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 겉과속 20190302

1. 미국은 더 큰 패배를 선택하였다

세계의 관심과 기대속에 하노이에서 열렸던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끝났다. 커다란 역사적 합의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하였던 많은 사람들이 머쓱해졌지만 이는 탓할 일이 아니고 허물이 될 수도 없다. 
북미관계가 전환되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것은 그만큼 절실한 바램이기 때문이다. 또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인 흐름이기도 하므로 이번 회담에서 합의가 불발되었지만 낙관적인 전망 자체를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자유한국당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과가 전해지자 ‘정부가 장미빛 환상을 심어주었다’고 비난하였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웃음을 참느라 애를 썼다고 한다.
시대착오적인 적대와 대결, 전쟁선동으로 먹고 사는 극우매국광신도집단에게 ‘합의 무산’은 긴 가뭄에 단비와 같은 소식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결코 이번 북미회담의 승자가 될 수 없다. 

트럼프는 실무협상에서 마련한 합의안에 따를 생각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비록 때늦은 변명으로 일관했지만 그는 회담결렬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나와 폼페이오 장관은 어떠한 문서라도 서명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고 하였다. 
하지만 트럼프는 ‘오늘은 합의문에 서명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영변핵시설 폐기와 유엔제재 일부 해제 등이 담긴 합의문에 끝내 서명하지 못하였다. 
북미관계의 전환,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의 이행을 가로막으려고 온갖 갖은 짓을 다하고 있는 자들의 압박에 굴복한 때문이다. 
미국의 민주당 지도부를 비롯한 이 집단들은 하노이 정상회담에 맞춰 트럼프의 정치추문을 폭로하고 있는 마이클 코언의 공개청문회를 열었다. 미국의 전쟁광 집단인 네오콘은 그들의 행동대장이라 할 수 있는 존 볼턴을 확대정상회담 자리에 억지로 밀어 넣었다. 
정치적 반대파들의 공격에 겁을 집어먹고 위축된 트럼프는 결국 과감한 선택을 하지 못하였다. 그는 워싱턴의 네오콘들에게 백기를 들고 돌아가는 길을 택하였다. 
대북정책을 고수하려는 미국의 이 집단들은 북미간에 더 진전된 합의가 나오는 것을 막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그들도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의 승자는 아니다. 
그들은 더 큰 패배, 더 많은 양보를 해야 하는 길을 택했을 뿐이다.

▲ 주식 시장이 북미정상회담 합의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소식에 급락했다. 코스피는 28일 전 거래일보다 39.35(1.76%) 내린 2195.44로 거래를 마쳤다.

2. 적대적 대결정책은 심각한 위기에 놓였다.

"영변 핵단지의 모든 핵시설을 영구적으로 폐기하는, 역사적으로 제안하지 않았던 제안을 이번에 했다", "이러한 제안에 대해서 미국측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북의 최선희 외무상 부상은 회담이 결렬된 밤에 연 기자회견장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들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불길한 생각이나 걱정은 떨쳐버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회담 1일차인 2월 27일 회담장에 나온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표정이 썩 밝지 않은 모습은 불길한 예감을 낳기도 했다. 
"어느 때보다도 많은 고민과 노력, 그리고 인내가 필요했던 기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회담에 앞서 언론에 공개된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이런 말을 했을 때는 아예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했다. 
이 정상회담이 정말 어렵게 성사되었다는 사실,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으리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튿날 단독회담을 앞두고 트럼프는 말이 많았다. 평소에도 주접을 떨긴 하지만 그날은 더 유난했다. 
‘북의 잠재력이 대단하다.’, ‘세계 어느 나라도 경쟁할 수 없는 경제강국이 될 것이다.’ 등등 …… 
외교적 발언이라기엔 지나친 그의 행동에는 불안감과 초조함을 감추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국무위원장께서 앞으로의 조미 거래에 대해서 의욕을 잃지 않으셨는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최선희 부상은 합의 결렬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장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가장 비극적인 것은 네오콘의 눈치를 보느라 잔뜩 위축되어 있고, 존 볼턴 등의 관료들에게 휘둘리는 트럼프의 모습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확인한 것이다. 
회담의 최종결렬은 확대회담에서 볼턴 등이 성사된 합의문에 트럼프가 서명하는 것을 가로막으면서 벌어졌다. 이들은 폐기대상을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이는 성사되어 있던 합의를 다 뒤집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북이 추가 요구를 받아들이면 좋고, 이 때문에 합의가 파탄나면 더 좋다’고 타산했겠지만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북미관계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미국이 ‘착해지거나’, ‘생각이 달라져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북과 미국은 2010년대에 들어서 극단적인 군사대결을 벌였고 2017년 11월에는 전면전쟁을 포함한 군사적 충돌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그 대결은 미국의 패배로 끝났고 2018년 초부터 북이 선제적으로 관계전환 조치를 결행하여 오늘의 변화에 이르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은 강요된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미국내에는 대북적대정책을 고수하려는 세력의 힘이 여전히 만만찮다. 하지만 순순히 나오지 않으면 험한 꼴로 끌려나올 수밖에 없다. 이것이 변화된 북미관계의 본질이며 한반도에 조성된 힘의 관계다. 

