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북정책을 당연시하는 논리는 보안법 영향 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이 “북핵 동결 시 주한미군 전략무기와 한미 연합군사훈련 규모를 축소하자. 사드 추가 배치는 환경영향 평가 이후 하자”고 말한 것을 놓고 야당은 문 특보의 사퇴를 촉구했다. 청와대도 문 특보에게 '한미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경고하면서 선을 그었다.

문 특보는 그러나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지 일방적인 요구만으로는 진전을 이루기 어렵다. 내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며 “자신은 정부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 특보는 정부에서 봉급을 받지 않는 자리”라고 밝혔다.

뭇매를 맞고 있는 문 특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일까? 이는 그가 한 말을 놓고 따져보면 분명해질 것이다. 우선 그가 “북핵 동결 시 주한미군 전략무기와 한미 연합군사훈련 규모를 축소하자”고 말한 것부터 살펴보자. 미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위협이라면서 최첨단 무기를 동원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벌이면서 불가피한 방어훈련이라고 자평한다. 그 말이 과연 설득력이 있는 것인가?

각각의 연간 국방예산과 비축 핵무기를 비교해 보면 자명해진다. 전문가들의 추정치를 보면 미국의 국방예산은 북한의 600배 전후라 하고 미국의 핵무기는 7천개다. 북한은 아시아 최빈국에 속하고 핵무기는 최고 수십 발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 핵은 없지만 국방예산은 북한에 비해 30배가 훌쩍 넘는다.

이런 북한을 상대로 미국은 항공모함 등을 포함한 온갖 최첨단 무기를 동원해 대북 군사훈련을 벌이는 것이 냉전시대 이래 당연시 되고 있다. 집단 세뇌현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분위기 속에서 벌어지는 미국의 대북 군사훈련은 경제성 등에 비춰 격에 맞지 않은 측면이 있다. 합리적인 것을 가장 우선시 하는 미국이 과도한 군사력을 한반도에 출동시키는 것은 군사대국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라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 것이다.

문 특보가 이런 점을 고려해서 미국도 격에 맞는 한반도 군사전략을 수행하라고 한 말이 무엇이 틀린 것인가? 북한 최대의 후원국 중국은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하면 원유와 식량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공언하는 지경이다. 북은 사면초가의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새 정부가 새로운 대북 정책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해 보인다.

사드의 경우도 그렇다. 미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에 규정된 권리(right)를 수용하는 차원에서 사드가 들어온 것이니 한국은 이 4조의 부속 조항 성격인 SOFA에 포함된 환경영향 평가를 하는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환경영향 평가도 미국이 4조의 권리를 행사하도록 한국이 양허(grant)하는 차원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 문 특보의 발언이 잘못된 것은 없어 보인다.

특히 사드를 괌 등의 경우처럼 바닷가에 배치할 경우 주민 반발 등이 적다는 점에서 한국 서해안에 배치하지 않은 것은 중국을 직접 자극하지 않겠다는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은 이것도 참지 못하고 한국에 보복을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남한을 상대로 벌어지고 있는 꼴이다.

이런 점을 한국이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를 개폐하는 것이겠으나 미국의 비위를 상하게 할 것이 두려운 정치권은 감히 입에 올리지도 못하고 있다. 사드가 배치된 상주 주민 등이 새 정부가 사드 배치 결정을 기정사실화하는 태도를 보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의 4조에 대해서는 정치권이나 시민사회단체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미국으로써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을 것이다.

문 특보의 발언 논란에 대해 야당은 한미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한미 이견을 노출 시켰고 한미 동맹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북한과 중국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자의적 핵개발 논리와 궤를 같이한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은 야권과 엇비슷한 시각에서 문 특보의 발언을 문제 삼는 보도를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다. 문 특보의 발언 내용을 상세히 살피고 깊이 분석하는 일은 생략한 채 선동적인 정파적 언어로 비판을 하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번 소동이 어떤 식으로 귀결될지 알 수 없지만 현재까지 진행된 상황을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불통의 사회인가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한 원인, 해법 등에 대해서는 유엔과 관련 국가, 전문가들이 다양하게 밝히고 제시한 바 있다. 차고 넘친다. 그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이냐 하는 것은 주요 계기마다 관련국 등의 협의에 의해 결정되어 왔다. 이는 문재인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정파적 이익을 위해 국가적, 민족적 이익을 저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조선 말기에 참혹한 경험을 했고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21세기에 이런 비극을 피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선 남북문제, 한반도 해법에서 국내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국가보안법에 의한 소통의 부재다.

북한은 국보법에 의해 반드시 궤멸해야 할 적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공개적 언급은 부정적, 비판적 일색이다. 북한이 무어라고 하든 남한에서는 국보법을 의식해 일상화된 검열을 통과하는 수위와 내용만을 공개하는 것이다. 국보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은 미국의 대북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추종하는 것이다. 미국이 무슨 짓을 하든 박수치고 수용하면 안전하다. 미국이 한반도 전면전쟁을 전제로 한 대북 정책을 내놓아 자칫 민족 공멸의 위기에 처해도 반론을 제기치 않는다. 미국이 겉으로는 강력한 압박과 제재를 하면서 뒤로는 북한과 1년 넘게 대화를 해왔다 해도 국내에서 문제 삼는 일은 없다.

미국은 항상 정답이고 오류를 범한 일이 없다는 것이고 국내에서 미국의 정책에 문제를 삼는 것은 금기사항처럼 되어 있다. 반미는 친북이라는 등식이 통용되는 것도 국보법의 ‘찬양, 고무, 동조’라는 단순 논리 때문이다. 국내 일부 언론과 보수의 판박이 태도다. 이들은 미국보다 더 미국적이다. 남북이 언젠가는 하나가 되어야 하는 공동운명체라거나 인도적 지원 당위성은 강력한 반대를 각오해야 한다.

문 특보의 발언이 국내에서 크게 문제시 되고 청와대조차 손사래를 치는 것을 미국은 어떻게 볼까? 참 창피한 일이다. 한국 내 남남 갈등은 결국 국보법과 한미동맹이라는 틀 속에서 조정되는 일이 많다. 미국이 일부러 나서지 않아도 사태는 미국이 원하는 쪽으로 굴러가는 갔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촛불혁명에 의한 새 정부의 등장 속에서도 외세와 종속 관계에 대한 후진성은 여전하다. 그러나 정치권이 구태의연하기를 고집한다 해도 시민사회가 계속 민주화를 향해 진화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런 점을 깊이 살핀 결론이 문 특보 논란에서도 나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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