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이정훈의 ‘여명의 눈동자’(20)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 모습. [유튜브 캡처]

미국의 대선은 정치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로 끝이 났다. 트럼프는 지난달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정식 취임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좌우 양측으로부터 공격받는 사면초가의 처지다. 전통적으로 미국에서는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언론과 의회가 비난을 자제하고 축하와 기대를 표하는 이른바 ‘허니문’ 기간을 갔는데 트럼프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은 모습이다. 트럼프는 대선 유세 기간 반(反)트럼프 입장을 표방한 미국 주류언론과 여전히 격렬한 ‘전쟁’ 중이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등 주류언론은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문제를 이슈로 트럼프 행정부의 정당성을 처음부터 흔들었고, 트럼프 행정부의 은밀한 내부 정보는 정보기관을 통해 언론에 대량 유출되었다. 결국 트럼프 내각 인선이 모두 완성되기도 전에 트럼프의 오른팔로 여겨지던 핵심 참모,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클 플린은 해임 당했다. 대선은 끝났지만 미국을 움직이던 반트럼프 기득권세력은 여전히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시작부터 트럼프 흔들기에 나선 모양새이다. 그 탓에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도 처음부터 혼돈이다. 과연 트럼프는 자신의 구상과 정책을 관철할 수 있을까?

1. 그림자 정부(Deep State)와 트럼프의 대립

미국의 초당적 기득권세력(Globalist)의 군사적 패권주의 정책과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건 트럼프의 현실주의, 신고립주의 정책은 트럼프가 정권을 인수하기가 무섭게 대충돌 양상을 보였다. 위키리크스는 지난 14일 미 정보기관과 민주당, 언론의 ‘트럼프 흔들기 캠페인’(destabilization campaign)으로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이 결국 사임 당했다고 폭로했다. 또 전 국가안전보장국(NSA) 정보원 존 신들러(John Schindler)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미국 정보계의 고위직에 있는 동료로부터 “그림자 정부가 트럼프와 핵전쟁을 선언했고, 트럼프는 감옥에서 죽을 것”이라는 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떠도는 정보가 언론과 SNS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반트럼프 기조를 유지하는 뉴욕타임스조차 17일자 기사 <Leaks From Trump Admin. Stoke Fears of a ‘Deep State’>에서 일련의 정보 유출로 트럼프 정부가 비틀거리고 있다면서 정보 유출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최근의 정보 유출 정도는 전례가 없다고 평가했다. 또 이런 기밀정보의 대량 유출로 터키, 이집트 경우처럼 미국도 이른바 ‘그림자 정부(Deep State)’가 선거로 선출된 정부를 흔들고 통제할 수 있다는 분석 기사를 실었다. 그림자 정부(Deep State)란 정부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숨은 정부’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용어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과 기득권 세력, 즉 군산복합세력, 관료집단, 국가 정보기관, 언론 등의 총체적인 권력 네트워크를 일컫는다.

2. 플린의 사임과 흔들리는 트럼프 행정부

플린 사임의 공식적 이유는 그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공식 취임하기도 전에 민간인 신분으로 주미 러시아 대사인 키슬랴크와 부적절한 전화접촉과 대화를 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로건법’ 위반이라는 것인데 이를 그대로 믿는 식자층은 많지 않다. 부적절한 대화의 내용은 미국의 ‘대(對)러시아 제재 해제’ 문제를 사적으로 논의한 것이고, 이와 관련된 내용을 펜스 부통령에게 거짓 보고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플린의 러시아 대사 접촉에 문제제기하고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한 것은 다름 아닌 미 연방수사국(FBI)이다.

마이클 플린도 오바마 재임 기간 DIA(국방정보국) 수장을 지낸 정보통으로 정보기관의 속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CIA(중앙정보국)와 DIA 등 비대한 정보기구의 개혁을 주장해 이들 기관과 껄끄러운 관계였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CIA는 트럼프가 국방정보국(DIA) 국장을 지낸 마이클 플린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명한 것에 경악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독일경제뉴스(DWN)는 이미 지난해 <미국의 치열한 권력투쟁 : CIA가 트럼프 당선자를 겨눈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트럼프든 CIA든 둘 중 하나는 존폐의 기로에 설 것이라고 전망한 적이 있다.

트럼프에 비판적인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언론은 플린의 실수와 약점을 집요하게 다루었다. 연방수사국(FBI)은 도청을 통해 확인된 두 사람의 주요 통화 내용이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 문제였다고 밝혔다. 이로써 플린은 민간인 자격으로 러시아와 내통(?)한 용의자로 몰린 것이다. 이에 더해 플린에게는 지난 2015년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러시아 정부로부터 돈을 받고 연설해, 퇴역한 군인이 미국 의회의 허락 없이는 외국 정부로부터 돈을 받지 못하게 한 헌법 조항을 어겼다는 혐의가 추가되기도 했다.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 모습. [유튜브 캡처]

3. 미국의 대외정책은 어디로?

지난 칼럼(‘트럼프의 대외정책, 제2의 닉슨 독트린’)에서 필자는 트럼프의 대외정책 방향을 이렇게 요약한 바 있다. 트럼프는 미소 냉전 이후 세계 외교의 기본 틀을 바꾼 ‘닉슨 독트린’으로 상징되는 대외정책과 유사한 파격적 외교행보를 보일 것이다, 따라서 냉전 종료 이후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이 추진한 세계질서의 기본구도를 다시 한 번 뒤흔들 것이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몇 가지 변화된 정책 기조를 예상했다.

1) 소련 붕괴 이후 네오콘이 추진한 대러시아 무력화와 적대정책을 전면 전환한다.

