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의 국부유출과 재벌 경제의 대외의존성 (13)

기술무역이란, 특허 및 사용료, 발명, 노하우의 전수, 기술자문, 컨설팅, 연구개발 서비스 등을 국가 간 거래하는 지적재산권을 말한다.

한국은 선진국을 모방한 추격형 전략으로 중위기술에 도달하였지만, 기술무역수지는 매년 40억 달러 수준(4~5조 원)의 적자를 기록하여, 1997~2019년 동안 누적적자가 882억 달러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기술무역 추이 (단위: 백만 달러, 자료 : 한국은행,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도자료(2020.12.22.))

한국은 최근 기술수출이 늘어나 기술무역 적자 폭이 조금씩 감소하고 있으나, 여전히 기술무역수지비가 2019년 0.77로 선진국 기준인 1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매뉴얼을 보고 시공하는 실행단계는 강하지만, 최초로 밑그림을 설계하는 개념설계 영역이 취약하여, 로열티를 주고 관련 기술을 수입하고 있다.

* 기술무역수지비 = 기술수출/기술도입. 기술무역수지비가 1이상이면 흑자이다.

기관유형별 기술무역 현황을 보면, 아래 표에서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은 기술무역수지비가 0.94로 적자폭이 낮은데, 대기업은 0.64로 적자폭이 높다. 실제 2019년 기술무역수지가 –41억 달러인데, 이중 대기업이 -37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나머지 기관들은 기술무역 규모 자체가 작다. 중소·중견기업들은 대기업에 종속되어 독자기술이 별로 없고 대기업의 설계도면대로 생산하여 납품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가운데 핵심기술 보유는 대기업의 관할권이므로 기술수입 비중도 대기업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기관유형별 기술무역 현황(2019년) (단위: 백만달러, %, 자료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도자료, 2020.12.22.)
▲기관유형별 기술무역 현황(2019년) (단위: 백만달러, %, 자료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도자료, 2020.12.22.)

한국 기업들은 정답이 있는 객관식 문제에는 강하지만, 문제의 근원과 기본 개념을 묻는 주관식 문제에는 약하다. 이는 단기성과에 급급하고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기업 문화에서 기인한다. 창조적 기술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를 통해 장기간 축적된 암묵지와 같은 능력, 맨바닥에서 최초 설계를 할 수 있는 문제해결 능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 핵심기술을 해외에 맡기게 되면, 설계를 담당한 나라의 기업에서 공급하는 자재와 장비를 쓰도록 개념설계가 작성되어 있어 소재·부품·장비까지 계속 수입하게 된다.

글로벌 공급사슬을 보면, 크게 미국이 설계와 기획, 독일·일본이 부품·소재와 공작기계, 한국·대만이 범용 중간재 생산, 중국이 최종 조립을 맡는 기술 분업구조가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은 산업화시대에 소재·부품·장비를 선진국에서 수입하여 조립 후 중간재 또는 최종재를 수출해 왔고, 디지털시대에는 해외에서 지적재산권을 라이선스하여 제품과 서비스를 국내외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주로 소재·부품·장비는 일본과 독일에, 소프트웨어는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이 2001년 부품·소재 전문기업육성법을 제정한 후,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2001년 240조 원에서 2017년 786조 원으로 생산이 3배 늘었고, 동기간 수출은 5배가 되었으며 무역수지도 흑자로 전환하는 등 외형은 크게 성장하였다. 그러나 이면에는 여전히 낮은 기술자립도, 만성적 대일 무역적자 등의 구조적 취약성이 존재한다.

▲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한국무역협회의 스마트 제조기술 및 자동화장비ㆍ부품 중소기업의 수출 확대를 위한 비대면 화상 수출상담회를 열리고 있다. [사진 : 뉴시스]
▲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한국무역협회의 스마트 제조기술 및 자동화장비ㆍ부품 중소기업의 수출 확대를 위한 비대면 화상 수출상담회를 열리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소재·부품·장비의 대일 의존도를 보면 2018년 대일 전체 무역적자 241억 달러 중 소재·부품·장비에서의 적자가 224억 달러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결과, 주요 산업의 중간투입에서 국산화율이, 제조업 전체는 54%이며, 수출주도 산업인 반도체는 27%, 디스플레이는 45%로 매우 낮다.

정만태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1)은 성장산업에서조차 국산투입 비율이 낮고, 대외의존도가 높은 것은 대량생산기반 제품구조와 주요 소재·부품·장비를 해외에 의존하는 산업구조의 취약성에 기인한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그간 해외공급망에 치중했고 기술자립 노력이 미흡했다고 것이다.

한국은 기술무역수지에서 특히 전기·전자기술 분야의 적자 폭이 가장 크다. 아래표를 보면, 총 41억 2천억 달러 기술무역 적자 중 전기전자분야 적자가 40억 9천억 달러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한국이 전기전자, 정보통신 분야에서 하드웨어 인프라는 잘 갖추어져 있지만, 원천기술과 소프트웨어 핵심기술은 주로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외에 농림수산, 섬유, 화학, 소재 등 분야의 기술무역에서도 수입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돼, 기초과학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산업별 기술무역 현황(2019) (단위: 백만달러, %, 자료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도자료, 2020.12.22.)
▲ 산업별 기술무역 현황(2019) (단위: 백만달러, %, 자료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도자료, 2020.12.22.)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의 기술무역수지비는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0.77로 여전히 적자상태다. 반면 기술 선진국인 미국은 1.47, 일본은 6.55, 독일은 1.34로 1보다 커서 기술을 수출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과학기술 자립도가 낮다는 의미로, 과학기술분야 성과가 산업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래 표를 보면, 한국은 선진국에 대해서 기술무역 적자이며, 개도국에 대해서는 기술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 대한 기술무역수지가 –46억 달러로 전체 기술무역수지 –41억 달러보다 크다. 반면 베트남, 중국, 인도 등 개도국에 대한 기술무역 흑자가 늘어나 전체 적자 폭은 감소되고 있다.

▲ 한국의 국가별 기술무역 현황(2019년) (단위: 백만달러, %, 자료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도자료, 2020.12.22.)
▲ 한국의 국가별 기술무역 현황(2019년) (단위: 백만달러, %, 자료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도자료, 2020.12.22.)

한국의 재벌 대기업들이 외국자본에 매년 약 4~5조 원의 지적재산권 사용료와 약 20조 원의 고배당을 지불하면서도 성장할 수 있는 비결은 ‘세제 혜택’, ‘환율 조정’, ‘연구개발 지원 및 인프라 구축’, ‘정책금융과 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 등의 국가적 지원이 있고, 중소 납품업체와 비정규직 사용 등으로 생산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독과점 시장’, ‘부품단가 후려치기’, ‘비정규직 사용과 장시간 노동’, ‘기계설비 위주 대량생산체제와 단순노동’ 등으로 비용을 줄이게 되면, 수출 기업은 저가 수출로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본문 주석]
1) 정만태,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4대 강국 단상”, 기계설비신문(20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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