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최대 규모 전국 190만 촛불

제5차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린 26일 오후 궂은 날씨 덕에 장관이 연출되기도 했는데요. 이날 눈비가 내린 탓에 날씨 자체는 회색이었지만 시민들의 형형색색 우산과 우의로 인해 광화문광장은 봄날에 꽃이 핀 듯했거든요. 이 광경을 위에서 내려다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엄청나네"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광화문의 봄'이라 부를 만 한가요? 다행히도 '청와대 포위 1차 행진'을 시작할 무렵부턴 눈비가 그친 덕에 밤엔 사상 최대 규모의 촛불이 횃불처럼 타올랐답니다.   

이날 주최 측이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는 150만 촛불이 모였습니다. 지역 40만 촛불을 더해 헌정 사상 최대라는 190만 촛불을 든 시민의 가슴속 깊이 각인됐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이렇게 모인 촛불은 저녁 8시부터 1분간 동시에 '저항의 소등'을 했습니다. 광장에 모여 앉은 시민들이 일제히 촛불을 끄자 광장은 마치 순식간에 시커먼 천으로 덮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암흑의 1분이 지난 뒤 광장의 시민은 다 함께 촛불과 휴대전화 플래시 등을 켜고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라는 세월호참사 추모곡을요. 촛불의 빛도 밝았지만 정의와 희망을 향한 국민의 타는 열망은 눈부실 지경이었습니다.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낸 멋진 장면들만큼이나 모인 단체나 개인이 각자의 정체성과 생각을 드러내는 방식도 흥미로웠는데요. 

요즘 '혼자 먹는 밥'은 '혼밥', '혼자 마시는 술'은 '혼술'이라 줄여 부르는 게 유행이죠. '혼자 온 사람들'이라는 깃발이 재밌네요. 광장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지만요~ 

'청년유니온'이 모여 자유발언하는 현장입니다. '전세난민', '월세난민' 등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주거 문제는 한국 사회 99% 국민이 공감하는 문제이지만 청년들에겐 더욱 쓰라린 현실입니다. 현재 "빚내서 집 사라" 식의 부동산 정책으론 '내 집 마련'의 꿈은 애당초 접어야 하는데 세입자를 보호하는 실질적 정책조차 없습니다. '을'의 고통 따위엔 무관심한 박근혜 정권에 분노할 이유는 이렇게나 다양합니다. 이제 '집주인'인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당당히 명령합니다. '계약 위반했으니 방 빼!'라고.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속담이 불현듯 떠오르네요.  

'꽃벽'의 화룡점정 시민들의 일침

지난 19일 촛불집회 때 경찰 차벽이 '꽃벽'으로 변했다는 뉴스 기억하시나요? 이날도 경찰 버스는 꽃밭이 되고 말았습니다. '꽃'이 피자 '벌'이 날아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일까요? 시민들의 날카로운 일침 또한 나비처럼 날아올라 벌처럼 경찰 버스를 쏘았습니다.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철저한 재조사".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풍조로 너무나 많은 생명이 억울하게 스러졌습니다. 국민의 행복을 견인하겠다고 선거 때마다 큰소리치던 정치. 정작 각종 참사와 비극 앞에서 국민은 정치의 부재만을 뼈저리게 경험했을 뿐입니다.

국민은 "법조비리, 해외자원비리, 4대강비리, 방산비리"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른바 '사자방 비리'에 대한 철저한 재조사 및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스티커도 붙었네요.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토목공사도 머잖아 진실의 심판대에 올라야 할 '역대급 삽질'이 분명합니다.  

"백남기 농민, 세월호, 국가가 죽이는 국민, 자살률 1위, 송파 세 모녀... 왜?"  정치인뿐만 아니라 경찰과 검찰, 모든 국민이 꾸준히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이 여기 조목조목 적혀있네요.  

"트랙터 왜 막았냐." 간단한 배경을 설명드리자면 지난 25일 농민분들의 트랙터와 트럭이 서울에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경찰이 강력 저지했기 때문입니다. 실제 25일 밤 서울 양재 IC에선 경찰에 의한 농민 연행과 폭행이 있었습니다. 농민분들이 11일 동안 트럭과 트랙터를 몰고 서울까지 와서 청와대에 전하고 싶었던 간절한 목소리가 무참히 짓밟힌 셈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식량주권과 식량안보를 지키는 일이 선택의 문제일까요? 

청와대 포위 2차 행진이 시작됐습니다. "박근혜는 즉각 퇴진하라!" "새누리도 공범이다!" "재벌도 공범이다!" 등 구호를 외치며. 어쩌죠? '피해자 코스프레'하려던 새누리당과 재벌 다 들켰습니다. 

"2016년 낄끼빠빠 상" 고3의 촌철살인

동십자각을 지나 사직로를 따라 행진하는 시민들의 뒷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앞에 세워진 경찰 차벽을 마주하고 선 이들은 다름 아닌 이날 오후 4시 1차 행진 때 선두에 섰던 대학생들이었습니다. 시민들과 자유발언을 이어가는 청년들의 목소리 중엔 최저임금에 대한 고충을 담은 당찬 발언도 있었습니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시간당 6030원 받고 한번 살아보십시오!" 

이날 집회 참석을 위해 전북 남원에서 왔다는 고3 여학생은 자유발언대에 서더니 박근혜 대통령에게 상을 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름하여 '2016년 낄끼빠빠 상.' 이게 뭐냐고요?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요즘 청소년들이 눈치 없는 사람을 향해 주는 핀잔이라고 하네요. 수상 축하드립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그 밖에도 곳곳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진 시민들의 주옥같은 자유발언이 수없이 많은데요. 자하문로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는 한 시민은 "전경 출신"이라고 자기소개를 하며 운을 떼더니 "그래서 광우병 사태 때도, 세월호참사 때도, 지난 10년간 한 번도 촛불집회에 참석하지 못했다"라고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가 이렇게 용기를 내 광장으로 나선 이유는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고 간절히 믿기 때문"이라고 밝히자 청중은 박수로 호응했습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박근혜 퇴진. 이명박 구속"이란 구호를 외쳤습니다. 이들은 청중을 향해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하면 언론이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겠냐?"고 묻곤 "그렇지 않다. KBS에는 정권의 아바타 12명이 있다"며 근본적으로 공정보도를 방해할 수밖에 없도록 짜여진 공영방송사 이사진 선출 구조를 꼬집어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다양한 발언이 이어지고, 광화문광장 북단과 남단에서 다채로운 문화공연이 진행되던 시간에도 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우며 솔선수범하는 시민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답니다.   

고래야 고마워...

세월호참사 희생자 304명을 태운 고래가 세월호광장 앞에 멈춰섰네요. 마치 만날 사람이 있다는 듯이... 

분향과 헌화를 위해 분향소 앞에 줄 선 시민들, 공식 집회와 행진이 끝난 늦은 시각에도 분향소 옆 전시관에서 '세월호 노란 리본' 만들기에 동참한 시민들. 이들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진 이유는 5천만 국민이 힘을 모으면 2년 반 동안 수심 37m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세월호와 그 속에 갇혀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9분, 그리고 '진실'을 마침내 인양해 낼 수 있을 것이란 희망 때문인 것 같습니다.

27일 오후 세월호 선미 아래 빔 두 개를 추가로 설치하는 작업이 성공했다고 하네요. 앞으로 남은 빔 두 개 설치와 선미들기가 조속히 이뤄지길 온 국민이 간절히 소망합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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