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대담] 2023년 투쟁계획, 대표자에게 듣는다 (5)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끝까지 투쟁하는 거지, 전면전밖에 없어.”

“농민들은 이미 실탄 장전하고 전장에 나갈 기세야.”

▲ '밥 한공기 쌀값 300원 쟁취! 농민생존권 보장! 전국농민 결의대회' 발언 중인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회장. 2022.11.08. [사진 : 뉴시스]
▲ '밥 한공기 쌀값 300원 쟁취! 농민생존권 보장! 전국농민 결의대회' 발언 중인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회장. 2022.11.08. [사진 : 뉴시스]

양옥희 회장은 “윤석열 정부와의 전면전”을 예고했다. ‘양곡관리법’이 뇌관이다.

양 회장은 전북 정읍에서 28년째 쌀농사를 짓는 여성 농민이다.

쌀 1kg에 3,000원, 1kg이면 밥 10공기, 그래서 ‘밥 한 공기(100g) 300원’을 줄기차게 외쳐왔다. 그러나 매해 쌀값 폭락으로 ‘밥 한 공기’는 현재 230원꼴이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쌀 20kg 한 가마니면 4인 가구가 한 달간 먹고 살 수 있는 양이다. 그런데 쌀값은 약 6만에도 미치지 못한다. 커피 한잔에 4~5천 원은 기본이고, 물가가 올라 4인 가족이 한 끼 외식으로 삼겹살을 먹어도 족히 10만 원이 넘는데, 쌀값만 떨어졌다.”

쌀이 먹거리의 기본 중 기본이듯, 농민에게 쌀은 농사의 기본 중 기본이다. 그래서 쌀의 적정 가격을 보장할 수 있는 ‘양곡관리법’은 올해 투쟁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얼마 남지 않은 2월 임시국회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거나,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230만 농민은 누구보다 반윤 투쟁의 앞자리에 서겠다는 각오다.

윤석열 정부와의 한판 싸움을 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양 회장은 ‘공안정국’을 꼬집었다. “윤 정부 검찰독재가 농민단체까지 겨냥하고 있다”는 것. 소위 ‘간첩단’ 사건을 조작하는 데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간부가 거론되자 대통령 소속 자문위원회인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는 전농을 배제했고, 국회와 농민단체 간의 대화는 취소됐다. 양곡관리법도 순탄치 않을 것이 예상된다.

전여농을 비롯해 농민단체는 내년 총선에서 농민후보 출마를 준비한다. 지난해 ‘식량자급률 법제화, 농민권리 실현, 국가책임 농정’의 내용이 담긴 농민기본법을 농민 스스로 만들었다.

“300명 되는 국회의원 중에 농민 한 사람이 없으니, 농민기본법 제정도 직접 나서겠다”는 것이다. 농민기본법에 담긴 내용도 양곡관리법과 무관치 않기에, 농민들이 직접 정치하겠다고 외치는 이유다.

2015년 민중총궐기, 박근혜 퇴진 투쟁 초반, 여성 농민들의 ‘혈서’가 투쟁의 불쏘시개로 작용했다. “올해도 농민들이 반정부 투쟁 앞장에 서겠다”는 양옥희 회장과의 대담을 8개의 열쇠 말(키워드)로 정리했다.

▲ 농민단체들이 농림축산식품부의 '양곡관리법 개정 반대, 푸드테크로 대기업 농업진출 개방' 등을 규탄하고 있다. 2023.01.18. [사진 : 뉴시스]
▲ 농민단체들이 농림축산식품부의 '양곡관리법 개정 반대, 푸드테크로 대기업 농업진출 개방' 등을 규탄하고 있다. 2023.01.18. [사진 : 뉴시스]

1. 살농정책 윤석열

“윤석열 정부는 농정 포기, 농민 무시, 불통과 아집으로 일관됐다. 대통령 취임하자마자 비료값 지원 예산부터 삭감하며 농민들에게 아주 가혹했다. 코로나 이후 기후위기, 식량위기 시대에 곡물이 막히고 식량안보 문제가 생겨도 그 심각성을 모른다. 대통령 공약인 ‘공익직불제’ 확대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농업과 농촌이 갖는 공익적 기능은 무시한 채, 기술적 농업, 스마트 농업을 주장하며 기업들의 농업진출을 허용하는 농정책을 펼치는 중이다. 우려 수준을 넘어 농업을 죽이는 어마무시한 정책들이다.”

