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미국 ‘코로나19 방역’ 사례를 중심으로

들어가며

한 해가 며칠 남지 않은 2019년 12월 말, 중국 우한에서 무섭게 퍼지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있었다. 그 병원체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라는 것이 처음 밝혀진 것은 해가 바뀐 2020년 1월 8일이었다. 그 후 대략 2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전세계 구석구석까지 파고든 코로나 바이러스는 2022년1월13일 현재 3억1천여만명의 감염자와 550만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었다. 1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잠잠해질 것이라는 애초 기대와는 달리,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러 가지 변종을 만들어내면서 앞으로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으로 상황을 몰아가고 있다. 
이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는 주변 세계에 대한 우리의 기존 인식 또한 크게 바꾸어 놓고 있는 중이다. 그중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줄 곧 현대문명의 모범으로 간주 돼온 미국과 서구 선진국들이 보여준 실망스러운 방역 결과이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의료시설과 과학기술을 보유한 미국은 놀랍게도 감염자가 6천3백여만명(2022년1월13일 현재), 사망자는 86만여명을 넘어서 세계에서 가장 형편없는 성적을 보여주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다른 선진국들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스웨덴처럼 평소 복지국가로서 우리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백기를 든 사실은 한마디로 충격적이었다. 2020년 3월 경 아직 백신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면역’을 선언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는 예상대로 참담하였다. (“마스크 의무화 안 해 35만명 확진… 스웨덴 국왕 ‘집단면역 실패했다’”, 조선일보, 2020.12.19. 참조)
이제 이들 나라들 대부분은 ‘백신’ 하나만 의지한 채 소위 ‘위드 코로나’를 외치며 어쩔 수 없이 ‘코로나와의 공존’을 추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 ‘제로(0) 코로나’를 고수하던 한국 역시도 지난해 11월부터 더 이상 경제적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채 ‘위드 코로나’ 대열에 동참하였다. 그 결과 우려했던 대로 순식간에 5천~7천명대 환자가 발생하였으며, 사망자 수 역시도 급속하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서구와 한국 언론들은 요즘 하나 같이 방역과 경제는 양립할 수 없으며, 둘 중 하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논조를 편다. 한마디로 먹고살기 위해선 일정한 인명피해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 같은 주장을 펼칠 때마다 의도적으로 빠트리는 나라가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중국이다. 
잘 알다시피 중국은 아무런 사전 예고 없이 지구상에서 맨 처음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습격을 받았다. 하지만 14억 인구를 가진 나라임에도 놀랍게도 지금까지 감염자 수는 10만여명 정도이며, 사망자 수도 4,636명에 불과하다. 2020년 4월 우한사태가 종식된 이후로 단지 2명의 추가 사망자가 발생했을 뿐이다.(표1 참조) 다른 한편 경제 역시도 주요 경제국들 중에서 2020년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기록하였다. 2021년 들어서 지난 3분기까지 9.8%성장률을 보여 주어 전체 한 해 8% 성장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볼 때 중국은 아마도 이번 코로나국면에서 ‘방역’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가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이렇듯 세계 각국의 방역 결과는 현격한 차이가 나는 것일까? 중국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며,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들의 참담한 실패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그 근본적 차이가 사회주의 방역과 자본주의 방역의 차이로부터 기인한다고 본다. 이 같은 주장을 검토하기 위해 그 대표적 사례로 중국과 미국을 선정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코로나19 집단 발병이 일어난 중국 후난성 관광지 장자제에 긴급 파견됐던 의료진이 지난 2021년 8월 25일 방역 성공으로 주변에 내려진 이동제한 조치가 풀린 것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해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사진 : 장자제=신화/뉴시스]
코로나19 집단 발병이 일어난 중국 후난성 관광지 장자제에 긴급 파견됐던 의료진이 지난 2021년 8월 25일 방역 성공으로 주변에 내려진 이동제한 조치가 풀린 것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해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사진 : 장자제=신화/뉴시스]

1. 민주국가와 전제국가의 차이인가?

미국과 중국의 방역 결과의 현격한 차이를 가져온 이유로 최근 유행하고 있는 해석은 ‘민주주의 국가’와 ‘권위주의 국가’의 차이라는 것이다. 미국과 서구 선진국들은 모두 고도로 발전한 민주국가들이기 때문에, 국민의 ‘자유’를 지나치게 존중한 나머지 강력한 방역조치를 취할 수 없어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 반면 중국은 권위주의 국가여서 국민의 자유를 쉽게 제한할 수 있고, 그 때문에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고 이동 금지나 심지어는 전면 봉쇄조차 용이하게 취할 수 있어서 성공했다는 것이다. 과연 맞는 말일까?
이에 대해 독자들이 먼저 상기할 일이 있다. 처음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유행하고 다른 나라들에선 아직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던 무렵인 2020년 2월 까지만 해도 언론의 해석은 정반대였다. 전염병을 제어하기 위해선 정부와 국민 간의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하고 정보공개가 신속하게 되어야 하는데, 권위주의 국가는 국민을 기만하기 위해 정보를 감추고, 이 때문에 양자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기에 방역에 있어 대단히 불리하다는 논조가 대부분이었다. 아래 기사는 그 대표적이다. 
 
