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신파시즘에 대한 경고
1. 들어가며-윤석열 '검찰독재화'와 신파시즘에 대한 경고
2. 파시즘과 민주주의
3. 신파시즘의 도래
4. 윤석열 검찰독재의 등장
5. 윤석열 파시즘의 특징
6. 윤석열 검찰독재를 막아야 대한민국이 산다

'윤석열 검찰독재 심판' 민심이 들끓는다. 총선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각 정치세력은 전열정비를 마치고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했다. 이에 연재 ‘신파시즘에 대한 경고’를 통해 총선 대응의 일치성을 높이고자 한다. [편집자주]

1. 들어가며 - 윤석열 '검찰독재화'와 신파시즘에 대한 경고

최근 “한국, 민주화에서 독재화로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국제연구소 보고서가 나왔다.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에 본부를 둔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지난 7일 연례보고서 ‘민주주의 리포트 2024’를 발표했다. 보고서에서 한국은 법치, 견제와 균형, 시민의 자유 등으로 구성된 ‘민주주의 지수’에서 0.60점을 받아 179개 나라 중 47위를 기록했다. 2019년 0.78점(18위), 2020~2021년 0.79점(17위) 2022년 0.73점(28위)에서 점수와 순위 모두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 지수는 0에 가까울수록 ‘독재국가’, 1에 가까울수록 ‘민주주의 국가’인데, 한국은 지표의 하락세가 뚜렷하다. 현재 ‘독재화’(Autocratization)가 진행 중인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42개국으로 나왔다.

여기서 ‘윤석열 정부가 검찰독재화하고 있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파시즘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지난 2년 윤석열 검찰독재화 과정을 놓고 한국 국민들은 매우 당혹해했다. 윤석열의 독재행태가 모든 면에서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검찰독재는 단순히 윤석열 대통령 개인의 밀어붙이기식 정치방식, 거칠고 한심한 언행의 결과가 아니다. ‘대한민국 실제 대통령은 뒤에 따로 있는 것 아냐’ 하는 식의 국정농단적 행태 문제도 아니다. 검사출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간의 조폭스러운 담합이 낳은 정치희비극 문제도 아니다. 검찰독재는 정적인 이재명 대표를 제거하기 위해 보복수사에 혈안이 되어 있는 편협한 검폭의 수준을 이미 뛰어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신독재로 회귀할 것이라는 것은 대체로 예상할 수 있었다.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 자신도 조심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윤석열의 검찰독재로의 폭주는 그 속도나 양, 질적 측면에서 언제나 상상 그 이상이다. 윤석열 정부는 자신들이 터뜨린 한 가지 문제를 가지고 국민과 민주진보진영이 분노하고 규탄하고 저항하는 것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 더 크고 더 많은 문제를 계속 터뜨리며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한 2년을 고단하게 겪고서야 국민과 민주진보세력은 이제 정확히 감을 잡은 것 같다. 그 표현이 윤석열 정부가 ‘검찰독재화’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검찰독재가 아니었다는 말인가. 그런 뜻은 아니다. 이미 지난 2년의 경험만으로로 윤석열 검찰독재는 그 반동적 본질을 여지없이 드러내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가 ‘검찰독재화’하고 있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윤석열 검찰독재화는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했다’는 뜻이다. 오히려 윤석열 검찰독재는 국회장악을 노리며 총선을 분기점으로 더욱 뚜렷하고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점이 현 총선정세의 본질이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에 대해 행태와 정책을 넘어 <신파시즘정권>으로서의 <검찰독재>라는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2. 파시즘과 민주주의

자본주의 정치에는 크게 3가지가 있다. 자유민주주의 정치, 사회민주주의 정치, 파시즘 정치이다.

원래 자본주의 정치에서 독재와 민주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다. 자유민주주의란 곧 자본가를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뜻한다. 자유민주주의란 시장경제의 자유를 추구하는 민주주의로서 자본가의 시장독점을 용인하는 민주주의이다. 따라서 자본가 내부에서는 민주주의를 하고, 대다수 노동자 민중에게는 독재를 행하는 정치이다. 즉 소수 자본가에게는 민주주의를, 다수 민중에게는 독재를 하는 정치가 자유민주주의 정치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노동자 민중에게 볼 것 없는 독재정치이지만 형식상으로는 여러 정당이 선거에 나와 집권경쟁을 하고 승자가 집권을 책임지는 민주주의적 절차를 거친다. 어찌됐든 일정하게 국민 개인들의 사상,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이다.

