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이론과 쟁점④] 정당 내부 민주주의를 둘러싼 쟁점

지난 연재까지 민주주의를 둘러싼 여러 이론과 쟁점을 살펴봤다. 지금부터 다룰 내용은 ‘정당 내부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다. 한국 진보정치의 역사가 단결과 분열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면, 새로운 도약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할 질문은 “정당 내부에서 어떻게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인가?”로 모아진다.

그러나 이 역시 만만한 주제는 아니다. 모두가 정당 내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에 이견이 없음에도 아직 뚜렷한 해법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이론만큼이나 험난한 실천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정당 내부 민주주의를 둘러싼 이론적 쟁점을 살펴보고, 우리가 이 주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정당 내부 민주주의는 유효한 과제인가?

정당이 제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당원을 중심으로 한 내부 민주주의가 절실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서운할 수도 있지만, 정당 연구에서 내부 민주주의는 그 취지 자체가 의문시된 지 오래다. ‘정당 민주주의가 꼭 필요한 것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부터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가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라는 의문까지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정당의 세계적인 추세는 ‘당원 없는 정당’에 가깝게 변화하고 있다. 벤젠과 포군트케라는 정당 연구자들은 2014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유럽에서 정당의 당원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정당이 특정 사회집단을 대표하기보다 다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설득, 특히 선거 국면에서의 지지 호소에만 집중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그 근거의 하나로 1980년대 이후 전체 유권자 대비 당원수의 변화를 나타낸 통계를 제시했다. 이 통계에 따르면 스페인과 그리스 등 비교적 민주화가 늦게 도래한 곳을 제외하면 당원수의 감소는 분명하게 확인된다. 물론 일시적으로 신생정당이나 새로운 정치변화가 시작된 곳에서는 (단기적으로)당원수가 증가하기도 하지만,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부정적이다.

▲출처 : Biezen, Ingrid van. and Poguntke, Thomas., 2014, “The decline of membership-based politics”, Party Politics, Vol.20(2) 205-216.

위안이 될지는 몰라도 벤젠과 포군트케가 조사한 유럽정당의 유권자 대비 당원비율은 대략 4.7%정도인데 반해 한국은 오히려 유권자 대비 당원수가 증가해왔다. 비슷한 시기의 통계를 보면 2013년 12월31일 현재 19세 이상 국민 4118만6810명 가운데 전체 당원수는 519만8389명으로 12.6%에 이른다. 오, 정말? 그렇다면 한국에는 당원 중심의 정당 민주주의를 시도해볼만한 희망이 있는가?

애석하게도 이런 결과는 후보 경선이나 야권연대 등 유권자를 포함한 공천 경쟁이 활성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상당한 비율은 허수다. 실제로 2012년 대선이 끝난 뒤 각 정당의 당비 납부율은 최대 의석 보유 정당인 당시 새누리당이 7.3%, 민주당은 15.4%에 지나지 않았다. 경선을 위해 동원된 종이당원, 박스당원이 당원수를 늘려놨다는 말이다.

진보정당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창당과 함께 진성당원제도를 도입했던 민주노동당의 당비 납부율은 초기에는 거의 100%에 근접했지만 점차 하락해 2011년에는 50% 밑으로 떨어졌다. 또한 2011년 창당한 통합진보당은 통합 당시 승계된 당원수가 4만2294명이었지만 12월 6500명, 1월 7000명, 2월 1만9000명이 입당했다. 이는 2012년 총선을 위한 당내 경선을 앞두고 단 한차례의 당비납부만으로도 경선 투표권을 부여함으로써 이른바 ‘경선용 당원’이 폭증한 결과다.

