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특별기획] 국가보안법과 대선(25)

우리 사회는 국가보안법으로 평준화되어 있는 사회다.

남한 주민 모두가 국가보안법의 테두리 안에서 교육받고 생활한다. 즉 국내의 모든 합법적인 인쇄물이나 영상물 등은 국가보안법의 검증을 거쳐 배포된다. 국내 언론은 매일 국가보안법에 걸리지 않도록 자기 검열을 지속하면서 뉴스정보를 생산, 보도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언론 보도는 대부분 북에 대해 비판적, 부정적이다.

▲ 사진출처 뉴시스

수십년간 국가보안법과 언론보도로 순치된 대중은 북한과 관련된 것을 접하면 즉각 경계심을 갖고 반응한다.

수많은 공안사건과 간첩단 조작사건을 통해 그렇게 하도록 체질화되어 있다. 혹시 친북이나 종북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자칫 잘못하면 본인은 물론 일가친척 주변이 크게 다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북한 관련 정보에 대해 비웃거나 비판적이거나 때로는 격렬한 증오심으로 반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건반사적인 반응이다. 이런 이유로 국가보안법에 의한 공격이나 종북 공세는 사회적인 흡수력이 강하다. 그것은 전파력, 감염력이 강해서 일거에 다른 주요한 이슈를 덮어버린다. 언론이 대서특필하면서 그렇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수구 보수가 선거철이 되거나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면 종북 좌파 공세를 벌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언론이 나팔수 역할을 해주니 돈 안들이고 즉각 광범위하게 관련 정보가 유포된다. 평지 돌출 식의 사회적 관심을 모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이승만이 만들어 놓은 국가보안법이 제공하는 부당이익을 손쉽게 취할 수 있는 것이다. 19대 대선에서 수구보수 후보가 TV 공개토론 등에서 친북, 종북공세에 몰두하는 것도 잔머리를 굴린 결과다.

남한 사회가 국가보안법에 오염된 정도는 정말 심각하다.

대부분의 남한 언론이나 주민은 수구보수가 앞장서 일으키는 국가보안법의 폐해를 의식치 못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진 지 70년 가까이 되면서 오늘날 남한 대부분의 세대는 국가보안법의 독기에 중독된 국가보안법 불감증 환자가 되어 있다고 할까. 이러다 보니 수구보수 정당으로부터 좌파 정당이라고 지칭되는 정당은 국가보안법 폐기를 아예 입으로 꺼내는 것조차 주저한다. 국가보안법 폐기를 주장하는 것은 친북이거나 북한 동조라는 색깔론으로 즉각 매도되는 것은 물론 표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꿰뚫어 보고 있는 수구세력이 부당한 이득을 얻기 위해 선거 등에서 국가보안법을 제 호주머니 속 물건 꺼내듯 하면서 휘두르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북한이 아닌 남한 사회의 불통과 상호의심과 대립을 부추기는 부작용이 큰, 세계가 지탄하는 악법이다.

한국 정치사는 국가보안법의 악용이 빈발한 오욕의 역사다. 이승만이 조봉암 선생을 그의 평화통일론을 빌미로 사법살인하고 박정희가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도 국가보안법으로 걸어 살해한 뒤 이 땅에 진보세력의 기성정치 진입은 오랜 시간 차단되었다. 그러다가 전두환 독재가 87년 6월 항쟁에 굴복한 뒤 민주화가 정권교체 등을 통해 추진되었다. 진보의 공간도 넓어진 것이다. 그러나 수구세력은 선거 때마다 민주화 세력에게 국가보안법의 철퇴를 가하거나 종북 공세를 퍼부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도 정권 위기시마다 국가보안법을 휘두르는 공통점을 보였다. 박근혜는 집권 이후 끊임없이 이어진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을 동원한 대형 사건을 조작하거나 부각시켜 그것을 덮는 식의 통치 방식을 지속했다. 통합진보당을 공중분해시키는 등 박정희 독재자의 철권통치 기법을 써먹은 것인데 그러다 결국 파면 당했다. 

