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이정훈의 ‘여명의 눈동자’(18)

▲ 지난 3일 매티스 미국방장관이 한민구 국방장관과 함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사진출처 : 미국방부 홈페이지]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미 국방장관의 첫 행선지가 한국이었다. 전례 없는 일이다. 트럼프 취임 후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과 아시아 정책 변화 가능성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미국 대선 기간에 트럼프가 일본과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 방위비 분담증가,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 한미FTA 재협상 등 자극적 발언을 자주했기 때문이다. 과연 트럼프는 아시아에서 기존의 개입주의를 버리고 새로운 신고립주의 경향의 정책을 펼 것인가? 아니면 오바마의 대북 적대정책을 그대로 고수할 것인가?

한국 언론은 제임스 매티스 방한 기간 이구동성으로 한국 사드배치를 계획대로 추진하고 ‘한미 키리졸브 연합훈련’을 강화하는 등 대북 강경 기조를 재확인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는 미국의 속내와 의도를 제대로 읽지 못한 한국 중심의 외눈박이 보도이다. 미국이 보이는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이중적 행태’를 전혀 간파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티스는 왜 서둘러 한국에 왔으며 트럼프 정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1. 매티스는 왜 급하게 한국에 와야 했나?

보도에 따르면 매티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뜻에 따라 한국을 먼저 방문했다고 했다. 트럼프는 왜 한국과 일본에 매티스를 시급히 보낸 걸까? 한미동맹 재강조가 그렇게 시급한 현안이었던 것인가? 사드배치가 시급한 현안이었나? 시급한 현안은 북핵이 아니라 북의 ICBM 시험발사였다. 이미 일부 진보언론에서 지적한대로, 북한(조선)이 올해 신년사에서 예고한 임박한 대륙간탄도로켓(ICBM) 발사 시험에 대응하는 게 무엇보다 급했기 때문이다. 북한(조선)의 대륙간탄도로켓 시험이 미국에게는 더 이상 한국이나 지역동맹의 안보문제가 아니다. 자국의 심각한 안보 현안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 안보, 세계안보 전략의 핵심적인 당면문제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북한(조선)은 이미 당창건 행사 등 수차례 공개적인 군사퍼레이드를 통해 다양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존재를 공개해 왔다. 다만 ICBM 시험을 세계가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시행한 적은 없다. 북의 신형 ICBM 시험이 미국 본토에 대한 선제공격 능력을 공개적으로 시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바마 행정부 때까지만 해도 이를 일관되게 부인하던 미국 군부나 대북 전문가들도 최근 들어선 공개적으로 북의 ICBM 실전 배치와 위협이 현실 문제라고 실토하고 있다. 만약 교전상태에 있는 미국이 이것을 MD로 직접 대응한다면 통제할 수 없는 전쟁위기를 고조시킬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북의 ICBM 시험은 단순한 무기시험이 아니라 핵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전제로 한 모험인 셈이다. 한국인들의 안보 불감증과 다르게 이미 예고한 북한(조선)의 ICBM 시험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대응으로 한반도와 미국은 3월초 한미합동군사훈련 기간 중 위급한 전시대비체제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2. 한미합동군사훈련과 ICBM 시험

트럼프는 지난 1월 북한(조선)이 신년사에서 밝힌 ICBM 시험에 대해 곧바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트럼프의 대응은 즉흥적인 것인가? 그가 무슨 복안을 갖고 있는 것일까? 해결책은 두 가지로 좁혀진다. 이른바 군사적 선택과 외교적 선택이다. 군사적 선택은 실제 전쟁과 북 정권교체로 핵과 미사일 위기를 원천 제거하는 것이다. 다른 선택은 북이 요구하고 있는 대화와 (평화협정)협상에 응하는 ‘신호’를 서둘러 보내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오바마의 기다리는 전략을 계속 유지한다면 북은 위기를 감수하고라도 기다리는 전략을 깨는 ICBM 시험을 단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필자가 지난 칼럼들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듯이 이미 북은 초기 개발단계의 핵 시험국가가 아니라 다량 다종의 전략핵 무기체계를 완성한 상태로 보인다. 미국은 전쟁이나 정밀타격으로 북을 제압할 시기를 이미 놓쳤다. 만약 북한(조선)과 미국이 상대방에 대한 핵 선제공격을 실제 겨눈다면 북뿐 아니라 미국 역시 심각한 자국 안보 위기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은 대화와 협상에 임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방법으로 ICBM 시험을 일단 막는 것이다. 그 신호란 무엇일까? 북한(조선)은 2015년부터 미국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하면 자신들도 핵시험을 중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또 과거 여러 협상에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미사일시험과 핵시험을 중단한 사례가 있다. 이러한 제안은 또 새로운 것이 아니라 최근 조지프 디트라니, 조엘 위트, 미 외교협회 등 대북협상에 임했던 미국 내 정책연구소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누차 제안되었던 내용이다. 즉 전쟁 없이 북(조선)의 미사일 시험을 저지하는 유일한 방도는 2017년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 변경하는 정책적 결단을 내리는 것뿐이란 얘기다.

 

3. 속빈 강정 한국주도 한미합동군사훈련

지난달 말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올해 한미합동군사훈련은 ‘한국 합참’이 주도한다고 한다. 한미연합훈련을 작전지휘권이 없는 한국 합참이 주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장차 합동군사훈련에서 전략자산(ICBM, 핵장착 핵잠수함, 핵투발 전투기)을 가진 미군의 참여와 역할을 대폭 줄이거나 없앨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한마디로 핵전쟁 연습을 중심으로 해온 기존 한미합동군사훈련이 빛 좋은 개살구, 속 빈 강정이 될 수도 있음이다. 지난 2013년에도 한국 합참이 연합훈련을 주도한 적이 있었지만 연합방위 태세와 전략자산은 유지되었다. 이는 2015년 한국으로 작전지휘권을 이양한다는 계획을 염두에 둔 조처였다. 그러나 올해 미군의 전략자산 참여가 없거나 축소된 한국 주도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진행된다면 이는 기존의 키리졸브-독수리 훈련과 성격을 전혀 달리하는 ‘새로운 종류’의 군사훈련이 되는 것이다.