이런 현상은 대중정당 모델이 점차 힘을 잃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선거권을 보유하고 있던 중산층 이상의 유권자에게 의존하던 ‘간부정당’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듀베르제가 제안한 ‘대중정당’ 모델은 하층계급 중심의 운동적 성격을 띠면서 이념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지회활동에 기초하고 강력한 위계조직을 갖추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통합진보당은 총선을 앞두고 1개월 당비납부 당원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경선용 당원의 증가는 이후 일어난 경선 부정의혹을 둘러싼 치열한 내부갈등 과정에 내부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은, 혹은 못한 이유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대중정당 모델에서 당의 운영은 당원의 헌신에 기초한다. 당의 지도력 역시 원내 의원보다 원외 지도부에게 복속되고 당의 자원은 주로 당비와 기부, 연계조직과 정당매체에 의해 확보되며 선거운동은 노동집약적인 대중동원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렇다. 몇 가지 논란은 있지만 초기 민주노동당은 대중정당 모델을 추구했다. 그리고 현존하는 많은 진보정당들도 여전히 대중정당 모델을 고수 중이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의 진보정당도 몇 차례의 파괴적 분열 속에 진성당원수는 눈에 띠게 감소했고 그나마 꼬박꼬박 당비를 내고 있는 당원들이 모두 당 생활에 헌신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해적당이나 오성운동, 포데모스 등 비교적 짧은 기간에 유럽을 휩쓸고 있는 신생 정당들이 보여주듯이 당의 활동은 배타적 권리를 보유한 당원보다 ‘유권자’, 또는 ‘잠재적 지지자’로 호명된 당 밖의 집단과 개인들에게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경계가 모호한 ‘지지자’들이 과거 당원이 했던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당원 없는 정당의 시대

▲2014년 1월 창당한 스페인 포데모스는 완전경선제를 채택해 당의 집행부를 선출하고 정당의 주요 결정에 대해서도 비당원의 투표 참여를 보장했다. 이런 변화가 당원 중심의 정당 내부 민주주의의 종말을 알리는 것일까? 그러나 비당원에게도 권한을 부여하는 결정을 당원들이 내리는 것은 내부 민주주의의 가치와 전혀 대립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변화는 최근의 현상이 아니다. 1960년대 유럽 정당의 변화를 관찰한 히르키하이머는 이제 정당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을 대변하려는 ‘포괄 정당(catch-all party)’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몇 가지 현상들을 제시한 바 있다.

우선 당의 이데올로기가 약화하고 최고 지도그룹이 강화된다. 당원의 역할은 줄어들고 특정 사회계급보다 더 범위가 넓은 신규 유권자들을 선호한다. 재정과 선거활동을 위해 다양한 이익집단에 대한 접근권이 확대된다. 어떤가? 진보정당일지라도 이런 변화의 압력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더 오래 전에 조직 내부의 민주주의를 연구한 미헬스는 민주주의를 가장 소중히 여긴다는 혁명적 노동조합과 좌파정당에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조직 자체가 점차 과두제로 변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 유명한 ‘과두제의 철칙’이다. 이런 변화의 추세가 얼마나 확고했으면 그냥 법칙도 아니고 ‘철의 법칙’이라고 했을까?

이런 변화의 원인이 단지 당 엘리트들의 잘못된 선택이나 조직 자체의 생리 때문만은 아니다. 기술혁신과 경제의 현대화는 전통적인 계급균열을 모호하게 만들었고, 노동자들의 소득이 증가할수록 계급 정체성도 약화되었다. 또한 국가보조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당원의 필요성도 줄기 시작했다.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는 ‘현실정치’라는 명분으로 당원의 열정보다 정치컨설턴트, 정책전문가, 홍보전문가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졌다.

