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졌던 민족 근현대사의 불편한 진실 드러내기

민플러스는 조국과 역사 앞에 아낌없이 자신을 바친 혁명가들의 이야기가 담긴 김성동 작가의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을 작가와 책을 펴낸 ‘박종철출판사’의 동의 아래 연재한다. 작가는 ‘일흔한 분의 헌걸찬 어르신들께 바치는 한 점 향불’을 올리는 마음으로 6년여 간의 발품과 작업과정을 거쳐 원고를 완성했으며, ‘혁명이 사라져버린 시대에 허물어진 혁명가들의 삶을 떠올려 보는 마음’을 보태고자 펴낸 책이라고 밝혔다. 연재에 앞서, 작가생활 40년 결산의 의미도 함께 담아 책을 펴내게 된 배경을 과거 기자가 쓴 글(2014년 4월 27일 중도일보 '문화초대석' 게재)로 대신하며 매주 일요일 한 분의 혁명가를 소개한다. [편집자]

 

해방공간이던 1947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서라벌고 3학년인 19세 때 출가해 10여 년간 불교승려로 살아야 했던 그에게 가족사는 우리 민족사이자 아픈 분단사이기도 했다. 그가 4살 되던 해,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가 해방 후 좌익활동가란 이유로 대전의 산내 뼈잿골에서 학살됐고, 작은아버지도 청년단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홍성면장이었던 외삼촌은 인민재판에서 처형당했다. 그야말로 친가와 외가가 혼란스러운 시대 속 좌우익의 희생물이 된 것이다. 이처럼 민족분단사의 비극을 온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온 작가가 김성동이다.

그의 출가는 바로 이런 가족사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아홉 살배기 손자의 손을 잡고 대전으로 이사하던 날, 할아버지에게 사복경찰들이 찾아와 이사 온 연유를 불온하게 불으며 어린 그에게 ‘붉은 씨앗이군’이라고 한 말이, 그래서 평생 연좌제에 묶여 일거수일투족이 발가벗겨지던 일상이 그에게는 속세를 떠나라는 두려운 명령으로 느껴졌으리라.

문학은 그의 두 번째 출가처이다. 소설 <목탁조>로 ‘주간종교’ 종교소설 공모당선은 불교계를 악의적으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승적박탈이라는(하지만 그에게는 정식 승적이 없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짐을 지운다. 하지만 이를 계기를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하게 됐고 1978년 중편 <만다라>로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았으며 장편으로 개작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소설 <만다라>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불가리아어 등으로 번역돼 해외에서도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이후 장편소설 <집>, <길> <국수>, <꿈>과 소설집 <피안의 새>, <오막살이 집 한 채>, <붉은 단추>, 어른 동화 <염소> 산문집 <먼 곳의 그림내에게> 등등의 작품으로 신동엽창작기금과 행원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등을 받았지만 그에게는 ‘그의 만다라’를 완성해야 할 사명이 있었다.

바로 그의 삶을 옭아맨 숙명의 화두를 풀어야 했다. 그가 <만다라>에서 던진 ‘병 속의 새는 어떻게 꺼낼 것인가?’ 같은 어려운 화두는 바로 아버지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가족사를 풀어내는 일이다. 진사 급제한 증조부 김창규가 한일합방 때 곡기를 끊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거나 중시조인 김상용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 함락 당시 화약에 불을 지르고 자폭했다는 집안 내력을 굳이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우리 민족의 역사는 그에게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인 것이다.

그 숙제 중 하나가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이다. 분단이라는 상황으로 독립운동사에서 제적당한 좌익독립운동가 열전이다. 지금까지도 금기시되고 있는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미화도 없이, 있는 그대로 역사의 표피를 들춰내듯 조심스럽게 다룬 이 책에는 놀랍게도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를 비롯해 당시 한국문단의 주요 작가들인 이태준, 한설야, 임화, 이용악, 오장환 등과 천재음악가 김순남, 조선복식사 연구 권위자이자 근대미술의 거장 화가 이쾌대의 형인 이여성 등 문화예술계의 거두들의 활동상이 소개돼 있다.

총 71인 좌익계 인사들의 삶은 40년간 발품을 팔며 모아온 각종 자료를 통해 얻은 것으로, 그에게는 근현대사 속에서 풍랑 같은 가족사를 치유하는 개인적인 작업이자 숨겨졌던 민족의 불편한 진실을 수면 위로 들어내는 조심스러운 작업이기도 하다.

 

사진제공 김이하

김성동작가는 1947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1965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지효대선사 상좌가 됐다. 1975년 ‘주간종교’ 종교소설 현상공모에 단편 <목탁조>가 당선됐으나 ‘불교계를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전체 승려들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승적을 박탈당했으나 그에게는 승적이 없었다. 1978년 한국문학신인상에 중편 <만다라>가 당선됐고 이듬해 장편으로 펴내 반향을 일으켰다. 그 뒤 근현대사 생채기와 구도의 길에서 존재 밑바닥을 파고드는 문제작들을 선보였다. 1983년 해방전후사를 밑그림으로 하는 장편소설 <풍적>을 중앙일보에 연재하다가 중단됐다. 중편 <황야에서>로 소설문학작품상을 받게 됐으나 주관사측의 상업성을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 창작집으로 <피안의 새>, <오막살이 집 한 채>, <붉은 단추>, 장편소설 <길>, <집>, <국수>, <꿈>, 우화소설<염소>, 산문집 <미륵세상 꿈나라>, <생명기행> 등이 있다. 지난 3월에는 제1회 이태준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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