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아무책대잔치 <세계를 뒤흔든 열흘>

항상 스무 살에 더 가까울 줄 알았는데 정신 차려보니 서른 살에 더 가까워졌다. 본래 책이라곤 <원피스>, <드래곤볼> 같은 만화책만 보던 덕후였다. 어느 날 선배를 따라 한진중공업 파업현장에 간 게 화근이었다. 우리 사회는 왜 이런 모습일까 궁금했고 일단 아무 책이나 집어 보기로 했다.

 

SNS에 러시아혁명을 다룬 글이 자주 보였다. 웬 러시아 타령이지? 했다가도 ‘아 100주년이구나’ 하고 넘어갔다. 이과 출신이라 중학생 이후론 역사와 별 인연이 없었다. 중학생 시절 ‘러시아 혁명’은 그저 2월과 10월 두 번이나 일어난, 그래서 시험문제 풀 때 괜히 헷갈리는 ‘옛날 일’이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고 무슨 집회다 시위다 쫓아다니게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러시아혁명을 왠지 알아둬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러시아혁명을 다룬 책들은 하나같이 책보단 벽돌 같았다. 

“하하. 역사란 참 다가가기 힘든 친구구나.” 벽돌(책)들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할 때 <세계를 뒤흔든 열흘>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르포문학이라는 말에 왠지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게다가 미국인 기자(존 리드)가 10월 혁명 당시 직접 페트로그라드를 누비며 기록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미국인 기자라는 신분 덕분인지 존 리드는 레닌이나 트로츠키 같은 저명한 혁명가부터 각 정파의 지도자, 대자본가나 장교 심지어 케렌스키까지 대면한다. 책 속에서 레닌은 쉰 목소리로 연설하며 군중들을 사로잡았고, 트로츠키의 모든 몸짓은 마치 ‘역사의 방향’을 체현한 듯 확신에 넘쳤다. 하지만 이 책이 가지는 매력은 역사적 인물의 기록보단 혁명에 뛰어든 노동자, 병사, 농민들의 모습에 있다. 존 리드는 레닌보단 그의 발언을 듣던 수천의 평범한 얼굴에 초점을 맞췄다. 

여기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혁명의 행방을 결정할 수도 있는 장갑차부대원 2천여 명은 병사대회를 열었다. 혁명에서 군인들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발언과 지지해야 한다는 발언이 이어졌다. 존 리드는 이들을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이 병사들처럼 사태를 이해하고 결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병사들은 고민하며 눈썹을 찌푸렸고, 이마에는 땀이 흘렀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눈과 서사시에 등장하는 전사의 얼굴을 한 위대한 거인들처럼 보였다.” 사병 출신으로 육군 인민위원이 된 볼셰비키 크릴렌코가 이들 앞에 섰다. 그는 4일간 잠을 못 자 비틀거리며 연설을 했다. “반대편에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은 옛 세력들이 있고, 다른 편에는 노동자, 병사, 농민들이 있습니다. 누구에게 정부를 넘기겠습니까?” 고뇌하던 병사들은 이윽고 만장일치에 가까운 결의로 혁명의 편에 섰다. 

열흘간의 기록에서 이름 모를 수많은 이들을 볼 수 있다. 어느 병사는 기업인과 공무원, 학생 100여 명에게 둘러싸인다. “너희들은 사회주의도 아니고 친독일적 무정부주의다.” “볼셰비키는 자유로운 혁명을 파괴한다.” 논리적인 추궁이 이어지지만, 이 병사는 혁명 지지를 절대 굽히지 않는다. 어느 늙은 운전사는 한밤중 페트로그라드로 들어가는 길에 도시의 불빛을 보며 소리친다. “내 것입니다! 이 순간, 모든 것이 내 것입니다! 나의 페트로그라드여!” 물론 존 리드가 혁명 현장을 누비며 평범한 이들을 만나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어떨 때는 ‘미국인 동지’로 환영받았지만 어떨 때는 적으로 의심받아 죽을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그는 때론 거칠고, 투박하기도 한 이들의 얼굴에서 혁명을 보았다. 

그렇다면 혁명의 반대편은 어떨까? 그는 취재기자답게 여러 정당과 장교, 귀족, 자본가의 모습도 결코 빠뜨리지 않았다. 러시아의 한 대자본가는 병든 어린이를 치료해주는 것처럼 외세가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운송을 마비하고 공장 문을 닫고, 굶주리고, (독일에)패배하는 것’도 러시아인이 제정신을 차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장교들은 병사위원회와 협력하느니 차라리 독일에 패하겠다고 공공연히 떠들었다. 어떤 상인 가족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전쟁을 포기하는 병사들을 향해 “겁쟁이들!”이라 욕했다. 이들은 투기업으로 막대한 식량을 창고에 쌓아두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계급투쟁’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계급투쟁, 사회주의혁명, 프롤레타리아독재…. 처음으로 이들 낱말을 접했을 땐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별 감흥이 없어졌다. 마치 러시아혁명을 ‘10월 혁명으로 사회주의 국가 수립’ 한 줄로 무미건조하게 외우던 중학생 시절처럼 말이다. 그래서 <세계를 뒤흔든 열흘>은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손도 시선도 자주 멈췄다. 난해해서가 아니라 혁명이 보여주는 생생함에 나 자신의 무미건조함이 깨지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혁명은 책 속의 낱말이 아닌 “적나라한 현실”이었다. 그 “적나라한 현실”의 모습 앞에서 존 리드의 표현처럼 내 감정도 결코 중립적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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