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혁의 경제분석①] 재벌개혁 입법 과제 분류

재벌개혁이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찬성 대가로 최순실 및 미르재단에 440억을 건넨 죄로 출국 금지되었고, 배임죄로 두 번씩이나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던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으면서 재단에 111억원을 출연하여 특검의 조사를 받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은 대통령에게 노사문제 등 민원을 청탁하고 대가로 128억원 출연한 의혹으로, 금속노조 등이 고소고발 하였다.

촛불항쟁의 힘으로 재벌 총수 구속, 전경련 해체 등의 요구가 높아지자, 대선 주자들이 경쟁적으로 재벌개혁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야당이 주도하는 1~2월 국회에서도 일부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있다. 사실 19대 국회 이후로 재벌개혁 법안 발의는 100건이 훨씬 넘을 것이다. 경제민주화가 주요 이슈였던 20대 국회에서 일부 개정된 부분도 있지만 부차적인 조항들이고 핵심적 영역들은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집단의 독과점 역사

역사적으로 재벌의 문제란, 대기업이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으로 독점가격을 형성하고 담합으로 시장을 지배하며 권한을 남용한 것이다. 이로써 경쟁이 제한되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독립적 지위를 상실하고, 재벌의 하청업체, 가맹점, 대리점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구조는 원하청 공급사슬에서 불공정행위를 일상화시켜, 전체 고용의 88%를 책임지는 중소기업은 전체 순이익에서는 22%만을 분배받는다. 이로서 중소기업 노동자 임금은 대기업 노동자의 절반수준에 불과하다.

기업결합으로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하여 현대기아차그룹이 국내 자동차시장 70%를 점유하여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또한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3사가 78%의 점유율 그리고 홈플러스·이마트·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가 53%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동통신 KT, SK, LGT 3사는 100% 점유율로 가격을 담합하여 통신요금이 세계적으로 높고 중소·중견기업들의 신규진입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트러스트(수평적), 콘체른(수직적) 기업결합으로 인한 국민경제 폐해가 너무 크자 미국 등에서는 반트러스트법, 기업분리명령제 등을 도입하여 대기업집단 해체를 실행하였다. 이로써 독점 통신회사 AT&T는 무선과 유선, 단거리와 장거리, 지역별 등 8개 회사로 분할되었고, 철강과 석유 독점업체들도 분리된 바 있다.

강력한 공정거래법

한국도 미국, 일본 공정거래법을 그대로 받아들여 유사한 법적 수단들이 있다. 헌법 제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 성장과 적정한 소득 분배,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하여 부의 편중을 막기 위한 국가의 개입을 열어 놓고 있다. 특히 공정거래법에서는 제3장 기업결합의 제한 및 경제력집중의 억제 조항에서 자산총액 2조이상의 대규모회사가 다른 회사 '주식의 취득·소유', '임원겸임', '합병', '영업양수' 등으로 인한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경쟁을 제한하는 경우를 시장점유율 1위 또는 2위와의 격차가 전체 점유율의 1/4이상, 중소기업의 시장점유율이 2/3이상인 거래분야에서 기업결합이라고 명시하고 있고, 이를 위반했을 시 제16조 시정조치로 공정거래위원회는 '해당 행위의 중단', '결합한 기업의 주식처분', '임원사임', '영업양도', '채무보증 취소', '과징금 부과' 등을 명령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집단의 기업결합에 의해 독과점이 심화되고 중소기업들의 시장진입과 경쟁을 제한받고 있어도 효과적으로 이에 대응하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무총리 소속의 장관급 중앙행정기관이자 준사법기관으로 사실상 대통령과 총리가 임면하는 의사결정기구인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고, 실무기구인 사무처는 총무과·기획관리관·심판관리관·정책국·독점국·경쟁국·소비자보호국·하도급국·조사국 등 1과 2관 6국과 5개 지역사무소로 구성되고 약 500명이 근무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제검찰 수준의 권한을 부여받으며 법률에 기반한 재량적 판단으로 행정조치를 통하여 경제력 집중에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공정위는 정권의 성격, 사법부 판단 등에 영향을 받으면서 핵심적인 규정을 실행한 경우가 거의 없고 부수적인 규정을 중심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에 야당 등 시민단체에서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기, 일부 업무의 지자체 이전 등을 주장하고 있다.

재벌개혁의 입법과제 분류

공정거래가 무너진 한국사회에서, 재벌은 정경유착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불법과 편법을 일삼고 있다. 이에 다양한 재벌개혁 입법 발의가 진행되고 있다. 천차만별한 재벌개혁 과제들에서 우선순위와 중요성은 관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재벌개혁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필자의 입장에서 주요 과제들을 분류해 보겠다.

