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사로 되돌아보는 통일원로의 삶(2)

올해는 유난히 많은 통일원로들이 세상을 떠났셨다.

연말, 다시 한 번 그분들의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이 수고해 주셨다.

▲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 중인 임기란 어미니 [사진 : 민중의 소리]
▲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 중인 임기란 어미니 [사진 : 민중의 소리]

임기란 어머니는 지난 6월 30일 향년 91세의 나이로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7월1일.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양심수의 어머니 故 임기란 여사 추모의 밤>이 거행되었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하면 양심수의 어머니 임기란 상임의장을 떠 올린다.
그 분이 별세하셨다.

가족에게는 자애로운 어머니였지만,
고난 받는 사람, 약자를 위해 특히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조국통일에 살아온 길이 너무도 아름답고 빛났던 어머니이시다.

민중은 정의를 지향해서 힘을 모은다.
그리고 역사는 정의로운 앞길을 가로 막는 일체를 용납하지 않는다.

바로 그 정의로운 앞길을 가는 단체 중 하나가 민가협이고 그 길을 향도(嚮導)한 분이 임기란 어머니이시다.
어머니가 향도한 길은 무수히 많지만 그중에서도 양심수석방과 국가보안법철폐의 <목요 집회>와 <비전향장기수 송환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목요 집회>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탑골공원에서 1993년 9월부터 매주 목요일 거의 빠지지 않고 유신독재시절부터 각종 고문 조작 사건으로 구속된 통일운동가, 노동자, 농민, 빈민, 청년 학생 양심수들을 석방하기 위해 국가보안법 철폐! 양심수 전원 석방! 등을 외치며 집회를 열어왔다.

<목요집회>는 민가협의 창립 이념이자 주된 투쟁 사업이다.
통칭 <어머니>로 불리는 회원들은 평범한 가정의 주부에서 거리의 민주·통일투사로 우뚝 서며 지금도 각종 집회나 기자회견장에 보랏빛 수건을 두르고 열정적으로 현장을 누비며 <민족해방>과 <민중해방>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 2017년 11월 20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23회 불교인권상’을 받고 민족민주운동 단체들에게 축하 받는 임기란 어머니 [사진 : 필자 제공]
▲ 2017년 11월 20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23회 불교인권상’을 받고 민족민주운동 단체들에게 축하 받는 임기란 어머니 [사진 : 필자 제공]

<비전향장기수 송환운동>은 1989년 사회안전법이 폐기되면서 풀려난 인민군 종군기자 이인모 선생의 송환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1992년 양심수후원회 제4차 총회에서 "인민군 종군기자 이인모 노인 송환운동"을 특별사업으로 채택하고 기독교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천주교, 불교 등 인권·종교 단체들과 <이인모 노인 송환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1993년 3월 17일 송환을 이루어냈다.

이후 25여 인권·종교·사회단체로 구성된 <비전향장기수 송환추진위원회>에 주도적으로 참가하여 1999년 2월25일과 12월31일 마지막 출소한 비전향장기수 21명을 포함한 63명의 비전향장기수를 6‧15공동선언 제3항에 의거 마침내 2000년 9월 2일 북녘 고향으로 송환하게 하였다.

그리고 지금도 비전향장기수 2차송환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비전향장기수 송환운동>은 6‧15공동선언 합의사항이면서 판문점선언에서의 ‘인도주의 문제 해결’ 합의이기도하다. 
또한 헌법과 세계인권선언·국제인권협약이 규정한 ‘거주이전의 자유’ ‘자국으로 돌아갈 권리’ 등 인간의 기본인권 보장문제인 것이다.

▲ 임기란 어머니 영정 [사진 : 필자 제공]
▲ 임기란 어머니 영정 [사진 : 필자 제공]

존경하는 임기란 어머니!

조국은 기억할 것입니다!
어머니의 이름과 걸어온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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