“권위주의 정부의 전면적 감시와 정보 통제는 국민에게 공포와 불신만 더 키워 전염병 대응을 훨씬 어렵게 만든다.…… 국민이 진정한 국가의 주인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때 전염병도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1당 독재를 하는 북한이나 중국 같은 나라는 정부가 아무리 잘못해도 민주국가처럼 투표를 통해 지도부를 교체할 힘이 국민에게 없기 때문에 대규모 피해가 반복된다”(VOA 뉴스, 2020.2.26.)1)   

하지만 2020년 3월 들어 미국과 유럽에서도 환자들이 발생하고, 4월 들어서 형세가 완전히 역전 되자 이 같은 주장은 갑자기 쏙 들어갔다. 중국이 ‘우한 방역전’을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분명한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같은 당혹스런 ‘역전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버전이 필요해졌다. 여기서 ‘민주국가 방역 우세론’을 내세우던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자신들의 기존 논리를 일관되게 고수하면서, 그 논리에 따라 중국을 ‘권위주의 국가’ 명단에서 삭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서구 언론으로선 용납할 수 없는 일일 것이며, 그럴 경우 자칫 방역에 실패한 서구 국가들이 국민과의 소통이 잘 안 되는 권위주의 국가로 돌변하는 당혹스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여기서 그들은 아쉽지만 ‘민주국가 방역 우세론’을 접을 수밖에 없게 된다.
다른 하나는 중국이 권위주의 국가라는 기존의 주장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자신들의 체면이 깎이지 않을 만한 다른 적절한 해석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런 딜레마에서 그들이 발견한 것은 ‘개인의 자유’ 라는 개념이다. 이에 따르면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은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존중한 나머지 방역에 실패했으며, 정반대로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은 애초 ‘개인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국가의 강압적 조치가 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약간의 개념 조작을 통해 절묘한 ‘반전’이 이루어졌다. 한편에선 미국과 서구 국가들은 정부의 방역 실패에 대한 책임을 일정 모면할 수 있게 되었으며, 다른 한편에선 중국의 방역성과가 개인적 자유를 억압하고 강압적 조치를 통해 얻어진 것이기에 칭찬은커녕 비난의 대상이 된다. 
물론 다소 변형된 버전도 나타났다. 예컨대 한국, 대만, 중국, 동남아 등 아시아 국가들은 당시 상대적으로 코로나19 상황이 덜 심각하였다. 이 때문에 동양적 ‘유교문화’와 서구의 ‘개인주의’ 내지는 ‘자유주의’를 대립시키려는 시도도 나타났다. 이 주장에 따르면 동양의 유교문화는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순종과 희생을 강조하기 때문에, 강제적 조처를 필요로 하는 전염병 대처에 있어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서구식 자유주의 문화와 사고방식은 집단에 의한 개인 자유의 억압에 저항적이기 때문에, 전염병 대처에 있어 불리하게 된다. 이리하여 미국과 서구는 비록 현실에선 방역에 실패했지만, 문화와 인권적 면에서는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한 동아시아 국가들보다 우월하며, 결국 그들의 방역실패 조차도 ‘고상한 희생’의 대가인 셈이 된다. 

이상의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혹은 동양적 ‘유교문화’와 서구의 ‘개인주의’를 대립시키는 견해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즉 한결  같이 미국과 서구의 방역 실패를 민주주의 혹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존중 때문인 것으로 ‘미화’ 하고, 중국의 방역성과에 대해선 개인적 자유를 억압한 대가로 ‘비하’ 한다는 점이다. 
과연 이 같은 논리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달린 문제에 있어서 이성적이고 합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각국의 방역 성과를 공정하게 평가하려면, 이처럼 자의적 잣대가 아닌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필요로 한다. 방역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기준들은 지금까지 나온 논의를 종합하면 어느 정도 선정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민주주의’로 상징되는 사회내부의 원활한 정보 공개와 소통이다. 그것은 국민들의 자발적 협조를 얻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둘째, 강력한 국가의 역할이다. 개인의 자유가 얼마간 억압되더라도 국가는 전체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방역과정에 적극 개입하는 일이 필요하다. 
셋째, 경제적 불평등을 포함한 ‘경제문제’이다. 이 역시 한 나라의 방역 성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지금까지 이 부분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었으므로 얼마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경제문제와 관련해선 다음의 설문조사 결과가 우리의 관심을 끈다.. 2020년 〈시사IN〉과 KBS는 서울대 사회학과 임동균 교수, 여론조사 전문업체 한국리서치와 공동으로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웹조사를 진행했다. 첫 번째 조사에선 한국인들의 적극적 방역 참여는 권위주의•순응주의•집단주의와 같은 이른바 ‘동아시아적 가치’와는 무관하며, 가장 강력한 변수가 ‘민주적 시민성’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해 연말(12월)에 실시된 두 번째 조사에서는 그 결과가 달리 나타났다. 한국인들의 관심도가 바뀌었으며, ‘경제’와 ‘공평성’ 문제가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즉 방역전에서 가장 큰 희생은 누가 치르나? 사회는 누구의 희생부터 돌봐야 하는가? 등에 관심이 쏠렸던 것이다.2)