이처럼 당원 없는 정당, 당원의 역할이 주변화되는 내·외적 압력은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현실이 이럴 진데 정말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는 필요한 것일까? 아니,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제 정당 민주주의는 정당 내부에서가 아니라 수평적 차원, 즉 전체 정당체제를 민주화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유명한 정치학자 사리토리가 말했듯이 “큰 규모의 민주주의는 작은 민주주의의 합이 아니”듯이 민주주의의 본질이 시민들이 정당에 직접 참여하는 것에서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정당 중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내부 민주주의를 둘러싼 쟁점과 딜레마 

이런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 우선 분명한 것은 작은(일상생활) 민주주의를 이룬다고 큰 규모(국가 차원)의 민주주의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큰 규모의 민주주의 역시 작은 민주주의로 분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만일 큰 규모의 민주주의가 우리 일상의 민주적 삶(작은 민주주의)을 가져올 수 없다면 그것이 민주주의일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차원은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서로 대립적인 것도 아니다. 정당 내부 민주주의에는 ‘하나의 정당 내부에서 어떻게 일상의 민주주의를 구현할 것이냐’와 함께 ‘이렇게 구현된 민주주의가 어떻게 더 큰 규모의 민주주의에 기여하도록 만드느냐’는 2가지 과제를 내포하고 있다. 아마도 하나의 정당 내부 민주주의를 통해 내려진 결정의 질은 더 큰 규모의 민주주의의 결과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다.

또한 엘리트가 아니라 일반당원이 정당의 주요한 사항에 대해 결정권을 갖는다는 것이 반드시 당원만의 배타적 권리를 변함없이 고수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이유와 필요에 따라 정당의 당원은 비당원이나 지지자에게 당의 주요 사항을 결정한 권한을 공유하는 방안을 선택할 수 있다.

결국 정당 내부 민주주의의 초점은 어떤 결정의 대상과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의사에 따라 그런 선택을 결정하느냐의 여부로 모아진다.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통해 내려진 결정의 질을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체계가 아니듯, 이렇게 결정된 정당의 결정 또한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잘 설계된 정당 내부 민주주의 제도와 절차를 구비한 정당은 전체 당원이 정당의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진다.

이런 저런 내·외적 조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가 정당 내부 민주주의의 중요성에 합의하더라도 난점과 딜레마는 도처에 깔려 있다. 민주주의의 개념이 그렇듯이 어떤 것이 더 민주적이냐는 합의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당원에게 대표자를 선출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과 젠더와 지역, 사회적 그룹의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해 할당된 대의원 수를 미리 규정하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민주적이라고 말할 근거는 빈약하다.

▲어느 정당보다 당원 중심의 내부 민주주의 제도를 자랑했던 민주노동당. 그 역사와 경험은 왜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작동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진지하게 성찰해야할 지점이다.

내부 민주주의라는 내적 가치의 구현이, 정당이 가지는 외적 목표의 달성을 저해할 가능성도 분명 존재한다. 아주 잘 설계된 민주적 방식에 따라 결정된 결론일수록 그 결정을 수정하거나 번복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만일 어떤 결정이 하나의 집단 내에서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차원과 수준, 집단과의 관계와 얽혀 있다면 민주적 결정의 범위를 어떻게 조정해야하는지도 난제다.

정당 내부 민주주의 복잡성은 자금의 출처에서도 나타난다. 당내 민주주의의 기본은 당의 재정에 기여하는 사람에게 일정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고보조금은 어떤가? 이것은 결국 세금이다. 더구나 당원 이외의 지지자에게 후원금도 받아야 한다. 대기업에 얼씬하지 않고 소액기부를 호소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들의 후원금과 세금에 어떤 권한을 부여할 것인가?

정당 내부 민주주의, 정답은 없지만 관점은 있다

위에서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서 쉽게 결론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하나의 단일한 제도와 형식을 갖춘 것도 아니고 단일한 제도와 형식을 통하더라도 동일한 결론이 도출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이 정당의 관료나 엘리트가 아니라 당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내부 민주주의가 가장 필요하며 적절한가? 정답은 없다. 다만 이제까지 진보정치의 경험을 되돌아보았을 때 내부 민주주의를 보는 새로운 관점은 필요할 것 같다. 이제까지는 내부 민주주의를 주로 조직된 정파 간의 관계 문제로만 협소하게 규정해온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 연재에서는 내부 민주주의의 다양한 형식을 관통하는 기본 원칙과 관점에 대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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