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017년 촛불,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분노의 표출

▲ 사진 :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사회 변화는 힘의 관계 속에 이뤄진다. 변화를 원하고 추진하는 힘과 변화에 저항하는 힘의 겨루기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변화를 원하는 힘이 승리하면 변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이런 평범한 논리에 따라 진행되었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2008년 시작되어 9년간 진화한 촛불집회에 남녀노소 등 각계각층이 대거 참여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적 실망감을 나타낸다. 즉 기존 정치권과 그 시스템에 대한 절망감,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수십 년 간 실시된 대의민주주의를 통해 누적된 총체적 모순에 대한 시민사회의 시정 요구가 촛불로 폭발한 것이다.

지난 십여 년 동안 대부분 선거의 투표율이 저조했던 것도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실망과 외면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기존 정치권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 발전시키는데 소홀했다. 선량들은 당리당략적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주인인 국민의 권익은 외면했다.

촛불이 거세게 타오르던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청와대와 여권에서 쏟아낸 촛불에 대한 괴담이나 친북, 반미로 낙인찍는 사례가 이명박 정권 이래 지속된 것은 구시대적 사고방식으로 타락한 대의민주주의가 보이는 최악의 부정적 사례다.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반감을 더 증폭시키는 것은 시민사회적 요구를 매도하고 폄훼하는 수구보수세력의 폭력성이다. 그들은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촛불시위 당시 촛불 막기 집회를 벌였고, 박근혜 탄핵 촉구 촛불집회에 대해 태극기 부대가 등장해 쿠데타를 선동하거나 폭력적인 언행으로 참가 시민들을 위협했다.

박근혜를 파면시킨 촛불집회와 흡사한 시민운동은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대한 규탄으로 본격화됐다. 이명박 정권은 시민들이 대규모로 참가하는 촛불집회가 지속되자 대규모 전경 투입으로 강제 진압하면서 ‘명박산성’으로 불린 전경 바리케이드로 시위대를 강제 분산시켰다. 당시 수구언론은 경찰의 반민주적 시위진압은 보도치 않고 시위대의 일부 일탈적 모습을 부각시켜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촛불의 배후를 반미, 친북으로 몰아가면서 경찰의 공권력 남용을 부추기는 청와대쪽과 한통속이 된 수구언론은 헌법적 권리인 집회와 의사표현의 자유를 외면했다.

예를 들면 2008년 8월15일 열린 100회 서울 광화문 부근 촛불집회의 경우 경찰은 전경버스 수백 대를 동원해 차벽을 쌓아 서울 시청광장이나 보신각, 탑골공원 등의 주변을 물샐틈없이 원천 봉쇄했다. 시청광장으로 통하는 지하도 출입구도 통행을 금지시켰고 경찰 대형버스로 차벽을 쌓아 모든 시민의 도로 왕래, 이동 등을 차단했다. 청계광장에서는 올림픽 중계의 이름으로 또 다른 형태의 봉쇄조치가 이뤄졌다. 수구언론은 모든 서울 시민을 적대시하면서 도로 차단을 통한 통행금지를 자행한 경찰의 실정법 위반 행위 등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미디어오늘 2008년 8월20일).

경찰은 당시 수도 한 복판의 번화가에서 시위대를 향해 물감이 들어있는 색소 물대포를 무차별 난사했다. 경찰이 시위대는 물론 주변 행인, 상가 등을 구분치 않고 물감 세례를 퍼부었다. 물대포가 발사된 뒤 이어지는 강제연행 위주의 진압작전은 영락없는 인간 사냥이었다.

한편 박근혜가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불법 선거개입 속에 당선된 뒤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꼬리를 이었으며 이에 대한 청와대 대책은 ‘정권에 타격을 주는 큰 사건이 발생하면 다른 큰 사건으로 덮는다’는 공작정치 수법이었다. 박근혜는 박정희 찬양을 위해 친일, 유신독재 미화 등 갖가지 역사발전에 역행하는 조치를 취했고 통합진보당 해산에 앞장섰다. 또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지연시키거나 노골적으로 방해했고 그 결과 광화문광장에서 연중 촛불 시위가 그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수구보수언론은 청와대의 나팔수와 같은 어용보도를 양산했다. 심각한 권언유착은 결국 박근혜 정권의 민주주의와 헌법을 후퇴시키는 정치,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같은 사태를 빚어냈다. 언론이 제4부로서 정상적인 언론활동을 했다면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사태는 방지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박근혜가 최순실의 로봇이 되어 국기를 심각하게 문란케 한 것이 들통이 나자 촛불은 횃불처럼 타올랐으며 국회의 탄핵에 이어 헌법재판소가 2017년 3월10일 그를 파면했다. 헌재는 박근혜가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위반 ▲대통령의 권한남용 ▲언론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 의무와 직책 성실수행 의무 위반 ▲뇌물수수를 포함한 형사법 위반 등 탄핵소추 사유 중 일부에서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했음을 인정했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정연순)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력을 대통령과 특정 집단이 사유화하면서 대한민국 헌법의 뿌리인 국민주권주의, 법치주의, 민주주의를 파괴한 행위”라고 비판하면서 “헌재의 탄핵 결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정면으로 위반한 대통령을 재판관 전원 일치의 의견으로 파면한 것으로 너무나 당연하다”고 강조했다(미디어라이솔 2017년 3월10일).

