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연재, 이희종의 ‘진보정치 그다음’

▲ 지난 9일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끝났다. 결과는 안타까운데, 사실 대의원대회 전에 만난 많은 사람이 이런 결과를 예측하였다. 이건 기층과 현장의 노력과는 별개의 문제다. 여러 의견 그룹 간의 이견을 조율할 수 있는 정치는 사라지고, 상층의 불신과 대립이 진보정치의 전진을 가로막고 있는 지 오래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실패를 넘어 새로운 진보대통합 정당을 건설하자는 주장은 노동운동가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주장이다. 지극히 당연한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그들을 설득하지 못할까?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읽다가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가 생각났다. 로버트 치알다니는  사람을 사로잡는 원칙으로 상호성, 일관성, 사회적 증거, 호감, 권위, 희귀성의 6가지를 이야기한다. 영업활동을 목적으로 사람의 심리나 행동 패턴을 연구한 결과지만 대중운동의 측면에서 봐도 몇 가지 생각해 볼 대목이 있다.

설득의 첫 번째 원칙은 상호성의 원칙이다. 호혜를 베푸는 사람에게 호혜를 준다는 상식적인 이야기다. 대의원대회 결과만 놓고 보면 민주노총의 여러 의견 그룹들은 지난 10년의 진보정치에 어떤 성과를 찾았다거나 진보정치를 주도한 사람들에게 호혜를 받았다고 평가하지는 않는 듯하다. 진보정치에 대한 이런 평가는 이미 여러 토론회에서 확인된 바 있다. 언제까지 사과하고 반성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데, 사과와 반성보다 진보정치로 인한 성과나 호혜가 필요한 것 같다.

두 번째는 일관성의 원칙이다. 누구든 한번 결정을 하고 나면 그 결정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잘못된 결정이라 할지라도 결정을 합리화하기 위한 자기 논리를 만들어가기까지 한다. 조직이나 그룹의 결정이라면 더 그렇다.

이 원칙을 알고 있다면 논의의 방식을 달리 할 필요가 있다. 진보대통합을 바라는 진영의 일방적 목소리가 아니라 진보대통합의 긍정성, 당위성을 우려 혹은 반대하는 진영의 입으로 이야기하게 해야 한다. 차근차근 논의를 진척시켜야 하는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이다.

세 번째는 사회적 증거의 원칙이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 또는 ‘많은 사람이 실제 그렇게 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에서도 대대적인 설문조사를 하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여론의 대세를 형성되지는 못한 것 같다.

네 번째는 호감의 원칙이다. 설득하고 싶다면 우선 친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연대투쟁을 통해 실천적으로 쌓은 신뢰의 힘을 알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만들어지고 확대되던 시기는 IMF 반대 투쟁과 반미투쟁, 대중적 통일운동이 지속해서 일어나던 시기였다. 오늘 우리도 반박근혜 투쟁과 촛불국민대항쟁으로 호감을 쌓아가고 있으나 지난 90년대의 투쟁에 비할 수 없는 시간이다.

다섯 번째는 권위의 원칙이다. 사람들은 교수나 의사 등 전문가의 이야기를 확인 없이 복종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 진보진영에 그런 권위 있는 지도자나 의견 그룹이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여섯 번째는 희귀성이다. 일례로 한정판매나 시간제한 등이 가져다주는 효과인데, 이번 논의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된 측면이 있다. 대선을 앞두고 있으니 빨리 민주노총이 대의원대회에서 이런 정치방침을 결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책에서도 지적하지만 희귀성의 원칙은 상식적 구매자라면 피하고 싶은 구매 기준이다.

자기 나름의 논리와 이해가 명확한 진보진영에 설득이란 어떤 의미일까? 대중적 힘이나 ‘쪽수’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빠른 방법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실력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짧은 진보정당의 역사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대중적 힘을 축적하는 것과는 별개로 설득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지금 이 시기 설득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간의 노력이다. 호감을 만들 시간, 호혜를 주고받을 시간, 진보정치의 권위를 만들 시간, 사회적 증거를 만들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의원대회 결과가 놀라운 것은 아니다.

지난 2012년 통합진보당이 두 번째로 갈라질 때, 필자는 30대였다. “뭐 어쩌겠습니까? 한 10년 고생한다고 생각하고 다시 시작해야죠”하고 딴에는 결기를 가지고 한 이야기에 ‘10년 후면 내 나이가 몇 살인지 아냐?’고 되묻던 정년을 앞둔 노동자의 말을 가슴 아프게 기억하고 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쉽게 10년을 이야기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은 오히려 30대의 그 결기와 여유가 필요하다. 진보대통합의 절박함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제대로 된 진보대통합 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시간과 노력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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