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어떻게 후퇴하고 있는가… 국회 논의 들여다보기
여의도 감싼 유가족, 노동자, 시민들의 투쟁열기

여야가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오는 8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처리를 합의했다. 중대재해 처벌을 조금이나마 면제해 주려고 산재 피해 유가족, 현장 당사자들, 그리고 10만 국민의 동의로 발의한 중대재해법에 손을 대며 시간을 끌다가 2020년 연내 처리를 불발시킨 국회였다.

경영계의 요구를 조금이라도 더 담기 위해 앞장서거나, 이를 위해 버텼던 국민의힘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는 중대재해법의 온전한 제정을 막는 개악안을 내기도 했다. 여당 의원들조차 설득할 수 없는 내용의 개악안이었다.

연간 산재사망자 수 2400명. 더 이상의 중대재해는 안된다는, 산재공화국을 벗어나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을 담아 10만 국민동의 청원으로 발의된 중대재해법.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두 달이 넘도록 방치되자, 국회 상임위에 소속된 국회의원들에 기대어 법안 발의를 청원하는 것이 아닌 국민의 동의로 중대재해법을 만들기 위해 국민동의 청원을 시작한 때처럼,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와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씨, 그리고 100만 노동자의 조직 민주노총과 시민들이 힘을 모아 온전한 중대재해법 제정을 위해 투쟁에 나섰고, 그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 중인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 강은미 정의당 의원,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 이한빛PD 아버지 이용관 씨. [사진 : 뉴시스]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 중인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 강은미 정의당 의원,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 이한빛PD 아버지 이용관 씨. [사진 : 뉴시스]

지난 12월11일 국회 본청 앞에서 시작된 유가족들의 단식 농성장을 찾아 “임시국회 내 처리”를 약속했던 여야 대표들과 의원, 국무총리와 정부 관계자까지. 그러나 ‘처리’만을 약속하고 갔을 뿐, 10만 국민동의 법안의 취지를 담을 태도는 아니다.

12월 정기 국회에서 논의조차 하지 못한 중대재해법은 12월 말 임시국회 논의를 시작으로 5일 간 회의를 진행해 왔다. 5일, 6일 이어진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 소위까지의 논의를 보면 목숨을 걸고 단식하며 온전한 중대재해법 제정을 호소하고 있는 이들이 청원한 법안 내용과 달리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회의를 하면 할수록 ‘누더기’ 법안이라는 비판은 과언이 아니다.

내가 김용균, 내가 이한빛

조금이라도 법안의 후퇴를 막았던 사람들은 유가족이었다. 지난달 28일 법무부·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의 의견을 담은 중대재해법 정부안은, 중대재해를 ‘동일한 원인으로 또는 동시에 2명 이상 사망한 재해’로 규정하거나, 원안의 ‘1인 이상 사망’을 유지하되 형량을 낮추는 방안이 담겨있었다. 태안화력 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목숨을 잃은 김용균 노동자, 혼자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 사망한 구의역 김 군 사건은 중대재해에 해당하지 않게 된다.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29일 법안소위에 회의장을 찾아 이런 엉망인 정부안을 강하게 질타했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를 2명 이상 재해로 한정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했고, 여야는 ‘1인 이상 사망’으로 규정한 원안을 따르기로 했다. 이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씨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중대재해법 ‘발목잡기’가 아닌 적극적으로 임하라고 소리 높였다. “노동자를 고용하는 정부와 지자체도 사용자로서의 책임과 처벌이 필요하다”면서 경영책임자의 범위에 지방자치단체장·중앙행정기관장을 제외한 정부안을 막는데도 힘을 썼다. 단식 19일 차, 기력이 떨어져 가는 상황에서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이 자식을 대신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받치고 있는 것이다.(6일 현재 유가족 단식 27일 차)

“모든 개악 내용은 자본과 재계의 요구”

여기에 더해 정부안엔 ▲50인 미만 사업장 4년 유예 ▲100인 미만 사업장 2년 유예 ▲손해배상의 책임은 손해액의 5배 이하로 한정 ▲5억원 이상 벌금형을 10억 원 이하로 축소 ▲원청·발주처의 책임 조항 삭제 등 처벌을 미루거나 낮추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사고 이전 5년간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수사기관 등에 의해 3회 이상 확인되거나 사업주가 진상조사를 방해하는 등 사건 은폐를 지시한 경우에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는 ▲인과관계 추정조항 삭제 등이 담겨겼고, ▲공무원 면책 범위는 ‘결재권자인 공무원 처벌’에서 ‘형법상 직무유기죄를 범한 경우’로 수정안을 냈다.

