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책임자, 원청책임자 처벌…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론 불가능
세월호 참사·가습기살균제 참사 등 ‘사회적 참사’ 예방 내용도 담아
2일에서야 국회 법사위 공청회 진행… “시간이 없다” 중대재해법 제정 촉구

대한민국 연간 산재 사망자 수 2400명.
OECD 가입국가 중 산재사망 1위 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대한민국.

산재사망을 끝내야 한다며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을 발의하는가 하면, 여야 의원들이 중대재해 기업 처벌을 위한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지난 9월 노동자와 시민 10만 명도 국민동의청원 방식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을 발의했다.

10만 명의 국민동의로 입법발의 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회부된 이 중대재해법은 발의된 지 몇 달이 지난 2일에서야 공청회를 열었지만 심의 일정은 기약이 없는 상태다. 그러는 사이 산재사망은 멈추지 않았다. 비슷한 원인과 사고로 죽지 않았어야 할 죽음들이 반복해서 일어났다.

2020년 11월 19일 인천 남동공단 화장품 공장 화재, 노동자 3명 산재사망
2020년 11월 24일 포항 포스코 광양제철소 화재, 노동자 3명 산재사망
2020년 11월 24일 경기도 화성 폐기물 처리업체 파쇄기에 끼여 노동자 산재사망
2020년 11월 28일 한국남동발전 영흥화력본부 화물노동자 산재사망…

▲ 3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 지난달 28일 한국남동발전 영흥화력발전소에서 추락해 숨진 화물노동자 고(故) 심장선 씨 유족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국무총리,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 장관에게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는 공문을 전달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 뉴시스]
▲ 3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 지난달 28일 한국남동발전 영흥화력발전소에서 추락해 숨진 화물노동자 고(故) 심장선 씨 유족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국무총리,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 장관에게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는 공문을 전달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 뉴시스]

우리는 많은 죽음을 기억한다

2016년 5월28일 구의역 김 군의 산재사망. 앞서 2013년 성수역, 2015년 강남역 스크린도어 산재사망에 원청인 서울메트로(서울교통공사)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결국 죽음은 반복됐다. 19살 청년 노동자 사망에 원청 사장에 대한 처벌은 고작 범금 1000만 원이었다.

이것 말고도 우리는 많은 죽음을 기억한다. 제대로 된 처벌이 없었다는 것도 기억한다.

올해 4월29일, 이천 물류창고 화재는 38명의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다단계 하도급, 공사기간 단축을 위한 무리한 작업, 안전관리자 부재 등이 원인이었다. 2008년 1월에 있었던 40명의 사망자를 낸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고와 판박이처럼 닮은 사고였다. 이 사고에 내려진 처벌은 벌금 2천만 원.

2017년의 5월1일. 세계노동절이던 이날도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로 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31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안전조치를 무시하며 구조적인 참사를 발생시킨 삼상중공업은 무죄였다.

2017년 ‘최악의 살인기업’ 현대중공업. 1974년 창사 이래 46년 동안 467명의 산재사망을 낳은 현대중공업에선 올 상반기에도 5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 했다. 매월 한 명 꼴로 산재사망이 발생해도 현대중공업은 무혐의 처분, 1500만 원 수준의 벌금만 냈을 뿐이다.

이렇듯, 현행 산안법은 “산업 안전 및 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그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하여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을 목적(제1조)으로 함에도 기업과 경영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할 수 없는 법이었다.

▲ 지난 5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군 4주기 추모.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지난 5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군 4주기 추모.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2018년 12월10일, 태안화력 김용균 청년 노동자의 사망 후 유족, 노동계, 시민사회단체들의 투쟁은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전면 개정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그러나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40명이 목숨을 잃은 중대재해를 낳아도 경영책임자는 벌금 2천만 원만 내면 되는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는 동안, 임기응변식 산안법을 개정해 나가는 동안, 원하청 구조에 숨은 진짜 책임자인 기업과 경영자는 처벌을 피해갔다.

그래서 “진짜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며, “산안법 개정이 진짜 책임자를 처벌하고자 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대신할 수 없다”며 10만 명의 노동자·시민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다.

“처벌의 범위가 중요하다”… 경영책임자, 원청책임자 처벌해야

19대, 20대 국회에서도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 법률(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발의된 바 있다. 그러나 법안 통과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심의조차도 없었다.

