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정치권, 자주적인 한반도 전략 수립에 발 벗고 나서야

▲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 [사진 :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의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실험을 중단한다면 미군 전략자산과 한미 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 사드배치는 환경영향 평가 때문에 1년 정도 늦어질 수 있다’고 한 발언을 놓고 국내 일부 언론과 보수정당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가 한 발언의 일부는 문 대통령이 대선 이전부터 해왔던 것이고 북한과 대화를 위한 조건 제시는 한미와 북한이 서로 한발씩 양보하자는 취지로 이미 언론 등에 널리 보도된 내용이다.

문 특보의 발언은 청와대나 미국과 사전 협의 없이 한 것으로 한미 관계를 크게 해칠 수 있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문제로 크게 화를 냈다면서 당장 특보를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그의 발언은 미국의 한반도 전략과 다른 것으로 미국을 불쾌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짙게 깔려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남한을 위협하는 지극히 위험한 상황에서 미국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호떡집에 불이 난 듯 야단법석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 한반도 문제는 한반도 당사자의 문제이니 미국과 다른 소리를 하면 안 되는 것인가. 미국의 한반도 전략이 지고지순하거나 고정불변한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북 전략이 수정되었다. 과거 오바마 정권이 고수하던 ‘전략적 인내’ 대신 ‘최대한 압박과 개입’으로 바꾼 것이다. 

자연스레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런 변화는 미국만 할 수 있는 것인가? 왜 한국은 안 되는 것인가? 국력이 약하니까 항상 미국 눈치나 보고 따라 해야 된다는 것인가?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지니고 미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무기를 사주는 입장이 된 상태라면 할 말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미국에게 ‘NO’라고 말하는 것이 한미동맹관계의 생산성을 높이고 나아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국내 일부 언론이나 수구보수세력의 특징은 미국의 한반도 전략이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언론 대부분은 미국의 확성기 역할만 하는 것에 그친다. 예를 들면 미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선제공격을 할 가능성을 시사한 경우가 그렇다. 미국이 한다면 북한은 물론 남한도 완전 쑥대밭이 될 참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미국의 소리만을 액면 그대로 전달하는데 열심일 뿐이다. 

한반도가 생지옥이 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생각조차 멈춘다. 그러다가 최근 미국 정부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남북 전쟁으로 번져 엄청난 재앙이 불가피하므로 이런 방안은 제외된다”고 밝히자 한반도 전쟁설이 진정됐다. 지구촌이 볼 때 한국인은 죽고 사는 것에 초연한 사람들로 여기지 않을까 두려울 정도로 한반도 전쟁 참화 가능성에 초연한 태도다. 

국내 일부 언론과 정치집단이 너무 미국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미국은 6.25전쟁에서 남한을 공산당으로부터 구해준 은인이라서 그런가? 미국이 오늘날 말로만 북한 침공을 말할 뿐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서 침묵하는 것인가? 대북 심리전 차원에서 북한을 겁박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결과인가? 

미국의 대외 정책 가운데 불법적인 성격, 오판 등으로 평가되는 것들이 즐비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오늘날에도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라 해서 무결점이라 여기는 것은 노예적 시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오늘날 북한 핵과 미사일이 문제라면,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 미국 아닌가? 6.25한국 전쟁 이후 미국은 한국의 군사 주권을 대리 행사하면서 한반도 정책을 주도해왔다는 점에서 미국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이제 미국에 대해 ‘NO’라고 말할 것은 그렇게 해야 한다. 

외교에서 영원한 적, 동지는 없다고 한다. 필리핀의 최근 경우도 그렇다. 필리핀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국익을 취하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도 이명박근혜 정권 동안 미국을 철저히 추수하거나 어떤 면에서는 앞장서서 대북 압박, 공세를 펴왔고 그 결과 전쟁 위협이 일상화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과거의 그런 과오를 거울삼아 새로운 대북 정책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미국도 경청해야 한다. 

미국이 불쾌하게 여기는 것 같다느니, 미국과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식의 순전히 미국의 시각에서 현상을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새 정부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새 대북 정책의 방향을 제시했다면 냉정히 살피고 취할 것에는 박수를 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과 같이 펄펄 뛰면서 거품을 무는 것은 어떤 면에서 외세를 빌어 새 정부 흔들기로 비쳐지기도 한다. 새 정부는 문 특보와 선 긋기를 하는데 그치지 말고 필요하면 미국을 설득하고 납득하도록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동북아 정세는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이 사드로 남한에 보복하고 동시에 북한의 미사일, 핵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서 힘겨루기를 하는 양상이다. 북한은 핵보유국이라는 것을 헌법에 명기하고 평화협정과 비핵화를 분리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과거와 같은 발상으로 한반도 문제 등에 접근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문 특보가 학자의 입장에서 한반도 정책 방안을 밝힌 것은 새 정부 출범과 때를 같이 해 당연히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하는 제안이다. 미국에게 생각을 더 하고 행동하라는 취지로 보이기도 한다. 

일부 국내 언론과 정치권은 그 국적이 어디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항상 정답이라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21세기의 한반도가 갖는 지정학적 의미와 생존 논리 등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트럼프가 탄핵 당할 가능성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정착시킬 방안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 향후 20년 정도면 중국이 G-1이 된다는 데 그 때를 대비해야 한다. 미국에게 생사여탈권을 위임하는 식의 냉전논리는 빨리 버릴수록 모두에게 유익하다. 주변의 모든 요소를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길은 자주뿐이다. 국내 언론과 정치권은 자주적인 한반도 전략 수립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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