무엇보다도 재벌개혁의 핵심은 지배구조개선이다. 지배구조개선을 위해서는 공정거래위의 시행조치 명령과 공정거래법의 일부 개정을 필요로 한다. 기존 순환출자 해소, 계열·기업분리명령제 강화, 지주회사 요건 강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둘째 언론에 자주 나오는 총수일가에 대한 문제는 중요하지만 사실 핵심문제는 아니다. 지배구조의 민주적 개편이 이루어지면 총수 문제는 자동으로 해결된다. 그러나 제왕적 재벌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경제력집중, 세습 등이 세간의 이목을 끌기 때문에 주요 이슈로 주목되는 경우가 많다.

세째 소수 주주의 권리를 강화하여 지배구조를 개선하자는 발상도 의미가 있다. 이는 공정거래법이 행정규제로 규제 기준을 정하기 어렵고 대통령과 공정위 위원장에 따라 입장 차이가 크므로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이 어렵고 법을 개정하는 것도 기득권자들의 저항이 크기 때문에, 상법 개정으로 주주들이 권리를 스스로 행사하여 시장기능을 통한 개혁을 실시하자는 입장이다. 전자투표제(대표적으로 주주들이 주주총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음), 집중투표제(이사를 선임함에 있어서 선임하고자 하는 이사의 수만큼의 의결권을 1주식의 주주에게 부여하는 제도로서, 외부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할 독립된 사외이사가 선임될 가능성이 높음), 다중대표소송(주식회사 이사가 불법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칠 때 주주들이 소송을 할 수 있는 대표소송제를 자회사까지 확대, 비상장 자회사는 총수일가 지분이 많은데 이런 대표의 불법 행위에 대해 소송할 외부 주주가 없으므로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대표에게 소송할 수 있게 함)가 주요 법안인데 이는 박근혜의 대통령 선거공약이기도 했다.

네째 최순실 뇌물과 정경유착 등이 부각되면서 이슈화된 재벌 총수일가의 불법재산 환수는 매우 강력한 조항이다. 사유재산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한국에서 이전에는 발의된 바 없고 최근 대선 후보들이 제기하고 있다. 친일재산환수법에 기초해서 추진하자는 주장이 있으나 이를 재벌 총수에 적용하기는 위헌 소지가 있고, 박영선 의원의 특정범죄 수익 환수 특별법을 보완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에 따르면 횡령, 배임 등의 범죄와 범죄에서 유래된 수익까지 환수할 수 있다.

다섯째 재벌 관련 조세개혁으로 법인세 인상(최고세율 25%)과 법인세 감면을 제한하는 최저한세율 인상, 사내유보금 과세 등이 있는데 매우 중요하다.

여섯째 이해당사자 권리 확대로 중소기업 교섭권 인정, 산별교섭 인정, 노동이사제 도입 등이 있다. 경제민주화의 주요 내용은 납품업체와 노동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이는 납품단가에 대한 교섭권과 임금·고용에 대한 교섭권을 부여할 때 가능하다. 대공황 극복을 위한 뉴딜정책의 주요 내용은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교섭권과 쟁의권을 보장한 것이다. 이로 인해 10%였던 노조 조직률이 1954년 34%까지 상승하였고 빠르게 임금인상이 이루어졌다.

일곱째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들이 있다. 이는 상생협력법에 의한 초과이익공유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인데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매우 중요하다.

국가 대개조 차원에서 재벌개혁 설계

향후 일정을 볼 때 1~2월은 상법개정으로 소수 주주 권리 확대,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등 바른 정당(비박계)까지 동의하는 수준의 입법들이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분할 및 중소기업 교섭권 보장 등 공정거래법을 바꾸는 문제는 대선 핵심 공약으로 차기 정권에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개혁진영이라고 재벌개혁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경제력집중 해소를 위해 대기업집단에서 사업연관이 없는 계열사를 분리하자고 하면 삼성·한화 빅딜 때 분리된 한화테크원의 노동자들처럼 다수는 반대할 것이다.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도 마찬가지이다. 재벌개혁은 국민경제와 고용정책 등 종합적 산업정책 하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눈앞의 이해관계만이 아닌 국가경제 구조를 새롭게 재편하는 역량과 대안이 필요하다.

촛불혁명이 새로운 국가를 설계하는 전망과 결합될 때 재벌개혁은 강력한 추진력을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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