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외무성 “공동성명 균형적 리행방안 내놨는데 미국은 일방적 비핵화만”

악마는 역시 ‘디테일(세부)’에 있는 걸까?

지난 6~7일 진행된 북미고위급회담 결과를 보고 갖게 된 물음이다. 북미공동성명 이행을 위해 열린 첫 고위급회담이었는데 결과를 두고 회담 당사자들의 반응이 ‘극과 극’이다.

폼페오 장관은 평양을 떠나기 직전 회견에서 “북 비핵화를 위한 시간표를 논의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알리곤 “거의 모든 논의의 요소에서 진전을 이뤘고 협상이 생산적이었다”고 긍정 평가했다. 게다가 조만간 북의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쇄에 관한 실무회담과 오는 12일 판문점에서 유해송환 문제를 다룰 실무 논의를 ‘성과’인 양 거론했다.

반면 북의 반응은 냉랭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담화에서 “(미국이)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면서 “회담 결과는 극히 우려스러운 것”, “실로 유감스럽기 그지없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더욱이 “우리의 비핵화 의지가 흔들릴 수 있는 위험한 국면”을 맞았다고까지 경고했다.

회담 결과를 평한 북 외무성 대변인 담화와 마이크 폼페오 미 국무장관의 언론 회견을 살펴보니 ‘첫 술에 배부르랴?’고 여유를 부릴 계제는 아닌 것 같다. 

▲ 마이크 폼페오 미 국무장관이 북미 고위급회담 이틀째인 지난 7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영철 북 로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 : 뉴시스]

결론을 보면, 기대를 모았던 첫 고위급회담에선 아무런 공식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공동보도문도 나오지 않았다. 합의에 실패한 것이다. 폼페오 장관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접견 불발은 당연한 결과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추론해 볼 단서는 북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 있다. 폼페오 장관의 회견 내용은 언론을 의식한 측면이 강하고 대부분 ‘외교적’ 표현이다. 

북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는 ‘이례적’일 정도로 구체적이다. 자기네가 준비한 회담의 주요 의제를 모두 공개한 것은 물론, 미국쪽 의제와 그에 대한 자기네 평가, 그리고 자기네 의제에 대한 미국쪽 반응도 공개했다. 게다가 회담에 임하는 자기네 태도를 반성한 것은 물론 미국, 정확히는 회담주체인 폼페오 장관에게도 비판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회담의 교훈과 해법도 제시했다. 한마디로 북미정상의 공동성명 이행 문제를 다룬 첫 고위급회담 결과의 ‘백서’라 할 만하다. 이를 회담이 끝나기 무섭게 내놨다. 북이 이번 고위급회담을 중시했고, 사실상 ‘결렬’된 결과를 심각하게 보고 있음이다. 하나씩 보자. 

북은 4개 의제(▲조미관계 개선을 위한 다방면적인 교류 실현 문제 ▲조선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정전협정 65년을 계기로 종전선언 발표 문제 ▲비핵화 조치의 일환으로 ICBM 생산 중단을 물리적으로 확증할 대출력 발동기(엔진) 시험장 폐기 문제 ▲미군유골 발굴을 위한 실무협상 문제)를 준비했다. 모두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4개 합의사항의 개별 이행과제들로, 북은 “공동성명의 모든 조항들의 균형적인 리행”을 위해 준비했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이 준비한 의제는 하나뿐이었다. 한반도 비핵화, 보다 엄밀히는 북 비핵화 방안이었다. 북은 이를 두고 “싱가포르 수뇌상봉과 회담의 정신에 배치되게 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고 비판했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피력했던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미국쪽은 “이러저러한 조건과 구실을 대면서 멀리 뒤로 미루어놓으려는 립장을 취”했다고 한다. 미국은 그러면서 “합동군사연습을 한두 개 일시적으로 취소한 것을 큰 양보처럼 광고”했단다. 공동성명 전반의 이행보단 자기네가 ‘양보’한 대가에 집착했음을 짐작케 한다. 앞서 폼페오 장관이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쇄 협의와 미군 유해송환 실무회담 개최를 성과인 양 부각한 점이 그래서인 거 같다. 