현장 노동자 당사자들을 비롯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직업환경의학과 의사 142명, 그리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변호사들까지. 국회의원들이 내놓은 법안이 아닌, 이들이 말하는 10만 동의청원으로 달성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포인트는 이거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처벌 수위가 아니다. 기업의 최고책임자, 원청책임자, 그리고 기업 자체에 책임을 묻는다는, 처벌의 범위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142명의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은 “지금도 기업 최고경영진의 과실이 입증될 수만 있다면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하여 책임을 물을 수는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중간에 있는 책임자가 최고경영진의 의무를 대신하고 있다는 이유로, 실질적인 경영책임자는 법망에서 빠져나간다”면서 “산업재해나 사회적 참사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책임자가 제대로 처벌을 받아야 효과적인 안전조치가 실행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대형참사가 발생하면 기업은 언론을 향해 허리를 굽혀 사죄하고, 경찰과 노동부는 구속과 기소를 밝히고, 정부는 수십 페이지 대책을 발표하고, 정치권은 입법을 약속하는 등 ‘짜여진 행동’이 반복된다.

위험의 원인을 제공한 기업과 기관, 그리고 그 의사결정권자는 “안전보건과 관련된 권한을 ‘위임했다’, 그래서 ‘일일이 알 수 없다’”라는 이유를 들며 처벌망을 빠져나갔다. 이렇게 ‘꼬리 자르기’로 현장 책임자만 처벌되는 것이 대다수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1,714건의 산업재해 판결을 분석한 ‘2018년 고용노동부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처리된 13,187건 중 구속사건은 1건, 정식기소는 613건(4.64%)에 불과하고, 약식기소는 10,934건(82.91%)을 차지했다. 또, 산안법 위반 재범률은 97%로 일반 형법 범죄의 재범률인 43%에 비해 2배가 넘으며, 같은 사업장에서 재해가 반복돼 왔다. “기존 산안법이 산재의 원인 제공자인 의사결정권자와 기업 등을 가볍게 처벌하거나, 실제 처벌받아야 하는 사람이 법망을 피해감으로써 사망이 반복됨이 실제로 입증되고 있는 셈”이라고 민변은 지적했다.

▲ 민주노총이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산재로 사망한 99인의 노동자 영정을 두고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제정을 위한 집중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민주노총이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산재로 사망한 99인의 노동자 영정을 두고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제정을 위한 집중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2019년 산재 사고 사망자 855명을 사고 원인별로 보면, [떨어짐(347명, 40.6%), 끼임(106명, 12.4%), 부딪힘(84명, 9.8%), 깔림·뒤집힘(67명, 7.8%)]과 같이, 재래식 사고가 604명(70%)를 차지한다. 수십 개의 안전장치 중 단 하나도 작동하지 못한 것으로 인해, 손쉽게 예방이 가능한 사망사고가 매일 2.34건씩 발생했다는 의미다.

대표이사를 비롯한 최고경영진 등 의사결정권자, 달리 말하면 실질적 원인제공자에 대한 처벌에 대해 ‘안전보건업무를 총괄하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를 두고 있는 사업장에서 그 책임자가 실질적으로 권한행사를 하는 한 최고경영진 책임이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있다.

산안법 위반에 대한 처벌은 사망사고에 이르게 된 의무의 존재와 의무불이행을 구체적으로 포착해 그 의무를 지는 자가 누구인지, 즉 어느 결재선까지 권한위임이 되는지를 되짚어 올라간다. 그러나 발의된 중대재해법안은 “사망사고의 원인제공에 있어 최고경영진의 의사결정들이 개입되었다면, 그에 따른 책임도 지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하고 있다.

앞선 사고들은 “기업의 안전보건관리 체계가 무너짐에 따라 단 하나의 제동장치조차도 작동하지 않아서 발생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사망사고에 내재한 구조적인 원인을 포착해 그에 따른 형사책임을 지우는 것이 합당하고, 그렇다면 그 형사책임을 지는 자는 최고경영진 등 의사결정권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국의 기업살인법은 최고경영진의 책임을 직접적으로 묻고 있다.

지금도 산안법상 세계 최고 형량을 준다고?

산안법상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만으로 중대재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너무 자명하다.

중대재해법을 당연히 반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국회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에 대한 경영계 의견’을 내면서 한국은 ‘산안법상 이미 세계 최고 형량’이라고 주장했다.

