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연재] 이희종의 '진보정치 그 다음'

▲ 새로 선임한 장관들과 함께 청와대로 향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출처 청와대SNS]

참여정부의 출범은 2002년 미선이 효순이 촛불시위로 시작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중요한 패배원인으로 대규모 반미시위를 꼽았다. 참여정부 탄생의 배경이 되었다. ‘반미 좀 하면 어떠냐?’, ‘사진 찍으러 미국에 가지 않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들이 쟁점이 되었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이라크파병과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지지층을 잃고 방황했다. 외교 문제만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인권 변호사시절을 추억하며 노동진영에서도 기대가 상당했다. 하지만 재벌문제도, 노동문제도 지지층의 요구를 외면했다. 물론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보수정치와 촛불의 요구사이에서 그들 나름 전략적 선택이 있었을 테다. 여하튼 그들의 전략은 실패한 셈이다.

‘선배 너무 감동적이지 않아?’, 518 기념식을 보는 중 후배에게 카톡이 왔다. 요즘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대통령의 연설문을 챙겨본다고 한다. 참 복 받은 정부다. 행보 하나하나에 관심이 집중되고, 지극히 상식적인 결정에 국민이 환호한다. 이명박근혜 정부 10년의 경험과 촛불 항쟁이라는 든든한 정치적 배경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어떤 이는 문재인정부의 한계를 쉽게 이야기했다. 참여정부 실패를 본 냉소가 있었다. 하지만 15년 전 30대, 40대이던 그들은 정치 경험을 쌓은 50대가 되었다. 정치적 배경은 오히려 좋아졌다. 자유한국당은 지역 정당이 되었다. 삼성 재벌의 상징인 이재용 회장은 감옥에 있다. 무엇보다 국민은 15년 전 그 국민이 아니다. 국제관계도 변했다. 미국은 종이호랑이가 되었고 중국은 미국과 패권을 다툰다. 촛불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도 많지만 선택지는 넓어진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10년의 반성과 평가가 있고, 노무현 대통령을 잃은 분노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민주개혁세력 모두의 실패라는 절박함으로 정권 초기 국정원, 검찰 등의 권력기관을 개혁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그들 나름의 오답 노트를 준비한 셈이다. 그리고 지지세력과 여론의 지지를 활용하는 그들의 기획 행보에서 그들의 오답 노트는 우리의 생각보다 꼼꼼하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나, 미국과의 관계 등에서 어떤 자세를 보일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진보진영이 무작정 손뼉만 치고 있을 수 없는 처지다. 우리도 참여정부 시절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명박근혜 정부 10년을 겪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오답 노트에는 무엇이 적혀있나?

참여정부의 노동정책과 대외정책의 실패로 진보진영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쉬웠다.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외연을 확장했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나오면서 전투적 통일 운동은 대중화되었다. 여중생 사고 이후 지속적인 반미투쟁이 일어 한미관계 개선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만들었다. 민주노총과 시민운동의 사회적 영향력도 커졌다.

참여정부 시절 어느 때보다 정치역량을 축성할 수 있는 시기였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민주노동당이라는 훌륭한 정치조직이 있었고 민주노총의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되었지만, 우리는 청년 비정규직을 조직하지 못했다. 학생운동, 농민운동 등 진보적 대중조직들은 약화하였다.

대신 당의 외연이 확대된 만큼 우리끼리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노동자 농민 등 기층 민중을 당의 골간으로 튼튼히 세우기보다는 당의 주도권을 두고 다투었다. 당을 중심으로 모든 역량이 집중되었다. 진보적 대중조직은 약화하였지만, 진보정당이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토대로 발전하지 못했다.

다 알고 있는 불편한 이야기다. 하지만, 따지고 들면 실패의 원인과 책임은 다르다.

전농이 제안한 진보대통합원탁회의가 성과를 내서 새로운 진보통합정당이 건설된다. 비록 완전한 통합을 이루진 못할지라도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갈라진 진보진영이 다시 한번 단결을 모색하는 의미있는 움직임이다.

기뻐야 하는데, 사실 걱정이 앞선다. 또 무엇으로 논쟁하게 될지. 어떤 쟁점이 만들어질지 문제를 풀어갈지 벌써 걱정이다. 오답 노트를 함께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배경은 더 힘들기만 하다.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도 없고 정의당까지 포괄하는 진보 대통합은 어렵다. 자칫 진보정당간의 경쟁구도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참여정부와 달리 문재인 정부의 행보를 보고 있자니 당분간 정부의 실패로 진보정당의 정당성을 얻기도 힘들 것이다.

진보정당을 잃은 분노는 공유하고 있을지 몰라도 책임을 지울 대상이 다르다. 지난 10년의 공동의 평가가 없다. 절박한 심정만으로 오답 노트가 정리될지 벌써 걱정이다.

다행인 것은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라는 것이다. 2개월 남짓한 기간 오답 노트가 잘 정리되기를 바란다. 촛불 정부처럼 우리도 오답노트를 바탕으로 진보정치 100년 행보를 기획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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