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질 수 없다” 갑을오토텍 가족대책위 이야기

“갑을자본 박살투쟁! 결사투쟁!”

구호 소리는 현대자동차 협력업체 갑을오토텍 공장 하늘에 울려 퍼졌다. 마치 엠넷 ‘쇼미더머니’의 힙합뮤지션이 랩을 하듯 박자가 딱딱 맞는데다 ‘그루브’마저 살아 있는 이 외침은 파업 사수투쟁을 벌이는 노동자들의 것이 아니다. 공장 정문 밖에 모인 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가 외치는 구호였다.

5일 오후 4시. 섭씨 35도에 이르는 폭염은 마치 온몸을 땀으로 녹여 버릴 것처럼 기승을 부렸다. 60여명의 가족들이 ‘폴리스라인’이라 적힌 노란색 분리대 뒤쪽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그들 뒤로는 푸른 논의 풍경이 펼쳐진다. 가대위는 더위와 싸우고, 모기와 싸우면서도 불평이 없었다. 연신 손으로 부채질을 하거나 휴대폰에 연결한 소형 선풍기를 켜 미미한 바람으로 더위를 식힐 따름이었다.

▲ 갑을오토텍 정문 앞에서 열린 ‘불법 직장폐쇄 분쇄, 노조파괴 분쇄, 갑을투쟁 승리!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가대위 회원들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참가했다. [사진 : 강호석 기자]
▲ 가족대책위 회원들이 5시 집회 전부터 잔디밭에 모여 앉아 있다. [사진 : 강호석 기자]
▲ 5일 집회 경비를 이유로 대규모 경찰력이 동웠됐다. [사진 : 강호석 기자]
▲ 가족대책위 회원들이 만든 팻말들  [사진 : 이명주 기자]

남편들 무시 폭행당하는 것 참을 수 없어 구성한 가대위

지난해 파업 당시 남편과 이웃이 현장에서 무시당하고 폭행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구성한 가대위다. 올여름에도 이렇게 매일 아침 출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침마다 갑을오토텍 정문 앞에 모여 노동청 등에 가서 호소하고 도지사도 만났다. 지지 농성을 마치고 집에 가면 저녁 9시. 가끔은 새벽이 될 때도 있다. ‘깡다구’로 버틴다고 한다.

“아이고, 나는 노동자의 아내로, 노동자의 엄마로, 남편 때도 (노동자 탄압을)겪고 아들 때도 겪고 있네요. 살기가 더 좋아져야 하는데 세상이 어떻게 돼가는 건지.” 이모(57)씨는 남편 때보다도 이제 25살인 아들이 고생하니 더 애가 탄다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의 아들이 갑을오토텍에서 일한 지는 올해로 2년째. “(좋은)회사 잘 들어갔다고 온 가족이 기뻐했죠.” 그랬다. 당시 갑을오토텍은 직원의 90% 이상이 정규직인 ‘좋은’ 직장이었다. 사측이 선해서가 아니라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가 애써 비정규직 확대를 막아왔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사측이 직장 폐쇄를 강행한 데 맞서 노동자들이 파업 현장 사수를 결심한 것도 사측이 비정규직 대체인력을 투입해 생산을 재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후 4시30분쯤 되자 더 많은 가족들이 모였다. 가대위가 걱정되는 연대 온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생수 페트병을 한 아름 들고 왔다. 여기저기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물 여기 많아요.” “우리는 괜찮아요.” “우리까지 신경 안 써도 돼요.”

▲ 폭염 속 가대위 회원들이 걱정돼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생수를 가져와 전달하고 있다. [사진 : 이명주 기자]

가대위 회원들은 오후 5시 열리는 집회 준비를 시작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남색 바탕에 흰 글씨로 ‘생존권 사수’라고 쓴 머리띠를 둘렀다. ‘생존권 사수.’ 노동자의 권리는 가족의 생존권과 직결된다는 의미이리라. 잔디밭 위에 펼쳐둔 돗자리를 접고 집회를 위해 설치한 무대 맨 앞으로 가대위 회원들이 이동했다. 말 그대로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 아래 앉았다. 그 때 식량지원을 위한 쌀을 한 포대씩 어깨에 지고 건설플랜트 노조원들이 줄지어 입장하자 가대위가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로 감사를 표했다.

