사전 인용] 사전에서도 ‘정파’와 ‘파벌’을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규정하고 있다. 저급한 수준의 개념 규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당이든 사회단체든 노동조합이든 내부에 다른 의견을 가진 집단이 활동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억지로 일치시킬 수 없다. 명절에 모처럼 모인 가족들도 의견이 맞지 않아서 좋은 날 싸우는 경우가 많은데 정당, 단체, 노동조합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않겠나?

사람들은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감정과 정서가 통하는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서로 친구가 되기도 하고 동호회 회원이 되기도 한다. 가치관이 비슷하면 함께 단체의 회원이나 정당의 당원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만나서 집단이 되는 원리는 이렇듯 단순하다.

노동현장의 활동가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의 개선만이 아니라 궁극에는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다. 혼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의 정치노선을 가진 활동가들이 소위 정파라는 조직을 요구하고 만들게 된다. 정파란 정치노선의 공통성에 따라 모인 집단이다. 달리 말하면 동지들의 집단이다.

현장의 많은 노동자는 현장 내 정파의 단결을 요구한다. 특히 선거시기에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야 해서 더욱 곤란을 느끼며 그 요구는 더 커진다. 현장노동자들이 활동가들의 단결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단결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다는 투쟁의 진리, 삶의 진리가 녹아있다. 

단결은 단결하자고 외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어느 일방의 양보나 배려로 되는 것도 아니다. 감정과 정서의 공감대가 높아지고 정치노선과 정책에 대한 일치성이 높아진다면 단결은 저절로 이루어지며 막을 수도 없다. 만인이 공감할 수 있는 노선과 정책, 정치적 품이 있다면 단결을 이룰 것이다. 

어느 정당에도 가입하지 않고, 지지층도 없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지지하는 조직과 집단이 없는 개인이 100만 민주노총의 지역본부장, 위원장으로 선출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민주노총 직선 3기 선거에도 소위 정파의 후보가 출마하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민주노총 직선 3기 후보들께 바란다. 투쟁을 향한 열정과 조합원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결심을 믿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소위 정파라는 내외의 비난에 한치도 주눅들지 말고 자신과 동지들의 주장을 분명히 밝히시라. 단결을 위한다며 자신의 주장을 양보하지 마시라. 만인이 공감할 수 있는 노선과 정책, 공약을 제시하시라. 그래야 100만 민주노총 조합원이 수준 높은 단결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후보들이여 당당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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