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5)

1.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만4000표 뒤진 조지아 주가 논란 끝에 재검표를 결정했다.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등 공화당과 행정부 수장들이 트럼프의 불복에 지지를 선언한 데 따른 영향으로 보인다.

2.

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격차가 0.5%P 미만이면 재검표를 요구할 수 있다. 재검표 결정에 따라 조지아 주 투표자 약 500만 표는 일일이 수개표로 작업한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결과를 뒤집는다는 보장은 없다. 설사 뒤집는다고 해도 당선에 필요한 선거인단 270명에는 못 미친다. 다만 재검표가 진행되는 10여 일 동안 선거부정 여론을 확산, 가짜 우편투표와 불법 선거인명부 등 제기한 소송전을 유리하게 끌고 갈 계산으로 보인다.

3.

유권자 2억3천만 명인 미국 대선에서 조지아의 1만4000표는 사실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미미한 숫자다. 그러나 각 주에서 단 한 표라도 많이 받으면 선거인단을 싹쓸이하는 희한한 선거제도를 가진 미국에서, 재검표 사태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혼란이다.

4.

투표가 끝난 지 벌써 10일이 지나고 있지만 미국 대선은 재검표와 소송전으로 당선인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경합이 초접전으로 이루어진 때문이거나, 패한 쪽이 현역 대통령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 대선이 재앙에 가까운 혼돈 상태에 빠진 이유는 비합리적 선거 제도 때문이다.

5.

미국 대선의 ‘싹쓸이 선거’는 전체 유권자의 의사가 왜곡될 수 있다. 득표는 많은데 선거인단 수가 적어서 낙선하는 경우다.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3백만 표를 더 얻었지만 선거인단은 트럼프에 77명 차로 떨어졌다. 게다가 인구 4천만의 캘리포니아 주와 58만에 불과한 와이오밍 주가 똑같이 상원의원 2명을 뽑는다. 우리로 치면 서울시와 경상북도 칠곡군이 국회의원을 각 1명씩 뽑는 격이다. 미국의 상원 선거는 ‘1인 1표’라는 선거제도의 기본 원칙을 유린할 뿐만 아니라 유권자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해야하는 민주주의 선거제도의 사명을 방기했다.

6.

미국이 ‘싹쓸이 선거’를 고집 하는 이유는 주 연방이 더 우선하기 때문이다. 민족 개념이 없는 미국은 비례민주주의 원칙보다 주의 연대와 대표성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소수 국민의 의사를 묵살해서라도 주의 단일성을 보장한다. 어쩌면 미국 대통령은 미국 국민의 대통령이라기보다 미합중국의 대표자다. 이번에 재검표로 이어진 '싹쓸이 선거'의 제도적 취약점은 연방주의자와 주 분리주의자의 오랜 대립을 다시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7.

미국의 선거제도는 대통령 후보는 물론이고 국회 상·하원 모두 공화·민주 양당 이외에는 후보조차 낼 수 없다. 미국에는 양당 외에도 헌법당, 미국 녹색당, 자유당, 미국 공산당, 정의당 등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들 정당은 주 의회에만 존재할 뿐 연방국회에는 진출하지 못한다. 피선거권을 원천봉쇄하는 미국 선거법이야말로 가장 극악한 반민주 악법이다. 이런 불합리한 선거제도를 고치지 않는 이유는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안정적인 원내 과반의석을 만들기 위해서다.

8.

미국 선거제도는 대선에서 당선자 발표를 중앙선관위가 하지 않고 패자의 자유의사에 맡김으로써 최종판단에 제3세력이 개입할 여지를 남겨뒀다. 이번 대선의 경우 트럼프가 패배를 인정하지 않자, 조 바이든은 선거인단 270석을 확보하고도 당선인 신분은 커녕 인수위 활동에 필요한 예산조차 못받았다. 이제 미국 대통령은 미국 유권자의 선택에서 벗어나 연방대법원 로비스트의 손에 넘어갔다. 법치주의를 자랑하던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실체를 우리는 이번 대선에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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