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민주주의 시리즈 연재③: “한사람도 포기하지 마라” 토론촉진자의 역할과 덕목

▲ 사진제공: 민중의 꿈

지난 시리즈 연재에서 현대적 직접민주주의는 전통적 의미의 국민소환, 국민발의 제도를 넘어서 숙의민주주의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본 시리즈도 직접민주주의를 주제로 하고 있지만 사실 숙의민주주의에 중심이 맞춰져 있다.

숙의민주주의라고 해서 마냥 결론이 나지 않는 난상토론만 하자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구성원의 의견을 신속하면서도 정확하게 집계할 수 있는 각종 토론기법들이 발달하고 있다는 점도 지난 연재에서 소개했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기법은 소규모 조별토론에서부터 결정사항을 단계적으로 위로 끌어올리는 방식의 토론이다.

이런 조별토론 방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이다. 보통 토론촉진자, 조정촉진자, 조력자 등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토론이 진행되는 각 조에 배치돼 토론의 진행을 맡는 사람들을 말한다.

퍼실리테이터는 공개적으로 자신이 진행자임을 밝힐 수도 있지만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들은 조원들이 토론규칙을 헛갈리면 설명을 해주거나 참여에 소극적인 조원을 좀 더 깊숙이 토론에 끌어들이는 등의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민주성과 상호존중의 원칙 아래 한 사람의 조원도 포기하지 않고 최대한 동등하게 의견을 개진하도록 하는 것이 퍼실리테이터 최대의 사명이라고 볼 수 있다.

정당이나 노동조합 같은 진보적 대중단체들은 보통 ‘분회’라고 불리는 소규모 단위를 가지고 있다. 이 단체들 내부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정착시키려면 최소 단위인 분회 조직에서 토론이 활성화돼야 한다. 그런데 분회원들이 “이것도 자신들 결정을 합리화하려고 하는 형식적인 거겠지” “이렇게 한다고 내 의견이 최상층까지 가겠어”라고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직접민주주의도 유명무실한 제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선천적으로 자기의견을 표출하는 데 소극적인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특히 어려서부터 상명하복식 문화에서 자라 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갑자기 적극적인 의견개진을 하라고 하면 오히려 불편해 할 수도 있다.

그래서 5~6명의 조원이 토론을 하는데 자기 의사표출에 적극적인 두 사람 정도만 거의 얘기를 하고 나머지는 묵묵부답이라면 이것은 좋은 토론이 아니다. “저 사람은 본래 저래, 이렇게까지 기회를 줬는데 본인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본인 책임이지”라고 넘어가서는 진정한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된다고 볼 수 없다.

▲ 자료제공: 민중의 꿈

따라서 훌륭한 퍼실리테이터는 조원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이끌 수 있는 다양한 토론 기법을 충분히 숙지하고 사전 훈련도 받아야 한다. 실제로 한국퍼실리테이션협회 등 몇몇 기관에서 퍼실리테이터를 육성하기 위한 연구와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 필요할 경우 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퍼실리테이터는 어떤 역량을 가져야 할까? 먼저 건방지거나 위협적이지 않으면서 권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조원이 발언을 할 때 표면적인 발언내용만이 아닌 이면의 생각과 감정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토론참여자의 발언 외에 그가 보이는 여러 행동을 통해 그가 진짜 표출하고 싶은 의사가 어떤지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비언어적 의사소통). 여기에 토론시간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 토론의 진행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조원들에게 시의 적절하게 환기시킬 수 있는 능력, 자신의 주관을 버리고 객관성을 유지하는 능력 등이 요구된다.

진보적 단체에서 퍼실리테이터는 단순히 토론의 촉진자가 아닌 실행 촉진자의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토론을 잘 진행하고 상층에 정확히 토론결과를 정리해 보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결정사항이 분회 단위에서부터 원활히 수행될 수 있도록 지도와 관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생활현장에서 풀뿌리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자발성과 창조적 역량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느냐가 퍼실리테이터의 역량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직접민주주의를 내실 있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풀뿌리 조직에서부터 학습과 토론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분회장 뿐 아니라 분회원 전원이 퍼실리테이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훈련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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