국가보안법은 유엔 등이 철폐를 요구하는 후진적 악법으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

그 결과 남한 사회는 불통과 불신의 사회, 경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회로 전락했다. 이는 ‘북한이라는 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궤멸시켜야 한다’는 국가보안법의 논리가 이 사회에 만연된 결과로 추정된다. 그것은 헬조선의 원인의 하나다. 더욱 불행한 것은 국가보안법이 미래에 대한 상상을 금지하는 것이다. 그 결과 한반도에 대한 미래학이 북한을 흡수통합하는 방식 외에는 연구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국가보안법은 이승만이 1948년 만든 이래 대소 선거를 지배하면서 수구세력에게 부당이득을 안겨주고 있다. 수구보수세력은 기득권을 위협하는 상대를 반사회적 존재로 격하시키거나 공동의 적으로 몰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즉 국가보안법으로 공격하거나 국가보안법에 뿌리를 둔 종북이념 공세를 퍼붓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 간 선거 때만 되면 수구보수 정당은 국가보안법을 악용하거나 그 테두리 안에서 안주하는 식의 선거운동을 벌이는 모습을 보였다.

수구세력은 공식선거 초반부터 선거전 막판까지 정권탈환을 추구하는 정치세력에 대해 종북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남북간 전쟁 일보 직전의 상태까지 한반도 사태를 악화시키는 짓도 주저하지 않았다. 오직 표 계산을 하면서 벌인 막가파식 정치다. 19대 대선도 이런 현상이 고스란히 반복되었다. 

국가보안법이 존속되는 한 이 나라기 평등하고 활기 넘치는 사회가 될 희망이 없다.

국가보안법은 상호 윈-윈의 공동체 논리에 역행한다. 그 결과 정상적인 경쟁이 자취를 감추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너 죽고 나 살자’는 논리만이 횡행한다. 고위공직자 청문회 등에서 불거진 탈세, 위장전입, 투기, 논문 표절 등이 그것을 입증한다. 출세를 위한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더욱 한심한 것은 사회 고위층의 수치심이 마비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승만이 지하에서 자기가 만들어 놓은 국가보안법이 계속 독기를 뿜어 남남 갈등을 부추기고 민족 공동체 의식을 파괴하는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국가보안법과 수구정치, 어용언론의 폐해가 컸던 정권 가운에 하나가 박근혜 정권이다.

박근혜는 국정농단, 헌정 유린으로 헌정 사상 최초로 파면 당한 대통령이 되면서 국격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이런 박근혜를, 국가정보원을 시켜 부정선거를 하면서까지 당선시키려 획책한 이명박 정권도 문제가 많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이명박이 박근혜의 당선 등을 위해 휘두른 대북 정책과 종북 공세를 살펴보면 소름이 돋는다. 이명박은 지난 2008년 집권 초부터 북한 핵문제 해결을 우선하는 ‘비핵개방 3000’이라는 대북 정책을 앞세워 '6.15선언, 10.4선언 이행하라'는 북측의 요구를 외면했다. 이명박 정권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과 남북관계가 별개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외면했으며 국가보안법의 취지에 따라 북한을 철저히 반정부 집단으로 상정한 대북 정책을 추진했다.

이명박은 집권 초 북한의 대화 요구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면서 가급적 회담을 피했고 회담이 열리더라도 ‘진정성’ 등 이런저런 핑계를 앞세우면서 내실 있는 합의를 외면했다. 이명박 정부는 북측이 김정일 위원장 개인에 대한 비판이나 공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이용하려는 듯 기회만 있으면 김 위원장 와병설 등을 통해 북한을 자극하는 언행을 지속했다. 이런 작업은 국가보안법을 생명줄로 삼고 있는 국정원과 청와대에 장악된 언론에 의해 이뤄졌다.

이명박 정권은 천안함 사고 원인에 대한 의혹 제기가 그치지 않는 상황에서 사고 책임이 북측에 있다는 일방적 주장을 펴면서 대북 제재를 미국과 공동으로 추진했다.

북한은 자신들과 전혀 관계가 없다면서 공동조사를 제의했지만 이명박은 이를 묵살했다. 이명박 정권은 북측의 비핵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남북간 교류 정상화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면서 한반도를 위기의 상황으로 몰아갔다.

이명박은 지속적인 한미군사훈련을 실시해 중국의 강력한 항의 속에 한반도 정세 악화와 동북아 신냉전 조성에 앞장서고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 시기도 몇 년 늦추는 등 군사적인 대미 종속을 심화시켰다. 이명박 정권은 남북 평화통일의 전 단계로 매우 중요한 한반도경제공동체 조성을 위한 남북교류협력은 물론 남측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외면한 채 ‘4대강 죽이기 사업’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탕진했다.