〈시사IN〉은 이에 대해 전시(戰時)에 있어 ‘보급’ 문제라는 재미있는 비유를 들었다. 전시에는 최전방에 나선 총알받이들이 고립되는데, 방역과 같은 저강도 전시 국면에선 이들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로 지원이 흐르도록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여기서 불안감이 흐른다는 것이다. 이런 보급문제가 원활하게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확산세가 심상치 않던 2020.11.19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를 2단계로 끌어올리지 못한 채 1.5단계로 어정쩡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시사IN〉의 분석은 매우 정확했다. 2020년 상반기 설문조사 때만 해도 한국 국민의 문재인 정부의 방역조치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높은 편이었으며, 민주주의적 실천에 대한 자긍심도 높았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서 이 같은 자신감은 많이 줄어들었다. 결국 한국 방역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은 다름 아닌 방역에 있어 희생을 치르는 집단에 대한 보상, 특히 자영업자들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때문이다. 이들의 불만을 해소시키지 않는 한 더 이상 한국이 자랑하는 K-방역은 지속이 불가능하다. 이점은 우리가 각국의 방역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앞서 언급한 것 외에 ‘경제문제’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민주주의, 국가의 역할, 경제문제 이상 3가지 기준은 이 방면의 한 전문가의 연구 결과와도 일치한다. 예컨대, 2020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마우로 길렌 경영학 교수는 와튼스쿨 지식 공유사이트에 한 논문을 기고했는데, 그 내용을 소개하자면 이러하다. 3)

길렌 교수의 연구 제목은 “팬데믹의 정치(학): 민주주의, 국가 역량, 경제적 불평등”이다. 이 논문은 1995년부터 전염병이 발병한 146개국을추적하여 전염병 발생 시 민주주의, 국가 역량, 소득 불평등이 주는 영향을 분석했다. 이는 이 방면의 최초의 연구서라 할 수 있다. 길렌 교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명성, 책임성, 국민 신뢰가 있으면 전염병 확산 정도와 치명률을 낮출 수 있고 대응 시간도 줄이며, 공중 보건 조치에 대한 국민의 준수 정도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또 이 논문에 따르면 ‘불평등’은 전염병 발생 빈도와 규모를 결정하게 된다. 사회 경제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일터에 가야 하므로 사회적 거리 두기와 자택 대피령 같은 전염병 억제 정책을 따르기가 힘들어 진다. 길렌 교수는 “국가 역량은 전염병 발생과 그 악영향을 막는 보호막이지만, 경제적 불평등은 이 보호막을 갉아 먹는다”고 말한다.4)
 
길렌 교수가 제시한 이상 3가지 요인은 필자가 선정한 기준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 기준을 가지고서 중국과 미국의 방역 결과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계속)

본문 주석

1) “민주국가와 권위주의 국가의 전염병 대응 차이: 투명성”,
https://www.voakorea.com/a/coronavirus_government-coronavirus/6029384.html
이 기사는 자칭 북한과 중국의 보건 상황을 수 십 년 간 연구했다는 로빈슨 교수라는 사람의 견해를 소개했다.

2) 관련 내용들은 다음 기사를 참조하였다. “‘방역 정치’가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 의문 품는 한국인들”(시사IN, 2020.12.12.)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417.

3) 이하 내용은 <조세일보>의 “코로나19 방역, '민주주의와 독재' 중에 누가 더 잘할까?”(2020.6.10.자)기사를 참조하였다.

4) 참고로 기사 내용을 좀 더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길렌 교수는 “이번 연구 분석의 첫 번째 핵심으로 정부가 국가 재난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자원, 역량, 필수적인 국가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밝히며 “국가 역량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국가들은 집권당과 관계없이 유능한 정부(행정부)를 가지고 있으며 이런 요소를 더 가질수록, 사망자와 감염자가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핵심으로 “다른 어떤 것보다 불평등이 수많은 희생을 낳는다”고 강조하며 “대체로, (팬데믹 대응에) 민주주의와 독재 같은 정치 체제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길렌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이 지나치면 사람들은 식량이 부족하고 의료체계에 접근할 수 없으며, 저축과 다른 미래자원을 준비할 수 없다”고 전하며, “팬데믹 상황에서도, 이들은 계속 일해야 하며 대중교통도 이용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적 거리 두기와 자가 격리는 이들과 먼 이야기이며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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