회담이 합의없이 끝나자 일부에서는 ‘북이 강경책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반도에 다시 대결과 전쟁의 바람이 휘몰아치는 것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태는 누구도 바라지 않지만 이런 걱정은 사실 네오콘들이 가장 많이 해야 하는 일이다.
정상회담에서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는 것은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정상회담이 중도에 중단되는 것은 사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북은 이 선택을 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회담 결렬 후 기자회견장에 나온 트럼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북이 “제재의 전면해제를 요구했기 때문이다"는 거짓말까지 늘어놓았다. 공항에서는 환송나온 베트남측에서 준 꽃다발을 되돌려주는 실수를 했다. 
빈손으로 위싱턴으로 돌아간 트럼프의 앞날은 장담하기 어렵다. 네오콘과 정치적 반대자들은 자기들의 술책에 놀아난 트럼프를 얕잡아보고 더 험하게 다룰 것이다. 
트럼프는 양극화와 빈궁화가 극심해지는 미국의 현실이 낳은 정치인이다. 그래서 미국 유권자들에게서 일정하게 탄탄한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정치에서 유권자들의 지지는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다. 

북으로서는 큰 변화가 없는 한 트럼프를 정상회담의 상대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하노이에서 트럼프가 안고 간 가장 큰 손실이다. 
트럼프의 재선은 불투명해졌으며 중도 낙마하지 말라는 법도 없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했으니 김정은 위원장의 권위도 손상되었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북 정치 제도와 사회의 특성을 전혀 모르는 무식의 소치다. 
북에서는 먼 길을 다녀온 노고에 대한 감정이 더해져  ‘김정은 위원장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트럼프와 관계전환에 소극적인 미국’에 대한 분노와 규탄이 드높을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보며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적대와 대결의 원흉이 누구이며, 관계전환과 평화정착을 가로막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더 똑똑히 알게 되었다. 
한반도정세와 관련된 나라와 사람들이 미국과는 대화로는 안되고 힘의 대결에 의해서만 정의와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결심한다면 손해를 보는 것은 미국이다. 
만약 이후에 북과 협상이 있더라도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안으로 만들어졌던 내용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니 협상에서조차 패배한 것이다.

3. 새시대로 가려면 생각을 고쳐야 한다. 

‘제재를 더 강화할 생각은 없는가?’ 
트럼프에게 미국 기자도, 일본 기자도 아닌 한국 기자가 이런 질문을 하였다. 
핵시험을 하지 않고 있고 미사일 발사훈련도 중단한 북에게 제재를 왜 추가해야 한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마디로 정신나간 질문이다.
이런 황당한 질문을 하는 것은 ‘제재는 북을 대화로 나오게 하는 압박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와 매우 다르다. 

북이 가혹한 경제 봉쇄와 제재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북은 자체의 힘과 기술, 자원으로 국가경제를 운영하고 발전시키는 궤도에 확고히 올라섰다. 이는 북이 최근 몇 년 동안 이룩하고 있는 성과들이 증명하고 있다. 
제재는 ‘남북관계 발전을 가로막고 있으며, 주변국들을 괴롭히고 있을 뿐’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제재의 끈을 놓지않으려고 용을 쓰고 있다. 제재에 특출한 효과가 있는 때문이 아니라 제재말고는 달리 해볼 게 없기 때문이다. 군사적 대결에서 패배했고, 핵보유국이 되어버린 북에 사용할 군사적 압박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제재가 효과가 없다면 북이 제재해제를 요구할 까닭이 없다’고 항변하며 제재를 계속해야 한다고 목청을 돋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북이 제재해제를 요구하는 주된 이유는 그것을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고, 관계정상화로 나가는 시금석과 첫걸음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외면하고 제재에 매달리면, 대북적대정책과 함께 파멸의 불구덩이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국이 관계개선, 정책전환을 끝내 거부하면, 다른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한 미국의 태도와 트럼프의 행동은 관계개선과 정책전환을 할 생각이나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냈다. 합의문 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보다 더 걱정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 마당에도 그런 황당한 질문을 하고, 그런 질문과 다를 바 없는 ‘분석’을 내놓은 사람들이 있다. 

미국무장관 폼페이오는 ‘북이 기본적으로 제재의 전면해제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회담이 결렬된 날 밤 리용호 북 외무상은 ‘우리가 요구한 것은 제재의 부분적인 해제였다.’고 밝혔다. 
‘북이 제재의 전면해제를 요구한 때문에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었다. 폼페이오의 말은 리용호 외무상의 반박을 재반박해보겠다는 수작이었다. 
폼페이오는 일국의 국무장관인데도 엉뚱한 질문을 한 기자와 마찬가지로 정신이 정상이라고 볼 수가 없다. 
적대관계를 청산하자고 하는 마당에 적대조치, 제재의 전면해제를 ‘기본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에 기초해서 구체적인 협상과 합의안에서 단계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북이 ‘기본적’으로 제재의 전면 해제를 요구하기 때문에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다면, ‘원칙적’으로 완전한 핵폐기를 주장하는 미국의 입장이 변하지 않는 한 대화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참으로 어렵게 마련된 북미관계의 전환, 한반도 평화정착의 기회를 날려버리지 않으려면 생각을 좀 더 고쳐야 하고 말과 행동을 가려서 해야 한다. 낡은 시대의 생각, 비뚤어진 정신으로는 새시대에 들어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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