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체제청산 민중입법안(3) - 재벌의 이윤착취구조 청산

민중공동행동이 6개월 동안 연구한 ‘재벌체제청산’을 위한 민중입법요구안 내용 중 세 번째. “‘넘치는 곳간 여는’ 재벌의 이윤착취구조 청산”을 위한 법안에 대해 알아본다.

민중공동행동은 이 법안 내용으로 대중적인 입법청원운동을 벌여 ‘재벌체제청산’이라는 의제를 사회·정치적으로 여론화하고, 내년 21대 총선에서 재벌의제를 쟁점화해 21대 첫 정기국회에서 재벌체제청산을 위한 개혁입법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전국 각 지역·현장에서 토론을 벌이고, 대중 발의운동, 법안에 대한 ‘전국 발의자대회’도 계획 중이다.[편집자]

1) ‘불법-탈법 범죄경영’ 삼성 이재용 심판
2) ‘세습-전횡 틀어막는’ 소유지배구조 청산
3) ‘넘치는 곳간 여는’ 이윤착취구조 청산
4) ‘진짜 사장 찾아주는’ 고용구조 청산/ 10대 재벌 맞춤형 개혁방안

민중공동행동은 ‘넘치는 곳간 여는’ 재벌의 이윤착취구조 청산을 위한 법안에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와 노동자기금 설치 ▲일감몰아주기 금지 ▲‘불공정거래 행위’ 규정의 개정 ▲소소 주주의 감시·견제 권한 강화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사내유보금’ 과세율 높이고 과세범위 확대… ‘노동자기금법’ 제정으로

민중공동행동이 지난달 5월 발표한, ‘2019년 재벌 사내유보금 현황’에 따르면, 올해 5대 재벌(삼성·현대·SK·롯데·LG)의 사내유보금은 665조 5688억 원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48조 5482억 원이 증가한 금액이다. 30대 재벌(비상장사 포함)의 지난해 말 기준 사내유보금은 950조에 육박한다. 전년 대비 7.5%(66조 6018억) 증가한 949조 5231억 원이다.

재벌체제청산 입법요구안을 마련한 민중공동행동 워킹팀에서 활동하는 노종화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사내유보금의 천문학적 규모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비중이 갈수록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매출액 대비 사내유보금의 비율은 2000년 24%에서 2016년 기준 62%로 급격하게 올랐다.

사내유보금을 쌓은 재벌들의 곳간은 넘치는데, “서민은 굶고 있는” 현실이다. 가계소득과 기업소득 증감률을 보면 알 수 있다. 가계소득 분배율은 1997년 69.3%에서 2014년 61.9%로 8%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기업소득 분배율은 8% (1997년 16.7% → 2014년 25.1%) 증대했다.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몫이 기업의 몫으로 돌아갔고, 그 대부분이 사내유보금으로 축적되고 있는 셈”이다.

▲ 사진 : 뉴시스

이전 정부에서 사내유보금에 대한 조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4년 법인세법 개정을 통해 도입한 ‘기업소득환류세제’ 제도는 사내유보금에 대해 10%의 법인세를 부과했고 2017년까지 한시적으로 적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배당’은 면세항목이었고, ‘부동산 구입’은 투자로 분류돼 재벌들은 과세를 피하기 위해 배당을 늘리거나 부동산 매입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부는 과세공제 대상에서 배당 가중치를 줄이고 부동산 구입비용을 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투자상생협력촉진제’를 신설하기도 했지만, 배당을 통한 과세회피는 여전하고, 이 제도 역시 2020년까지만 적용되는 한계가 제기되고 있다.

‘재벌 배불리기 방법’인 사내유보금을 해결·환수하는 방법으로 민중공동행동은 ▲2020년 종료되는 ‘투자상생협력촉진제’에 대한 보완과 지속 적용 ▲사내유보금에 대한 세율을 현재 20%에서 25% 수준으로 올리는 것을 제기했다.

또, 사내유보금 과세 대상기업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자기자본 500억 원 이상’ 기업을 ‘300억’으로 하향할 필요가 있으며(300억은 코스피 상장요건), 자산 10조 원 이상인 ‘상호출자제한대상 기업’만이 아닌 자산 5조 원 이상인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사내유보금 과세 대상기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30대 재벌만이 아닌 60대 재벌 2천여 개의 기업이 사내유보금 과세 대상기업에 속하게 된다.”

과세공제 범위도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내유보금 산정 시 기업소득의 65% 금액에서 투자와 임금 증가액을 공제하도록 하고 있는데, 공제되는 폭이 넓어 이렇게 과세한 세수는 2~3조에 그친다. 이에 기업소득의 5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공제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민중입법요구안 내용이다.