* 공익직불제 : 농업활동을 통해 식품안전, 환경보전, 농촌유지 등 공익을 창출하도록 농업인들을 지원하는 제도.

2. 밥 한 공기 300원

“곡물 자급률은 20%가 붕괴할 위기고, 식량자급률은 45.8%, 쌀 자급률은 2020년 84.5%까지 떨어졌다. 저율관세할당(TRQ)에 수입쌀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쌀값은 계속 떨어져 밥 한 공기가 230원이다. 쌀 20kg 최소 6만 원은 보장돼야 임차료, 비료값, 농약값 떼고 그나마 인건비 명목으로 생활비가 남는다. 20kg면 4인 가족이 한 달 먹을 양인데, 6만 원도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 80kg면 24만 원은커녕 16~17만 원 선이다. 쌀은 국민의 주식이고 농업의 기본이다. 농가가 빚더미에 나앉아 몰락하고 쌀이 없으면 수입해 먹으면 된다? 휴대전화 팔고 자동차 팔아서 쌀을 수입할 수 있는 시대인가? 아니다.”

* 저율관세할당(TRQ) : 무역정책의 일환으로, 수입물량으로부터 자국 상품을 보호하기 위한 대표적인 비관세 조치. 수입물량의 과도한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일정 기간 내에 수입되는 특정 물품에 대해 일정 할당량까지는 저세율(또는 무세)을 적용하고, 초과하는 것에는 고세율을 적용하는 이중세율제도.

3. 양곡관리법의 배신

“양곡관리법 개정의 핵심은 ‘쌀 자동시장격리제’다. 쌀을 시장에 내놓지 않아 공급량을 조절하며 쌀값을 조절하는 것이다. 2019년, 정부가 유일한 가격안정 장치였던 ‘변동직불제(쌀 목표가격제)’를 폐지하면서 그 보완책으로 내놓은 약속이 ‘양곡관리법’이다. 그러나 쌀 공급이 많은 10월 말에 해야 할 시장격리를 이듬해 2월이 되어서야 실시하고, 이마저도 공공비축미 가격이 아닌 최저입찰을 강행하면서 쌀값은 대폭락했다(지난해 22.8% 하락). 정부가 농업에 관심이 없으니 농민들을 배신하고 양곡관리법도 지키지 않았다. 윤 정부는 우리 식량주권을 지키는 기본적인 법에 ‘공산화법’이라는 딱지를 붙이기에 바쁘다.”

* 변동직불금 : 쌀 목표가격제. 전국 평균 수확기 쌀값이 목표가격에 미달하는 경우 지급됨.
* 양곡관리법 개정안 :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이상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이상 하락할 때 정부 매입 의무화.

▲ 윤석열 농업정책 규탄! 여성농민 법적지위 보장! 농민기본법 제정! 전국 여성농민 기자회견. [사진 : 전여농]
▲ 윤석열 농업정책 규탄! 여성농민 법적지위 보장! 농민기본법 제정! 전국 여성농민 기자회견. [사진 : 전여농]

4. 변동직불제

“변동직불금이 있을 때는 기계값, 비료값, 농약값은 외상 거래하고 직불금이 나오면은 조금씩 갚고, 그리고 가을에 추수하고 나서야 이윤이 남는다. 그런데 직불금은 없애놓고 양곡관리법을 도입하고도 지키질 않으니 농민들은 ‘다시 변동직불제로 돌아가자’고 한다. 기계값에, 비료값에 농민들의 부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농민들 사이에는 ‘어깨 보증’이라는 말이 있다. 서로 사정이 나은 사람이 때에 따라 부채를 도와주는 것이다. 농가부채 탕감은 못 해줄망정 적정 가격 보장조차 안 해주는 게 지금 정부다.”

