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할 적폐와 새정부의 과제(2) 예술·표현의 자유의 실질적 보장

헌법재판소는 2017년 3월10일 박근혜 탄핵을 결정했고, 법원은 2017년 4월17일 박근혜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리고 지금, 차디찬 겨울의 광장을 수백만의 촛불로 채우며 지낸 한국 사회는 새 정부의 탄생을 앞두고 대선 주자들이 말하는 ‘변화’의 약속에 한껏 들떠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합집산과 갈 곳 잃은 보수표심 잡기에 혈안이 된 대선 경쟁에 촛불 광장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진정한 적폐 청산과 변화의 길은 어떤 것이 ‘적폐’인지, 왜, 어떻게 청산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 없이 가능하지 않다. 이에 탄핵 결정문과 공소장에서 밝혀진 사실들을 토대로 크게 세 가지의 적폐와 개혁과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글쓴이 서문]

전편에서 다루었듯 4대 국정기조 중 하나인 ‘문화융성’을 위해 유수의 대기업이 수백억 원을 출연한 재단이 화려하게 출범했지만, 그 재단마저 특정인의 주머니를 불리기 위한 ‘깡통’이었다. 뿐만 아니다. 문화융성이 허울뿐인 구호였다는 것은 ‘좌파척결’의 잣대로 문화예술인들을 짓밟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 사진출처 뉴시스

2017년 4월17일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박근혜는 ① 근 3년간 김기춘, 조윤선, 김상률 등과 공모하여 예술위, 영진위, 출판진흥원 소속 임직원으로 하여금 정부 정책에 반대하거나 야당 인사를 지지하는 문화예술계 인사에 대한 지원을 배제토록 하였고(이른바 ‘블랙리스트’), ② 김기춘, 김종덕 등과 공모하여 ‘블랙리스트’ 실행에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기획조정실장 등 3명의 문체부 실장을 사직하게 하여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강요의 죄를 범했다. 

김종덕(전 문체부장관), 신동철(전 청와대 비서관), 정관주(전 문체부 제1차관)의 공소장에 의하면, 청와대는 ‘문화계 종북좌파 척결’을 위해 2014년 4월경부터 ‘민간단체 보조금TF' 등을 운영하며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3000여개의 문제 단체와 8000여 명의 좌편향 인사 DB를 구축하고, ’블랙리스트‘ 지원 배제를 철저히 집행했다. ’다이빙벨‘을 상영하려 한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을 대폭 삭감하고, 맨부커상 수상 작가인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포함한 ’문제 도서‘를 ’세종도서‘로 선정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아쉽게도 탄핵심판에서 ‘블랙리스트’ 부분은 의결된 소추사유와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판단 대상이 되지 못했지만, 정부를 비판하거나 야당 정치인을 지지한 문화예술인에게 ‘좌파’ 딱지를 붙여 지원을 배제하는 것은 위헌이다. 

우리 헌법은 전 분야에서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등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데, 정치적 입장에 따른 차별 또한 평등권 침해에 해당한다. 특히 지원 사업이 아니고는 예술 작업을 이어나가기조차 힘든 현실에 비추어 지원 배제는 문화예술인에게 예술을 금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더욱 더 불편부당한 행정이 요구되는데, 박근혜 정부는 독립적 심의‧선발 체계까지 훼손해가며 문화예술 탄압에 적극 나서며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다.

또한 헌법은 예술‧표현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있다. 예술‧표현은 인간 고유의 자율적 창조 행위이자, 가진 것 없는 약자들이 창의력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강자/국가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이기도 하다. 예술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정한 헌법은 “국가는 국민의 예술‧표현의 자유를 수인하고 보장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정부 비판적 문화예술인을 ‘척결대상’으로 보고 철저히 배제하여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예술의 본질을 짓밟았고, 헌법의 명령에 거역했다.

문화예술인들이 생활고로 죽음에 이를 정도로 부박한 ‘헬조선’의 문화예술 풍토는, 지원사업의 불편부당한 집행에서 나아가 무한경쟁 속에서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 예술가들이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익적 토대를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경제‧사회적으로는 저성장과 불평등의 근본 문제에 대처하고, 외교적으로는 강대국 사이에서 주권과 국익을 수호하고 평화 통일을 도모하여야 하는 복잡한 국정과제 앞에 정부는 국민의 비판을 경청하고 토론하며 섬세하게 방향을 결정하여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자유로운 예술‧표현은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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