이런 함의를 알고 있는 한국 국방부와 이순진 합참의장은 매티스 방한 전에 던 포드 미 합참의장에게 올해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미국의 전략자산을 투입해달라고 여러 차례 간청한 바 있다. 그러나 국내 언론의 보도와 다르게 매티스는 이번 방한에서 공식적인 확답을 하지 않고 떠났으며 미 국방부 보도문에도 그와 관련한 언급은 없었다. 북핵에 공동 대응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하자고 하면서, 실제로 한 달도 안 남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의 가장 중요한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계속 이러한 한국 주도 합동군사훈련을 진행할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언행불일치, 이율배반적 처신을 하고 있다.

▲ 지난해 6월 북한이 중장거리전략탄도미사일 ‘화성-10’을 시험 발사하는 모습. [사진출처 : 노동신문 홈페이지]

4. 전략자산 대신 와야 했던 매티스 국방장관

미국 상원에서 대북 군사적 옵션 선택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선택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성격과 규모를 변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지난 2일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 1월27일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이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해온 조선정책을 “재검토(review)하라고 지시”하였고, 그 방향은 “북한이 핵탄미사일로 미국을 타격할지도 모르는 조건을 다루려면 트럼프 행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찾아내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매티스는 방한 중에 무엇을 합의하고 무슨 말을 했나? 별명이 미친개(Mad Dog)인 매티스의 방한 분위기는 전쟁을 대비하는 장수의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언론보도를 보면 매티스는 한국과 일본 등 동맹들의 입장을 들으러 왔다고 했으며, 실제로 한미동맹을 누차 강조했으나 자기가 말하기보다 상대의 얘기를 들었다. 마치 외교관 같은 추상적이고 모호한 말만 반복적으로 남기고 조용히 떠났다. 흔한 공동 발표문조차 남기지 않았다. 지난 2일과 3일자 미국방부 보도자료를 보면 국내 언론의 희망적인 보도와 전혀 다르게 한미간 ‘합의 사항’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한국이 주문하고 ‘언급’하거나 ‘협의한’ 내용을 주관적으로 ‘양국 합의’로 확대해석한 국내 언론의 보도와는 전혀 다르다. 이런 보도자료 내용이 사실 매티스의 언행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미국의 이중행각과 립 서비스

매티스의 한미동맹 강화, 확장억제력 제공 등 ‘립 서비스’를 중심으로 보도한 국내 언론과는 전혀 다르게 매티스의 실제 방한과 방일 행적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를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은 미국의 속내와 의도를 읽을 수 있다.

1) 트럼프는 기존 오바마 대북 적대정책을 전환하려하고 있다.

2) 당면한 북한(조선)의 ICBM 시험 발사를 시급히 저지하려하고 있다.

3) 한미합동군사훈련의 내용과 성격을 변형, 전환하려하고 있다.

4)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지와 같은 충격적 방법이 아니라 모호성을 유지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5) 한국 정부(국방부)에게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전환이라는 충격을 최소화하고 완화하는 점진적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다.

매티스의 이례적 긴급 방문과 한미동맹 강화 립 서비스에 한국 정부는 한편으로 안도하고 있다. 그러나 매티스는 올해 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거나 형식적으로 보낼 미국의 전략자산 대신 온 것이다. 이미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시작부터 파행이다. 불과 한 달도 안 남은 군사훈련을 전적으로 한국합참 주도로 할지, 미국이 얼마나 이 훈련에 참여할 것인지 구체적 확답은 주지 않았다. 이 또한 전례 없는 일이다.

 

6. 언급 않은 방위비 분담과 국내 언론의 희망보도

신임 미국무장관 틸러슨의 발언에 대한 국내 언론의 주관적 희망을 보자. 그는 미 상원의 인준안 처리에 앞서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벤 카딘(메릴랜드) 상원의원에게 제출한 서면답변 자료에서 “북한의 우려를 해결할 새로운 전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한)군사적 위협에서부터 외교 문호 개방까지 테이블 위에 모든 옵션을 올려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연합뉴스는 9일자 관련 기사를 <美국무 “군사조치 포함 새 대북접근법 마련… ‘세컨더리보이콧’도”>라는 제목으로 보도해 ‘군사조치’에 초점을 맞췄다.

매티스 방한 후 북의 반응은 예년과 비교하면 전례 없이 차분하다. 사실 매티스도 방한 당시 북핵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동맹국 위협을 반드시 격퇴한다는 말 이외에 대북 자극발언을 한 것이 거의 없다. 사드배치를 계획대로 추진하자는 것도 재확인 수준이지 방문의 초점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매티스 파견을 통해 한국과 일본에게 자신이 선거기간 신고립주의, 미국우선주의 입장의 언사에서 받았을 불안감을 해소하는 조처를 우선 취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에게는 ‘센카쿠 열도가 미일 안보조약 범위’에 포함된다는 확약을 명시적으로 주었다. 또 이례적으로 미일 군사비 분담이 오히려 모범이라는 언급도 했다.

매티스 방한의 주목적이 ‘변화’가 예견되는 한미동맹에 대해 한국 정부를 달래는 것이기에 그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문제를 아예 꺼낼 수 없었다. 트럼프 시대 미일동맹이 강화되는 것과 달리 한미동맹은 겉보기와 다르게 처음으로 위기신호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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