5. 농업공직자

“문재인 대통령이 농민단체 행사에 와서 ‘농민은 공직자’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공직자’라고. 농민들은 ‘공직자 대우는 안 해줘도 좋으니, 제대로 된 농산물 가격만 쳐달라’고 요구했다. 농업공직자는 채무에 시달리는데, 윤석열 정부는 ‘미래성장산업’, ‘기술농업’이라는 말을 해대면서 대기업의 농업진출에만 관심을 둔다. 청년농을 키우겠다며 30억을 지원하는 스마트팜 정책을 시행하는데, 3년이 지나 빚더미에 앉아도 정부는 ‘나 몰라라’ 하는 정책이다. 이것도 ‘동부팜’, ‘OO팜’ 등 대기업이 장악하려 하고 있다. 농림부 예산인지, 중소벤처기업부 예산인지, 산자부 예산인지 분간이 안 되는 예산을 투자한다. 그러나 정작 농업예산엔 농민이 없다.”

▲ 지난해 8월, 농민단체들은 완성된 농민기본법으로 설명회를 했다. [사진 : 전여농]
▲ 지난해 8월, 농민단체들은 완성된 농민기본법으로 설명회를 했다. [사진 : 전여농]

6. 농민기본법

“현재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농업식품기본법)’은 시장경제 원칙에 근거해 농업을 바라본다. 농산물 가격을 시장에 맡겨버리는 것이다. 식량주권의 문제, 농민의 권리문제는 반영돼 있지 않다. 기후위기, 식량위기 시대에 농촌을 지키기 위해선 기존의 농정틀을 싹 바꿔야 한다. 30년간 80여 개의 나라와 자유무역을 확대하는 수입개방 방식의 농업정책은 실패작이다. 국가책임을 강화하는 법으로 대전환이 필요하다. 농민기본법엔 ‘식량자급률 법제화, 농민권리 실현, 국가책임 농정’, 그리고 ‘여성농민의 직접적 지위 보장’의 내용도 넣었다. 성인지적 관점에서 농업정책을 수립하고 개별 농민의 주체성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7. 농민 국회의원

“당사자인 우리가 스스로 법안을 만들었지만, 농민기본법 제정을 위해선 또 국회와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2002년 전여농도 정치세력화 논의에 참여했고, 진보정당과 여성 농민 의원도 만들었다. 그러나 현재 300명 국회의원 중에 농민은 한 사람도 없다. 농민을 위한 정치를 누가 대신해주겠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농촌지역 농민후보를 낼 것이다. 농민기본법 제정 운동을 펼치면서 농민후보를 알려내고자 한다. 또한 진보진영의 단결을 위해 전여농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쏟을 예정이다. 먼저 4월 전주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진보당 당선을 위해 힘을 보태고 있다.”

8. 전면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전면전이다. 밭작물을 하는 농민은 고추 모종을 해야 해서 지금부터 바쁘다. 쌀 농민은 4~6월이 바쁜 시기다. 아무리 바빠도 투쟁이 먼저다. 벼를 심어봤자 가격 보장이 안 되는데 농사를 짓는 들 무슨 소용인가. 아스팔트 농사를 지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 들어 11번의 상경투쟁을 했다. 현장의 농민들은 이미 전쟁에 나갈 실탄을 장전했다. 2015년 박근혜 퇴진 투쟁 때 백남기 농민이 앞장섰고, 여성 농민들이 ‘혈서’를 썼을 때 ‘우리가 엄청난 일을 했구나’라는 생각은 못 했다. 그때의 결심으로 올해도 싸울 것이다. 전면전이 될 수밖에 없다.”

▲ 2015년 전국여성농민대회. 여성농민들은 "살고 싶다 갈아 엎자"라고 혈서를 썼다.
▲ 2015년 전국여성농민대회. 여성농민들은 "살고 싶다 갈아 엎자"라고 혈서를 썼다. [사진 : 전여농]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