2003년 ‘기업살인법’이 만들어진 캐나다와 호주. 캐나다의 ‘기업형사책임법’은 다치면 10년 징역, 사망 시 무기징역 처벌이 가능하다. 호주 ‘산업살인법’은 사고 유발 기업 책임자를 최고 25년형까지 처벌할 수 있다. 2007년 기업살인법을 제정한 영국에선 2011년 ‘이튼 앤 코츠월드 홀딩’이란 회사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났고, 회사는 385만 파운드의 벌금을 받았다. 이 385만 파운드라는 금액은 기업 연 매출액의 250%에 해당했다.

대한민국의 산안법은 안전조치나 보건조치 위반으로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업주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2018년 기준 5년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은 경우 90.72%가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을 받아왔다.

10만 국민동의로 발의된 중대재해법엔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의무를 위반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위한 사회적참사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사진 : 뉴시스]
▲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위한 사회적참사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사진 : 뉴시스]

사회적 참사 처벌, 징벌적 손해배상도 담아

10만 동의청원으로 발의한 중대재해법의 또 하나의 특징은 ▲사회적 참사에 관한 처벌 ▲특수고용 노동자 등 변형된 근로관계의 당사자가 피해자인 경우에 관한 처벌 ▲공무원의 관리감독 책임 ▲징벌적 손해배상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먼저,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 대구 지하철 참사, 삼풍백화점 참사와 같은 사회적 참사로 인한 시민들의 죽음에도 원인 제공자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2003년 2월 대구지하철 참사로 192명 사망, 146명 부상 :  대구지하철 공사 사장 무죄, 법인 벌금 1천만 원

2011년 4월 알려진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 1553명 사망, 피해 신청자만 6892명 : 가해업체 옥시 처벌 면제

2017년 3월 스텔라데이지호 침몰로 22명 실종 : 선사 ㈜폴라리스 쉬핑 불기소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참사까지….

단순히 처벌의 대상을 확대하고 처벌의 수위를 강화하고자 하는 법이 아닌, 안전에 관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 안전을 소홀히 한 결과 사망, 상해의 피해를 발생시킬 경우 그에 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를 명확히 해 참사를 예방하자는 내용이다.

또, 종래의 근로관계의 틀을 벗어나 근로관계의 형태를 불문하고 사망사고의 원인 제공자를 찾아 기소와 처벌이 가능하게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기존의 산안법은 다단계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안전조치, 보건조치 의무위반에 대해 제한적인 형사책임만 물어왔고, 근로기준법상 근로관계에 있는 근로자가 피해자인 경우에만 책임을 묻게 했다.

산안법 개정만으로는 근로관계에 있지 아니한, 그리고 산안법상 의무위반이 아닌 안전보건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관한 처벌 및 제재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죄의 처벌사례를 보면 일정한 경우 원청 사업주나 특수고용 노동자를 사용하는 자의 책임을 묻고 있다. 그러나 이 중대재해법은 일반 형법으로 물어왔던 형사책임을 보다 분명하게 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산재 사건과 사회적 참사의 보이지 않는 원인에는 담당 공무원의 부실한 관리·감독이 있고, 심한 경우 부정한 청탁과 뇌물이 오간 정황이 종종 발견돼 왔다. 중대재해법안은 산재와 사회적 참사의 원인에 있어 공무원의 부실한 관리·감독이 드러나는 경우에 그 책임을 분명히 묻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내용은, 산재와 사회적 참사의 경우에도 비슷한 참사의 반복을 막기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이 중대재해법안은 형사처벌이 이뤄진 경우 영업정지나 허가취소까지 가능하도록 정하고 있으며, 대표이사를 비롯한 관련 종사자에게 정기적인 교육을 받게 하거나, 공무원의 정기적인 시설점검 및 현장감독을 수인하도록 하는 조항도 두고 있다.

▲ “국민동의청원 10만의 요구, 이제 국회가 답할 때다.” 지난 9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촉구 퍼포먼스. [사진 : 뉴시스]
▲ “국민동의청원 10만의 요구, 이제 국회가 답할 때다.” 지난 9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촉구 퍼포먼스. [사진 : 뉴시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산안법 개정안이 제출되고 이로써 중대재해법이 무력화되는 것은 아닌지, 법안 심의가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시간이 없다. 노동자의 죽음 이제는 끝내야 한다”면서 10만 노동자 시민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즉각 입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야 의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발의해 놓은 산안법 개정안, 중대재해 기업 처벌 법안이 10만 국민의 동의청원으로 발의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며, 국회 논의에서 10만 국민의 의지에 담긴 법안의 포인트를 잘 짚고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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