또 한 가지의 대안 법안은 ‘사내유보금을 노동자의 열악한 임금과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재원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노동자기금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사내유보금에 과세해 이를 일부 환수한다 하더라도 이 재원으로 다시 재벌을 지원하는 등 엉뚱한 곳에 쓰이지 못하도록”하기 위함이다. 환수한 사내유보금을 ‘노동자기금’으로 적립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장애인 고용확대, 최저임금 인상 지원, 청년실업 해소 등에 사용될 수 있도록 목적을 명확히 하는 것, 그리고 이 기금이 정부 입맛대로 사용되지 않게 ‘노동자기금운영위원회’를 설치해 정부,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 총연합단체가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완비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 사진 : 뉴시스

총수일가의 ‘일감몰아주기’ 통한 부당이득... “어디라도 규제대상 돼야”

재벌의 넘치는 곳간을 열기 위한 다른 방안은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재벌의 ‘일감몰아주기’를 금지하는 것이다.

정몽구·정의선 부자의 일감몰아주기 일례를 보자. 현대글로비스(전 한국로지텍)는 2001년 정몽구·정의선 부자가 100% 지분을 투자해 설립된 현대차그룹 계열사로 현대차그룹의 물류업무를 사실상 전담하고 있다. 설립 당시 자본금은 약 25억 원에 불과했지만 그룹의 물류업무를 싹쓸이하면서 설립 첫해인 2001년 매출 1985억, 영업이익 93억(자본금 투자 대비 373%), 당기순이익 65억(자본금 투자 대비 261%) 원을 기록했다. 2005년 코스피시장에 상장된 현대글로비스는 2018년 기준 매출 13.5조 원, 영업이익 5천 300억, 당기순이익 3천 300억 원으로 15년 만에 급성장을 이뤘다. 정몽구 부자는 천문학적인 배당금과 주가상승을 통한 이익을 가져갔다.

현대차그룹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재벌들이 총수일가에 대한 부의 집중, 지배력 집중을 위해 일감몰아주기를 해왔다. 지난 3월 경제개혁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공시대상 기업집단의 총수일가들은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35조 원이 넘는 부의 집중을 발생시켰는데, 이 중 상위 20명 중 삼성의 이재용이 6.4조 원으로 가장 많고, SK의 최태원(5.1조 원), 셀트리온 서정진(4.5조 원), 현대차 정의선(3.1조 원)이 뒤를 이었다. 20명 안에는 삼성의 이부진·이서현, SK 최기원, 현대차 정몽구, CJ 이재현을 비롯해 대림, 한화, 신세계, GS, 코오롱 등이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부를 누렸다.

총수일가는 자신의 지분으로 다른 회사를 설립하고, 그 회사에 사업기회를 몰아줘 회사를 성장시키고, 공정한 경쟁체제에선 달성할 수 없는 급격하고 막대한 성장을 달성해 주가 상승, 배당금 형태의 막대한 부를 얻고, 나아가 총수일가 2세·3세는 막대한 부로 경영권 승계를 시도하는 단계가 벌어지고 있다.

노종화 변호사는 일감몰아주기에 대해 “시장경쟁을 거치지 않고(경쟁제한성), 법인의 주주들에게 귀속될 이익을 특정인의 이익으로 전환시키며(경제력 집중), 관련시장에서의 공정한 거래도 해칠(공정거래 제한) 우려가 크다”고 지적한다. 또 하나의 지적은 부당노동행위 수단으로도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것. “기업집단이 A회사와 동일한 사업을 영위하는 B회사를 설립한 후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들은 A회사에 계속 일하게 하면서 일감을 모두 B회사에 몰아주고, A회사는 영업 부진을 이유로 폐업하는 경우가 전형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노 변호사는 “총수일가의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얻은 막대한 이익은 거래가 공정하게 이뤄졌다면 일반주주, 회사, 그리고 노동자들이 함께 누렸을 이익”이며, “회사의 경영위기 극복, 신규투자, 2·3차 협력업체 납품대금 개선과 최저임금 인상 등에 쓰일 수 있는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2013년 박근혜정부 시절, 공정거래법 제23조의 2를 신설하며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규제했지만 한계가 나타났다. 규제대상에 해당하는 회사가 대규모 공시대상기업집단(자산총액 5조 원 이상)에 한정됐고, 총수일가가 30%(상장회사) 또는 20%(비상장회사) 이상 지분을 직접 소유한 회사에 대해서만 적용돼 실효성이 낮았던 것. 실제 2013년 이후 이 조항을 적용한 사건은 단 6건에 불과했다.

민중입법요구안은 이 법을 개정해 “총수일가를 위한 일감몰아주기가 일어나는 회사라면 어디라도 규제대상이 돼야”한다고 했다. 적용대상 범위를 공시대상기업집단 보다 더 확대하고, 국외 계열사에서도 일감몰아주기를 규제해야 하며, 총수일가가 간접지분으로 소유하는 회사에도 적용하도록 하는 동시에, 지분율 기준도 상장·비상장 구분없이 20%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 사진 : 뉴시스

