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연재, 이희종의 ‘진보정치 그다음’ 프롤로그

▲ 사진제공 울산청년회

우연히 페이스북을 하다가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가 공유한 글을 읽게 되었다. 영화배우 정우성의 인터뷰였다. 후배감독의 시나리오가 투자자를 찾지 못하자 직접 영화제작에 도움을 둔 사건을 두고 기자가 묻는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실천까지 이어진 경우가 많지 않은데 어떻게 그렇게 하게 되었냐?”

정우성이 답한다. “20대는 어떤 체계나 현실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는 나이, 30대는 어느 정도 방관을 해도 되는 나이, 하지만 40대는 선배가 되는 나이”란다. 40대는 이미 그 시간을 경험했으니 불만이 있으면 바꾸려고 행동을 해야 한다며, “어느덧 내가 어른의 나이가 됐네. 어릴 때의 나는 사회에 많은 불만을 지껄였는데, 지금 내 나이 때에는 뭘 해야 하는 거지?” 하며 결국은 실천을 해야 할 때라고 대답을 마무리했다.

영화인으로서 그의 실천은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좋은 작품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얼굴도 잘생겼는데 말도 멋있게 하네.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하종강 선생님도 ‘신의 몰방’, ‘신의 실수’라 칭하며 칭찬을 했다.

20대에 학생운동을 하다 30대가 되어서는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지역운동, 시민단체 활동까지. 이렇게 진보정치의 주변에서 20여 년을 살아왔다. 사회에도 불만이 많았지만, 진보정치 안에서도 늘 고민이 많았다. 이것이 내 활동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이제 내 나이도 40이 넘었다. 얼마 전까지 “만으로 39입니다”라고 인사도 해보았지만, 이제 그럴 수도 없는 나이가 되었다. 인터뷰 기사를 읽다 보니 만사에 불만과 투덜거림의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난 너무 반성을 잘해서 탈이다.

오늘 진보정치는 갈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인터뷰 글을 읽다 86세대 뒤를 잇는 진보정치 40대는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노동조합에서, 시민사회단체에서, 진보정당에서 중간간부로 열심히 일할 또래의 모습이 떠올랐다. 87년 6월 항쟁을 거치며 90년대 학생운동, 노동운동, 시민사회의 대중조직들이 우후죽순 생겨날 때 진보진영의 실무자로 들어간 청년들이다. 이제는 30대, 40대의 나이가 되었다. 부장에서 국장으로 실장으로 이름이 바뀌었을지 몰라도 10년째 비슷한 일을 하는 이들도 많다.

설 연휴 술자리에서 그들을 만났다.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인지라 이런 자리에선 늘 우리는 언제까지 선배들 밑에서 실무만 하고 있을 것이냐는 불만이 안줏거리가 된다. 한편에서는 포부도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면 항상 이것이 과연 조직의 위계 때문인지 우리의 실력 때문인지에 대한 논란으로 번지곤 한다.

매번 술자리의 이 화두가 되는 86세대를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86세대에 견줄 실력을 갖추지 못한 우리 세대의 이야기다. 세대교체라기보다는 계승과 혁신의 문제다. 방법을 혁신하고 시스템을 혁신한다고 하지만 혁신은 사람을 준비하는 것이다. 세월이 간다고 사람이 준비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진보진영은 그 준비를 착실하게 해오지 못한 것이 확실하다. 이건 책임을 묻고 싶다. 진보정치의 성장과 위기의 책임도 선배세대에게 지운다.

그럼에도 재도약과 혁신의 문제는 여전히 선배세대와 우리 세대가 함께 일구어야 하는 과제로 남아 있다. 몇 달 전 진보대통합 토론회를 두 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정파적 이해를 달리하는 쟁쟁한 선배들의 토론을 보고 있자니 마음의 상처가 느껴졌다. 과연 저 분들이 다시 힘을 합친다는 것이 과연 가능이나 할 일인지 고민도 되었다. 어쩌면 그 역할은 다음 세대의 몫은 아닌지 생각도 해 보았다.

정우성의 말대로 이젠 40대에 접어들고 있으니 투덜거리고 책임을 떠넘기며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건 어쩌면 다음세대 활동가들에 대한 호소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용기를 북돋기 위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곳곳에서 열심히 진보정치를 외치는 40대들이여 숨죽이지 말고 나서자. 진보정치의 계승과 혁신을 이야기하자. 40대 기수론도 좀 이야기하자. 진보정치의 다음세대를 자처해보자.

이런 고민에서 용기 내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스스로는 불만거리를 정리해보려는 것이고, 다음세대 진보정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86세대를 넘어 진보정치가 다루어야 할 의제, 진보정치가 주목해야 할 다음세대 등을 소재로 글을 쓸 예정이다. 이건 나름 프롤로그다.

이희종

76년생, 우리 나이로 마흔두살이다. 20대에는 부산대에서 학생운동을, 30대에는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진보정치 활동을 했다. 지금은 김종훈 국회의원실에서 일하고 있으며, 민플러스 정치팀 소속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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