점차 노동운동이 성장함에 따라 사회민주주의 정치가 나타났다. 사회민주주의란 자본주의 체제내에서 자본가 계급이 부분적 또는 일시적으로 노동자계급에게 정치권력을 양도하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타협체제이다. 북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민주주의 또는 복지국가가 성립한 것은 노동자의 보통선거권이 확대되고 노동자 스스로가 독자적인 대중정당을 건설하면서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했다. 특히 노동자계급이 혁명을 일으킬 정도까지는 성장하지 못하고, 자본가계급 역시 사회주의 혁명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서로 계급타협을 이룩하여 자본주의 틀 내에서 권력을 나누어 갖는 것이 바로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하면 자유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 정치는 모두 파괴된다.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에 대한 양보는 고사하고, 자본가 계급 내부의 민주주의조차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나타나는 것이 자본주의 역사에 등장한 파시즘 정치이다.

파시즘이란 ‘자본가계급 내 가장 반동적 분파가 진행하는 국수주의적, 배타적, 침략적인 공공연한 테러독재’이다. ‘파쇼’란 고대 로마 권력의 상징물인 ‘파르게스’에서 유래했다. 자유민주주의는 그래도 자본가 계급내에서는 독점자본가, 중소자본가를 포함한 내부의 민주주의를 진행한다. 사회민주주의는 노동자 계급이 권력을 자본가와 일부 분점한다. 그러나 파시즘은 자본가 계급 내의 민주주의조차 부정하는 현상을 말한다. 자본가 내 일부 분파가 군부나 파시즘 세력과 손잡고 사회민주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자유민주주의조차 압살하고 세운 반동적 정치체제가 파시즘이다.

파시즘은 1차세계대전 이후 세계대공황의 위기가 전세계를 휩쓸자,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B급 제국주의 국가에서 나타났다. 독일은 1차 대전 패전국으로 막대한 전쟁배상금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1929년 세계대공황이 터지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히틀러의 등장과 함께 나치 체제로 전환했다. 이탈리아와 일본은 1차 대전의 패전국은 아니었지만, 식민지가 적거나 상실한 제국주의 국가로서 세계대공황의 여파를 견디기 힘들었다. 결국 이탈리아에서 먼저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등장하고 일본 역시 정치암살과 군사쿠데타를 거치며 군국주의의 길로 내달았다.

식민지가 많았던 영국과 프랑스, 내수시장이 거대했던 미국 등 A급 제국주의 국가들은 어떠했나. 이들 역시 대공황의 여파에 치명타를 입었다. 미국의 금융재벌 J.P.모건 2세는 이탈리아 파시스트 무솔리니에게 1억 달러의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미‧영‧프에서도 모두 파시즘의 열기가 드높았다. 1935년 미국 파시스트 모임인 미국자유연맹(American Liberty League)은 예비역 군인 50만을 동원한 쿠데타를 기획하기도 했다. 미국자유연맹에는 화학대기업 듀폰, 금융대기업 모건, 철강 대기업 유에스 스틸, 자동차 대기업 제네랄 모터스, 석유대기업 스탠다드 오일 등 미국 자본주의를 떠받치고 있던 독점재벌들이 핵심세력으로 참가하고 있었다.

이처럼 파시즘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심각하게 고장난 세계대공황의 위기 속에서 제국주의국가를 휩쓸었다. 파시즘은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파산 밑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배타적 인종주의와 국수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한편으로는 자유주의 억압, 다른 한편으로는 공산주의와 노동운동 타도를 외치며 일당독재, 전체주의 테러독재체제를 수립했다.

파시즘은 자본주의 공황속에서 몰락한 중간층의 불안을 등에 업고 이용하는 강력한 선동정치로 시작한다. 따라서 국가폭력과 민간폭력이 결합한다. 민주주의자, 사회주의자, 노동운동, 농민운동, 시민사회운동은 무자비한 테러와 탄압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파시즘은 필연적으로 침략전쟁으로 발전한다. 인류 5천5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2차 세계대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파시즘은 민주주의에 대한 압살에서 시작하여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가고 결국 전쟁으로 치닫는다. 따라서 파시즘은 본질에 있어서 테러독재이며, 전쟁독재이다. 여기에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 노자간 타협이 설 자리는 없다.

파시즘이 유럽대륙을 휩쓸자 사회주의자, 사민주의자, 민주주의 공화주의자들이 손을 잡았다. 이것이 이른바 반파시즘 인민전선이다. 프랑스에서는 반파시즘인민전선이 선거에 승리하여 파시즘의 등장을 막았다.

스페인에서는 반파시즘세력이 선거에 승리하고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원을 받은 파시스트를 상대로 내전까지 벌였다. 그러나 승리하지 못했다.

아시아 식민지국가에서는 제국주의 파시즘 세력의 침략전쟁에 맞서 노동계급과 민족자본가,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가 손을 잡고 민족해방통일전선을 구축했다. 중국에서의 국공합작, 조선에서의 신간회 건설 등이 그것이다.

마침내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파쇼국가들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자, 사회주의 소련과 미‧영‧프 자유주의 국가는 반파시즘 전쟁에서 서로 손을 잡아 승리했다. 역사는 파시즘에 대하여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제 세력이 손을 잡고 싸워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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