촛불은 박근혜 대통령 파면과 조기 대선을 가능케 했지만, 그 이전 광장에서는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국정 역사교과서 철회, 사드배치 반대, 성과연봉제 도입 등 노동 개악 반대, 의료민영화 반대,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특검 도입,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요구하는 함성이 끊임없이 이어졌던 것이다.

예를 들면 백남기 농민은 2015년 11월14일 ‘1차 민중총궐기’ 시위에서 차벽을 뚫기 위해 다른 집회 참가자들과 함께 버스에 묶인 밧줄을 잡아당기던 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뇌출혈로 쓰러진 뒤 서울대학교병원에서 4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으나,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2016년 9월25일 오후 2시15분 사망했다. 백 농민의 사인을 둘러싸고 경찰이 물대포 발사 수칙을 지키지 않고 과잉 진압했다는 논란에 따른 경찰 가해자 확인과 처벌 문제 등이 제기됐다.

특히 백 농민의 사인이 외인사라는 것이 중론인데도 서울대 백선하 교수 홀로 병사를 고집하고 경찰이 추가 부검을 강행하려 시도하는 과정 등에서 경찰과 검찰, 서울대병원 등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비등했다. 이런 상태에서 발생한 박근혜 게이트를 규탄하는 촛불집회에 대해 서울시장이 물대포에 쓰일 물을 공급치 않겠다고 밝히면서 경찰의 촛불시위에 대한 강경 진압에 제동이 걸렸다. 경찰이 촛불집회의 거리행진이나 시위대의 청와대와 헌법재판소 인근 행진을 불허했지만 법원이 거리행진과 청와대 행진 등을 허용하라고 결정한 것도 촛불집회의 활성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와 집회가 미친 영향도 지대했다.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해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을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2014년 4월16일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급변침을 하며 침몰하기 시작하자 선원들은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을 하다 승객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했다. 배가 침몰한 이후 재난 구조에 대한 정부의 무능력과 무기력이 드러나고 구조된 사람은 단 1명도 없는 것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절망감은 컸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진상규명을 약속했지만 직간접적으로 진상규명을 방해하면서 정부의 책임을 이행치 않았고, 이에 분노한 유가족과 시민사회가 정부에 항의하는 집회와 시위를 이어갔다. 사고 당일 박근혜가 7시간 동안 자신의 행적에 대한 의혹을 제대로 해명치 못하면서 탄핵 과정에서 이 문제가 논란이 되는 등 사회적 분노가 증폭됐다.

박 정권은 세월호 인양 작업도 적극 서두르지 않았다는 의혹과 함께 진상규명을 위해 발족한 특위 활동도 강제 종료시키는 등 상식에 크게 위배되는 행동을 자행했다. 박근혜 탄핵의 가장 큰 원인의 하나는 세월호 참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세월호 인양작업도 정부는 당초 2016년 7월까지 완료하려 했지만, 계속 지체돼 인양작업은 2017년으로 해를 넘기고 박근혜가 수감되면서 실시됐다.

2016~17년 촛불은 4.19혁명, 87년 6월 항쟁 등 시민들이 앞장서 부당한 정치권력에 도전해 독재자를 끌어내리거나 정치체제를 바꾸도록 한 혁명적 사회변동 현상의 하나다. 그러나 촛불로 가능해진 대선 과정은 시민들이 변혁의 주인공이면서도 그 과정에서 배제된 공통점을 지닌 측면이 있다. 대선 이후에도 청산 대상인 세력들이 기존의 사회적 규범에 의해 제반권력을 장악한 채 시민사회가 청산을 요구했던 적폐들이 기득권 세력으로 버티고 있다.

이는 정치, 경제, 사회적 모순 발생과 그 누적에 무한책임을 져야 할 정당 등을 포함한 기존의 정치세력이 시민사회의 변혁 요구를 적극 실천하는 수행자 역할을 하지 않으면서 반민주적인 구조가 여전하다는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이런 모습은 일제가 물러난 후 이승만이 미군정에 의해 권력기구에 포진했던 친일세력을 기반으로 집권한 뒤 친일 청산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수십 년간 엄청난 해악을 끼친 것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정보화, 세계화 등으로 대변되는 21세기 SNS시대에도 과거의 정치적 변동이 반복될 것으로 예단키는 어렵다. 사회변동, 혁명은 시대에 따라 그 형식과 내용을 달리해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촛불집회 시위에 동참했던 시민사회언론단체들은 이명박근혜 정권 기간 동안 누적된 적폐 청산의 리스트를 만들어 대선 후보들을 압박했으며 이런 열기는 새 정부의 개혁과 비정상의 정상화 작업을 감시 비판, 독려하는 강력한 견인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촛불의 힘이 수개월 동안 광장에서 확인되었고 박근혜 파면이라는 큰 성과를 이뤘던 만큼 향후 한국 사회변동을 주도할 최대의 변수가 될 것이 확실하다. 새 정부는 이점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