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민주주의 시리즈 연재 ②: 촛불과 직접민주주의

지난해 10월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불린 최순실 씨의 태블릿PC가 공개되면서 이른바 ‘박근혜 게이트’가 열렸다. 매주 주말마다 최소 수십만 명의 인파가 거리를 메우고 박 대통령 개인의 퇴진이 아닌 그를 둘러싼 재벌체제, 법조비리 등 다양한 적폐에 대한 청산요구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대통령 지지율이 한자리수로 떨어지고 탄핵찬반을 묻는 설문에 찬성의견이 70~80%가 나와도 정치권의 대응은 굼떴다. 국회는 시민들의 성화에 간신히 탄핵안을 가결시켰지만 시민들의 진정한 요구였던 박 대통령 즉각 퇴진과 적폐청산은 아직도 먼 과제로 남아 있다. 모 법률가는 “야당 의원들은 어차피 정권 바뀌고 해도 된다며 당장 시급한 개혁입법에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민의를 대표하라고 국회로 보낸 정치인들이 정작 민의와는 동떨어진 행동을 하자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불붙기 시작했다. 그 결과 시민평의회, 시민주권회의, 시민의회 등 비슷한 명칭의 단체가 직접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조직되거나 제안됐다. 이들은 구성과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단순히 촛불을 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좀 더 조직적이고 적극적으로 촛불시민의 의사를 대의기구에 전달하는 일종의 플랫폼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 사진출처: 와글 홈페이지

이 중에서 지난해 화제가 됐던 것은 정치 스타트업 ‘와글’이 제안한 온라인 시민의회였다. 온라인 투표를 통해 선발된 시민의 대표를 통해 의회를 감시하는 업무를 맡긴다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와글의 시민의회는 발표하자마자 큰 비판에 부딪혔다.

온라인 투표에 후보로 올라온 사람들은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에 실제로 참석하거나 우호적 태도를 보인 방송인이나 교수 같은 유명인사 들이었다. 문제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후보를 선정해 모 유명가수는 정중히 후보 명단에서 빼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결국 또 다른 대의기구를 만들자는 것에 불과하지 않냐” “어떤 권한으로 이들이 촛불시민을 대변한다는 말인가”라는 비판이 가장 많았다.

온라인 시민의회는 와글이 스스로 인정했듯이 충분한 여론수렴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시민들에게 제안돼 대표성을 가질 수 없었다. 물론 본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후보선정 문제나 300명의 의원을 감시하는데 116명에 불과한 대표단을 뽑는 문제처럼 세부적인 설계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이외에도 매주 촛불집회 진행을 전담해 온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지난해 말 시범기간을 거쳐 1월 한 달 동안 ‘국민대토론의 달’ 행사를 진행했다. 지역이나 직능단체별로 토론회는 몇 명 단위의 조별 토론에서부터 위로 합의사항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퇴진행동은 이러한 행사를 통해 6대 긴급현안 등 30대 우선개혁과제를 발표하기도 했다.

구호가 추상적이고 결집력도 떨어질 수 있는 촛불민심을 적폐청산의 실질적 동력으로 활용하려 했던 점에서 와글이나 퇴진행동의 시도는 참신하고 나름의 평가를 할 수 있다. 다만 이것 노력들이 즉각적으로 입법이나 제도 부문에서 가시적 성과를 낸 것은 아니다. 또한 몇몇 시도는 제안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직접민주주의의 본질을 벗어났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촛불정국과 그에 이어진 각종 정치실험이 주는 시사점은 직접민주주의는 철저히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형태여야 한다는 점, 그리고 최대한 많은 시민들의 참여와 공감대를 얻지 않으면 대표성을 얻기 어렵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 사진출처: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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