2) 이에 따라 유럽의 반러 대치전선과 정치지형도 전환한다. 나토(NATO)의 기능과 역할도 전환한다.

3) 시리아, 중동 문제를 러시아와 협력하여 풀어가며, 중동 도처에서 사실상 미국의 대리전을 치르는 IS 문제를 실질적으로 정리한다.

4) 중국의 급속한 부상을 저지하고 미국의 태평양 지배권을 방어한다. 이에 따라 대만의 가치를 재평가한다.

5) 북한(조선)의 핵, 미사일 문제의 시급성과 전략적 의미를 재평가한다. 오바마의 실패한 ‘기다리는 전략’을 폐기하며 대북 적대정책의 전환을 추진한다. 이에 따라 평화협정을 위한 준비협상을 임기 초반에 개시한다.

미국의 기득권 정치세력과 군산복합체는 트럼프의 당선에도 불구하고 미국 중심의 패권적 세계체제를 유지하려는 네오콘의 국제주의(globalism) 경향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집단은 트럼프가 추진하는 미국우선주의를 표방한 현실주의, 신고립주의 정책에 대해 출발부터 공공연히 저항하고 있다. 그 첫 번째 핵심과제인 대러시아 관계개선 문제부터 극심한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따라서 트럼프가 표방한 정책이 어느 정도 현실화될 것인가의 문제는 트럼프의 대외정책 방향과 함께 미국 지배집단 내부의 권력투쟁 향배와 상당히 연관되어 있다.

4. ‘장외’로 다시 나서는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유출한 정보를 보도하는 것은 “범죄행위”라며 “불법 취득한 기밀정보를 마치 사탕처럼 나눠주는 자들은 정말 미국인답지 못하다”고 비난했다. 또 지난 16일 백악관에서 75분 동안 예정에 없던 장시간 기자회견을 하면서 주류 언론에 대해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러시아 유착설’ 관련 보도를 한 언론을 향해 “가짜 뉴스”라고 호통치고, 마이클 플린이 해임된 것은 “언론이 정보를 불법 유출한 탓”이라고도 했다. 다음날에는 트위터에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미디어(망해가는 뉴욕타임스, NBC, CBS, ABC, CNN)들은 나의 적이 아니라 미국인들의 적”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어 주말인 18일에는 플로리다를 방문해 9천여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을 했다. 그는 “부정직한 언론이 ‘가짜 뉴스’를 생산하지 못하도록 직접 얘기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며 “언론이 국민에게 거짓말을 하면 난 결코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트럼프가 다시 선거유세 방식의 ‘장외투쟁’과 SNS 홍보전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는 집권 시작부터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듯 보인다. 전통적 민주당 입장을 지닌 중도우파나 전통적 좌파와 싸울 뿐 아니라, 국가 정보기관과 주류 언론과도 동시에 싸우고 있다. 문제는 트럼프가 아니라 미 지배집단의 의향으로 보인다. 주류언론 및 CIA, FBI 등 정보기관과 트럼프 행정부 간의 대립과 갈등이 ‘트럼프 길들이기’ 수준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림자 정부’가 약소국들에서 흔히 행하던 방식의 ‘불량정권’ 교체를 자국 내에서 시도하려는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5. 트럼프의 한반도 정책

트럼프 내각 인선과 FBI의 플린 도청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트럼프가 선거기간 주장한 현실주의나 고립주의(사실상 몰락하는 제국주의 후퇴정책) 대외정책의 핵심과제 중 하나인 ‘대러시아 관계개선’을 실제 적극 시도하려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대외정책 기조는 대러시아 정책뿐 아니라 대한반도 정책에서도 현재 혼선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가 대한반도 정책 역시 기존 오바마의 대북 적대정책을 새롭게 전환하려 모색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이에 관해서는 지난 글에서 다뤄 생략한다). 즉흥적 막말을 좋아하는 트럼프가 취임 후 대북정책에 대한 표현을 극도로 자제하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이다. 그가 다른 대안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면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올해 한국 합참이 주도하는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미국이 어느 정도 참여할지는 아직도 분명치 않다. 이에 따라 북한(조선)은 3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주시하며 신형 ICBM 시험 발사를 준비 중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북미 간에 첫 번째 단추를 잘못 끼우면, 한반도 전쟁위기와 미국 본토의 안보위기는 갈수록 고조되고 전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트럼프는 임기 내내 이 문제를 전혀 못 풀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 등장 이후 첫 ‘1.5트랙 반관반민’ 북미대화가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라는 워싱턴포스트 보도도 나왔다. 그런데 이런 대화 흐름에 걸림돌이 될만한 이른바 ‘말레이시아 김정남(김철) 사망 사건’이 터졌다. 아직 사건의 정확한 실체가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은 거의 없다. 북은 자신들을 겨냥한 ‘북 배후설’을 강력히 부인하며 오히려 촛불항쟁으로 궁지에 몰린 남한과 적대세력(미국 CIA?)들을 의심하고 있다.

트럼프는 그의 요란한 수사와는 다르게 이미 네오콘이 주장하던 미 군사력 강화를 인정하며, 미 기득권 세력과 여러 차례 타협을 진행한 바 있다. 트럼프는 과연 자신의 정부를 만드는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중도 낙마한 닉슨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트럼프가 자기 대외정책의 큰 그림을 갖고는 있지만, 그 실행 여부는 아직도 미국 지배세력 내부의 정리되지 못한 핵심 이슈로 보인다. 이는 또 미국 내부의 권력투쟁과 트럼프 행정부의 향후 운명과 깊게 연관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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