▲ '생존권 사수'라 적힌 머리띠를 어린 딸에게 묶어주는 한 엄마. [사진 : 이명주 기자]
▲ 건설플랜트 노동자원들이 식량지원용 쌀을 지고 입장한다. [사진 : 이명주 기자]

전국 각지에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노조원들이 주말 동안 갑을오토텍 공장을 사수하는 데 힘을 보태려고 모였다. ‘불법 직장폐쇄 분쇄, 노조파괴 분쇄, 갑을투쟁 승리! 민주노총 결의대회.’ 폴리스라인으로 제한된 세로 50m, 가로 20m 넓이의 구역이 터무니없이 좁다보니 장내에 들어오지 못한 노동자들 행렬이 논까지 이어졌다. 폴리스라인 뒤로는 대부분 20대 초반인 의경들이 배치됐다. 공장 정문을 노조원들이 지키고 그 앞으로는 경찰들이 빼곡히 섰다. 그리고 경찰들을 마주하고 200명이 훨씬 넘는 금속노조원들이 촘촘히 앉았다. 노동자들 앞엔 80여명의 가족들이 앉았다. 집회 공간을 비좁아 장소에 함께하지 못한 노조원들도 많았다. 전체 집회 참가자수는 갑을오토텝지회 노조원들을 포함해 1000명이 넘어 보였다.

휴가철 평일에 35도 폭염 뚫고 200여 노동자 연대투쟁 참가

5시 집회가 시작됐다. “남편, 아빠 생각하며 모든 (투쟁)일정 소화합시다! 동지들이 이곳에 나오지는 못 해도 안에 설치한 대형 스크린으로 지금 밖의 상황, 우리 가족 분들을 지켜보고 있어요! 뒤에 계신 갑을오토텍 동지들, 우리 가족 분들에게 힘찬 박수 보내주십시오!” “와~~~!” 멀리 정문 너머로 함성 소리가 물결처럼 밀려왔다.

“많이 덥죠?”사회자가 가족들에게 묻는다. “괜찮습니다, 참을 수 있습니다!” 가대위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투사가 따로 없다. 그 가운데 공장 사수 중인 아빠 인모씨를 응원 나온 부인과 어린 삼남매가 앉아 있다. 맏이인 인모(14)군이 말했다. “아빠 얼굴 못 본 지 거의 한 달 됐어요. 아빠가 싸우는 이유를 듣긴 했는데…. 그 내용이 다 이해는 안 가요. 그래도 아빠 힘내세요. 그리고 꼭 이겨서 집에 돌아오세요!” 옆에 있던 둘째 인모(12)양도 거든다. “아빠 힘내세요. 사랑해요!”

중학교 1학년 인모군이 들어도 미처 다 이해하기 어려운 아빠와 아빠 동료 ‘아저씨들’이 처한 상황은 어떤 걸까?

▲ 공장 정문 안쪽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가족들을 지켜보며 함께 집회에 참가 중인 갑을오토텍지회 노동자들. [사진 : 이명주 기자]
▲ 가족대책위. [사진 : 강호석 기자]

세상에 드러난 창조컨설팅 노조파괴 공작 ‘Q-P 전략 시나리오’

금속노조 엄태광 충남지부 수석부지부장은 ‘창조컨설팅’이 노동자들의 취약점을 꿰뚫고 사측에 노조파괴 작전을 제공하며 중간 이익을 창출한다고 설명했다. 창조컨설팅은 2003년에 노무사 출신인 심종두 대표가 설립한 회사다. 창조컨설팅이 그동안 사측과 결탁해 무력화한 민주노조는 한두 곳이 아니다. 현재까지도 진통을 겪고 있는 유성기업도 그 하나다.

지난해 이맘때 갑을오토텍 사측이 사실상 주도해 복수노조를 설립하려 하자 노동자들은 일주일간 전면 파업을 했다. 사측이 경비용역을 투입해 폭력이 난무하자 두개골이 함몰될 정도의 중상을 입은 노동자도 있었다. 이런 갈등을 겪으며 사측은 용역을 쓰지 않기로 노조와 합의했다. 그런데 그 합의를 어기고 갑을오토텍은 ‘이상한’ 신규채용을 했다. 신입사원들 대부분이 청년이 아닌 ‘전직 특전사, 경찰, 용역’ 출신의 중년이었다. 이들은 ‘노조를 파괴하라’며 수시로 노조원들을 협박했고 급기야 제2 노조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준비된 ‘음모’임이 드러났다. 2014년 갑을오토텍이 창조컨설팅에 노조파괴를 의뢰하며 작성된 ‘Q-P 전략 시나리오’라는 문건(시나리오문건)이 최근 폭로됐다. 금속노조 충남지부 갑을오토텍지회(지회장 이재헌)는 지난 4일 이 문건을 언론에 폭로했다. 시나리오문건엔 노조로 하여금 파업을 유도한 뒤 → 사측이 직장을 폐쇄하고 → 그 다음 공권력을 투입해 파업농성을 해체시킨 뒤 → 농성에 참여한 노조원을 대량 징계하고, 선별 복귀시킴으로 → 노조를 와해한다는 작전이 공식처럼 명시돼 있다.

