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셀프 진상규명 시도 막히자 공정성 운운
“특조위가 국민기본권 침해? 전혀 근거 없어”
인파에 떠밀린 건 원인 아닌 현상...여전히 진상규명 필요
정부, 유가족 서로 못 만나게 하고, 장례 빨리 치르라 압박...“이게 지원이냐”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마저 거부권을 행사했다. 참사 유가족들은 오열했다.

30일 한덕수 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의결했고, 윤 대통령은 이를 신속하게 재가했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이 반헌법적이고 공정하지 않다는 구실을 내세웠다.

유가족들은 국무회의 내내 정부청사 앞에서 처절하게 항의했지만, 끝내 정부는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묵살했다.

유가족들은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헌법 가치"라며 "159명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윤석열 정부야말로 위헌정부”라고 규탄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이태원참사 특별법 공포 촉구 기자회견을 하던 중 국무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안(거부권)이 의결되자 슬퍼하고 있다. 2024.01.30. ©뉴시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이태원참사 특별법 공포 촉구 기자회견을 하던 중 국무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안(거부권)이 의결되자 슬퍼하고 있다. 2024.01.30. ©뉴시스

정부여당, 셀프 진상규명 시도 막히자 공정성 운운

이날 오후 시청 앞 희생자 분향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유가족들의 분노와 절규로 가득찼다.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특별법에 담긴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 구성이 공정하지 않다는 정부 측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당초 여당이 특별법 협상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던 까닭은 특조위 위원장 추천권을 정부·여당이 가져가겠다는 시도가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정부 실정을 조사하는 기구에 친정부 인사를 추천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던 것.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윤석열 정부가 조사 대상이 되어 진실이 규명되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냐”며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위해 정부 영향에서 자유로운 조사기구를 구성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강조했다.

“특조위가 국민기본권 침해? 전혀 근거 없어”

정부가 거부권 행사 근거로 내놓은 입장에 대한 상세한 비판도 제기됐다.

정부는 거부권 행사 근거로 ▲특조위가 영장 없이 동행명령을 하거나 압수수색 영장 청구의뢰를 하여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 ▲특조위 구성의 중립성 결여, ▲특조위의 사법부·행정부 권한 침해 우려, ▲국정조사 등을 통한 기존의 충분한 진상조사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윤복남 변호사는 “특조위의 동행명령권과 영장 청구 의뢰권은 이전 세월호 특조위나 사참위(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가졌던 권한”이라며 “과거 조사위 활동에서도 위헌성이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중립성 결여 주장에 대해서도 “특별법상 특조위원 11인은 여야가 각각 4인을, 국회의장이 관련 단체와 협의하여 3인을 추천하도록 하는 구조인 만큼 충분히 공정하다”고 일축했다. 만약 국회의장이 야당 인사라는 게 문제라면 ‘관련단체’를 특정하지 않았으니 다양한 의견 전달을 하면 된다는 말이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30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안(거부권) 의결 대한 유가족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01.30. ©뉴시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30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안(거부권) 의결 대한 유가족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01.30. ©뉴시스

인파에 떠밀린 건 원인 아닌 현상...여전히 진상규명 필요

특조위가 사법부·행정부의 권한을 침해할 것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윤 변호사는 “행정부가 재난원인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경우 그 역할을 대신할 독립적 조사 기구를 설치하는 것은 해외 사례에 비춰도 보편적”이라며 “특조위는 기본적 조사를 수행하는 기구이고 사법 판결을 내리는 기관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정부에 의한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뤄진 바 없다. 경찰 수사는 용산경찰서장, 용산구청장 등 일부 관련자만을 기소하는 데 그쳤고, 국회 국정조사는 출석 자체를 회피하거나 자료 제출을 거부한 자들이 너무 많았다.

이에 윤 변호사는 “특수본은 사건 발생 74일이나 되어서야 군중 유체화(사람이 인파에 떠밀리는 현상)를 원인이라 얘기했지만, 그건 모두가 알고 있었던 현상에 불과하다”며 “참사 이전에 왜 경비대를 배치하지 않았는지, 119 신고 대응이 왜 지연되었는지는 여전히 아무도 모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엔 자유권 위원회가 지난해 11월 이태원 참사에 대한 독립적인 기구 설립을 권고한 데에는 합당한 근거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 유가족 서로 못 만나게 하고, 장례 빨리 치르라 압박...“이게 지원이냐”

정부의 생색내기용 변명도 도마에 올랐다. 정부가 내세우는 유가족들에 대한 전담 공무원 배치와 장례지원, 의료비 지원 등에는 어떤 내실도 없고, 오히려 사건을 덮으려는 치졸함이 돋보였다는 것.

이와 관련해 조인영 변호사는 “장례지원 과정에서 배치된 전담 공무원은 장례식장에서 유가족들이 서로 못 만나게 하고, 장례를 빨리 치르라 독촉하기까지 했다”며 “의료비 지원의 경우 유가족에게는 문자 한 통으로 안내하고, 참사 생존자에게는 그조차도 하지 않아 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한 희생자들이 즐비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부실 대응을 감시 감독하기 위해서라도 특별법 제정을 통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거부권 의결과 더불어 정부가 발표한 ‘희생자·유가족을 위한 종합대책 수립 계획’에 대해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이 위원장은 “1년 넘게 무수히 호소하고 절규할 때는 단 한 번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철저히 외면하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피해자를 위하는 척 하는 것은 거부권 행사에 대한 반발을 막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며 “특별법을 통한 특조위가 아닌 어떤 것도 정부 측과 논의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거부권 행사로 말미암아 안전사회로 나아갈 길이 요원해진 가운데, 국회 재의결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재의결은 국회의원 출석 2/3가 찬성하면 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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