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의 국부유출과 재벌 경제의 대외의존성 (14)

우리나라 국민들이 알고 있는 상식과는 다르게, 한국은 세계 1위 반도체 생산 국가가 아니다.

반도체에는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반도체)와 메모리반도체 두 종류가 있는데, 시스템반도체는 연산·제어 등의 정보처리 기능을 하며, 메모리반도체는 데이터를 기록·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시스템반도체는 CPU(컴퓨터 중앙처리장치), AP(모바일 중앙처리장치), MCU(자동차 전장시스템을 제어), 이미지센서 등으로 회로설계 등 고도의 정밀기술이 필요한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시장 규모가 2019년 250조 원에서 2025년 약 374조 원으로 매년 연평균 7.6%씩 성장하고 있다.1)

메모리반도체는 휘발성 메모리인 램과 비휘발성 메모리인 롬(낸드플레시)이 있는데 특별한 설계가 필요하지 않고 대규모 설비투자만 있으면 생산할 수 있다. DRAM과 NAND는 한국(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이 세계 매출의 절반 정도를 생산하고 있다.

▲세계 시스템반도체 점유율(%) (자료 : 미국반도체산업협회)
▲세계 시스템반도체 점유율(%) (자료 : 미국반도체산업협회)

시스템반도체는 다시 팹리스(설계 전문기업)와 파운드리(위탁생산)로 구분된다. 팹리스는 ‘CPU를 만드는 미국의 인텔’, ‘스마트폰 반도체 칩을 설계하는 미국의 퀄컴과 애플’, ‘반도체 칩 안에 안정적으로 회로를 구현하는 설계를 담당하는 영국의 ARM’ 등이 주도하고 있다. 한국의 팹리스 경쟁력은 미국, 일본, 유럽은 고사하고 중국에도 뒤진다.

팹리스의 설계도를 가지고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업체가 파운드리다. 2021년 4월 반도체 시장조사업체인 IC인사이츠에 따르면 2020년 세계 반도체 시장은 약 502조 원 규모인데, 이 중 메모리 시장은 33%이고, 시스템 시장은 66%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 총 점유율을 보면, 한국은 21%로 미국(55%)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한국은 종합반도체 기업(IDM)의 비중이 높은 편이나, 설계기업인 팹리스 비중은 글로벌시장의 1%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세계 반도체 회사 2020년 시장점유율(%) (자료 : IC 인사이츠(2021))
▲세계 반도체 회사 2020년 시장점유율(%) (자료 : IC 인사이츠(2021))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의 시스템반도체 세계시장 점유율은 10년간 정체 상태다. 1980년대 반도체 산업 초기에 기업들이 당장 성과가 나오는 메모리 쪽으로 양적 팽창에 치우친 결과 투자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비메모리 쪽은 등한시한 결과로 분석된다. 그나마 파운드리 사업에서는 삼성전자(점유율 17%)가 2030년까지 13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전략으로 글로벌 업계 2위인 대만의 TSMC(점유율 54%)를 쫓아가고 있다.

따라서 한국 언론에서 반도체 생산 세계 1위라는 보도는 엄밀히 볼 때 거짓이다. 한국은 고부가가치 산업인 시스템반도체에서 한자리 수 점유율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시스템반도체 또는 반도체(전체) 세계 1위라고 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이며, 대표적인 업체는 인텔, 애플, ARM 등이다.

한국은 미국, 일본,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 반도체 장비를 수입하고, 반도체 소재인 실리콘, 불화수소 등은 일본에서 수입하여 생산한다. 또한, 주로 팹리스 기업의 설계에 따라 위탁생산을 하므로 대량생산이 아니면 수지가 맞지 않는다.3) 따라서 수출을 많이 할수록 지적재산권 사용료 지불(퀄컴 등 시스템반도체 업체)과 소재·부품·장비 수입도 그만큼 늘어나는 대외의존형 생산구조를 갖고 있다. 2021년 품귀 상태인 차량반도체(시스템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하는 것도 위와 같은 이유이다.

최근 미국은 디지털 산업의 꽃인 반도체 기술의 중국 이전을 막기 위해서 자국 중심 반도체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반도체 생산기지가 한국, 대만, 중국 등 동아시아에 집중되어 지정학적 불안감을 느끼고, 반도체 설계뿐만 아니라 제조까지 미국이 직접 장악하겠다는 의도다. 미국의 요청에 따라 한국(삼성전자, SK하이닉스), 대만(TSMC) 등이 미국에 대규모 파운드리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은 중국과의 거래를 통제하기 위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회사 기밀인 정보공개를 압박하였다. 대만 TSMC는 이를 거부하였지만 자주권이 약한 한국 기업들은 미국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본문 주석]

1)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시스템반도체산업 현황 및 전망’, 2020.12.28

2) 반도체 회사는 크게 종합반도체(IMD, Iitegrated Device Manufacturer), 파운드리, 팹리스로 구분할 수 있다. 종합반도체 회사는 반도체 설계기술과 생산설비 모두 가진 회사를 의미하는데, 한국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매그나칩이 있다. 해외업체로는 인텔, 마이크론, 텍사스 인스투르먼트, 웨스턴 디지털, NXT반도체 등이 있다. 한편 반도체 설계 회사인 팹리스는 퀼컴, 애플, ARM, Nvidia 등이 있다.

3) 한국은 거대한 자본을 투입하여 대형설비를 구축하고 위탁생산을 하므로 대량생산체계가 적합하다. 메모리반도체 중심이므로 자동차 생산 5위 국가이지만 차량용 시스템반도체는 생산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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