창조컨설팅의 기획대로 갑을오토텍 사측은 경비업무를 외주화하고 사택을 시중에 싼 값에 매각함으로 노조원들의 공분을 유발했다. 노조가 경비업무 외주화를 비정규직 전환의 시발점으로 인식하도록 해 파업을 유인한 것이다. 이 문건은 노동부와 검경이 1년 전 압수수색 과정에서 존재가 확인된 것이었다. 그동안 노동부와 검경이 이런 사실을 알고도 침묵하며 불법을 방조한 셈이다.

[사진 : 이명주 기자]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누구보다 열심히 “투쟁!”을 외치던 조모(20)군은 파업 중인 아버지 얘기를 이렇게 전했다. “작년에도 이 자리에 어머니와 함께 있었어요. 일이 마치면 누나도 여기로 올 거예요. 아버지는 여기서 근무하신 지 22년째에요. 이 파업에서 지면 기업노조가 들어오게 되는데 그럼 (현 지회)노조가 힘이 없으니 노동자들은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잖아요. 회사는 싼 임금(비정규직)노동자를 데려올 테니 오랫동안 회사 살리는 데 애쓰신 노동자들은 다 쫓겨나는 거죠. 여기서 지면 끝이에요. 아버지의 삶을 위한 싸움이에요.”

5시45분. 김미순 가대위원장이 무대 위에 섰다. 가대위 전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이크를 잡은 김 위원장의 흐느끼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울지마! 울지마!” 응원하면서도 조금 전까지 노동가를 부르며 뜨겁던 장내 분위기는 일순간 숙연해졌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제가 여기 있는 엄마들에게 매일같이 말해요. ‘이 싸움 길지 않아. 내일이면 끝나.’ 아빠들이 승리하는 그날까지 우리는 함께할 겁니다.” 아내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연신 흘러내리던 땀을 닦던 손수건이 어느새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 김미순 가족대책위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강호석 기자]
▲ 가족대책위원장이 무대 위에 오르자 가대위 회원들이 모두 일어서 반겼다. [사진 : 강호석 기자]
▲ 이찬영군이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 강호석 기자]
▲ 전유이양이 아버지께 쓴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이군과 전양의 편지는 낭독 후 아버지들에게 각각 전달됐다. [사진 : 강호석 기자]

가대위 회원들 “절대 질 수 없다” 말하는 이유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기 위해 이찬영군이 무대에 섰다. “근데 회사는 우리 가족이 사소하게 그냥 행복하게 살고 싶은 건데 왜 그걸 방해하고 망치려 하는지….” “항상 우리 가족의 버팀목이자 정신적 지주인 아빠”에게 쓴 찬영군의 편지 낭독이 끝나자 박수가 터졌다. 이어 전유이양이 ‘아빠에게 쓴 편지’를 읽었다. 세상의 모든 딸들은 닮은 걸까.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더 커졌다. 두 자녀가 편지 낭독을 마치자 속보가 전해졌다. “(정문 안쪽)뒤에서 찬영이 아빠가 울고 있다고 합니다.” 순간 장내에 웃음이 터졌지만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12살 인모양 옆에 있던 엄마가 딸의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울었어?”하며 어린 딸의 눈물을 닦아 준다. 엄마는 애써 눈물을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빠, (앞으로는)투정부리지 않고 라면도 끓여드리고, 같이 등산도 갈게요.” 전유이양의 약속대로 유이양 아버지가 딸이 끓여준 라면을 먹고 등산 갈 날이 하루 빨리 오는 게 가대위 모든 회원들의 바람일 것이다. 이전처럼 평범하게 누려온 그들만의 작은 행복을 지키려는 투쟁이다. 가대위 회원들이 “절대 질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찬영군이 쓴 손편지. [사진 : 강호석 기자]
▲ 이군과 전양이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읽는 동안 투사처럼 싸우던 이들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사진 : 이명주 기자]
[사진 : 이명주 기자]
▲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노조원들이 투쟁기금을 전달했다. [사진 : 강호석 기자]
▲ 생존권 사수! 행복권 사수! [사진 : 이명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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