재벌대기업의 갑질,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규정을 강화하는 것도 재벌의 넘치는 곳간을 열기 위한 방안 중 하나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자유로운 경쟁’을 보호할 뿐 재벌대기업이 협력업체 등을 상대로 한 이른바 ‘갑질’로부터 ‘을’을 보호하지는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공정거래법 1조는 ‘사업자의 시장지배적지위의 남용과 과도한 경제력의 집중을 방지하고, 부당한 공동행위 및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해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창의적인 기업활동을 조장하고 소비자를 보호함과 더불어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또, 법원은 공정한 거래가 저해되는지 여부는 ‘전체 시장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를 제시하고 있다. 재벌대기업이 협력업체 등을 상대로 한 ‘갑질’은 시장 전체에 경쟁이 제한되는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한, 공정거래법에 따른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종화 변호사는 “적어도 현행 불공정거래 규제 중에서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업자가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 ‘특수관계인 등에게만 유리하게 거래를 하거나 특수관계인 등이 이른바 통행세를 얻을 수 있도록 거래구조를 만드는 행위’는 전체 시장경쟁에 미치는 영향과 상관없이 불공정행위로 규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정거래법 23조2는 공시대상기업집단 동일인의 특수관계인(동일인 및 그 친족)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경우를 규제하고 있어, 친족이 아닌 예를 들어 사돈관계에 있는 기업에게 일감몰아주기를 하는 경우엔 규제가 불가능”한 현실이다.

민중입법요구안엔 ‘거래상 지위 남용 및 부당지원 행위’를 별도의 조항으로 신설해야 한다고 제기하고 있다. 노 변호사는 “이런 행위는 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중대하지 않더라도, 경제적 지위가 열등한 사업자에겐 매우 심각한 불이익을 초래”하고, 반면 “재벌대기업은 이런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공정한 경쟁과 거래를 통해 충분히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면서 이 조항이 재벌대기업에게 “과도한 규제는 결코 아니”라고 말했다.

소소주주의 감시·견제 권한 강화… 지나치게 ‘많은 주식’ 요구하는 현행법

다음으로 제안된 민중입법요구안은 ‘소소 주주의 감시·견제 권한 강화’를 위해 상법을 개정해 ‘주주대표소송 원고적격’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주주대표소송과 관련된 하나의 사례가 있다.
“삼성전자 대표이사였던 이건희는 1990~92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천문학적인 뇌물을 회삿돈으로 지급했다. 나아가 이건희를 비롯한 경영진은 ‘이천전기’와 같은 부실회사를 삼성전자가 계열회사 대신 떠맡아 책임지게 했고, 삼성전자가 보유하고 있던 삼성종합화학 주식을 매우 저가에 계열회사에 처분하는 부실경영행위 내지 위법행위를 저질렀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이런 이사들을 상대로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건희 등은 계속해서 삼성전자에 대한 경영권을 행사했다.”

참여연대는 삼성전자의 소수주주들을 어렵게 모아 주주대표소송을 통해 삼성전자를 대신해 이건희 등 이사들을 상대로 삼성전자에 약 3500억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긴 재판 끝에 대법원은 약 190억 원의 손배를 인정했다.

‘주주대표소송’은 소수주주가 부실경영과 위법행위를 자행하는 이사들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다. 그러나 문제는 상법이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때 지나치게 많은 주식을 요구함으로써 사실상 ‘소수주주’의 권리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주대표소송을 하려면 원칙적으로 발행주식총수의 1% 이상, 상장회사의 경우 0.01%이상 주식을 6개월 이상 보유해야 한다. 사실상 소수주주가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삼성전자를 예로 들면, 삼성전자는 2019년 6월 말 기준 발행주식총수가 약 68억 주로, 0.01%(68만 주)를 6개월 이상 보유해야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데, 2019년 11월 초 주가 52,300원 기준으로 했을 때 약 355.6억 원 상당의 주식을 확보해야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노종화 변호사는 “주주대표소송이 활성화되려면 현행과 같은 보유주식수 요건을 대폭 완화해야”하며 “회사의 주식을 소유한 주주는 누구나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주대표소송의 원고적격을 단독주주권으로 변경하되 주식 6개월 이상 보유 요건을 두는 내용이 민중입법요구안의 내용이다.

▲ 이승철 사회변혁노동자당 집행위원장이 지난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재벌체제청산 입법요구안 토론회’에서 토론하고 있다.

이승철 사회변혁노동자당(변혁당) 집행위원장은 ‘넘치는 곳간 여는’ 재벌의 이윤착취구조 청산 법안 중 변혁당이 주목하는 법안으로 ‘사내유보금 환수 및 노동자기금 설치’를 꼽았다. 이 집행위원장은 “(변혁당이) 2015년부터 수년에 걸쳐 재벌체제 이윤축적 구조의 문제점을 폭로하고 주요하게 ‘재벌사내유보금’ 문제를 제기하며 구체적인 분석과 수치를 바탕으로 한 관련 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다”면서 그 결과 “사내유보금 의제는 재벌체제 청산 투쟁의 주요 매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벌사내유보금 환수가 대중의 동의를 얻는 데까지 나아간 상태에서 대중과 함께 하는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한 현실”을 지적하곤 “가장 큰 원인은 환수의 실현 가능성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중입법안은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방식을 주요하게 제기하며 현실성을 장착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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