“지난 ILO 핵심협약 비준을 핑계로 개악한 노조법도 정부안이다. 이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온전한 제정을 막는 개악안도 정부안이다. 아니 돌아보니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도 이 정부에서 벌어졌고 주52시간 적용유예도 이 정부에서 이뤄졌다. 모든 개악의 내용이 자본, 재계의 이해이고 요구다.” 정부 부처 협의안에 대해 민주노총이 낸 일침이다.

이런 정부안은 지난달 29일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경영계(경총)가 진술한 “(처벌을)다수의 사망자 발생으로 제한해 달라”, “고의나 중대과실이 있을 때만 형사처벌이 되도록 해달라”, “형벌의 하한선을 삭제해 달라”, “대기업도 2년간 적용유예 해달라”는 요구와 맥을 같이 하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안전 때문에 눈물짓는 국민이 단 한 명도 없게 만들겠습니다.(2017.4.13.)”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세월호 3주기 추모 ‘생명 존중 안전사회를 위한 대국민 약속식’에 참석해 작성한 안전 다짐 글이 무색해지기만 할 뿐이다.

유가족과 노동자들이 2020년 연말 엄동설한 새밑한파까지 이겨내며 단식으로, 농성으로 목숨을 걸고 싸울 때, 연말 연초 연휴를 보내고 온 정치권은 또 한번 경영계가 환영할 만한 안을 내놨다. 정부는 법사위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까지 법 적용을 2년 유예하는 의견을 제출했다. 100인 미만 사업장 유예에서 300인 미만 사업장 유예까지 유예 대상이 넓어졌다. 전국에 100인 미만 사업장이 99.5%인 현실, 산재사고 사망자의 86.1%가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현실에서 2년간 적용을 유예하는 것도 모자라, 유예 대상까지 더 넓힌 것이다.

▲ 사진 : 뉴시스
▲ 사진 : 뉴시스

10만 국민이 말하는 ‘중대재해법 7대 원칙’

10만 국민의 동의로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7대 원칙’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첫째, 재발방지를 위해 말단관리자와 노동자 처벌에서 경영책임자 처벌로

둘째, 기업의 비용으로 처리되는 벌금형이 아닌 하한형이 있는 형사처벌 도입

셋째, 소규모 하청업체 처벌이 아닌 원청 처벌, 공기단축 강요하는 발주처 처벌

넷째, 산재사망과 시민재해 모두 포함,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다섯째, 재난사고의 주요 원인인 불법적 인허가에 대한 공무원 책임자 처벌

여섯째, 경영책임자 실질 처벌 위해 반복적 사고 및 사고 은폐 기업에 대한 인과관계 추정 도입

일곱째, 사망사고와 직업병, 조직적 일터 괴롭힘, 50인 미만 사업장 등 사각지대 없는 적용

10만 국민동의로 발의된 중대재해법의 내용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 그리고 손해액의 10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할 책임, 중대재해를 야기한 해당 공무원과 공무원 책임자 1년 이상의 징역, 3천만원 이상 3억원 이하의 벌금, 인관관계 추정(사고 이전 5년 동안 3회 이상 안전·보건의무를 위반, 재해 관련 증거 인멸 및 현장 훼손 등의 경우 사업주, 법인, 기관에 대한 인과관계 추정)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6일까지 계속되는 법안소위에선 중대재해 처벌이 후퇴하고 퇴색하는, ‘누더기 법안’이라 지탄받는 내용들이 논의됐고, 아직 논의되고 있다.

어디까지 후퇴할 것인가

사업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영책임자 처벌을 명확히 하지 않고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및)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규정해 책임을 떠넘길 수 있도록 열어놓는 내용의 논의다.

중대재해 처벌 수위도 낮춰졌다. 5일 여야는 중대재해로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 징역 1년 이상, 벌금 10억원 이하로 하는 것으로, 징역형의 하한선을 낮췄고, 벌금엔 하한이 없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2년 이상 징역 또는 5억원 이상의 벌금’, 그리고 정부 협의안의 2년 이상 징역 또는 5천만원 이상 10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서 더 완화된 기준이다. 법인 처벌 관련 조항도 1억 이상 20억 이하 벌금에서 50억 이하 벌금으로 상한선을 높였지만 하한선을 없앴다. 10만 국민들의 법안엔 그동안 검찰과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하한형 도입을 주장했지만 후퇴와 후퇴를 거듭한 것이다.

또,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하한선도 폐지했다. 손해액의 5배 이하로 해놨을 뿐 하한선을 없앤 것 역시 박주민 의원 안(손해액의 5배 이상)보다 후퇴한 것이다.