이명박 정권은 2012년 여름 발생한 북한의 수해와 식량난이 심각하다는 국제 여론에도 불구하고 ‘별로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는 식의 태도를 취해 같은 민족간 비극과 고통을 외면하는 냉혈한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은 민족의 염원인 통일과업의 진전은커녕 뒤로 후퇴시키는 반역사적 범죄행각을 저지른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6.15공동선언과 10.4남북정상선언을 외면하면서 북의 존재를 인정치 않는 대북 강공책을 폈고 그 결과 남북평화교류의 상징이었던 금강산 및 개성관광은 그 문이 굳게 닫히고 말았다.

이명박 정권 이전 활발히 전개되던 대북 쌀 차관지원은 완전 중단되었고, 남북 언론 및 학술 교류도 급감하다가 천안함 사고 이후 거의 차단되었다.

천안함 사고 등으로 남북관계가 크게 경색되면서 10.4남북정상선언에서 합의된 사항이 이행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탄식의 소리가 높았다. 즉 서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공동어로구역 지정과 평화수역 조성,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와 경제특구건설,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적극 추진 등이 실천되었다면 천안함 사고는 발생치 않았을 것이고, 남북경제공동체 추진 외면과 같은 가슴 아픈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명박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이룩한 남북의 자주적인 교류협력 기반을 외면하고 파괴하는데 앞장섰다.

돌이켜 보면 남북은 지난 2000년 6.15공동선언을 통해 통일의 자주적 해결, 연합-연방제 공통성 인정, 친척 방문단 교환, 경협 확대, 당국자간 대화 재개 등에 합의했다. 6.15공동선언은 반세기 넘게 막힌 남북간 교류협력의 출발점이 되어 하늘과 땅, 바다 길이 열리게 한 세계사적인 쾌거였다.

국제사회가 6.15공동선언에 박수갈채를 보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를 계기로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또한 2007년 10.4남북정상선언을 통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과 공존을 위한 평화협정 체결도 기대할 수 있는 수준까지 진전되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모두 중단되고 남북간에는 불신과 대결의 벽이 높아졌다.

이명박 정권하의 언론 대북관련 보도는 북한을 상종할 수 없고 존재가치가 없다는 식의 낙인찍기가 주를 이뤘다. 특히 이명박 정권이 7.4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에 기반을 둔 6.15공동선언, 10.4선언을 백지화한 뒤 조중동의 대북 보도는 지독한 반공, 멸공 논조로 이어졌다. 정부 비판을 친북, 좌익 세력의 준동으로 모는 작업이 수구보수언론을 중심으로 거대한 반공조직인 반공 지식인, 악덕 부유층, 공공기관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이뤄졌다.

남북관련 의제 설정과정에서부터 국가보안법의 취지에 맞는 프레임을 만들거나 여론을 조작, 호도하는 방식이 동원되고 주요 사안의 경우 일부분만을 내세우는 침소봉대, 부분 묵살, 특정 부분 강조 등을 통해 여론을 정권과 수구언론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는 일을 벌였다. 예를 들어 북한 권력체계 변화를 왕조세습으로 낙인찍어 혐오감을 증폭시키거나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발생한 대북 투자기업들의 줄도산을 외면했다. 이명박 정권과 어용언론은 북한의 의사결정 특색을 철저히 무시하면서 금강산 관광 중단의 책임을 북한에 돌렸다.

조중동 등은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에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그에 비판적인 입장은 친북 좌파로 몰았다. 이는 국가보안법의 그림자가 더 짙어지게 만들었다.

권언유착 속의 대북 강경책의 추진 결과 남북관계는 전쟁일보 직전의 상황으로 악화되었고 이명박 대통령부터 전쟁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일이 일상화되었다. 이명박 정권은 집권 후반기 대선이 가까워오자 청와대가 직접 나서는 식으로 종북 공세를 강화해 선거 분위기를 공안 국면으로 몰아갔고 국정원의 불법 선거운동이 자행되면서 박근혜가 청와대에 입성토록 만들었다. 박근혜는 집권 기간 동안 이명박 정권의 비리와 부정부패 의혹에 대해 철저히 외면하고 그 진상 파악 작업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이명박이 집권을 도운 것에 대한 대가였다는 의혹이 파다했다. 촛불로 집권한 새 정부는 이에 대한 진상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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