북, 미국쪽에 아직 새 북미관계 수립 의지 없다 봤을 수도 

결국 회담은 서로의 입장만 확인하고 끝난 셈이다. 추론해 보면, 먼저 북의 4개 의제 가운데 ‘관계개선을 위한 다방면적인 교류 문제’는 거론조차 안 됐고 ‘종전선언 발표 문제’는 추후 다시 논의키로 한 것 같다. 북의 미사일 엔진시험장(대출력 발동기 시험장) 폐쇄 실무회담을 ‘조만간’ 연다지만 실제론 회담 날짜도 못 잡은 거다. 결국 12일 ‘미군유골 발굴을 위한 실무협상’만 정해졌다. 북의 입장에선 자기네 “공동성명의 모든 조항들의 균형적인 리행” 노력을 미국이 무시, 거부했다고 볼만하다. 

미국은 단일 의제, 즉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폼페오 장관이 회담에 앞서 공개한 이른바 FFVD(최종적이고,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를 북에 제안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반응은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라는 혹평이었다. 이 언급이 눈길을 끄는 건 북이 FFVD를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와 대동소이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완전한 비핵화’를 담은 “싱가포르 수뇌상봉과 회담의 정신에 배치되게 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라고 한데서 알 수 있다. 그래서 북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측이 회담에서 끝까지 고집한 문제들은 과거 이전 행정부들이 고집하다가 대화과정을 다 말아먹고 불신과 전쟁위험만을 증폭시킨 암적 존재”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미국쪽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이 아닌 과거의 적대정책을 계속 고집한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북은 이런 회담 결과에 대해 “극히 우려스러운 것”이라고 평했다. 그런데 뜻밖에 자기네를 먼저 반성했다. 북은 “미국측이 조미수뇌상봉과 회담의 정신에 부합되게 건설적인 방안을 가지고 오리라”고 기대와 희망을 건 게 “어리석다고 말할 정도로 순진한 것”이었단다. 이번 고위급회담 의제를 사전 협의한 것으로 알려진 ‘최선희-성 김’ 실무회담에 대한 평가일 수도 있다. 어쨌든 앞으론 회담에 이번처럼 임하지 않겠단 얘기일 터다. 

미국의 협상태도에 대해선 “낡은 방식으로는 절대로 새것을 창조할 수 없으며 백전백패한 케케묵은 낡은 방식을 답습하면 또 실패밖에 차례질 것이 없다”며 발상의 전환을 강하게 충고했다. 문장에 주어는 없지만, 바로 뒤에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합의된 게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조미관계와 조선반도 비핵화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나가자고 하였기 때문”이라고 환기시킨 데서 미국을 지칭했음을 알 수 있다. ‘낡은 방식’이 ‘대북 적대’임은 물론이다. 대통령은 새로운 북미관계를 수립할 ‘새로운 방식’을 내놓았는데 핵심 참모가 ‘낡은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고 꼬집은 것이다. 이는 “수뇌급에서 합의한 새로운 방식을 실무적인 전문가급에서 줴버리고(함부로 내버리고) 낡은 방식에로 되돌아간다면(중략) 수뇌분들의 결단과 의지에 의하여 마련되였던 세기적인 싱가포르 수뇌상봉은 무의미해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 데서도 확인된다. 