“발주만으로 안전보건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과잉”이라며 발주처가 공기단축 등을 지시했을 때 그 책임을 지도록 하는 조항을 삭제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발주처의 공기단축 요구에 의한 혼재작업 투입으로 발생한 산재사고, 이천 한익스프레스 사망사고에서 공기단축을 요구한 발주처의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는 것이며, 2017년 설계를 변경해 삼성중공업의 크레인 참사를 낳은 발주처의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 제3자에게 임대·용역·도급을 행한 경우 제3자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공동으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의무를 지도록 하는 조항을 “사업주나 법인 또는 그 기관이 그 시설, 설비 등을 소유하거나 그 장소를 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에 한하도록 하자는 것은, 원청의 업무지시가 있었음에도 본사가 현장과 떨어져 있다면(사외하청) 처벌을 면제해 준다.

민주노총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안전보건문제를 사실상 좌지우지할 수 있는 관계에는 임대, 용역, 도급이라는 다양한 형식으로 위치하는 ‘진짜 원청’이 있다. 이들을 처벌할 수 있어야, 이들이 안전보건조치를 위한 자신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며 원청과 발주처 처벌을 강조했다.

▲ 사진 : 뉴시스
▲ 사진 : 뉴시스

공무원 처벌과 인과관계 추정

공무원 처벌에 있어서, 공무원이 불법·부당하게 인·허가를 내주고 현장에서 사고가 나 ‘형법상 직무유기죄를 범한 경우’ 처벌하자는 것에 대해 “이는 공무원의 직무유기가 아닌 불법, 부당행위”라는 규탄이 들린다. 그러나, 국토부, 교육부, 지자체장 등 관련 부처에서 적용제외를 요청하고 있다. 불법 부당 행위라는 규정이, 그리고 이런 공무원 처벌이 과한 것일까?

“형사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할 소지가 있다”며 인과관계 추정 조항을 삭제하자는 의견을 낸 법무부. 국회 논의도 이에 맞춰지고 있다. 그러나 이미 ‘환경범죄 등의 단속 및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에서 인관관계 추정에 대한 조항이 담겨져 있다. “사고 발생 시 무조건 유죄로 추정하자는 것이 아닌, 반복적 법 위반과 증거 은폐, 조사방해 등으로 중대재해를 방치한 책임자들에게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보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를 삭제하고 가중처벌 조항을 두자는 주장은 “전형적인 불타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리고 10만 국민들은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가 아닌 “사업장 차등없이 전면 적용”을 요구한다. “사람의 목숨에 사업장 규모별로 차등이 있을 수 없다. 소규모사업장에서 안전보건조치를 당장 적용하기 어려울수록, 이를 어떻게 가능하게 할지 정부의 예산과 인력 지원 계획을 시급히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6일 회의에서 5인미만 사업장은 처벌대상에서 제외됐고, 사업장별 적용유예 대상은 계속 넓어지고 있다.

▲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단식 농성장을 방문해 농성 단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단식 농성장을 방문해 농성 단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여당 의원들도 정부안 중심으로 논의하지 않을 만큼 개악안을 내놓은 정부, 단일안도 내지 못하고, 중대재해법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으면서 시간 끌기 했던 더불어민주당, 그동안 저지른 중대재해 범죄는 이미 잊은 채 중대재해법이 ‘기업을 옥죈다’, ‘사업하지 말란 소리냐’, ‘가혹한 처벌’이라며 엄살 아닌 엄살을 부리는 경영계를 대신해 법사위 개회도 못하게 방해한 국민의힘, 소상공인을 비롯해 기업이 다 죽을 것처럼 거짓 여론에 만드는데 힘을 쏟았다.

이렇게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거대 여당과 국민의힘까지 정치권이 똘똘 뭉쳐 면제법을 논의할 때, 제대로 된 중대재해법 제정의 목소리를 내고, 후퇴하고 후퇴하는 법안을 막은 것이 유가족이고 노동자고, 국민들이었다. 오늘(6일)로 유가족의 단식은 27일 차가 되었고, 먼저 단식을 시작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식은 한 달이 넘었다. 양경수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도 지난 12월29일부터 온전한 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에 함께 했다. 12월23일 1000인 단식, 30일 1만인 단식, 그리고 임시국회 종료를 얼마 남겨두고 법사위가 속개되는 5일, 중대재해법을 발의한 국민들의 10만 동조단식까지. 노동자가 더 이상 죽지 않게, 목숨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단식에 임한 사람들이다.

6일부터 임시국회가 종료되는 8일까지는 국회 앞을 비롯해 전국 민주당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48시간 비상행동에 돌입했다.

48시간이라는 긴박한 싸움이 남았고, 8일 임시국회 종료가 마지막이 아니다. “임시국회 내 처리”만 읊으며 노동자 시민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국회를 향한 10만 명의 입법 발의자와 노동자 시민들의 투쟁은 계속될 예정이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