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연재] 이희종의 '진보정치 그 다음'

진보정치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가 있다. 평가는 힘 빠진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건데? 어떤 진보정당을 만들 것인지 물으면 뭐라고 얘기할까? 오늘은 진보정당의 얼개를 설계해 본다.

일단 강령의 전문에는 항일투쟁에서부터 촛불항쟁까지 민중의 투쟁 역사를 계승하는 정당이라고 적자. 노동자 농민, 일하는 사람들의 계급적 이익을 대변하며 투쟁하는 정당이라고 성격을 규정하자. 자주와 통일, 민주와 평등. 오래된 주장에서부터 생태와 여성, 미래 가치도 담자. 그리고 우리가 만들 세상은 헌법 너머 있음을 명확히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헌법을 넘어 대안적 사회체제를 추구하는 정당이라고 적시하자. 이 당이 완성된 진보 대통합정당은 안될 것 같으니 진보진영의 대단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도 담겠다.

당을 운영하는데 첫 번째는 당의 권력이 노동자 민중에게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노동자 농민에게 당직 공직의 절반 이상을 보장해주자. 그중에 절반은 비정규직에게 줄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만드는 진보정당은 비정규직 당이 되어야 한다.

당의 미래를 준비하는 건 정말 중요하다. 늙어가는 진보에 미래가 없다. 청년 정치인을 키워야 한다. 당 대표와 별도로 광역시도당 이상에 청년대표를 따로 두자. 예산에서도 청년예산을 가장 많이, 따로 배정하자. 아예 가용예산의 10%는 청년정치인을 양성하고 청년들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쓰는 거로 당규에 명시해버리자.

여성들의 정치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여성할당 30%도 꼭 지키자. 당원들의 행사에는 여성들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돌봄 의무도 당규에 적시하자. 당원들의 진보정치에 대한 학습도 규정하자. 광역시도당에서는 상시로 진보정치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 공부하는 당을 만들어야 한다. 몇 년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나면 교육과정 이수 없이 당직 공직 근처에도 못 가게 해야 한다.

촛불 정치에서 배운 직접정치의 힘을 당에서도 구현하자. 위에서부터 건설하는 정당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만들어가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당이 살아 있으려면 가장 아래에 있는 지역 조직, 분회가 살아 움직여야 한다. 분회와 분회장에게 의무와 헌신만이 아니라 권한을 주자. 지역위원회, 현장위원회의 운영을 분회에 맡기는 거다. 일정 인원이 모이면 분회가 되고 그 분회가 모여 지역위원회와 현장위원회를 구성하면 된다. 분회장이 지역위원회와 현장위원회의 당연직 운영위원이 되고 지역위원회, 현장위원회가 커지면 분회장을 대의원으로 하는 방법도 있겠다. 광역시도당 대의원의 절반도 분회장이 하자. 분회가 살아야 당이 산다면 그들에게 당의 권력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

새로 만드는 진보정당은 웹 기반 정당이다. 웹 기반은 미래정치, 직접정치의 전제가 된다. 돈은 좀 들겠지만, 시작부터 웹 기반을 구축하겠다. 당원용 앱을 만들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서 상시로 당원들과 소통할 수 있게 하겠다. 아예 당규에다가 웹상에서의 안건 공지와 토론을 의무화하자. 대의원대회가 열리기 전 스마트폰에서 안건을 확인하고 당원들과 토론할 수 있다. 이렇게 당원토론을 거쳐 대의원들이 의결하자. 앱을 통해 당원들의 의견수렴을 상시화하고, 당원들도 언제든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최고위원회, 광역시도당의 안건을 발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 웹 기반 정당에 다가가는데 노동현장과 농민들에게 일정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진보는 변화와 발전이다. 진보정당의 당원들에게는 이것도 학습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직접정치의 시대. 중앙당 대의원은 전체를, 광역시도당 대의원은 분회장을 제외하고는 추첨으로 선출하자. 사실 대의원들이 무슨 큰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녹색당도 이렇게 한다고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더라.

이번에 만들어지는 진보정당의 가장 큰 화두는 단결이다. 여러 진보세력의 공존을 보장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당내 의견그룹을 공식화하는 것도 필요하겠다. 의견그룹으로 등록하면 당 홈페이지와 앱에 의견란을 보장해주고, 의견 개진의 권리도 주자. 당원들이 당내의 의견그룹들이 어떠한 주의주장을 하는지 충분히 소통할 수 있게 보장해야 한다. 당의 입장을 발표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할 때면 결정문과 함께 소수의견을 함께 적는 원칙을 만드는 것도 좋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데, 그다지 새롭지도 발칙하지도 못하다. 신분사회를 풍자한 홍길동전에 나오는 이상국가 율도국의 왕은 홍길동이다. 봉건체제를 뛰어넘는 상상을 못한 허균처럼 나도 과거 진보정당의 경험을 버리지는 못하는 건 아닌지. 그다지 새롭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다시 보니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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