그래서 북은 이번 고위급회담 결과의 심각성을 “첫 조미고위급회담을 통하여 조미사이의 신뢰는 더 공고화되기는커녕 오히려 확고부동했던 우리의 비핵화 의지가 흔들릴 수 있는 위험한 국면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알렸다. 첫 회담의 결과를 ‘기 싸움’ 정도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북은 이어 “미국은 저들의 강도적 심리가 반영된 요구조건들까지도 우리가 인내심으로부터 받아들이리라고 여길 정도로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면서 “실패만을 기록한 과거의 방식에서 대담하게 벗어나 기성에 구애되지 않는” ‘새로운 방식’을 거듭 강조했다. 이렇듯 북의 주문은 ‘새로운 방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새로운 방식이란 “신뢰조성을 앞세우면서 단계적으로 동시행동 원칙에서 풀 수 있는 문제부터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이라고 알렸다. 

‘선(先) 신뢰조성, 단계적인 동시행동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이 언급한 접근법인데 기존 방식에 구애되지 않은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방식’과 궤를 같이한다고 본 것이다. ‘선(先) 신뢰조성’은 앞서 북이 4개 회담 의제를 준비하면서 밝힌 “공동성명의 모든 조항들의 균형적인 리행”으로 가능하다는 입장 같다. 

그래서 ‘선(先) 신뢰조성, 단계적인 동시행동 원칙’에 대해 “조선반도 비핵화 실현의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의미 부여한 북은 특별히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심을 아직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곤 “미국은 수뇌분들의 의지와는 달리 역풍을 허용하는 것이 과연 세계 인민들의 지향과 기대에 부합되고 자국의 리익에도 부합되는 것인가를 심중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라고 담화를 마쳤다. 마지막 문장의 주어는 ‘미국’이지만 의미를 볼 때 폼페오 장관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또 ‘역풍’은 최근 미국 주류언론들이 문제 삼은 북의 핵미사일 의혹을 시사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폼페오 장관 실명 언급 않고 트럼프 대통령 호평 

이렇게 첫 고위급회담 결과를 총평한 북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회담의 미국쪽 대표인 폼페오 장관에 대한 실명 언급이 전혀 없다는 거다. “실로 유감스럽기 그지없는” 회담 결과를 낳은 장본인으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와 ‘낡은 방식’을 고집한 것도, ‘수뇌합의를 줴버릴 실무적인 전문가급’도 폼페오 장관인데 일절 언급이 없다. 대화 상대방을 여전히 존중한다는 의사표시로 읽힌다. 

다른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호평이 거듭된 점이다. 담화에선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 내용, “싱가포르 수뇌상봉과 회담을 통하여 트럼프 대통령과 맺은 훌륭한 친분관계와 대통령에 대한 신뢰의 감정이 이번 고위급회담을 비롯한 앞으로의 대화과정을 통하여 더욱 공고화되리라는 기대와 확신을 표명”한 것까지 공개했다. 이어 종전선언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조미수뇌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더 열의를 보이였던 문제”라고 강조하고, 북미공동성명이 채택될 수 있었던 게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방식’으로 가능했다고 치켜세웠다. 담화 말미에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심을 아직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 건 화룡점정이라 할만하다. 

이렇다보니 북이 대변인 담화를 회담의 세세한 내용과 평가, 교훈과 해법까지 담은 ‘백서’처럼 발표한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그것도 회담이 끝나자마자다. 누군가에게 서둘러 알리려는 건 아니었을까? 담화를 공개한 북의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엔 모든 기사가 5개 언어(영어, 중국어, 일어, 러시아어, 스페인어)로 번역돼 실린다. 담화도 마찬가지였다. 

폼페오 장관은 이번 평양 고위급회담 도중 백화원 영빈관 밖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보고를 했다고 한다. 또 트럼프 대통령 옆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동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북미정상회담 취소소동 직후 김계관 북한(조선) 외무성 부상의 ‘위임 담화’를 보고 “북한(조선)으로부터 따뜻하고 생산적인 담화가 나왔다”며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굳건한 번영과 평화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호평한 바 있다. 

북미공동성명의 ‘성과적인 이행’에 최대 이해당사자는 성명에 직접 사인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일 것이다. 비록 북미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첫 고위급회담은 소득 없이 끝났지만 다음번 회담이 계속 주목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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